문장이 오지 않던 시간

마음의 골목에 오래 서 있다가, 나는 다시 한 줄을 건너왔다

by 서녘

한 두 달 정도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쓰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노트북을 열어도 커서는 깜빡이기만 했고,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았지만

문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음은 분명 무언가를 품고 있었는데

그걸 꺼낼 힘이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마음의 골목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돌아서지도 못한 채.


글을 쓰지 않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을까.


아니, 왜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할까.


예전에는 마음이 복잡하면

오히려 더 쓰고 싶어졌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마음이 복잡할수록 더 조용해졌다.


아마도 나는

그 감정들을 정리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괜히 문장으로 꺼냈다가

더 선명해질까 봐.


모른 척하면 조금은 덜 아플 것 같아서.


그렇게 나는

쓰지 않는 방식으로

내 마음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계절이 조금 바뀌었다.


해가 길어졌고,

바람의 냄새가 달라졌다.


나는 여전히 골목 어딘가에 서 있었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가끔은

‘이제 글을 못 쓰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처럼 감정이 바로 문장이 되지 않았고,

문장이 나를 구해주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 멀어졌다.


글에서, 나에게서.


그러다 어느 날,

별다른 이유 없이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대단한 각오도,

거창한 주제도 없었다.


그냥 갑자기,

한 줄을 써보고 싶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 문장을 쓰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풀렸다.


완성된 글이 아니라,

잘 쓴 문장이 아니라,


그저 솔직한 한 줄이

내 안에 고여 있던 시간을 건드렸다.


그때 알았다.

나는 글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멈춰 있었던 것뿐이라는 걸.


멈춰 있던 시간은

아무 의미 없는 공백이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을 천천히 겪고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안고 버티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쓰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종이 위가 아니라

내 안쪽 어딘가에.


마음의 골목에서 가만히 서 있던 날들.


그 시간은 무너짐이 아니라

준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글을 쓰면서

내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아직 여기 있구나.’


완벽하지 않아도,

예전 같지 않아도,


문장이 느려졌어도

나는 여전히 나였다.


글은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걸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두 달 동안 멈춰 있었던 나는


어쩌면 조금 지쳐 있었고,

조금 흔들리고 있었고,

조금 나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한 줄을 쓰고 있는 순간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아직 내 골목을 떠나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아주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한다.


문장 하나씩,

내 마음의 속도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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