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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은신 Oct 07. 2023

소설 <초롱아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이제 그의 편지를 열어봐도 될 것 같다. 지금 시각은 밤 아홉 시, 동장님이 오후에 지시한 서류 작업은 대충 마무리됐다. 냉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으니 이제야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아침에 외근 나갔다가 오후 세 시쯤 행정복지센터로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돼 있었다. 항공우편 봉투에 수신인 주소를 또박또박 써넣은 손 글씨가 단정했다. 열두 군데 다중시설 방역상태를 점검하고 막 돌아온 뒤여서 그랬는지 이국땅에서 날아온 편지는 대낮에 받은 밤 편지처럼 뜨악했다. 재난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요즘, 거의 매일 외근이다. 지역사회 전염병 감염 예방뿐 아니라 쏟아지는 공문 수행과 민원 처리로 행정의 최전방은 오늘도 전쟁 중이다. 

  편지의 발신지는 필리핀 산토스. 처음 듣는 지명이다. 필리핀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이런 미지의 도시에서 내게로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발신인은 한병우. 육 년 전, 일반행정직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노량진에서 만난 동갑내기 취준생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재작년 여름이니까 꽤 시간이 흘렀다. 그와 얽힌 시간은 이상하게 산화력이 강해서 분주한 일상 뒤로 쉬 흩어져버린다. 

  그는 매번 이런 식이다. 잊을 만하면 뜬금없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더니 이번엔 편지다. 그것도 지명조차 낯선, 머나먼 산토스에서.

  시월이 코앞인데도 날씨는 여전히 쨍쨍해서 외근하는 동안 셔츠가 땀으로 젖어버렸다. 돌아와 자리에 앉는 순간, 편지를 읽기보다 갑갑한 마스크부터 벗고 싶었다. 애꿎은 손부채질만 하며 편지 겉봉을 뜯으려는데 때마침 동장님이 호출했다. 

  “내일 구청에서 점검 나온다고 연락 왔어.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방역 상황 ppt 자료 얼른 만들고, 다중시설 점검 현황도 한눈에 볼 수 있게 보고서 만들어 놔. 아침 일찍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인쇄까지 완벽하게 해놓고 퇴근해.”

  연일 외근하느라 수고한다는 격려는 한마디도 없었다. 칼같이 업무만 주문하는 동장님의 카리스마 앞에서 예, 반듯한 어조로 대답하고 나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동장님의 일방적인 지시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지시받는 자의 반감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서른일곱 즈음이면 구청으로 옮겨 일하게 될 줄 알았다. 전공인 회계 능력을 살려 세무과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그림을 그려왔는데, 여전히 행정복지센터에서 막노동하고 있단 생각에 짜증이 났다. 뒷마당으로 나가 아내가 제발 끊어버리라는 담배만 한 대 피우고 들어왔다. 

  ppt 자료 만들고 야근 세 시간 만에 보고서에 스테이플러까지 찍고 나니 이제야 한병우의 편지가 눈에 들어온다.


  친애하는 김정환 귀하 

     

  수신인 문구가 촌스럽다. 누가 보면 육칠십 년대 서간문인 줄 알겠다. 곱상한 글씨체를 보고 있자니 두꺼운 뿔테 안경에다 이마에 달라붙은 자연산 곱슬머리, 어딘가 수줍어하는 표정까지 그의 양태가 하나둘 떠오른다. 평범한 얼굴에 비해 큰 입이 그의 개성이지만 문장 끝에 살짝 리듬을 타며 마무리하는 남도 말투도 한병우만의 특성이다. 

  “고향은 여수예요.”

  한국사 특강 시간에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돼 서로를 소개하고 말을 텄다. 지방에서 모여든 공시생의 처지란 게 비슷해서 이름과 고향만 소개해도 친구가 된 것 같았다. 그때 말투가 오롯이 기억나는 걸 보면 그가 내게 완전히 잊힌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한병우의 성격도 글씨체와 닮았다. 워낙 꼼꼼해서 강의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데다 서로 말을 튼 뒤부터는 강의실에 미리 도착한 그가 매번 내 자리를 잡아주곤 했다. 특별히 정리가 잘된 그의 노트 도움을 많이 받았다. 둘 다 공시 재수생이었지만 나는 떨어져도 그는 꼭 합격할 줄 알았다. 

  공부에 탄력을 붙여가던 중, 그는 눈 양쪽에 검은 선들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고 했다. 어서 병원에 가보라고 당부했는데 괜찮을 거라며 몇 달을 버티더니 어느 날 폭탄선언을 했다.

  “안과에서 망막변성증이래요. 병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대요. 의사 말로는… 시간을 따라 천천히 시야가 좁혀질 거라네요. 실명까지 최대한 진행을 늦추려면 눈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하대서, 아무래도 행정사무를 직업으로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다 접고 노량진을 떠납니다.”

  시험을 겨우 두 달 앞두고 그는 중도에 포기해버렸다. 진행성 질병이라 합격한다 해도 몇 년 못 버틸 거라 했다. 그를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그저 소주 한잔 사주고 헤어졌다. 그때 그와 비슷한 처지여서 그랬을까,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어디에서 뭘 하든 그가 잘됐으면 싶었다. 뭐라고 앞뒤 없는 말로 위로하는 내게 그가 했던 푸념이 아직도 기억난다.

  “먹고살려면 어떡하든 시험에 꼭 합격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병을 더 악화시킨 것 같습니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상황 때문에 흘려보낸 그의 시간이 마치 나의 것인 양 화가 났다. 

    

  이 편지는 첫 정박지인 필리핀 산토스 항구에서 정환 씨에게 보낼 겁니다. 바다의 도시 산토스는 생명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곳입니다. 전 세계 다랑어잡이 외항선들이 집합하는 거대한 항구죠. 만선의 기쁨과 출항의 설렘이 교차하는 곳입니다. 지금 제가 타고 있는 배는 내일 오후쯤 산토스에 도착하게 될 겁니다. 그곳에서 이틀 정도 정박한 뒤에는… 드디어 마리아나 해구로 떠납니다. 

    

  마리아나 해구. 필리핀 동쪽 챌린저 해연에 숨겨진 거대한 구렁. 수심 10,000m가 넘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 8,848m 높이의 에베레스트산을 거꾸로 세워도 닿을 수 없다는 해저다. 

  한병우가 마리아나 해구를 처음 입에 올린 건 노량진에서 헤어지고 이 년 뒤, 그러니까 우리 둘의 나이가 서른셋 일 때였다. 일 년 더 도전해 삼수 끝에 공무원이 된 나는 당시 새 업무를 익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를 완전히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나예요. 한병우.”

  뇌리에서 이미 흩어진 그를 억지로 소환해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던 것 같다. 

  그날은 센터에서 개설한 자치 프로그램 민원을 해결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노래 교실 두 강좌 중 한 강좌를 폐강하고 역사 강좌를 신설하려고 했는데, 어르신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한꺼번에 몰려와 항의하는 통에 식은땀을 흘렸다. 젊은 동민들의 요구를 수용해 변화를 모색하려 한 결과치고는 참담했다. 동장님께 불려가 작은 업무 하나 깔끔하게 진행하지 못한다고 호통 들은 그날, 내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뻔한 인사말을 나눈 뒤에 한병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환 씨, 날씨도 추운데 우리 소주 한잔 어때요?”

  나는 그의 제의가 공기 중으로 빠르게 산화되는 걸 무연히 바라보았다. 사소하고 가벼운 제의인데 괜히 부담스러웠다.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일상 속으로 끼어든 그가 귀찮았다.

  “병우 씨의 여유가 부럽네요. 지금 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시큰둥한 반응에 그는, 문득 생각나서 전화한 것뿐이라고 에둘렀다. 바쁜 것 같으니 다음에 만나자며 그가 먼저 끊으면서 통화는 종료되고 말았다. 

  민원이 수습된 뒤에야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났다. 통화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서운할 텐데도 그는 내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약속 장소로 나가면서 이상하게 숙제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저녁 시간이었는데 그는 뭐가 급한지 만나자마자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마시고 싶은 술을 억지로 참아온 사람 같았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숨겨뒀던 진심을 슬며시 내보였다. 

  “한 달 전 정환 씨에게 전화한 건, 푸드 트럭 폐업 신고한 날이었어요. 뭐, 맘이 허전해서 소주라도 한잔 기울이고 싶었나 봐요.”

  남 얘기하듯 말했다. 내 눈엔 어쩔 수 없는 달관처럼 보였다. 

 “핸드폰 뒤져서 함께 술 마실 사람을 찾았는데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때 문득 정환 씨가 생각났어요. 서울 올라온 지 오 년이 지났는데 함께 술 마실 사람 하나 없다니….”

  그는 잔을 채워주며 쓸쓸하게 웃었다. 

  시간을 따라 서서히 소멸할 생명체가 뿔테 안경 속에 갇혀 있다고 느낀 건 지나친 상상이었을까. 어항 속 시한부 생명체와 마주 앉은 듯한 느낌에 나도 괜히 울적해졌다.

  한병우는 전남 지역 국립대 해양생물학과 출신이고, 나는 충북 지역 사립대 회계학과 출신이다. 둘 다 서울이 고향이 아닌 바에야 사회적 지인 말고 맘 터놓을 친구가 쉽게 만들어질 리 없었다. 노량진의 춥고 쓸쓸한 기억이 서울 생활의 전부인 건 그와 내가 피처럼 나눠 가진 공통분모였다. 지독한 외로움이 그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때 이른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그의 말이 괜히 시렸다. 

  그는 외동아들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대학 시절 어머니마저 신부전증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쩌면 뿔테 안경 속 쓸쓸한 생명체의 느낌은 망막변성증보다는 그의 외로운 처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향에서는 외로울 때마다 항구에 나가 출항하는 배를 봤다고 말하곤 했는데,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 갇힌 그는 외로움에 말라버린 겨울나무 같았다.

  “공시 포기한 직후에 무직자 청년 대출받아서 라면포차를 시작했어요. 일 년 만에 접었습니다. 한 달 최저생활비만 나와도 계속 운영했을 거예요. 그해 겨울 지독한 추위에 급성폐렴만 앓고 두 손 들었습니다. 그 뒤엔 중고 스낵카를 사서 막창구이 푸드 트럭도 운영해봤죠. 그것도 매출이 변변치 않아 한 달 전에 접은 겁니다.”

  마침 그가 젓가락으로 집은 안주가 막창구이였다. 안주를 흘깃 보더니 피식 웃고는 입에 넣어 우걱우걱 씹었다. 그때 그의 등 뒤로 짧은 겨울 해가 지고 있었다. 강렬한 석양이 주점 유리문을 통과해 그의 곱슬머리를 적황색으로 물들였다. 마주 앉은 나의 눈에, 마지막 햇살이 X-선이 되어 그의 내면을 투과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스스한 머리카락도 사라지고 피부와 근육도 벗겨진 몸 안, 한껏 움츠러든 그의 영혼이 누추해 보였다. 내 자화상을 그린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얼른 시선을 바깥 풍경으로 돌렸다. 밖에는 초라한 나목들이 시린 바람을 견디며 서 있었다. 방향 없는 바람이 주점 유리문을 거칠게 흔들었다. 

  “정환 씨, 공무원 생활해보니 어때요?”

  질겨서 잘 씹히지 않는 막창구이를 억지로 목으로 넘기면서 그가 물었다. 

  “공무원 생활이요? 글쎄요…. 목적지인 줄 알았는데 간이역에 불과하더라고요.”

  그의 감정에 전이된 탓이었을까, 안주를 씹다 말고 선문답하듯 대답했다. 그럴듯한 비유로 답하면 덜 초라해 보일 줄 알았나 보다.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민센터 발령 후 맡은 첫 업무는 민원서류 발급이었다. 등본, 초본, 인감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등 하루 백여 통이 넘는 서류를 발급하면서 시간이 통째로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접수증 받아 발급 버튼 클릭하고 인쇄해서 건네고 수수료를 받으면 끝이었다. 생각은 배제되었다. 

  다음엔 민원상담, 그다음엔 자치 프로그램. 업무 내용은 시시한데 사람들은 까다로웠다. 시시한 업무에 초점을 맞추면 정체성에 의문이 생겼고, 까다로운 민원에 초점을 맞추면 짜증이 났다. 월요일이면 금요일을 기다렸고,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불편해졌다. 

  하지만 한병우 앞에서 그런 푸념 따위는 할 수 없었다. 나도 그가 보였던 것처럼 꽤 씁쓸한 웃음을 흘렸던 것 같다. 둘의 자조가 안주처럼 술자리를 떠돌았다.

  “그냥, 그런대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죠, 뭐. 병우 씨도 알다시피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객기 담긴 내 말에 한병우는 그저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둘이서 소주 세 병을 비우고 거나하게 취하자 그는 뜬금없이 마리아나 해구를 아느냐고 물었다. 황당한 질문에 피식 웃었을 것이다.

  “당연히 알죠.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구 아닙니까.”

  “역쉬! 정환 씨는 뭘 좀 아는 사람이라니까!”

  그의 혀가 조금씩 꼬였다. 반말이 섞여들었고 망막변성을 앓는 눈은 게슴츠레 풀어지기 시작했다. 

  “내 전공이 해양생물학인 거 알죠?”

  노량진 시절 귀가 따갑도록 듣던 말이었다. 그의 레퍼토리는 늘 같았다. 해양생물학, 취업은 제로인 학과지만 공부는 정말 흥미로웠다는 것. 어머니는 지방 사립대라도 좋으니 공대에 가라고 설득했는데, 그가 고집을 부려 진학했다는 것.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해양생물 분야에 완전히 심취됐다는 것. 들을 때마다 나는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치곤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마리아나 해구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 수심 10,000m까지 내려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그곳을 탐사하기가 달 탐사보다 더 어렵다는 거 알아요? 요즘은 그 깊고 어두운 바다에 몸을 던져보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들어요.”

  순간 섬뜩했다. 몽롱한 기운 안으로 일순 각성제가 퍼지는 것 같았다. 짐짓 의뭉스럽게 받아냈다.

  “에이, 병우 씨! 무슨 농담을 그렇게 멋있게 해요?”

  “정환 씨, 만약 내가 죽으면 꼭 마리아나 해구에 던져줄래요?”

  횡설수설하는 그의 말을 자르듯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과음한 그를 데리고 주점을 나오면서 카운터에 신용카드를 내밀자 주인은 한병우가 미리 계산을 마쳤다고 했다.  

    

  얼마 전에 구두점도 문을 닫았습니다. 폐업 신고까지 마치고 나니 이젠 정말 막다른 골목이구나 싶더군요. 무시무시한 마리아나 해구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방이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수심의 압력에 심장이 터지고 몸은 납작해져 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숨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외항선을 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리아나 해구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보고 싶다던 그의 소원은 쉽게 이루어진 것 같다. 현실 상황이 등을 떠민 게 틀림없다. 세 번의 연타 폐업을 겪었으니 지독하게 운이 없는 사내다. 상상해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병든 눈을 부릅뜨며 빛 한 조각을 찾아 헤매는 그의 형상을. 

  그가 조금이라도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마음이 이토록 무겁진 않을 테다.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그를 편하게 만났을 것이다. 저 사람처럼 저렇게 살면 되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얼마나 가볍게 술잔을 받았을까.

  한병우를 다시 만난 건, 그러니까 첫 재회 후 이 년 뒤인 서른다섯 살 여름이었다. 봄에 결혼해서 신혼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변두리 아파트 상가에서 작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여자를 만나 두 계절 만에 결혼한 터였다.

  나른한 유월의 금요일, 퇴근이 가까운 다섯 시쯤 그에게서 불쑥 전화가 왔다. 칼퇴근해서 아내와 시원한 맥주 한 캔 할 생각에 들떠 있던 참이었다. 

  “정환 씨, 오늘 엄청 더운데 우리 시원소주 같이 할래요?”

  썰렁한 아재 개그가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그때 내 시선은 센터 정문 맞은편, 플라타너스에 닿아 있었다. 진초록 나뭇잎에 여름 햇빛이 깨질 듯 쨍쨍한 걸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휘발된 시간 안으로 다시 찾아든 그가 짜증스러웠다. 금요일 저녁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선약이 있다고 핑계를 대려다 문득, 이 년 전 만났을 때 그가 술값을 계산한 게 생각나서 약속을 잡고 말았다. 왠지 모를 마음의 부채를 갚아야 할 것 같았다.

  여섯 시 삼십 분. 햇살이 남아 있어도 이미 저녁 시간인데,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다. 무릎 나온 청바지에 빛바랜 티셔츠 차림 위로 선글라스 낀 모양새가 개그 같았다. 하마터면 보자마자 풉, 소리까지 내며 웃을 뻔했다. 

  “병원 갔더니, 여름이라 망막변성이 심해질 수 있다고 가능한 햇빛을 보지 말라고 하네요.”

  변명 같은 첫마디가 끝나자마자 그는 입속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주문해놓은 돼지국밥이 나오기도 전인데 그의 빈속이 걱정됐다. 

  “점심 식사는 했어요?”

  “그럼요. 굶고 다니지는 않으니 걱정 마요.” 

  “병우 씨는 요즘 어떤 일 해요?”

  “신림동에서 저가 여성 구두점 운영하고 있어요.”

  “그랬군요. 이번엔 잘되고 있는 거죠?”

  “겨우 월세만 맞춰주고 있습니다. 여자들의 심리를 좀 알면 판매에 도움이 될 텐데…. 뭐, 말주변도 없고 잘생긴 마스크도 아니고 말투도 세련되지 못해서 손님들 발길이 점점 뜸해지네요. 하긴 지금껏 연애 한 번 못 했으니….”

  자조하는 그를 향해 지난봄에 결혼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소주병과 안주 접시, 낡은 청바지와 빛바랜 티셔츠 사이에서 유일하게 선글라스만 튀어 보였다. 유행 지난 선글라스를 똑바로 보면서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이 가려져 있어 그의 반응을 확인할 길도 없었다.

  말단공무원 월급이래야 적금 부을 돈은 뻔했다. 교통카드 충전비와 점심 식사비, 기본 용돈만 떼는데도 남는 건 백만 원 안팎이다. 삼 년 알뜰하게 모아 목돈 삼천만 원을 만들었지만, 그 돈으로 신혼집을 얻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전세자금 장기대출 칠천만 원 받고 아내가 학원 운영으로 모은 돈 오천만 원을 합쳐 부천에 십칠 평 빌라 전세를 겨우 얻었다. 그나마 일하는 여자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딱 먹고만 사는 삶에서 탈출할 희망을 엿보고 싶었다.

  물론 아내도 공무원이라는 안정성을 택했을 것이다. 최저생계 보장의 보루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어떤 위급 상황에서도 위협받지 않을 보험이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서로 조건이 맞아떨어진 훌륭한 짝인 셈이다.

  전염병 사태가 커지자 아내는 자신의 선택에 내심 뿌듯해하는 것 같다. 퇴근 후 힘들어 죽겠다고 엄살떨면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에 비하면 든든하지 않냐며 되려 나를 다독였다. 아내의 말에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두 번의 창업에 실패하고 세 번째 위기로 의기소침해진 자영업자 한병우에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그때 미혼이었다면 그에게 위로가 됐을까. 술잔을 채워주며 하나 마나 한 뻔한 위로를 건넸다.

  “망막변성증만 아니었다면 병우 씨는 그해 분명 합격했을 겁니다. 나보다 일 년이나 경력 많은 선배가 됐을 거예요. 그랬다면 분명 구청 기획재정국 국장도 될 수 있을 텐데요.”

  “과연 그럴까요? 인생엔 자기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요?”

  반문하는 그의 목소리에 습관적인 달관이 묻어났다. 튀는 선글라스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다. ‘그랬겠죠? 그랬음 내가 정환 씨 꽤 부려 먹었을 텐데’, 그런 농담이라도 했다면 차라리 술자리가 가벼웠을 테다. 

  돼지국밥이 나왔는데도 그는 국물만 두어 숟가락 떠먹고 연거푸 소주잔을 기울였다. 한 잔 두 잔 계속되던 잔 끝에 거나하게 취하는가 싶었는데 

  “해양생물을 공부해보니 그 속에 세상 원리가 그대로 담겨있더라고요. 정환 씨, 마리아나 해구 알아요?”

  또 지긋지긋한 마리아나 해구 타령이었다. 아! 이 사람의 주정이 곧 마리아나 해구였구나 싶은 순간에 문득, 동장님의 넋두리가 떠올랐다. 직원 회식 때 풀어놓은 넋두리였다. 

  “주정은 곧 그 사람이야. 가장 인간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지. 다들 과음하지 않게 조심해! 잠깐 방심하면 속을 다 들켜버린다니까. 난 내 주정 미리 말할게. 음… 난 취하면 울어.”

  동장님은 곧 구청 기획재정국 국장에 임명될 거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 있다. 워낙 똑똑한 사람이라 막연한 추측이 사실처럼 회자되는 중이다. 어설프게 일하는 직원에겐 위압적일 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그에게 숨겨둔 눈물이라니, 언뜻 이해가 안 됐다. 

  “열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거든. 서러운 일 있을 때마다 독하게 참으면서 막아둔 눈물이 이건 뭐, 술만 취하면 터져 나오는 거야. 세월 지나 이젠 말랐으려니 싶은데도 계속 터져 나와. 그래서 난 항상 적당한 선까지만 술 마시려고 노력해. 아슬아슬하거든.”

  아무 상관 없는 한병우를 앞에 앉혀놓고는, 얼마 전에 들었던 동장님의 넋두리가 명언 같다며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슴과 얼굴로 뜨거운 열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상당히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열기를 식히려고 냉수를 마시다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 8,848m 에베레스트산을 거꾸로 세워도 그 깊이를 다 채울 수 없다는 마리아나 해구가 왜 한병우의 주정이 된 건지 궁금해졌다. 단지 해양생물학 전공 때문만은 아닐 거란 추측이 확신처럼 떠올랐다.

  “어이, 병우 씨. 거, 참 이상하네! 마리아나 해구가 당신이 독하게 참으면서 막아둔 눈물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횡설수설 앞뒤 없는 말로 따지듯 묻는데 발음이 자꾸 샜다. 생수통째 들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머릿속에 동장님의 넋두리와 한병우의 마리아나 해구가 뒤엉겨서 혼란스러웠다. 헛헛한 열기만 계속 올라왔다.

  그때 한병우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였다. 빈 소주병과 안주 접시가 널린 테이블 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가 또렷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다 수심에 따라 사는 생물이 다 달라요. 깊은 바다일수록 기압도 높아지죠. 그런데 생물들은 기특하게도 잘 적응해서 자기 수심을 벗어나지 않거든요.”

  답이 너무 명료해서 혹 잘못 들었나 싶어 검지로 오른쪽 귀를 후볐다. 그의 말이 몽롱한 취기를 뚫고 들어와 가슴에 꽂혔다.

  “에이, 병우 씨. 나도 그 정도 상식은 있어요. 아!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인간의 몸은 1기압의 공기 압력을 견디며 살고! 우주는 0기압이라는 거! 그러니까, 내 말은, 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기압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거죠.”

  “정환 씨, 마리아나 해구 기압이 얼마인지 알아요?”

  “그건 모르겠네. 후후. 오늘 병우 씨 전공 특강인가? 주정이 너무 길면 안 되는데…. 막아둔 눈물 둑이 터지면 안 되는데…. 그러니까, 내 말은 술 적당히 마셔야…”

  얼굴로 헛헛한 열기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숨을 길게 내뱉었다. 날숨이 뜨겁게 데워져 있었다. 선글라스 속에 숨은 그의 눈도 벌겋게 달아 있을 것 같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자그마치 1,100기압이 넘어요. 사람이 거기까지 내려갔다간 바로 쥐포처럼 짓눌려버릴 거예요. 심해 생물은 기압 때문에 탐사할 수도 없어요. 아주 가끔 저인망에 걸려 올라오는 생물을 관찰할 뿐이죠. 그런데 거기에도 상상할 수 없는 다종의 생물이 살고 있어요. 신기하죠? 수심 200m만 내려가도 햇빛은 하나도 닿지 않으니까 심해는 완전히 캄캄한 세상이라고요.”

  “후, 답답하겠는데요.”

  “망막변성으로 완전히 시력을 잃는다고 해도 억울할 게 하나도 없는 곳이죠. 하하하. 내가 가야 할 곳 같지 않아요?”

  나는 계속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마리아나 해구가 왜 자신의 주정인지 그가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어느새 캄캄해진 주점 밖에는 한여름 나무들이 죽은 듯이 서 있었다. 어둠에 붙들려 잎사귀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밤이 이상하게 서늘했다. 

  “심해 생물들, 그 녀석들 말입니다. 기압이 어마어마한 바다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줄 알아요?”

  “글쎄요. 나야 모르죠. 회계밖에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

  “스스로 자기 살을 없애거나, 물렁물렁한 피부로만 남거나, 몸속에 따로 기체를 갖거나, 그것도 아니면 회복 단백질을 갖거나 뭐, 그런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에 적응했어요. 녀석들이 어쩌다 거기까지 내려가서 살게 된 건지 모르지만 적응력이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가끔은 그 적응력이 존경스럽다니까요. 기적이죠, 기적!”

  둘 다 상당히 취한 것 같아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 뇌리에서는 이미 그와의 시간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자화상 들여다보는 놀이, 그만하고 싶었다.

  “병우 씨, 이제 집으로 돌아갑시다. 취해서 그런지 우리 집이 마리아나 해구보다 먼 것 같으니까. 하하.” 

  결국 그날 마리아나 해구가 그의 주정이 된 접점은 찾지 못했다. 싱거운 말장난과 허탄한 자조로 아까운 시간을 보냈나 싶었다. 화장실 다녀오면서 술값은 내가 미리 계산해놓았다. 

  택시를 잡아주려는데 그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서둘러 뱉어냈다. 

  “정환 씨도 견뎌야 할 기압이 있겠지만… 세상 사람 누구나 힘들겠지만… 그래도 햇빛이 들어오는 수심에 사는 정환 씨가 부럽습니다.”

  햇빛이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일견 이해는 되었지만, 그의 넋두리야말로 괜한 말장난 같았다. 과음한 그를 택시에 태우고 차비까지 미리 지불하고 나니 밀린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했다.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 시원한 맥주 한 캔 더할 생각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정환 씨, 혹시 ‘초롱아귀’라고 들어봤어요? 

  나를 닮아 입이 무척 큰 녀석인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생긴 물고기예요. 그 녀석은 마리아나 해구 수심 2,000m 아래 살아요. 한 점 빛도 없는 그곳에서 녀석이 살아가기 위해 벌인 일이 뭔지 알아요? 등지느러미 가시를 기다란 촉수로 진화시켰어요. 눈 바로 위까지 내려와 있는 촉수 모양이 기와지붕에 걸린 초롱불 같아서 ‘초롱아귀’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촉수 끝에 초록색 발광체가 있어서 깊은 어둠을 스스로 밝히며 먹이를 찾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어둠 속에서 제 살을 깎아 스스로 등불을 켠 거죠. 그 녀석이 지독하게 부럽습니다. 어둠 속 고독한 빛인 게지요. 

    

  초롱아귀, 처음 듣는 이름이다. 

  회식 자리에서 콩나물과 함께 매운 고춧가루에 버무려진 아귀찜은 먹어봤지만 이런 종류의 아귀가 있다는 건 처음 듣는다. 이름은 귀여운데 한병우를 닮았다면 글쎄, 외모는 우스꽝스럽고 어수룩할지도 모르겠다. 내년 상반기에 구청 기획재정국 국장에 임명될 거라는 소문이 퍼져 있는 동장님, 그분의 가슴에 막혀 있다는 눈물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얘기다. 먼 이국의 항구로 떠나는 사람이 개연성 없는 아귀라니.

  ‘어둠 속 고독한 빛인 게지요.’ 

  쓸쓸한 문장에 눈이 닿자 새삼 그의 망막변성이 심해진 건 아닌지 걱정된다. 이 년 전 여름, 그를 택시에 태워 보낸 후 어쩌면 한 번도 그를 떠올려보지 못했는지. 아주 가끔 저인망에 걸려 올라오는, 캄캄한 시간 속의 한병우. 그의 근황은 인지 체계 안에 없는 초롱아귀만큼이나 관심 밖이었다. 

  초롱아귀를 상상해보니 하나의 장면이 연상으로 떠오른다. 거울 앞에 서서 웃자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헤치는 한병우, 그의 단단한 두개골과 두꺼운 두피를 뚫고 촉수의 움이 돋고 있다. 어수룩한 얼굴을 덮은 갈색 곱슬머리, 불안한 눈동자를 덧씌운 검은 선글라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막 돋기 시작한 초록빛 촉수…. 그의 얼굴 위로 어둠 속을 유영하는 고독한 아귀가 겹쳐진다. 빛도 소리도 차단된 무위의 세상을 홀로 헤엄쳐가는 한병우.

  생뚱맞게도, 내년 상반기면 구청 기획재정국 국장으로 승진할 동장님의 촉수는 완벽한 일 처리나 카리스마가 아니라 깊이 막아둔 눈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이 퇴근하고 없는 불 꺼진 동장실을 돌아보는데, 그의 집무실에서 어렴풋이 초록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만 같다. 오늘 칼퇴근한 동장님은 지금 어디에선가 애써 막아둔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 위로 손이 올라간다. 짧게 깎은 머리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넣자마자 문득 나의 촉수는 어디 있을까, 궁금해진다.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방역 상황 ppt? 아니면 관내 다중시설 점검 현황표? 그것도 아니면 아파트 단지 꼬마들에게 바이엘을 가르치는 아내? 오늘은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헛헛한 열기가 얼굴로 올라온다. 

  한병우는 그 멀고 낯선 산토스에서 침침한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전 세계 다랑어잡이 외항선이 들고나는 곳, 정박과 출항이 숨 가쁘게 교차하는 곳, 출하와 경매 소리가 쩡쩡 울리는 곳, 경쟁과 욕망의 눈빛이 불꽃을 일으키는 곳. 진동하는 생명 냄새를 맡고 있을 한병우가 떠오른다. 어쩌면 산토스를 떠나 이미 마리아나 해구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불쑥 그를 따라 마리아나 해구를 향해 떠나고 싶어진다. 동장님만큼 지독하게 일을 잘 해낼 자신도 없고 구청 기획재정국 국장까지 오를 자신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아래로 내려갈 자신도 없다. 그저 얄팍한 신분과 아내의 소박한 경제력을 붙잡고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보낼 것만 같아 두렵다. 한병우에겐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맥주 한 캔을 소확행이라 부르며 오늘도 앞으로 헤엄쳐 나아가야 한다. 

  거대한 외항선이 들어오고 새로 단장한 배가 대양을 향해 다시 출항하는 곳, 그곳 산토스 항구에 서 있는 한병우가 지독하게 부러워진다. 갑작스러운 감정이라 나도 이해 불가다. 역설적이게도 햇빛 하나 들지 않는 깊은 곳에 사는 그가, 스스로 초롱불을 밝히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가 아프도록 그리워진다.


  고향 항구에서 출항하는 외항선을 탔습니다. 언젠가 정환 씨에게 말했듯 육지의 끝은 바다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꿈을 안고 떠나는 곳이죠. 솔직히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막다른 골목이어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마리아나 해구를 찾아가는 겁니다. 

  술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돌아 다시 귀향하는 느낌이 듭니다. 급여 분배 방식이나 선박 시설, 선주가 누구인지도 묻지 않고 항로만 보고 선택했습니다. 마리아나 해구를 지나 적도를 넘어 파푸아뉴기니까지 가는 선박입니다. 선원이셨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떠난 바닷길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산토스 항구에서 보낸 그 편지에는  ‘며칠 후면 세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를 지나갈 것’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그때 마리아나 해구로 떠난 배는 침몰했고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으니까요.    

  

  태양이 작열하는 태평양에서 망막변성을 앓는 그가 과연 험한 외항선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언젠가 어둠이 그의 눈을 완전히 닫아버린다면 그땐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노량진 시절 딱 한 번, 한병우와 둘이서 그의 고향 앞바다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발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고시촌의 방이 시신의 곽처럼 느껴졌을 때, 우리는 무작정 용산역으로 달려갔다. 무궁화호 막차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둘 사이엔 말이 없었다. 유일한 일탈의 시간이었던 그날, 그는 숨 쉬려고 가는 거라고 혼잣말처럼 얘기했을 뿐이다. 그때도 난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에서 내달려 항구에 서자 그는 감격한 듯 눈을 감고 한껏 팔을 벌렸다. 그리곤 있는 힘껏 바닷바람을 들이마셨다. 

  “아! 이곳은 언제 와도 좋아요. 생명 냄새가 나거든요.”

  오랜 세월 떠돌다가 신고 끝에 집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그는 그날 편안해 보였다. 바다가 그의 부모 같았다. 내륙 출신이어서 산만 보고 살아온 나에게 바다는 그저 땅의 끝이란 느낌 외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망망하고 두려운 곳이기도 했다.

  “정환 씨 말대로 바다는 땅의 끝이지만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죠. 자랄 때도 외로울 때면 이곳 항구에 나오곤 했어요. 먼 대양으로 출항하는 배들을 보고 있으면 땅의 끝은 곧 바다의 시작이란 생각에 위로가 되더라고요.”

  어리숙한 눈동자에 깃든 그의 역사가 어렴풋하게 스치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보잘것없는 한 인간 뒤에 숨어 있는 무거운 역사를 가늠하며 맞은편 섬을 바라보았다. 

  “사실 나, 해양대학에 진학하려고 했어요. 바다 위에서 살고 싶었거든요. 나름 간절했는데,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된 어머니가 외아들까지 바다로 보내는 게 두려우셨나 봅니다. 심한 반대에 결국 고집을 꺾었죠. 대신 타협으로 얻어낸 게 해양생물학이지만….”

  먹고살 길 없는 해양생물학을 전공하기보다 차라리 해양대학에 가지 그랬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뱉을 수는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 아버지의 삶이 환원돼 있다는 건 그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바다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얘긴 그날도 끝내 고백하지 않았었다. 

  아버지의 자취를 따라 마리아나 해구를 지나고 적도를 넘어 남반구의 아주 먼 바다까지 가려는 한병우. 마치 세계가 얼마나 깊고 세상이 얼마나 치열한지 마주하려고 떠난 사람 같아 마음이 뜨거워진다. 오늘은 정말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 계속 뜨거운 열기가 올라온다. 그의 말대로 그의 여정이 막다른 골목의 도피처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면 좋겠다.     

  정환 씨, 바다는 자신 속에 어떤 깊은 해구를 품고 있어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좋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압과 한 치의 빛도 허용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등불을 켠 초롱아귀를 만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응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와 생존법을 물어볼 수 있을까요? 

  세월이 흘러 눈이 완전히 닫혀버린 어느 밤, 칠흑 같은 세상에서 초록빛 촉수를 마음에 켤 수 있다면 초롱아귀에게서 위로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안을 빌며 한병우 드림.     

  이미 밤이 늦었지만, 답장을 써야겠다. 혹 그의 손에 닿을 수 없을지라도. 거대한 마리아나 해구 위에서 제 살을 깎아 스스로 등불을 밝히고 있을 그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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