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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은신 Oct 07. 2023

소설 <고흐의 변증법>

역설적 삶의 의미

                                                                      1

  유지는 정확히 오전 열한 시에 아를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카페라테 한 잔으로 몸을 깨운 후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광장 분수대 벤치에 앉으면 열한 시였다. 아를의 햇살이 오전 열한 시 즈음에 가장 강렬하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았다. 연청색 하늘에서 분사된 햇살이 성당 탑 위에서 눈부신 반사광으로 반짝였다. 

  유지는 수척한 얼굴에 실눈을 뜨고 쏟아지는 햇살을 똑바로 보려고 애썼다. 생 트로핌 성당을 마주 보고 앉아 한 시간쯤 졸고 있으면 하루 정도는 살아낼 힘이 생겼다. 

  이제 막 성당 밖으로 나온 한 쌍의 연인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연인의 이마에 키스하자 여자가 미소 지었다. 연인은 햇살 하나에도 행복해 보였다. 유지는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보듯 아련한 눈으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사랑해 유지야…. 

  소거된 줄 알았던 남편의 고백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기억이, 성당의 천 년 역사만큼 아득했다. 먹먹해진 가슴을 놓아주지 않고 또 호흡이 가빠왔다. 유지는 명치끝에 생채기라도 있는 사람처럼 가슴에 손을 얹었다. 평소 환자들에게 가르쳐줬던 연상 차단법을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괜찮아, 괜찮아, 하나, 둘, 셋….”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다시 천천히 내쉬며 진정하려 애썼다. 조금씩 호흡이 잦아들었다. 자기 상처를 객관적으로 통찰해야 한다고 환자들에게 조언해온 날들이 참 우스웠다. 고통에 대해 손톱만큼도 모르면서 고통을 덜어주려 했던 모순이 부끄러워 유지는 눈을 감았다. 분수대 앞 벤치에 그대로 앉아 언제까지나 꾸벅꾸벅 졸고 싶었다. 눈을 감아도 망막에 햇빛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수면 상태가 좋았다. 

  그간 유지의 병원을 찾아온 우울증 환자들은 지시어 몇 마디에 가수면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눈을 감고 카우치에 비스듬히 누운 환자들에게 유지는 가볍게 지시했다.

   ―자, 이제 그날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 둘, 셋…. 

  상처에 직면하지 못하는 환자일수록 가수면 치료는 효과가 좋았다. 트라우마가 기다리는 시간으로 환자를 데려가면 유지는 정신과 의사로서 즐거웠다. 

  하지만 아를의 햇살 아래에서 매일같이 졸며 깨달았다. 그간의 가수면 치료 효과는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피해 잠들고 싶은 환자의 절망 때문이라는 것을.     

  성당 오른편, 벤치에 앉은 남자는 오늘도 그대로다. 유지가 남프랑스 아를에 이십여 일 머무는 동안 남자를 목격한 게 벌써 예닐곱 번이었다. 고흐 카페에서도, 고흐 병원에서도, 론 강둑에서도 혼자 앉아 있는 남자를 여러 번 봤다. 

  처음부터 남자를 눈여겨본 건 아니었다. 이상하게 자꾸 거슬리고 신경 쓰였다. 햇살 아래 졸다가 무심코 눈을 떴을 때 그와 시선이 엉긴 적이 있었다. 그때 유지는 사선으로 턱을 돌리며 강렬한 반사광에 눈이 부신 척 눈을 찡그렸다. 겨우 아를까지 도망쳐 왔는데 우울한 사람과 조우하긴 싫었다.

  달뜬 관광객들 사이에서 남자는 확연히 다른 눈빛으로 광장 주변을 서성거렸다. 허겁지겁 햇빛을 먹는 연약한 식물 같았다. 얼굴빛은 창백하고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손가락은 가늘었다. 눈동자는 깊어서 동굴 같고 눈을 깜박일 때마다 긴 갈색 속눈썹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간헐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는가 하면, 어느 순간 고개를 푹 꺾은 채 몸을 달팽이처럼 움츠렸다가 화가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다. 

  아를로 오기 전 유지에게 나타났던 증상도 비슷했다. 멍하니 앉았다가 갑자기 간호사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으며 짜증을 냈다. 전에 없던 행동에 간호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한번은, 유부남과 헤어진 후 우울증에 빠진 스물다섯 살 여자 환자에게 화까지 냈다. 

  ―왜 본인의 상처만 생각해요? 이기적인 사랑 때문에 상처받을 주변 사람들은 생각 안 해요? 제발 이기심에서 벗어나세요!

  공감 대신 쏟아놓는 유지의 질책에 그녀는 울면서 진료실을 뛰쳐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 손을 씻으며 세면대 거울을 보는데, 사랑 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허술한 여자가 탄력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거울 속 여자가 불쌍했다가 갑자기 싫어져서 진료대 위에 놓인 모래시계로 찍어버렸다. 거울은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간호사들이 유지의 시선을 피할 때쯤 두 달 일정으로 아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몸에서 곰팡이가 피는 환시에 시달리다가 햇살이 퍼붓는 곳으로 도망쳐 왔다. 대학 후배를 페이 닥터로 앉혀놓고 무작정 떠나왔다.

  출발 전날, 유부남을 사랑한다던 환자가 다시 찾아와 물었다. 

   ―내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가정으로 돌아간 그 사람이 죄책감을 느껴줄까요? 

  유지는 차갑게 대답했다. 

  ―아닐 겁니다. 자기감정을 상대방에게 투사하지 마세요.     

  유지는 분수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흐 카페를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봄이라 관광객이 부쩍 늘어나고 있었다. 고흐 카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정신요양 차 아를에 머물 때 자주 들러 커피를 마시며 쉬어간 곳이라 했다. 그의 그림 <밤의 카페테라스> 배경 속에 앉아보려고 지구 끝에서 사람들이 오고 또 왔다. 

  유지는 카페 구석 2인용 테이블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카페라테를 주문한 후 인천공항 가판대에서 구매한 『영혼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그림과 함께 묶은 책이었다. 책갈피를 끼워둔 페이지의 한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유지는 피식 웃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흐가 쓴 편지라면 지독한 모순이었다. 고대 유적이 즐비한 회색 도시에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살까지도 모순처럼 보였다.

  이리저리 빈자리를 찾던 남자가 다가왔다. 성당 옆 벤치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이다. 

  “자리가 여기밖에 없어서…. 앉아도 될까요?” 

  유지는 짧은 목례로 앉으란 말을 대신했다. 엉거주춤 어색하게 앉는 남자의 머리 위로 뿌연 햇살 입자들이 떠다녔다. 마주 앉고 보니 남자의 몸피가 많이 야위었다. 두툼한 회색 체크무늬 남방이 더워 보였다.

   “한국 분이시죠? 광장 분수대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 여러 번 봤어요.”

  부담스러운 침묵을 깨려고 꺼낸 남자의 말에 유지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뭐 하는 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유지는 소중한 자유 시간을 방해받은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단순한 목격을 유의미한 경험처럼 말하는 그에게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평범한 가정의 아내예요. 좀 쉬러 왔어요.”

  말해놓고 나니 우스웠다. 평범한 가정의 아내…. 삼 년 전 아를로 신혼여행 왔을 때 남편이 유지에게 했던 말의 패러디였다. 

   ―유지야, 내 정체성 중에 가장 소중한 게 뭔 줄 알아? 네 남편이라는 정체성이야. 

  이젠 지독한 모순이 돼버린 그 말을 연상하고는 피식 웃었다. 눈앞에서 일렁이는 햇살이 유지에게 참소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찬란함은 그저 시각적 착각으로 생기는 순간의 빛 무더기일 뿐인 거지?

  ―너랑 사는 게 지겨워. 널 봐도 이젠 설레지 않는다고.

  남편은 근거 없는 핑계를 대며 씩씩댔다. 떠나는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명제 같아서 반박하려다 그만두었다. 급하게 챙긴 그의 캐리어를 붙잡고 싶었지만, 가만히 서서 보기만 했다. 너를 보면 설렌다던 과거 고백에 근거한다면, 지겹다는 건 사랑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사랑은 거짓이 되었고 변심은 참이 되었다.

  집을 나갈 때의 뒷모습이 그의 언어만큼 모순에 차 있었다. 현관문이 쾅 닫히자 처음으로 호흡이 버거웠다. 유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해가 질 때까지 현관문을 노려보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고 또다시 크게 들이마셨다.

  “평범한 가정의 아내라…. 분명한 정체성이 부럽습니다.”

  남자는 웃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유지의 무응답에 작위적으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조용히 커피만 마셨다. 그리곤 이따금 연청색 하늘에 시선을 두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유지는 비우지 않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2

  팬지꽃이 만발한 고흐 병원 뜰은 아늑한 동굴 같았다. 유지는 매일 이곳에 들러 두세 시간씩 머물렀다. 상념에 빠져 있다가 지겨울 때쯤 2층 도서관에서 책 구경을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렀다.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에서 흐르지 않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아를에서 잘 흘러간다는 사실이 모순 같았다. 

  관광 일행이 팬지꽃 앞에서 차례로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고흐가 정신분열증으로 일 년간 입원한 병원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관광객들은 잠깐 숙연한 표정이 됐지만, 이내 들뜬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유지는 한 인간의 절망을 추억처럼 얘기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의아했다. 절망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가벼운 에피소드로 남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풀 수 없는 모호한 추리 같았다. 유지에게 치료받는 환자들이 건넨 질문도 비슷했다. 

   ―선생님, 고통이 무디어지길 기다리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언제쯤 가능할까요? 

  유지는 시선을 돌려 연인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젊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삼각대 위에 사진기를 놓고 렌즈를 조절하던 연인이 왼손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내주자 여자는 꽃보다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삼 년 전, 아를에서 열린 한-불 미술교류전 기간에 맞춰 신혼여행 왔을 때 남편도 꽃 앞에 선 유지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예술적인 건 없다는 고흐의 말은 정말 명언이야. 아무리 봐도 너보다 예쁜 꽃이 없네.

  가끔 유지는 그때 쏟아낸 남편의 고백이 외로움에 떨다가 스스로 잘라버린 고흐의 귀 같다는 상상을 했다. 얼마나 끔찍하게 싫었으면 그 고백들을 한순간에 잘라버렸을까 생각하며 진저리를 쳤다. 

  수국 시리즈를 그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남편은 결혼 전 미대 교수로 초빙되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왜 하필 꽃을 그리느냐고 유지가 물었을 때 그는 즉답했다. 

  ―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이니까요. 사랑이 인생의 절정이듯이. 

  확신에 찬 표정이어서 그의 대답은 불변의 진리로 증명된 참 명제 같았다. 진료실에서 심리 프로파일을 분석하다가 급히 소개팅 자리에 나간 유지는 꽃을 그리는 그에게 강하게 끌렸다. 육 개월 만에 결혼하면서 사랑이 인생의 절정이라는 말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환자들에게 조언한 말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뿌듯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감정에 정직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하세요. 미해결 과제는 인생에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기니까요. 

  그 말은 남편이 나간 자리로 들어와 유지를 조롱했다. 결혼 삼 년 차 서른여덟 살의 남편이 스물다섯 살 대학원생 조교와 연인 관계라는 고백을 듣고도 욕설을 내뱉거나 따귀를 때리지 못했다. 진료실 안에서 왔다 갔다 서성이기만 했다. 세면대 거울 속 여자를 향해 중얼거렸다. 

 ― 이건 정직한 반응이 아니야. 왜 직면하지 못해? 

  아를행 비행기를 예약하면서, 신혼여행지를 다시 찾아간다면 혹시 갈가리 찢긴 자아와 직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비행 열두 시간 내내 머릿속으로 가수면 치료 지시어를 되뇌었다. 

  ―이제 당신은 모순에 찬 시간 속으로 떠나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또 뵙네요.” 

  고흐 카페에서 마주 앉았던 그 남자였다. 분명히 경계신호를 보냈는데도 예의 순진한 눈을 그대로 뜨고 있다. 유지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괜히 시선이 마주치면 정신과 의사로서 무의식적 책임감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남자는 유지가 앉은 벤치로 와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앉았다.

  “아를에 잠깐 머물다가 돌아가려고 했는데 햇살이 좋아서 이십 일 넘게 이렇게 주저앉아 있네요. 제 이름은 고호상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이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부르며 놀려댔죠.” 

  우울한 이미지와 전혀 다른 생뚱맞은 이름에, 잔뜩 긴장해 있던 유지는 피식 웃어버렸다. 

  “확 깨죠? 이름 때문에 평생 분위기 있게 살긴 글렀습니다. 어디로 떠날까 고민하다가 고흐가 머물렀던 곳이라 고향 찾듯이 여기로 왔어요.”

  “고흐와 고호상, 개그 제목 같네요.”

  “그렇죠? 그렇게 웃으니까 참 예쁘세요. 눈이 깊은 것 같아서 걱정했거든요. 아, 주제넘었다면 용서하세요. 제가 지금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그런지 우울한 사람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고호상 씨는 무슨 근거로 내가 우울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거예요?”

  “감기 걸린 사람이 감기 걸렸다고 말 안 해도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남자는 자신을 서른여섯 살의 무명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십 년 동안 의욕적으로 제작했던 다섯 편의 독립영화들이 전혀 빛을 보지 못했어요. 그중 한 편은 아예 스크린에 올리지도 못했죠. 이젠 제작에 참여하려는 개인이나 동호회도 없어요. 먹고살기 막막해지니까 자본이나 배급망에 연연하지 않으려 했던 초심도 변하네요. 초조해요.”

  “기본 욕구 없는 상위 욕구는… 아, 아닙니다.”

  “없다는 말씀이죠? 당연히 그렇겠죠.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어요.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었어요. 호흡곤란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불쌍해 보였는지 여자 친구가 석 달 치 월급을 쥐여 주면서 어디로든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하더군요.”

  “……”

  “여자 친구는 행정복지센터에서 민원서류 발급 업무를 하고 있는데, 한 번은 울먹이면서 얘기하더라고요. 하루에만 신규 주민등록을 수십 건씩 해주는데 우리 두 사람만 등록할 곳이 없다고요. 아를까지 왔지만 사실 돌아갈 곳이 없어요.”

  숨 쉬려고 떠나온 남자의 호흡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막막해 보였다. 유지는 갸름하고 섬세한 남자의 얼굴선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친 영화판에서 어떻게 십 년을 버텨왔는지 의아했다. 

  “독립영화 제작을 계속할지 그만둘지 여기서 결정하려고요. 가능성이 없는데 미련을 두는 건 영화에 대한 모독 같아서요. 독하게 마음먹고 공시 준비라도 하면 여자 친구에겐 덜 미안하지 않을까요. 내 옆에서 십 년의 시간을 낭비했거든요. 평범한 가정의 아내라는 정체성, 내 입장에선 축복 같아요.”

  남자의 연갈색 속눈썹이 침잠된 눈동자를 덮었다. 어느새 상담 같은 분위기로 들어와 버린 상황이 버거웠다. 역시 그와 얽히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가 일었다. 유지는 남자에게 습관처럼 조언을 해주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는 능력 없는 정신과 의사의 조언보다 한 줌의 햇살이 더 유용해 보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기최면을 걸어요. 굳이 내가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요. 영화 만드는 사람이 꼭 나여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많이 힘들어요.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전쟁이 나와의 직면 같아요. 아프지만 현실을 인정해야 하니까요.”

  남자는 자신의 낡은 스니커즈로 시선을 떨궜다. 260쯤으로 보이는 작은 발이 안쓰러웠다. 유지는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고호상 씨…. 빈센트 반 고흐도 아를에서 요양하면서 그림을 계속 그릴지 그만둘지 고민했다고 들었어요. 고흐가 이 병원에서 절망하며 누워 있을 때, 장차 세기의 명화를 남기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고흐의 흔한 일화였다. 사실은 신혼여행 왔을 때 남편이 유지에게 들려준 일화를 그대로 읊은 것뿐이었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무명 화가가 명작들을 그려낸 것처럼 그땐 유지도 정신을 흔들어놓은 사랑이 자신의 인생에 명작으로 남을 거라 확신했다. 

  “고흐에게 일어난 기적이 제게도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반농담으로 묻는 남자의 입술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유지는 놓치지 않았다. 환자들은 자기 생을 사랑하는 깊이만큼 떨었다. 절망에서 애써 희망을 찾으려는 모순처럼 보였다. 

  “현실은 바뀔 수도 있어요. 영화를 사랑하는 고호상 씨가 지금 여기 이렇게 앉아 있잖아요. 가장 큰 조건을 갖춘 셈이죠. 영화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면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는 거예요. 변하지 않는 사랑만 있으면 돼요. 사랑이 변하면… 대단한 것 같은 현실도 다 무너져버리거든요.”

  남편의 사랑이 변한 뒤 유지는 습관성 과호흡 증상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스펙과 경제력, 환자가 무난히 찾아드는 병원, 교수와 의사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가정. 썩어서 냄새나는 화려한 현실이 역겨웠다. 

  “사랑이 변하지 않으면 가능성이 있다고요? 아무것도 없는 제겐 그 말이 모순처럼 느껴지네요.”

  유지는 아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민하는 남자가 부러웠다. 깨지지 않았으니 아직 확률이 남아 있었다. 회복 가능성이 멸절되었다는 자기 연민이 밀려오자 습관처럼 호흡이 가빠졌다. 그에게 들키기 전에 아무렇지 않은 척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도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3

  론 강은 천 년의 묵은 시간을 싣고 완만하게 흘렀다. 유지는 호흡을 조절하며 정적 속에 묻힌 회색 강둑을 천천히 걸었다. 반사된 햇빛은 수면 위에서 몸을 뒤채며 저 혼자 황홀하게 반짝였다. 

  밤이 아닌 게 아쉬웠다. 밤이었다면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는 고흐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짙은 잉크색으로 덮인 밤과 강 위에 어른대는 별의 노란 그림자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별빛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던 고흐가 이따금 예민한 미간을 좁혀가며 강물 위에 어른대는 별빛을 바라볼 터였다. 

  ‘가장 어두운 밤도 언젠가는 끝나고 해가 떠오를 것이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고흐가 쓴 글귀를 떠올리며 유지는 피식 웃었다. 밤에 속한 남자가 밤이 끝나기를 기다리다니, 지독한 모순이었다. 만약 밤의 강둑에 웅크린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게 된다면 유지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나의 밤도 언젠가 끝날 수 있을까요?

  유지는 밤이 두려웠다. 남편에게 어린 연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악몽을 자주 꿨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 쫓기는 꿈은 늘 같은 형태로 재생됐다. 가끔 남자의 얼굴이 남편의 얼굴로 변형될 때도 있었다. 수면유도제를 두 알이나 복용해도 잠이 안 오던 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아파트 앞 어두운 산책로를 걸었다. 문득 공간적 배경이 꿈속 장면과 흡사한 듯한 기시감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덜덜 떨면서 집으로 들어와 현관문을 닫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를에 온 후에도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호텔로 돌아가 출입문 잠금 상태를 세 번 네 번 확인했다. 

  상상 속 고흐의 얼굴 위로 자기 얘길 쏟아놓던 고호상의 쓸쓸한 얼굴이 겹쳐졌다. 고흐에서 고호상으로 자연스레 연결되는 게 아이러니했다. 말이란 참 이상했다. 전혀 관련 없는 대상도 한번 말로 연결되고 나면 연상으로 묶여버렸다. 남편의 지겹다는 말 한마디에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여자로 묶여버린 것처럼. 

  유지는 쓸데없는 연상을 떨쳐내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드러운 강바람에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멀리 강둑에 앉은 쓸쓸한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고호상이 먼 소실점에 시선을 두고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유지는 먼 거리에서 자신을 보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시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고대 유적들처럼 남자도 낡은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박제된 것만 같았다. 

  그냥 지나쳐버리려다 망설임 끝에 곁으로 가서 앉으며 유지는 실없는 말을 꺼냈다. 

  “강이 참 아름답죠?” 

  “예, 스크린에 담고 싶을 만큼.”

  “영화감독은 강을 바라볼 때도 영화를 생각하는군요?”

  “예. 어쩔 수 없이….”

  남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쓸쓸하게 웃었다. 유지는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체크무늬 모직 셔츠에 자꾸 눈이 갔다. 닳아서 보풀이 일어난 셔츠 깃 속 가느다란 목이 안쓰러웠다. 

  “지독하군요. 영화에 대한 사랑이…. 고흐도 론 강을 캔버스에 담은 걸 보면 그림에 대한 사랑이 지독했나 봐요.” 

  말과는 달리 유지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지독한 집착을 떠올렸다.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어제 해주셨던 말…. 사랑만 변하지 않는다면 현실엔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말을 되새기고 있었어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고요. 혹시 그 말에 대해 증명해 보일 수 있나요? 단, 고흐 예는 빼고요. 고흐의 사후 성공 예는 이미 유효기간 지났습니다.” 

  남자는 농담 속에 간절함을 실으며 유지를 쳐다봤다. 유지는 자신을 쏙 빼닮은 남자의 얼굴이 가여워 슬쩍 고개를 돌렸다. 

   “고흐 말고 다른 예라…. 뭐가 있을까요? 휴… 진짜 없네요.”

  “역시 없는 거죠? 나한테 희망은 고문인 거죠?”

  남자의 얼굴에 희미한 체념이 스치자 유지는 하는 수 없이 무거운 입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증명해 보일 순 있어요.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말을 뒤집어 봐요. <사랑이 변하면 가능성이 없다>는 역명제가 성립되겠죠? 역명제의 좋은 예가 나예요. 음, 그러니까… 이미 사랑이 식어버린 부부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 말은…”

  “사실은 나, 남편의 불륜 때문에 혼자 도망 온 거예요. 마흔이 다 돼가는 정신과 의사인데, 다른 사람의 상처는 치료하면서 내 상처 하나 어떻게 못 하니 답 안 나오는 모순이죠. 어때요, 고호상 씨, 이 정도면 좋은 예로 충분한가요?”

  시선을 강에 고정한 채 가만히 듣고 있는 남자의 긴 속눈썹이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거리를 두고 이름도 소개하지 않던 여자가 갑자기 쏟아놓은 자기 고백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랬군요. 어쩐지 슬퍼 보였어요.” 

  “쉽게 판단하지는 말아요. 세상은 오류투성이니까.”

  “오류투성이라도 끝없이 판단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 아닌가요?”

  “반론이 그럴듯하네요.”

  “혹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란 영화 본 적 있어요?”

  “아뇨, 영화감독 추천 리스트에 있는 명화인가요? 제목으로 봐선 진한 불륜 영화 같은데요?”

  “하하하. 그렇게 느껴지세요?”

  남자는 고개를 젖히고 소리까지 내며 처음으로 투명하게 웃었다. 

  “불륜 영화 아닙니다. ‘폴’이라는 남자의 이야기예요. 어릴 때 사고로 부모를 잃은 충격 때문에 말문을 닫아버린 사람이죠. 상실의 아픔 때문에 어릴 때 부모에게서 사랑받았던 기억을 왜곡해버려요. 난 사랑을 못 받은 불행한 사람이라고요.”

  “그러니까, 영화의 핵심이 뭐예요?” 

  “모든 상처는 나에게 일어난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고호상 씨는 내 상처가 단순한 기억의 왜곡이라고 생각해요?”

  “한때 남편분과 서로 사랑했다면 그 시간은 이미 자기 몫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가 되기에 충분하죠.”

  “궤변 같은데요.”

  “현재 상처를 과거 행복에 투사하지 않으면 참이 될 수도 있어요. 어쨌든, 그때는 행복했으니까요. 행복했던 과거를 아픈 현재와 분리해서 간직하는 거죠. 따뜻한 기억으로.” 

  “현재가 엉망이 됐는데 어떻게 기억이 따뜻할 수 있어요?”

  유지는 순간, 유부남을 사랑하다가 우울증에 빠진 스물다섯 살 여자 환자를 떠올렸다. 그녀는 사랑했던 시간과 버림받은 시간을 함께 담을 수 없다며 울었다. 옆에 앉은 영화감독이 그녀의 담당 의사라면 훨씬 더 깊은 위로를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충분히 따뜻할 수 있어요. 적어도 과거에는 행복했으니까요. 과거도 현재도 쭉 실패의 연속인 나로선 그저 부럽습니다. 행복했던 과거에 자신을 다시 세팅해보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고호상 씨, 정신과 의사처럼 말하네요. 자격증도 없으면서.”

  “그래요? 하하. 영화판에서 실패만 했는데 이번 기회에 정신과 의사로 전업해볼까요?”

  남자가 눈에 웃음을 담았다. 우울한 표정 안에 갇혀 있던 천진한 미소가 돋았다. 유지는 가만히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소년의 얼굴로 영화판에서 십 년이나 버텨온 그의 시간이 안쓰러웠다. 

  “과거의 행복이 다 긍정적 착각이었다면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남편분이 사기꾼이 아닌 이상 분명 두 분 다 한때 행복했던 게 확실해요. 긍정적 착각과 진실은 종이 한 장 차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 근거가 없는 거 알죠?”

  “논리로 설명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고호상 씨 말이 맞을지도 모르죠.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을 인간의 논리로 인식할 수 없다는 모순만큼 지독한 모순이 있을까요?” 

  “가끔은 모순이 진실보다 더 참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몸부림 같아서요.”

  “여기 괜히 앉았나 봐요. 고호상 씨랑 대화하다 보니 막 헷갈려요. 말장난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결말이 어떻게 돼요?”

  “물론 해피엔딩이죠. 마담 프루스트가 베푸는 최면 치료 덕분에 폴은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가서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게 돼요. 슬픈 기억이 행복한 기억으로 바뀌니까 자연스럽게 살아갈 힘을 얻게 된 거죠.”

  현재가 아픈데, 가수면 안에서 남편과 사랑했던 과거로 돌아간다고 살아갈 힘이 생길 수는 없을 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 같았다. 환자 중에 직면이 안 돼서 치료가 길어진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떠올리며 유지는 반문했다. 

  “영화니까 그렇죠. 불가능한 모순이에요. 환자들에게 했던 조언이 나한텐 적용이 안 되거든요. 남편이 변심한 순간을 직면할 수가 없어요. 그것도 어려운데 남편과 사랑했던 시간에 집중하라고요? 그 시간을 마취제 삼아 현재를 견디라고요?”

  “‘영화니까 그렇지’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 말은 ‘고흐니까 가능했지’라는 말과 같으니까. 고흐의 정신분열증이 현실이면 고흐의 명작도 현실일 테죠. 더 변명하면 자가당착에 빠지는 거 알죠?” 

  유지도 남자의 시선을 따라 멀리 강 하류에서 가물거리는 소실점을 바라보았다. 은빛 윤슬이 현실과 가수면의 경계인 양 속절없이 반짝였다. 유지는 그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싶었다. 아픈 기억이 따뜻한 기억으로 바뀔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 같았다. 시퍼런 배신감도 어느 날엔가 소실점처럼 희미해지고 시뻘건 분노도 어느 시점엔가 윤슬처럼 가물거릴 때가 올 거라 믿고 싶었다.


                                                                    P.S.

  유지는 오늘도 정확히 오전 열한 시에 아를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카페라테 한 잔으로 몸을 깨운 후,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광장 분수대 벤치에 앉았다. 하루 중 가장 강렬하고 투명한 햇살이 광장에 쏟아졌다. 연청색 하늘에서 분사된 햇살이 성당 탑 위에서 눈부신 반사광으로 반짝였다. 유지는 생 트로핌 성당을 마주 보고 앉아 고개를 들고 햇살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고흐 카페에서도 고흐 병원에서도 론 강둑에서도 그를 볼 수 없었다. 아를을 떠난 게 분명했다. 떠나기 전, 우연히 고흐 카페에서 다시 만났을 때 남자가 말했다.

  “이름은 여쭤보지 않을게요. 남편과 행복했던 시간을 상처로만 왜곡한 ‘폴’이라고 기억하겠습니다. ‘폴’을 도와준 ‘마담 프로스트’로도 기억할게요.”

  “‘정신분열증 환자의 명작’만큼 모순된 정의네요.”

  유지가 남자의 앳된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웃자 남자도 따라 웃었다.

  “지난번 강둑에서 선물로 주신 『영혼의 편지』, 읽어보니 고흐가 남긴 명언이 꽤 많더군요. 모순 명제 같은 한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는 침체에 빠진 절망을 선택한 게 아니라 희망이 담긴 우울을 택한 것이다’. 희망이 담긴 우울이라니, 참 웃픈 말이죠? 한국으로 돌아가면 <모순>이라는 제목으로 독립영화를 제작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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