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은신 Oct 07. 2023

소설 <알비노>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선생님께

     

  십 년 전, 청소년상담센터의 작은 격자 창문 너머로, 추위에 얼어붙은 조각하늘에 시선을 주며 상담받았던 소녀를 기억하시는지요. 선생님과 제대로 눈도 못 맞추던 열일곱 살의 여고생 말이에요. 만약 지금까지 그 상담센터에 계신 게 아니라면 선생님은 이 편지의 수신인이 못 될 수도 있어요. 물론 제가 이 편지를 다 쓰고 난 후 우체통에 넣는다는 보장도 없지만요. 

  며칠 전 혼곤한 저녁잠에서 깨어나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다가 어떤 기사를 검색하게 됐는데 불현듯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시간의 지층을 뚫고 섬광처럼 떠오른 기억에 저도 당황했어요. 암실에서 단번에 또렷한 형체로 인화된 선생님의 얼굴은 뭐랄까,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무망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의 힘찬 파닥거림처럼 신선했어요. 그때 아주 잠깐 설레기까지 했어요. 설렘은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감정이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답니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지 않으면 어렵게 찾아온 감정이 다시 무망의 바다로 달아나버릴 것 같았거든요. 

    

  선생님은 온몸이 하얀 사슴, 온몸이 하얀 고라니, 온몸이 하얀 원숭이, 온몸이 하얀 참새를 보신 적 있나요? 그때 핸드폰으로 검색하고 있던 인터넷 기사는 바로 백색증을 앓는 알비노에 관한 거였어요. 눈부시게 하얀 사슴 사진에 놀라 기사를 열었던 것 같아요. 유전자 돌연변이인 알비노는 멜라닌 색소 생성이 되지 않아 발현한다고 했어요. 다른 건 모두 정상인데 효소 하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서 멜라닌이 만들어지지 않고 결국은 티 하나 없이 하얀 몸의 알비노가 된다는 거예요. 

  더 웃긴 건, 알비노를 만드는 유전자는 열성이래요. 열성이란 건 부모 양쪽 모두로부터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아야 알비노가 된다는 뜻이잖아요. 참 지독하게 운이 없는 경우죠. 부모 양쪽 염색체 중 하나에만 정상적인 유전자가 있어도 열성의 특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제가 괜히 유식한 척했죠? 사실은 기사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쓴 거예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학교 다닐 때 유전법칙을 배운 적이 있어서 얼추 이해는 돼요. 알비노가 근친 교배한 동물에서 태어나는 이유도 열성이기 때문이래요. 은밀하게 잠복해 있던 열성들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떨며 강렬하게 만나는 거죠. 

  알비노는 온통 하얀색이어서 천적들로부터 몸을 숨기기 어려운 데다 사냥 중에도 먹잇감이 접근을 쉽게 알아채 굶기 일쑤고, 무리로부터 추방당하기도 쉽고, 짝짓기에도 불리하대요. 게다가 알비노는 눈동자까지도 붉은색을 띤대요. 홍채와 망막 상피에 멜라닌이 없어서 눈동자의 혈관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래요. 선생님, 정말 끔찍하지 않아요? 신화 속 동물로 신성시되는 하얀 사슴이 실은 멜라닌 색소 하나 없는 열성 덩어리 개체라고 하니, 진한 연민이 느껴졌어요.   

   

  십 년 전 단 한 번 선생님께 상담을 받으면서,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고, 가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고민이라고, 아마 울면서 말했을 거예요. 그때 선생님은 별게 다 고민이라는 듯 아주 잠깐 희미하게 웃다가, 상담자의 자세가 이러면 안 된다는 자각 때문이었는지 곧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셨어요. 그런데 내게는 선생님이 바꾼 표정조차, 남들이 부러워할 매끄럽고 건강한 피부를 고민으로 꺼내놓는 한심한 여고생을 바라보는 표현임을 바로 알아차렸어요. 왜 아니겠어요. 누군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때 선생님은 차분하고 다정하게 말씀하셨어요. 사람의 피부색은 멜라닌의 양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거란다. 네 고민이 하찮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내 감기가 남의 죽음보다 더 고통인 법이니까, 희주에겐 정말 중요한 문제겠지. 그런데 말이야, 언젠가 내가 상담해준 학생 중에 백색증을 앓는 친구가 있었어. 생각해보니 희주랑 나이가 같구나. 그 친구는 피부는 물론이고 속눈썹까지 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하얬단다. 이목구비가 정말 예뻤는데 안타까웠어. 상담 자리에서도 그 애는 고개를 잘 들지 못하더구나. 어쩌다 시선이 마주칠 때면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거든. 너무 하얘서 쌀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은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게 고통이었나 봐. 이 세상 누군가는 멜라닌 색소가 하나도 없어서 숨어 살고 있단다. 네 피부는 멜라닌이 조금 많을 뿐이야. 오히려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건강한 피부인 거지. 선생님은 네 가무잡잡한 피부가 오히려 부럽구나. 그래도 불만이라면 나중에 화장으로 커버해보렴. 정말 예쁠 것 같다… 라고 격려하셨지요. 

  그때 저는 선생님 조언을 들으며 내 고민 따위는 싹 잊어버렸어요. 백색증을 앓는다는, 속눈썹이 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다는 그 친구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비닐처럼 투명한 피부 아래로 붉은 핏줄과 푸른 힘줄이 그대로 보일 텐데, 화가 났을 때 한껏 팽창한 혈관이나 냉담해졌을 때 파랗게 굳어버린 근육을 다 들켜버릴 텐데, 그 애는 어쩌지? 센터의 작은 창틀에 갇힌 조각하늘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 친구의 얼굴 아래에도, 푸른 혈관을 타고 슬픔의 강이 흐르고 있을 거란 엉뚱한 상상에 붙들렸어요. 그날 그 순간, 선생님을 앞에 두고 흘깃 바라본 조각하늘이 손에 잡힐 듯 아직도 선명해요. 너무 짙고 파래서 더 추워 보였던 겨울 하늘과 위태롭게 반짝이던 겨울 해의 흰빛 광채도, 조각하늘이 안으로 삼켜버린 슬픈 눈물도, 푸른 혈관 깊숙이 감춰버린 이야기까지도.

      

  알비노 기사를 읽다가, 백색증을 앓는 그 친구는 지금껏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천적이 득실대는 야생의 세계에서 몸은 잘 숨기고 있는지, 굶지 않을 만큼 먹이는 확보하고 있는지, 무리로부터 추방당하지는 않았는지, 무사히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 짝을 이루었는지, 그 친구의 행적을 알고 싶었어요. 나처럼 스물일곱이 됐을 그 애를 만나고픈 열망이 생겼어요. 이제 열망 따윈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단지 멜라닌 색소가 부족했을 뿐인데, 단지 효소 하나가 기능하지 못했을 뿐인데 한 인생이, 한 역사가, 한 세계가, 한 우주가 흔들려야만 하다니요. 차라리 그 친구가 엄마 뱃속에 태아로 잉태되었을 때 거품처럼 사라졌다면, 열성 인자가 짝을 이룰 일은 없었을 테고 열성은 잠복조차 못 하고 영원히 파묻혔겠죠. 그랬다면 한 인생이, 한 역사가, 한 세계가, 한 우주가 흔들리는 재난은 없지 않았을까 상상해봤어요. 내 상상이 정당하다면, 내일 오전에 감행하려는 행동은 그다지 큰 죄가 안 될 것도 같아 조금은 위안이 돼요. 

  선생님도 잠깐 상담했던 그 친구의 안부를 알 리 없겠지만 어쨌든 얼굴도 모르는 그 친구와 내가 닿을 수 있는 인연의 고리는 선생님밖에 없네요. 모르는 행인을 붙들고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인지 추적해보면 나와 행인 사이에는 평균 세 명이 존재한다고 들었어요. 사회적 네트워크로 단단히 묶인 우리나라 정보통신망을 자랑하는 기사였는데, 문득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구나 싶어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론 위안이 됐어요.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첫 번째 동심원 사람들, 그리고 비교적 가까운 두 번째 동심원 사람들, 그리고 결코 가깝다고 할 수 없는 세 번째 동심원 사람들, 그리고 멀리 있는 네 번째 동심원 사람들….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행인이 어쩌면 내게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궤변을 믿고 싶었어요. 백색증을 앓는 그 친구도 과연 그 말을 믿고 살아갈까요?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구나, 라고 가끔 위안을 얻고 있을까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빠에게 감사했던 단 한 순간이 있다면 십 년 전 바로 그때,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아빠로부터 멜라닌 색소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던 그 순간밖에 없어요. 사실은 아빠를 쏙 빼닮아 가무잡잡한 내 얼굴을 엄마가 싫어했거든요. 마치 아빠 혼자서 날 낳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에요. 보험 고객을 만나러 나가기 위해 하얀 얼굴에 더 하얀 분을 바르면서 엄마는 그렇게 말했어요. 제 아비 닮아 밝은 기라곤 없는 음침한 상판하고는! 저러니 친구 하나 없지!

  다량의 멜라닌 색소를 물려준 아빠는 이 년 전에야 겨우 죽었어요. 십오 년간 술만 마신 사람이니 까맣게 타들어 숯이 돼야 마땅할 텐데 이상하게 시신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얬어요. 마치 평생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천적을 피해 살아온 알비노 같았죠. 모두 죽은 아빠 얼굴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어요. 저 숯이 된 상판 봐라, 평생 술에 절어 살더니 쯧쯧쯧, 이라고 비난해야 마땅한데 얼굴이 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얬으니까요. 아빠가 술을 마시고 있을 때면 늘 상상하곤 했거든요. 아빠가 죽는 순간의 얼굴을요.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숨 쉴 수 없는 남자를 선생님은 상상해보셨나요? 물론 알코올 중독자나 그 아들딸을 수없이 상담해 보셨으니 잘 아실 테죠. 가족이 아닌 상담자의 이론으로 말이에요. 

  아빠 장례식에선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어요. 술병으로 죽은 중년의 알비노를 위해 아무도 울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내일 아침이면 어미의 뜻에 따라 강제로 사라져야 할 내 뱃속 생명, 외할아버지의 열성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태아를 위해선 누가 울어줄까요? 선생님, 어쩌면 이 편지는 단 한 사람에게 미리 보내는 한 생명의 부고장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빠의 부재를 가장 기뻐해야 할 엄마는 오히려 허탈해했어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라도 남편이 떠난 빈자리는 있다거나 홀로 된 여자로서의 회한은 어쩔 수 없다거나 하는 상투적인 이유 때문은 아닌 게 확실했어요. 간절하게 기다리던 소망이 성취되었을 때 느끼는 몽롱하고 아찔한 어지러움을 난 엄마에게서 간파했으니까요. 오직 한 가지 열망만 독하게 품고 삶을 지탱해왔는데, 갑자기 이루어진 뒤의 허무함이라 하면 얼추 맞을 거예요. 엄마가 회사에서 꿈에 그리던 보험 여왕이 됐을 때도 비슷한 표정이었거든요. 고객을 붙들기 위해 엄마의 하얀 분칠은 점점 더 진해졌고, 과도한 아부와 애교를 떨 때는 생의 확고한 의지가 얼굴에 배어 있었어요. 마치 대입을 준비하는 고3 학생처럼 전투적이었죠. 그래서 아빠가 죽은 뒤의 차별화된 표정을 쉽게 간파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원양어선을 타는 남동생은 아빠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참석하지 않았어요. 사실 아빠가 위독해졌을 때도 휴가 기간이었지만 서둘러 배를 타고 다시 먼 바다로 나가버렸으니까요. 아빠가 돌아가셨어, 라고 전해주었지만, 전화기 너머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알 수 없지요. 베링 해협에서 조업 중인 거대한 배 위에 서서 서쪽 하늘이 석양으로 물들 때면 아주 잠깐이라도 아빠를 생각했을지…. 


  아빠가 처음부터 엄마를 때린 건 아니었어요. 남자구실도 못 하면서, 라는 말을 엄마 입으로 뱉은 순간 구타는 시작됐어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으니까 잘못 본 건 아니에요. 엄마는 딱 한 번 그 말을 했을 뿐인데 술만 마시면 아빠 귀에 녹음파일처럼 재생됐나 봐요. 취중에 엄마 얼굴만 보면 분노했죠.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타르를 지고 나르던 아빠가 삼층 난간에서 떨어지면서 허리를 다쳤는데, 디스크가 파열돼 다시는 일할 수 없게 됐어요.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급속하게 무기력해졌죠. 침묵의 동굴로 들어가 버렸고 엄마가 보험왕이 된 날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아주 가끔은 기적처럼 얼굴에 잠깐 생기가 돌 때도 있었어요. 거실 천장에 붙은 형광등 전구가 나가버린 날이었는데 아빠 말고는 아무도 전구를 씌운 유리 곽을 떼낼 수 없었죠. 의자를 갖다 놓고 올라선 아빠는 유리 곽을 떼내느라 얼굴이 빨개졌고, 몇 번을 더 오르내리며 세 개의 전구를 갈아 끼우는 동안 이마에 살짝 땀이 배기도 했어요. 그날 아빠는 오랜만에 살아 있는 것 같았죠. 동굴에서 나와 햇볕을 쬐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다음 날, 술에 취해 거실에 잠든 아빠를 보면서 나는 바보처럼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어요. 거실 형광등을 켰다가 끄고, 켰다가 끄고, 또 켰다가 끄고…. 그래야 아빠가 할 일이 생길 테니까요. 엄마가 현관 키를 누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점등과 점멸의 무한반복을 멈췄어요.


  엄마의 귀가는 점점 늦어졌어요. 술 취한 남편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선 잠든 후에 들어와야 했겠죠. 엄마는 아빠의 손찌검에 거세게 저항하다가 반복성에 분노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낙담하다가, 점점 집요해지는 태도에 치를 떨며 아빠가 죽기만을 소원했어요. 저 인간 죽는 날이 곧 내 생일이다, 그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요. 내용은 끔찍한데 말투가 너무 가벼워서 얼핏 들으면 농담 같았죠. 

  그리곤 늘 고객, 이라고 부르는 남자들과 함께 떠돌았어요. 참치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 한 솥 끓여놓고는 삼사일은 살림을 돌아보지 않았어요. 김치찌개가 바닥나야만 엄마가 돌아올 것 같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던 기억이 나요. 엄마는 마치 말기 암을 선고받은 사람 같았어요. 생이 자신을 속인다는 배신감에 저항하다가, 분노하면서 낙담에 빠져들었고, 결국 생에 집착하며 하루하루를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하긴 아빠랑 부부로 산다는 게 말기 암에 걸린 것보다 더 절망적이었겠죠.


  알비노의 눈동자가 붉은색인 건 홍채와 망막 상피에 멜라닌 색소가 없어 혈관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래요. 참! 이건 앞에서도 쓴 내용이죠? 두려운 일을 눈앞에 둔 사람의 급성 건망증이라 해둘게요. 선생님은 이해해 주실 테죠. 내 감기가 남의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아는 분이니까요. 인터넷 기사의 두 번째 사진에는 눈부시게 하얀 털로 덮인 원숭이가 타는 듯 빨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포식자가 나타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생애 한순간도 긴장을 놓은 적 없는 알비노 원숭이라니, 숨이 막혔어요. 지독한 형벌이죠. 

  빨간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잔뜩 웅크린 백색 원숭이를 보는 순간, 아빠가 평생 빨간 눈으로 살았던 걸 기억해냈어요. 술에 절었을 때의 폭력성과 술에서 깨어났을 때의 죄책감, 극명하게 대조되는 아빠의 두 가지 모습을 바라보는 감정의 딜레마. 나는 거기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후퇴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어요. 당장 죽여버리고 싶은데 뜨거운 연민이 출렁이는 심장…. 술 때문에 항상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던 아빠는 순종 알비노였을까요?  


  며칠 전부터 내 눈도 빨개요. 각막의 혈관이 터졌는지 흰자위가 단풍처럼 붉게 물들었어요. 안과 의사는 무심하게 ‘결막하출혈’이라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냐고 물었어요. 스트레스요?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어요. 한 생명을 사라지게 하려는 음모도 스트레스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사항인지 오히려 되묻고 싶었어요. 의사는 내게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며 앵무새처럼 조언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문득 기발한 상상이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지워버린 뱃속 생명을 위해 울고 또 울다가 눈이 빨개진 엄마라면 그럴듯한 설정 아닐까요? 알비노 어미가 뱃속에 든 순종 알비노 새끼를 미리 지워버리는 일 말이에요. 한 생애가, 한 세계가, 한 우주가 흔들리는 걸 미리 막아내는 거니까 덜 죄스럽지 않을까 싶었어요. 빨간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잔뜩 웅크린 채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미리 사라지게 하는 것도 어미로서 딱히 나쁜 짓만은 아닐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태어나 봐야 결국 알비노인걸요.

  내일 산부인과에 예약해놓은 일을 생각하면 심장이 쿵쿵 뛰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싶어요.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결막하출혈’ 증세가 다 낫기 전에, 지워버린 뱃속 생명 때문에 울고 또 울다가 눈이 빨개진 엄마라고 착각할 수 있을 때, 얼른 산부인과로 가야겠어요. 


  엄마의 절망은 남동생이 사고를 당한 날 절정에 달했어요. 아빠가 술기운을 빌려 격분해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푹 꺾고 당신의 휘하에 복종을 맹세한다는 비굴한 자세를 취했죠. 그래서 폭력에서 상당 부분 빗겨났어요. 일찍 사춘기가 찾아온 남동생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신에게는 죽어도 복종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해 오롯이 폭력을 당해야만 했어요. 남동생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학기도 못 채우고 가출을 반복했어요. 일진들과 빈집에 모여 술 마시고 줄담배 피우다가 자정이 넘으면 간선도로 위에서 오토바이를 달리며 광란의 밤을 보내곤 했어요. 

  그날도 친구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질주하다 마주 오는 트럭에 치였는데,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트럭에서 튕겨 나온 동생이 뻥튀기 기계에서 튀어나온 튀밥 같았대요. 갈비뼈가 거의 다 부러진 남동생은 중환자실에서 여섯 달을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었어요. 생명 줄을 붙잡고 세상으로 다시 걸어 나간 건 기적이었죠. 동생은 바람처럼 거리를 떠돌다 먼 세상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엄마도 그즈음 함께 집을 나갔어요. 동생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 아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주잔을 핥고 있었으니까요. 처음부터 당신에게 가족 따위는 없다는 듯이 말이에요. 엄마는 보험 여왕 자리를 빼앗기면서까지 남동생 곁을 지켰는데, 아빠는 오히려 더 자유로워 보였거든요.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죠. 히죽히죽 웃으며 술잔을 탐닉했으니까요. 술은 아빠가 마셨는데 우리 혈관까지 잠식됐어요. 모두 절망에 취해 비틀거렸어요. 바로 서려고 해도 취한 사람처럼 어지러웠죠. 엄마는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벼댈 수 있다고 늘 푸념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렇게 가출한 건 기댈 구석 하나 없는 남편 때문이었나 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동생이나 엄마의 가출은 아무래도 반어법적 행동 같아요. 알코올 중독 뒤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아빠의 사랑을 전제로 했던 것 같아요. 난 엄마나 남동생이 지독하게 부러웠어요. 두 사람에겐 세상을 부유할 충분한 명분이 있었으니까요. 엄마와 남동생이 떠난 집에 아빠마저 죽은 후 나만 남게 되었죠. 

  

  사실은 나도 멀리, 아주 멀리, 새벽 날개를 치며 사람들이 모르는 곳으로 떠나려 했어요. 신조차 나를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요. 불행과 불행이 근친교배 되지 않는 평안의 땅으로. 하지만 한 여자의 자궁 안에서 술과 바람기의 교배로 만나 태어난 나는 하얀 몸을 숨길 수 없었어요. 빨간 눈을 감추는 것도 불가능했죠. 천적인 불행이 단번에 알아보고 집요하게 따라다녔으니까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어요. 

  며칠 전엔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히죽히죽 웃으며 소주를 마셔볼까 생각했어요. 아빠가 했던 방어책의 효능을 시험해보고 싶었거든요. 장차 백 퍼센트 순종 알비노가 될 뱃속 생명을 지우고 돌아와 아빠처럼 소주를 마신다면, 내장에서 올라온 진한 슬픔이 목을 타고 푸른 파도처럼 넘실대며 넘어오겠지요. 차라리 독한 파도에 목이 터지고 눈이 터져버리면 좋겠단 절망이 마음을 채웠어요. 

    

  십 년 전, 우연히 버스 정류장 부스에 붙은 연락처를 보고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안내해주는 대로 상담센터를 찾아갔지요. 상담실로 들어가서도 선생님께 바쁘다고 둘러대며 삼십여 분 짧은 상담을 받았던 거 혹 기억나세요? 그 삼십여 분 동안 창틀에 갇힌 조각하늘에 시선을 둔 채, 지금 선생님께 말하자, 말하지 말자, 말하자, 말하지 말자, 속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힘들었어요. 백색증 친구에 관해 듣고 상담이 끝날 무렵에야 제가 아는 누구 얘기하듯 선생님께 중증 알코올 중독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물었어요. 선생님은 한참 내 눈을 들여다보다가 전문병원에 입원해서 치료와 상담을 병행해야 한다고 답해주셨어요. 모른 체해주셨을 뿐, 아마 그때 선생님은 내가 털어놓고 싶었던 진짜 고민이 뭔지 눈치채셨을 거라 확신해요. 

  일요일 아침 잠깐 술에서 깬 아빠에게 조심스레 입원 치료를 권했어요. 부끄러움에 타들어가는 아빠의 빨간 눈을 본 이후 더는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요.

      

  딱히 남자가 필요했던 건 아니에요. 난 그저 내 말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여러 명의 남자친구를 만나봤지만, 그들은 모두 내 말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처음엔 듣는 시늉을 하다가 결국은 자신의 욕구 때문인 걸 금방 드러내곤 했어요. 이 사람만은 아닐 거야, 이 사람만은 다를 거야, 주문을 걸며 남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죠. 반복은 습관으로, 결국 타성으로 변하더군요. 어떨 땐 나도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즐기려는 건 아닐까 자문할 때도 있었어요. 공부도 안 하면서 습관적으로 오가던 학원에서 만난 친구, 보정된 프로필 사진을 보고 페이스북 파도타기로 말을 걸어온 친구, 일진의 똘마니였지만 영웅처럼 굴었던 친구 등등 학창 시절부터 줄곤 만나온 다양한 남자들. 그가 누구건 어떤 사람이건 난 금방 사랑에 빠졌어요. 

  한번은 인터넷 채팅으로 남자를 만난 적도 있어요. 남부지방 소도시에 사는 남학생이었는데 일면식도 없는 그와 사흘 만에 사랑에 빠졌고 그의 주소로 초콜릿과 사탕을 보내기도 했어요. 내가 말을 걸 수 있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달콤했어요. 친구 하나 없는 음침한 상판이 아니라 예쁘다고 말해주는 누군가 있어서 좋았거든요. 위태롭긴 했지만, 얼마간은 누군가에게 최고의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만났던 남자 중에 꽤 괜찮은 친구도 있었어요. 그 친구는 너무 평범해서 딱히 해줄 게 없었어요. 그래서 적응을 못 했던 것 같아요.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고, 건강 챙기라고 염려해주고, 옷 따뜻하게 입으라고 다독여주던 그 애 이름은 현우예요. 현우랑 주말에 만나면 김밥과 떡볶이를 사 먹고 시내를 함께 걷곤 했는데 참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현우는 그때 대학 신입생이었고 가정도 화목한 것 같았어요. 심지어 가족끼리 해외여행도 자주 한다고 했어요. 가족여행이라니, 그런 비현실적인 단어를 난 경험해본 적이 없거든요. 우주 밖에나 존재하는 외계어로 들렸어요. 도시 최고의 호텔 꼭대기 수영장에서 아빠와 새벽 수영을 했다거나, 국제적인 놀이동산에서 4D 열차를 타며 소리를 질렀다거나,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는데 아빠가 포르투 와인 한 잔을 건넸다거나…. 

  현우 가족의 싱가포르 여행담을 들으며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봤어요. 아빠는 와인을 병째 들이켜서 눈이 빨개지고, 분을 바른 엄마는 홀로 4D 열차를 타며 분노를 해소하고, 남동생은 호텔 꼭대기 수영장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를 테죠. 저급한 연상의 끝은 역시 낙담이었어요. 

  내가 현우에게 해줄 게 딱히 없었어요. 그 앤 완벽하게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내가 여기 있다고 증명할 틈이 없었어요. 뭐랄까, 현우를 눈앞에 두고도 소외감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현우의 생일을 기다렸어요. 용돈을 모아서 산 스웨터랑 정성 담아 쓴 손편지, 사탕과 초콜릿, 따뜻한 귀마개, 선물을 잔뜩 준비하고는 시내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런데 현우는 가족끼리 외식 약속이 있다며 다음 날 만나자고 해 날 속상하게 만들었어요. 

  현우의 가족이 궁금해졌어요.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현우의 아파트 입구에 숨어 가족이 나오길 기다렸어요. 경쟁자의 사생활을 염탐하는 스토커가 된 기분이 들더군요.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귀까지 크게 들려왔어요. 아, 예상대로 현우 가족은 모두 정상인이었어요. 눈동자가 까만 아빠와 화장기 없는 엄마, 순한 인상의 여동생을 질투 어린 눈으로 바라봤어요. 현우와 여동생이 뭐라고 얘기하자 너털웃음을 웃어젖히는 아빠, 미소로 반달눈이 되는 엄마. 그 행복한 얼굴이라니…. 역시 그들은 알비노가 아니었어요. 다음 날 현우에게 바로 이별을 통보했어요. 

     

  필규와 교제한 건 내가 해줄 게 있었기 때문일까요? 24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처음 그 애를 만났어요. 손님으로 온 필규는 유독 하얀 얼굴이 추워 보였고 한눈에도 겨울 잠바가 부실해 보였어요. 충혈된 눈이 슬퍼 보였고 잔뜩 웅크린 등은 굽어 있었죠. 모두 얼마죠? 컵라면과 냉동만두를 계산대에 올려놓으며 필규가 피곤한 듯 물었을 때 호감이 생겼어요. 필규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비닐을 벗겨 냉동만두 두 개를 넣으려 했어요. 잠깐만요, 그렇게 먹으면 안 돼요. 배탈 나요. 따뜻하게 데워줄게요. 냉동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집에서 가져온 접시에 예쁘게 담아 줬어요. 그 애의 어색해하는 눈빛을 보며 내심 뿌듯했어요. 이따금 눈을 흘깃거리며 허겁지겁 컵라면과 만두를 먹어 치우는 필규에게 커피까지 타서 챙겨줬어요. 충혈된 눈에 고마움이 담긴 걸 보는데 행복했어요. 

  다음 날 편의점으로 온 필규는 부끄러운 듯 몇 시에 일이 끝나는지 물었어요. 밤 열두 시, 포장마차에 함께 앉아 우동 한 그릇 먹고 나자 결심한 듯 말했어요. 우리, 사귈래요? 나보다 한 살 연하에 부모님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랐고 얼마 전에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는 이력을 알게 됐을 때는 묘한 설렘까지 느꼈어요. 필규도 나처럼 혼자 남은 거였어요. 시골집을 정리한 돈으로 원룸을 얻어 살고 있던 필규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어깨를 다쳐 쉬고 있다고 했어요. 그 애가 더 좋아졌어요.

  같이 술을 먹고 필규의 원룸으로 가서 밤을 보낸 건 불과 며칠 뒤였어요. 뜨거운 정사가 아니라 필사적인 정사였어요. 몸을 떠는 필우를 받아들이며 이 애가 떠는 건 육체의 쾌감 때문이 아니라 외로움 때문일 거라 믿은 건 왜일까요? 힘을 다해 필우를 안았어요. 서로의 몸을 필사적으로 탐닉했어요. 그날 밤 우리는 더는 외롭지 말자고 처절하게 몸으로 약속했던 것 같아요.

  십 년 전 그날,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끝까지 말하지 못한 게 있어요. 전 단지 가무잡잡한 피부가 싫었던 게 아니라 아빠와 닮은 피부가 싫었던 거예요. 아빠를 닮은 게 싫다는 고민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백색증 친구의 고민에 비하면 너무 유치해 보였거든요. 그래요, 선생님. 때로는 큰 아픔이 아주 작아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큰 아픔이라고 여기는 나 자신이 비겁해 보이거나 한심하게 여겨지지요. 힘들게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필규를 먹이고 입히고 따뜻하게 재워주면서도 내 수고는 아주 작아 보였어요. 그 애를 돕는다고 생각하면 내 아픔까지도 축소되는 것 같았거든요.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아닌 일에 툭툭 분노를 표출하다가 가끔 폭력도 쓰기 시작한 필규를 떠나지 못한 건 그 애 옆에 있으면 내 아픔이 작아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인터넷 기사에는 아프리카에서 가해지는 인간 알비노에 대한 폭력 현장도 실려 있었어요. 인간 알비노는 종족과 상관없이 태어나지만,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에서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데 살해되는 사례도 적지 않대요. 인간 알비노의 팔과 다리, 생식기 등을 제물로 바치면 운이 잘 풀린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 알비노의 신체를 먹으면 에이즈가 낫는다는 끔찍한 미신도 있대요. 알비노를 납치하거나 살해하고 신체를 잘라 매매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아예 보호소로 들어가 경찰의 경호를 받기도 한대요. 열성유전자로 온갖 고통을 겪는 알비노가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는 사실이 가혹하게 느껴졌어요. 팔과 다리가 잘리고, 생식기가 잘리는 끔찍한 세상이 무서웠어요. 

  내일 아침 예약해둔 수술 때문인지, 아니면 ‘결막하출혈’ 증상 때문인지, 자꾸 눈앞에 환영을 보는 것 같아요. 온통 의족과 의수와 의안으로 만들어진 몸이 어른거리고, 속눈썹에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하얀 얼굴이 둥둥 떠다녀요. 한 달 전, 퇴근해서 필규의 원룸으로 갔는데 방을 빼고 사라져버렸어요. 그 며칠 전 그 애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거든요.   

   

  선생님, 선생님은 혹 알비노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언젠가 선생님을 우연히라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꼭 얘기하고 싶어요. 열성 덩어리 알비노에 대해… 고통받는 알비노에 대해… 죽어가는 알비노에 대해… 그냥 속눈썹에 쌀가루를 뿌려놓은 백색증이 아니라 팔과 다리와 생식기가 잘리고, 살해당하고, 제물로 바쳐지는 그런 백색증에 대해… 다음 세대에 반드시 유전되고야 마는 질기고 독한 열성에 대해…. 가무잡잡한 피부가 걱정이란 거짓말 따윈 버리고 진짜 고민을 이젠 선생님께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말한 백색증을 앓는다는 그 친구.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그 친구를 십 년 만에 기억해냈듯, 사람들도 아주 가끔은, 십 년에 한 번쯤은, 문득 인간 알비노인 내가 존재한다는 걸 기억해줄까요? 생각해보면 십 년 만에 한 번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네 번째 동심원에 있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때로는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선생님도 내 편지의 수신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조금은 위로가 돼요. 선생님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씀해주시겠죠? 온몸이 하얀 사슴도, 온몸이 하얀 고라니도, 온몸이 하얀 원숭이도, 온몸이 하얀 참새까지도, 천적이 가득한 위험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생을 살아간다고. 

  선생님, 선생님이 기억나서 다행이에요. 십 년 전 센터 상담실을 나오는 내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말씀해주셨어요. 희주야, 정말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 때 언제든 다시 찾아오렴.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을게. 이것 하나만 꼭 기억하렴. 사람은 생명을 부여받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의 세계이고 우주란다. 백색증이건 알코올 중독이건 상관없이…. 선생님의 그 말이 알비노에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그런가 하면 또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선생님은 아마 모르실 거예요. 

  언젠가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뭐라고 말씀해주실까요? 너무 두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 말이 지금 정말 정말 듣고 싶어요.   

   

  십 년 전 겨울, 선생님께 단 한 번 상담 받았던 

  김희주 드림          

이전 05화 소설 <인디고블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