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의 길과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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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그들이 검은 형상을 드러낼 시간이다. 어깨에 돋은 음습한 휘장을 펼쳐 11월의 하늘을 순식간에 덮어버리고 말 테다. 상상만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환, 환, 환, 환環 공포증….
이른 저녁이 내려앉자 강둑은 회갈색으로 짙어지고 수면은 석양의 와광臥光을 받아 유리처럼 반들거린다. 언뜻 겨울이 감지되는 태화강 풍경은 하얀 여백 위에 그려놓은 무채색 담화 같다. 허허롭다. 대숲은 강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을 유연한 흔들림으로 견뎌내고 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문득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하나… 둘… 셋… 긴장으로 뒷목이 조여 오는 순간 서쪽 하늘 끝 멀리, 기다렸다는 듯 검은 전령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 수만 마리가 해 저무는 청회색 하늘을 까맣게 덮는다. 소환된 밤 위를 헤엄치는 고등어 떼의 푸른 등 무늬…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한기… 온몸의 피부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시청에서 전송된 공문은 두 달째 데스크 위에서 지역사회 주요 업무로 묶여 있다. D-7, 저 쓸쓸한 태화강과 섬뜩한 전령을 대상으로 진행해오던 업무도 일주일 뒤면 끝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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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 박람회 전시 자문해주실 이무연 사진작가님 오셨습니다.”
회색 다운점퍼를 걸친 이무연 작가 얼굴에 여행자의 피곤이 서려 있었다. 몽골에서 막 귀국하는 길이라는 그에게서 아득한 초원의 냄새가 났다. 탐조 유랑에 길든 눈이 우물처럼 깊어 보였다. 풀을 밟으며 걷고, 풀 위에서 사진을 찍고, 풀 사이 게르 안에서 잠을 자는 순한 식물성이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아! 작가님, 어서 오세요. 제가 연락드린 이민우 부장입니다. 바쁘실 텐데 회사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의미 있는 일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악수하는 그의 손이 따뜻했다. 두 달이나 비워둔 작업실로 가지 못하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회사로 와준 그에게 미안했다.
우리 부서가 울산시 주관의 국제행사인 아시아조류박람회 사진전 기획을 맡아 순조롭게 추진해왔지만, 준비 막바지에 이르자 아무래도 불안했다. 삼백여 점의 사진 작품을 전시해놓고도 깔끔한 마침표를 찍지 못해 전문가에게 자문받고 싶었다. 디스플레이어의 기획대로 화사한 조명 아래 설치해두어도 그저 철새 사진의 나열일 뿐, 박제된 정물처럼 생명력이 없어 보였다. 어디서 결핍이 느껴지는지 궁구해도 철새나 사진을 전혀 모르는 나로선 막막했다. 불과 개막 십여 일을 앞두고 고민하는 내게, 시청 담당 공무원은 십 년 이상 철새 사진만 찍어온 분이라며 이무연 작가의 연락처를 내밀었다.
처음 이틀간은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나중에 들으니 통신망이 가용되지 않는 몽골 북단에 체류 중이었다고 했다.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을 때도 그는, 이번 박람회에 일부러 사진도 출품하지 않았다며 일에 관여하기를 꺼렸다. 완벽주의자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거듭 부탁하자 이무연 작가는 익명이라는 단서를 전제로 돕겠다고 했다.
“탐조 여행 중이신 줄 알면서도 시일이 촉박해 어려운 부탁을 드렸습니다. 여독으로 피곤하실 텐데 여러모로 죄송합니다. 몽골엔 어떤 새를 찍으러 가셨던 건가요?”
“쇠재두루미를 찍고 왔습니다. 11월이 되면 몽골에 서식하는 쇠재두루미들이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따뜻한 인도로 이동하는데 그 모습이 장관입니다. 인생에 화두를 던지는, 경전 같은 철새죠. 이동하기 전의 생태를 찍으면서 두 달간 경전 속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작가님 얘길 들으니 몽골에서 새를 찍은 게 아니라 인생을 찍고 오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게 되나요? 하긴 인간살이나 철새살이나 비슷한 점이 많지요. 그런데, 어쩌다 S공사에서 박람회 사진전을 맡게 되신 겁니까?”
“작가님이 보기에도 정말 어울리지 않죠? 저도 살면서 이런 기막힌 업무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철새에 관해선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요.”
두 달 전, 우리 부서는 시청으로부터 환경 프로젝트를 부여받았다. 회사가 지역발전사업의 일환으로 박람회를 후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여러 행사 중 철새 사진전을 기획하고 전시하는 일이었다. 회사에 가시적인 상생 효과를 요구하는 지역 의원들을 만족시킬 호재이자,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 회사 이름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국제행사니만큼 시 관계자들과 협력하여 원만하게 업무를 수행하라는 사장님의 특별지시를 받았다. 생소한 업무라 시작부터 당황한 내게 담당 공무원은 울산 출신 사진작가들의 명단을 내밀면서 시민과 관람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콘셉트로 전시해보라고 조언했다. 사진전에 관한 한, 일체의 권한이 내게 주어지니 도리어 막연했다. 22개국 80여 개 단체 조류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학술 세미나가 열리고, 철새서식지 보전을 위한 국제협력은 물론 태화강 조류 서식 실태 심포지움까지 개최되는 큰 행사라 두 달 내내 부담이 컸다.
“살다 보면 뜻밖의 일을 만나기도 하고 뜻밖의 사람을 만나기도 하죠. 만남에 시절인연이 닿는다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부장님과 만난 것도 서로에게 시절인연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저도 철새 사진만 찍으며 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십 년 전 뜻밖의 한 만남이 인생을 완전히 바꿨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제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진전 예산에는 처음부터 전문가 자문비가 포함돼 있지 않았고, 자문 자체가 화룡점정을 찍고 싶은 내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그는 순전히 무보수로 도와주는 셈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내 사비로 저녁 식사 대접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터였다.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도시 정경이 일품입니다. 시야가 확 트이는 조망만으로 자문 값은 충분하네요. 철새들의 군무가 여기서도 보일 것 같습니다만….”
이무연 작가는 통창 밖으로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태화강에 아련한 시선을 두며 감탄했다.
강의 북쪽, 한국S공사 30층 총무관리처 내 데스크에서는 왼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도심 중구 일대와 강 건너 남구, 멀리 울주군까지 한눈에 어우러진다. 이 낯선 도시에 깃든 지 6개월이 지났지만 내내 이방인처럼 겉돌고 있다. 풍경의 조망 끝에는 항상 외로움이 따라붙었다. 이무연 작가가 감탄하는 만추의 저녁 풍경도 내겐 귀향 막차를 놓쳐버린 여행객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객지에 거주하는 중년 남자의 감상을 지워내듯 그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발령받아 온 지 6개월밖에 안 돼서 이 도시가 아직은 낯설어요. 작가님은 현재 울산에서 활동하신다고 들었는데 이곳 출신입니까?”
“아뇨, 고향은 충북입니다. 지금은 세종시가 된 곳이죠. 상전벽해라고, 고향이라기엔 무색할 만큼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고향이 좋습니다. 전 그저 철새를 따라 울산까지 오게 됐고, 철새가 좋아 십 년 이상 붙박이로 여기 살고 있죠.”
“철새를 따라 사는 삶이네요.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열정이라기보단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거죠. 부장님은 말투나 분위기로 보아 서울 분인 것 같습니다만… 맞나요?”
“예, 서울에서 온 이방인입니다.”
지방자치제 기반 조성의 일환으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거론되면서 내심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돼버렸다. 본사가 전국의 지방 혁신지구로 이전하면서 한국S공사도 울산시에 거대한 사옥을 지었고 완공식에 맞춰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혁신지구는 오래되고 낡은 중구 끝머리에 산허리를 깎아 야심차게 건설되었고, 사옥 바로 앞 16평 신축 오피스텔이 내 집이 되었다. 조직 개편과 함께 지역사회사업 담당 부장으로 발령받아 내려오면서, 낯선 도시에 공헌할 수 있는 사회사업은 무엇일까,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질문을 애써 끌어올리며 마음이 무거웠다. 사십 중반에 이르기까지 줄곧 환경안전 분야 관리자로 지내온 이력과도 무관한 업무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아온 내가 지인 한 사람 없는 곳으로 옮겨오면서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달랑 첼로 가방 하나 들고 울산행 KTX에 몸을 실었을 때, 유배지로 압송되는 듯한 상상에 시달렸다. 앞뒤 없는 지방 이전만으로 분권화가 도래하는 것도 아닐 텐데, 직원들의 고단한 삶을 담보로 지방민들의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행보가 답답했다. 중·고등학교 재학 중인 아들딸의 상황도 전학을 강행하기엔 여의치 않았지만, 무엇보다 아내가 지방살이를 거부했다. 서울서 나고 자란 아내에겐 광역시도 시골이나 다름없는 듯했다. 주변 지인들도 감성적인 내 스타일과 이 도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만류했다. 때마침 수도권에 있는 자회사 임원 자리가 공석이어서 초빙 제의도 들어와 있었다.
“이민우 부장, 그 도시에서 살려면 답답할 거야. 언론에서 보여주는 그쪽 사람들 모습이 얼마나 거칠고 이기적인데. 내 느낌엔 돈에 대한 투쟁이 9할을 차지하는 도시인 거 같아. 산업도시라 돈이 도는 동네긴 하지만 문화적 기반도 약해. 밥은 안 먹어도 유명연주회는 꼭 찾아다니는 감성적인 사람이 힘들지 않겠어? 낯설고 황량할 거야. 차라리 네임밸류는 떨어져도 자회사 임원으로 남는 게 낫지 않을까?”
지인들의 우려는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사내 봉사단은 이상적 가치 실현 기업이라는 비전 아래 지역 공헌 활동을 전략과제로 선정했고 전사적 차원으로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개소식 다음 날, 지역 의원들이 공공기관 방문이라는 미명으로 들이닥쳐서는, 회사가 이 도시에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공박하며 이윤 지역환수제를 요구했다. 지역 문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도 강조했다. 문화적 성과를 내놓지 않으면 이 도시에서 추방이라도 당할 것 같았다. 물론 꺼내놓기 어려운 재정 문제를 처음부터 확실히 해두자는 정치적 몸짓이었겠지만, 지역 문화를 위해 구성된 공기업 봉사단에 사의부터 표현하는 게 순리일 터였다. 지역과 공기업 간 동반성장을 모색하던 입장에선 갑의 모습으로 비쳐 씁쓸했다. 이방인을 대하는 인격적 태도가 아니라 재정적 수단으로 여기는 기능적 태도가 거슬렸다. 마치 이 황량한 도시를 제멋대로 점령한 불손하기 짝이 없는 검은 털의 떼까마귀처럼….
“그럼 이 부장님도 서울에서 오신 철새군요. 철새의 심정을 잘 아실 테니 이방인의 마음으로 사진전 콘셉트를 잡으면 어떨까요? 이미 전시관과 자료는 완비되었다니 콘셉트에 맞게 디스플레이만 조금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방인의 마음이라….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시민들과 관람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철새 사진전이지만 결국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될 것 같은데요.”
“새라고 다르지 않으니까요. 부장님이 고백한 것처럼 철새들에게도 이곳이 이방 땅입니다. 이번에 몽골에 갔을 때도, 월동하기 위해 인도로 떠나는 쇠재두루미에게서 이방인의 마음을 읽었거든요. 따뜻한 남쪽 나라도 고향에 비할 바는 아니죠.”
“철새의 마음이라…. 서정성이 담긴 콘셉트라 좋긴 합니다만 제겐 좀 추상적입니다. 철새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미지화하는 거죠. 모든 홍보나 광고가 이미지화 작업인 것처럼요. 일단 제가 전시관을 한번 둘러보고 나름대로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가진 자료도 추가해드리죠.”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죠. 작가님을 잘 모신 것 같습니다.”
“사진은 몇 작품 정도 확보하셨나요?”
“삼백두 점입니다. 그중에 떼까마귀 사진이 절반 정도 됩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떼까마귀가 울산 조류의 상징이니까요. 제가 철새를 따라 울산에 정착하게 됐다고 말씀드렸는데 바로 떼까마귀를 가리킨 겁니다.”
“그럼, 떼까마귀를 전시의 전면에 내세워야 할까요?”
“울산에서 열리는 조류박람회라면 우선 떼까마귀의 길과 마음을 따라가야겠죠. 그것이 곧 주제일 테고요.”
“떼까마귀의 길과 마음이라….”
내 눈으로 직접 떼까마귀를 처음 본 건 11월 초, 회식을 위해 나섰던 이른 퇴근길에서였다. 으스름 저녁이 막 내려앉는 회색 풍경 속, 전깃줄에 빈틈없이 앉아 있는 거대한 무리의 까마귀를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구도심의 고가도로 위, 양쪽으로 드리워진 몇백 미터의 전선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점령해버린 수만 마리의 까마귀 무리는, 단순한 놀람을 넘어 혐오에 가까웠다. 다닥다닥 붙어서 일렬로 배열한 거대한 군집을 보는 순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를 떠올리며 전율했다. 온몸에 일제히 소름이 돋았다. 짙어오는 어둠보다 더 짙은 그들의 모양새는 차라리 스릴러에 가까웠다. 군집공포증에 몸을 떨어야 했다. 몇 달째 도무지 정들지 않는 도시를 더 정떨어지게 만드는 존재였다. 을씨년스런 11월, 서서히 다가오는 추위, 가족과 떨어진 고독한 생활, 황량한 이방의 산업도시, 그리고 혐오스러운 떼까마귀….
언젠가 경기도 S시 시민들이 정서 혐오 차원에서 떼까마귀 방지책을 호소한다는 기사가 연일 게재된 적이 있었다. 주택가를 점령한 떼까마귀로 인해 주차해둔 차에 새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거나 울음소리로 시민들을 불안하게 해 연일 민원이 제기된다는 보도였다. 그들의 호들갑에 눈살을 찌푸렸는데 떼까마귀 군집을 직접 목격한 순간, 천문학적 예산이 들더라도 전선을 지하로 묻자던 그들의 민원이 과장이 아님을 깨달았다. 혁신지구 하늘 위를 가득 메운 검은 새 떼를 보면서 이방살이를 서둘러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울산 출신의 박 팀장이 황량한 저녁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대숲 방향을 가리켰다.
“이곳이 태화강 대숲과 가까워서 그래요. 대숲이 까마귀들의 집이거든요. 일몰 시간이 되면 수만 마리가 전부 대숲에 깃들어요. 그곳에서 자고 다음 날 새벽 다시 날아올라 몰려다니며 먹이를 구하죠. 매년 10월 하순에 울산으로 와서 이듬해 4월 초순에 떠나는데, 이젠 떼까마귀가 울산의 상징이 돼버렸어요. 철새들이 대숲에 깃들기까지 시민들이 태화강을 생명의 강으로 바꾸기 위해 이십 년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거든요.”
바람이 차가웠다. 태화강 바람인지 무룡산 너머 출렁이는 바닷바람인지 언뜻 분간이 안 됐다. 혐오를 가득 담은 상사의 얼굴이 민망했는지 박 팀장은 바람을 견디며 담담히 도시를 변호했다.
“70년대부터 거대 공장들이 건설되면서 울산은 자본을 얻는 대신 청정자연을 포기했어요. 화학공단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태화강을 죽였거든요. 습기가 자욱한 날엔 공단에서 날아오는 악취 때문에 창도 닫아야만 했어요. 사람도 강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죠. 그래서 ‘생명의 강’이 시정의 구호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교내외 글짓기 대회 제목은 죄다 ‘생명의 강’이었어요. 푸른 강을 시민들의 가슴에 내면화하려는 몸부림 같은 거였죠. 엄격한 규제 감독으로 환경정화에 집중한 결과 지금은 저렇게 철새들이 찾는 강이 됐습니다. 기적이죠.”
스릴러 영화를 보듯 목 뒤에 흐르는 전율에만 신경을 모은 채 도시의 뒷이야기를 듣고도 무심히 흘렸다. 환경오염과 문화 부재를 견디며 한국산업의 견인차가 된 시민들의 소외감이 언뜻 감지됐지만, 내겐 그저 타지의 흑역사일 뿐이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희생된 개인의 시간은 안타깝지만, 여전히 내 마음에 각인된 건 높은 연봉에도 만족할 줄 모르는 노조의 파업과 자기 이익에만 급급한 동네라는 편견이었다.
“그런데 작가님은 왜 이번 박람회에 출품하지 않으셨어요? 철새 사진이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신데…”
관람자들에게 떼까마귀의 길과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눈앞의 사진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문득 궁금했다. 시청에서 아무리 간청해도 박람회에 한 작품도 출품할 수 없다고 잘라 답했다는 얘기를 담당 공무원에게 들었다. 사진작가들에겐 이번 전시회가 자신을 홍보할 최고의 기회일 텐데 의아했다.
“미완성에 발목이 붙잡혔어요. 근래 제 사진에선 부족한 부분이 보이거든요. 생명력이라고 하면 얼추 맞을 겁니다. 사진에 관한 한 완벽주의 강박이 있어요. 작품으로 남는 건 십만 컷 중 한 컷 정도 될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에 앉은 그가 어쩌면 내게 시절인연으로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부장님, 태화강에서 떼까마귀 군무를 보신 적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사실…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았고요.”
동그래진 그의 눈을 마주보기 민망해 실없이 웃고 말았다. 조류박람회 전시를 준비하는 실무책임자가 철새 군무를 본 적 없다는 건 직무유기일 테지만, 스릴러의 풍경 속으로 자진해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도저히 떼까마귀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군집공포증이 있거든요.”
“군집공포증이요?”
“네 살 때 집안 사정으로 일 년 정도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마을 풀섶에서 놀다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개미를 봤죠. 그 후로 군집 형상만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정신과 의사 친구 말로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난 거라고 하더군요.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학창 시절 운동장에 모여 있는 전교생의 까만 머리를 볼 때도 몸서리를 쳤고, 광장에 운집한 사람들의 사진만 보아도 소름이 돋았다. 도저히 그 증상을 견딜 수 없어졌을 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굵은 현에서 울려 나오는 중저음이 예민해진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내게 첼로 연주는 신경안정제였다.
“군집공포증이라는 거, 혹 이 부장님이 스스로 만든 자가 신경증 아닐까요? 아마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 신경증은 저절로 사라질 겁니다. 떼까마귀를 사랑하게 될 방안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아무리 시일이 촉박해도 내일은 일몰 전에 저랑 태화강 철새생태공원에 같이 가시죠. 일단 군무를 직접 보고 일을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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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 철새생태공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서 있자니 가슴과 시야가 트이는 듯했다. 강바람이 아니라 바닷바람 앞에 서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대숲이 웅숭깊은 웅얼거림을 뱉어내며 흔들렸다.
이무연 작가는 강 여기저기에 앵글을 맞춘 채 말없이 셔터만 눌렀다. 고대사회에서 국제항구였다는 태화강…. 준비위원회 첫 모임에서 담당 공무원은 박람회 주제를 ‘철새들의 중심지, 고대 국제항구의 재현’에 두고 싶다고 거창하게 말했다. 울산蔚山 지명의 유래가 우시산국에서 비롯됐으며, 우시산국은 외국 선박이 무시로 드나들던 신라 최대의 국제항구였다고 설명했다. 설화 속 처용이 아라비아 상인이었단 흥미로운 학설도 덧붙였고 반구대 고래 벽화로 미루어 태화강 유역이 바다였다는 말도 강조했다.
“작가님, 이 강이 고대에는 바다라고 들었는데, 믿어지지가 않네요.”
“시민 경력 6개월에 많은 걸 알고 계십니다, 하하. 정말 바닷바람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동해가 여기까지 쑥 올라와 있었던 거죠. 어찌 보면 이번 박람회는 철새 생태 보존뿐 아니라 바다였던 태화강의 생명력을 환기하자는 데 의미가 있을 겁니다. 고래가 사라진 자리에 떼까마귀가 찾아온 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가요?”
이무연 작가는 손목시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오른손 검지를 들어 저녁 하늘을 가리켰다. 바람으로만 채워진 저녁 하늘은 을씨년스러웠다.
“십여 분 뒤쯤엔 떼까마귀가 몰려올 거예요. 오만여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장면은 하나의 거대한 군무群舞입니다. 일몰 후 대숲에 깃들기 위해 흩어졌던 무리들이 하나로 모여 날아오르고, 일출 전 먹이를 구하러 나가기 위해 또다시 흩어져 하늘로 비상하죠. 다른 철새들과 달리 까마귀 사회에선 우두머리가 따로 없어요. 정해진 규칙이나 제약 없이 하늘 공간을 자유롭게 날아오르죠. 보고 있으면 장관이에요. 까마귀 군무에서 인간과 통하는 어떤 정서를 느낄 수 있으니 이 부장님도 진지하게 감상해보세요.”
예술가의 눈에 담긴 특별한 감성이 부러웠지만, 개미 떼만 보아도 몸을 떠는 나로선 이해되지 않았다. 훌륭한 배경 설명에도 불구하고 혐오가 공감으로 바뀌긴 쉽지 않았다.
“사실, 떼까마귀가 아름답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습니다. 오히려 소름이 끼칩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환環 공포증 혹은 군집공포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잘 갈린 칼날처럼 날카로운 공기가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얼마 안 가 까마귀의 귀환을 기다리는 얼굴이 차갑게 얼었다. 이무연 작가는 조심스레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끼우고 프레임을 맞췄다. 나는 떼까마귀 생태를 이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재정을 확보하려는 도시의 기획을 의심하며 침묵했다. 회의 어린 눈으로 예기 공포증에 떨고 있는데 이무연 작가가 독백하듯 말했다.
“원거리 사진에는 앵글이 무용지물일 때가 있어요. 프레임만 잘 잡으면 됩니다. 부장님, 떼까마귀를 함께 지내야 할 동반자로 바라보시면 어떨까요? 앵글에 맞춰 예민하게 들여다보던 시각을 바꿔서 그냥 부장님 프레임 안에 따뜻하게만 품어주세요. 우리도 다 떼까마귀처럼 철새에 불과한걸요.”
태화강 둔치가 어둠으로 가라앉자 한기가 느껴져 외투 깃을 올리는데 섣부른 겨울이 이르게 도착한 듯했다. 이무연 작가와 나는 다른 마음, 다른 이유로 긴장해 있는데, 그가 하늘을 가리키며 극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예요!”
그의 손가락을 따라간 시선 끝에는 이제 막 떼까마귀의 군무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 무리에 다른 무리가 섞여들고 또 다른 무리가 더해져 더 큰 공동체로 커졌다. 몇 무리로 나뉘어 종일 먹이를 구해 몰려다니다가 대숲 가까이 다시 모여든 까마귀들이 회색 공간을 자유롭게 날았다. 하늘로 치솟는가 하면 아래로 내리꽂히고, 다시 바람을 타고 급하게 비상하여 바람과 함께 공간을 유영했다. 청회색 하늘을 가득 메운 일몰 군무가 촉각적 심상이 되어 피부에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가늘게 뜬 눈에 차고 건조한 공기가 와서 부딪쳤다. 시린 각막으로 바라본 하늘은 어느 북국의 하늘처럼 차가웠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저 까마귀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고향이 어디죠?”
“러시아 아무르강이에요.”
“아무르강?”
“러시아와 몽골, 중국을 가르는 큰 강입니다”
“꽤 멀리서 오는군요.”
“아무르강은 여러 민족과 떼까마귀의 터전이거든요. 민족마다 강을 부르는 이름도 따로 있습니다. 러시아에선 아무르, 중국에선 흑룡이라 불러요. 만주족과 몽골인들이 부르는 이름도 따로 있는데, 뜻은 모두 같아요. 검은 강이란 뜻이죠. 아마도 아무르강 물빛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일 만큼 깊어서가 아닐까 싶네요. 게다가 강폭이 넓어서 가끔은 정말 바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죠.”
“작가님은 아무르강에 직접 가보셨나요?”
“탐조 여행차 여러 번 다녀왔어요. 나중에 아무르강에 서식하는 떼까마귀 동영상 보여드릴게요. 부장님도 분명 반하실 겁니다. 까마귀들이 군무에서 보여주는 메시지가 있거든요.”
태화강에 내리는 짙은 밤 때문이었을까, 과람한 감성 탓이었을까, 엘가의 첼로 협주곡 선율이 들려오는 것 같은 상상에 사로잡혔다. 이무연 작가의 진지한 설명에 여행 경험은커녕 이름조차 생소한 아무르강의 검은 물빛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푸르다 못해 검은 강이란 어떤 모습일까. 대평원을 가르며 흐르는 아무르, 검은 강 위를 천천히 유영하는 검은 새들의 영상이 눈에 그려졌다. 검은 강에서 태어나, 검은 강에 발을 담그고, 검은 강물을 마시다가, 가을이면 태화강으로 날아오는 검은 새들이라니….
그들의 완벽하게 검은 깃털은 어쩌면 아무르에서 물든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검은 이미지가 마음 주변을 계속 겉돌았다. 지독한 신경증과 편견에 가려 그들의 깃털 속에 숨겨진 이야기도, 일몰 군무로 전하는 메시지도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멀리 자유로운 영혼으로 한 무리의 떼까마귀가 부리를 곧추세우고 곧장 날아올랐다. 셔터를 누르는 이무연 작가의 몸짓과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그가 사진에 마음을 담고 있는 게 보였다. 문득, 자신을 담아주는 어떤 이의 넉넉한 프레임이 있어 떼까마귀는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장님, 제 작업실에서 커피 한 잔 드실래요? 조용해서 논의하기에는 회사보다 나을 겁니다. 구체적인 전시 방안을 나눠보시죠.”
*
태화강변에 위치한 이무연 작가의 작업실은 복도 입구부터 철새 떼 사진을 전시해놓았다. 방문객을 맞는 첫 사진 속의 새는 대열을 이루어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다. 석양을 배경으로 V자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붉은 강을 헤엄쳐 가는 물고기 떼와 흡사했다. 유려한 날개가 민첩한 지느러미 같았다. 시베리아에서 출발해 얇은 날개로 무수한 들과 고원을 지나 매년 한국 땅에 안착한다는 사실이 새삼 기적처럼 여겨졌다.
“철새의 이동이 놀랍습니다.”
“그렇죠?”
이무연 작가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들의 날개 뼈는 가늘고 속이 비어 있어 가벼운 데다 십자가 모양의 현 버팀대로 받쳐져 쉽게 날아오를 수 있다고,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배운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단편 지식 하나만으로 기러기를 이해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 가볍고 여린 날개로 대륙을 건너오는 비밀은 엔지니어 출신인 내게도 선사의 그림처럼 신비로웠다.
작업실 안에 들어서니 예술적 분위기에 마음마저 따뜻하게 데워졌다. 조도 낮은 등과 은은한 클래식 음악, 기분 좋은 원두 향기, 그리고 태화강 쪽으로 통창을 낸 실내 구조가 어우러져 카페 안으로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했다. 두 달 내내 느꼈던 압박감도 느슨해졌다. 전시의 예술성까지 끌어내기에 역부족인 내게 새삼 선생의 호의가 고마웠다.
“이 부장님, 하바롭스크 커피 드셔보실래요? 맛이 좀 독특해요.”
“하바롭스크라면… 러시아 커피인가요?”
“맞습니다. 철새 사진 찍으러 갔다가 유명한 해적 커피를 만났어요. 달긴 하지만 저녁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그는 마치 커피를 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낯선 손님이 왔다고 긴장하거나 과장된 모습을 띠지 않는 본연의 모습이 오래전부터 만나온 사람인 듯 편안했다.
순간, 그에게서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어디에서 마주쳤던 걸까, 분명 생생하게 꾸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어젯밤 꿈처럼 묘연했다. 충북이 고향이고 울산에 십 년 넘게 거주해온 사진작가와 마주친 시공간의 좌표가 내게 존재할 리 만무했다. 그저 고마움이 친근감으로 다가온 감성 오류라 여기며 고개를 저었다.
통창의 맞은편에는, 동트는 새벽하늘에서 군무 중인 떼까마귀 사진이 걸려 있다. 해결해야 할 눈앞의 과제 때문인지 저절로 작품에 시선이 꽂혔다. 주변 경관으로 보아 태화강 유역은 아닌 것 같았다. 주변에 산이나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고, 지평선이 흐린 어둠 속에 잠길 듯 가물거렸다. 하늘과 땅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저녁 빛이 또 다른 색감으로 빚어지고 있었다. 태화강이었다면 분명, 짙어지는 산과 대비되어 청회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조차 더 밝아 보였을 것이다.
“저 사진은 어디서 찍은 건가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던 아무르강이에요.”
“아! 아무르. 작가님께 강 이름 듣고는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왔어요. 너무 푸르러서 검은 강처럼 보인다는 표현이 시각적 자극을 일으켰거든요. 그러고 보면 이름이란 참 이상한 거예요. 백지의 개념에 선험先驗을 제공하니까요.”
“행정 일만 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이 부장님도 꽤 감성적인 분이시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음, 대상을 쉽게 이미지화하니까요. 지나치게 객관적인 분들은 이미지화가 잘 안 되거든요. 보이는 것만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할 뿐이지.”
“그런가요? 칭찬 듣는 기분이긴 한데 제게 맞지 않는 옷 같기도 하고요.”
“사실 알고 보면 사진도 대상을 주관적으로 이미지화하는 작업 과정 중 하나예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처음엔 탐조 차원에서 떼까마귀의 길을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울란바토르로 가서 지인의 집에 며칠 묵다가, 렌터카를 타고 북쪽으로 내달려 어렵게 아무르강에 이르렀죠. 거기서 한창 번식기에 있는 떼까마귀를 만났습니다. 고향에서 새끼 품은 모습을 대하니 그들을 새롭게 보게 되더군요. 아무르강을 따라 계속 동진하다가 러시아 연해주 하바롭스크까지 가게 됐습니다.”
떼까마귀를 따라 멀고 먼 아무르의 길을 걷는 여행자의 모습이 삽화로 그려졌다. 아득하게 뻗은 검은 길 위의 순례자와 그를 인도하는 새 떼들…. 지독한 사랑 같았다. 기꺼이 일 년의 반을 타향인 울산에서, 나머지 반을 타국에서 보내게 만든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느 고고미술사학자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면, 신경증이 각막을 덮어버린 나 같은 사람은 눈을 뜨고 있어도 제대로 볼 수 없을 테다.
“참, 이 부장님, 혹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를 아세요?”
“아뇨,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러시아 사람 이름인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회주의 운동가예요. 항일투쟁가이기도 하죠.”
“그런 여성이 있었나요? 이름에 ‘김’이라는 성이 붙은 걸 보면 러시아에 귀화한 사람인가 봅니다.”
“예, 함경도 출신의 여성이에요. 일제강점기 때 다섯 살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하바롭스크까지 흘러갔어요. 굶주림을 피해 무작정 러시아로 떠난 유민 출신이죠.”
“그럼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운동가가 됐다는 말씀인가요?”
“바로 사회주의 운동가가 된 건 아니에요. 러시아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조선인 벌목공들의 통역사로 취업했다고 들었어요.”
“그 시대에… 당찬 여자네요.”
“러시아 황제가 조선인 벌목공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자 유창한 러시아어로 투쟁해 결국 받아냈다고 합니다. 그 일을 계기로 러시아 볼셰비키 당원이 되고 나중엔 조선사회당 일원이 되어 활약했대요.”
“그런데 그 얘긴 왜?”
“결국 황제 호위군에게 체포된 그녀가 처형당한 곳이 바로 아무르강이거든요. 총살당했다고 하는데,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총에 맞자마자 그녀의 몸이 강으로 떨어졌다는군요. 그 뒤로 하바롭스크 시민들은 아무르강에서 낚시도 하지 않는다고 해요. 아무르강과의 인연을 느낄 수 있는 일화죠.”
“이를테면, 역사적 인연인가요?”
“그렇죠. 김 알렉산드라 사연을 듣고 나니까 강에서 인생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사진 찍는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하나의 슬픈 오브제죠. 아무르강 유역과 하바롭스크, 연해주나 사할린 땅은 우리 선조들이 가난과 수탈을 피해 철새처럼 날아가 정착했던 땅이잖아요. 감회가 새로웠어요. 조선 유민들은 그저 살기 위해 그곳에 갔으니까, 결국 아무르강 유역은 조선인에게나 새들에게나 철새들의 땅인 거죠. 이후로 떼까마귀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연민의 정이 생겼습니다. 유민이 돼야 했던 선조들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저 사진은 김 알렉산드라 일화를 듣고 난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아무르강에 나가 찍은 겁니다.”
“아무르강에 선조들의 한이 흐르고 있는 셈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저 사진은 제게 특별한 인생 사진이면서 철새만 찍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유랑의 역사라…. 까마귀에게서 많은 걸 보셨네요. 그냥 사진사와 사진작가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맞을까요?”
“하하 글쎄요…. 깃털에 묻어 있는 아무르강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태화강 대숲의 까마귀를 조금은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무연 작가의 감성 어린 고백에 떼까마귀를 곡식이나 축내고 똥이나 싸대는 존재로 여겨온 편견이 부끄러워졌다. 경쟁사회에서 길든 그대로 새들에게까지 적용해온 내 실리의 잣대가 얼핏 보였다. 실리가 없다면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 지독한 신경증….
“1전시관에는 원둥지를 두고 떠나는 철새 사진을 모아 전시하면 어떨까요? 고향을 등지는 마음을 표현해보는 거죠. 2전시관에는 새로운 둥지가 돼준 태화강과 거기에 깃든 철새 사진을 전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철새 보존구역의 중요성을 환기할 수 있겠죠. 원둥지나 새로운 둥지, 다 새들에겐 중요한 삶의 터전이니까요.”
“원둥지와 새로운 둥지, 삶의 터전….”
이무연 작가의 제의에 새끼를 낳고 키워온 내 원둥지가 연상됐다. 서울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밥벌이라는 추위가 아니라면 이방 도시로 내려오진 않았을 테다.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기꺼이 주말부부로 서울과 울산을 오르내릴 각오가 되어 있는 내 삶의 여정….
“아무르에서 찍어온 동영상이 있는데 이번 전시회에 상시 상영해도 될까요? 혹 전시관에 프로젝터 설치 가능한가요?”
“그럼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로선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일단 한번 보시죠. 그래도 부장님의 최종허락이 떨어져야 상영할 수 있으니까요.”
노트북과 연결된 60인치 TV 화면에는 특이한 배경음악과 함께 아무르강이 환상적으로 나타났다. 강에는 저녁이 내려앉고 있었다. 주변에 산은 보이지 않고 지평선이 멀리 소실점으로 가물거렸다. 노랗게 물든 수면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화면은 마치 원색을 사용해 원근법으로 그려놓은 고흐의 그림 같았다. 잘린 귀를 붕대로 덮은 고흐가 그 저녁 아무르강에서 풍경을 그렸다면, 그의 지독한 신경증이 깨끗하게 치유되었을 것만 같았다. 첨예한 히스테릭을 가라앉히는 북국의 저녁 풍경이 따스했다. 한낮의 강한 햇살을 말갛게 씻은 해는 하늘과 강을 온통 노랗게 물들였다. 맑은 레몬즙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놀라움으로 풍경을 바라보는데 이무연 작가가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배경음악은 러시아 민요 ‘아무르강의 물결’입니다. 이어폰으로 첼로 연주를 들으면서 촬영했는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대상을 이미지화하는 데 음악만큼 훌륭한 소재는 없더라고요. 하늘도 정말이지 깨끗했습니다. 깃털이 완전히 검어서 오히려 순수한 까마귀들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어요. 아무르강이 얼어붙을 때쯤 떼까마귀는 우수리스크를 넘어 우리나라로 날아오는데 태화강이 피곤한 날개를 쉬게 하는 안식처죠. 관람객들이 그 날개 끝에 묻은 아무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화면에선 자연 그대로의 강과 하늘, 무한한 공간 속에서 떼까마귀들이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날개에 노란 등을 켠 새 떼의 장관이 펼쳐졌다. 시린 하늘을 밝히는 따뜻한 등불의 축제였다. 그들의 모습에 사랑스러움이 묻어 있다고 느낀 건 기적이었다. 화면 안에서 떼까마귀는 자연의 주인공이자 완전한 창조물로 변화했다. 머릿속에 있던 편견이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리고 참, 저기 아무르강의 까마귀 사진이 맘에 드시면 이 부장님께 선물할게요.”
자신의 인생 사진이라 말한 귀한 작품을, 십만 컷 중 겨우 건져낸 한 컷을, 아무런 실리가 없는 일로 두어 번 만난 클라이언트에게 선물하겠다는 비현실적인 사람. 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선, 물, 할, 게, 요, 다섯 음절을 듣는데…, 순간 너무도 확연한 기시감에 귀를 의심하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희미했던 실루엣에 실선이 그어지고 색이 입혀지는 걸 목격했다. 내 감정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사진 분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무연 작가. 고개 숙인 그의 프로필이 나의 프레임에 이미지화되어 들어온 순간, 세월 저편 빛바랜 삽화 하나가 뇌리를 압도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떠오른 기억이어서 당황스러웠지만, 그와 마주쳤던 시공간의 좌표가 점점 확연하게 재생됐다. 젊은 날의 까마득한 영상이 떠올랐다.
이무연 작가…, 그는 내 대학 시절 친구 영수의 고향 후배임이 분명했다. 대학 진학과 함께 조치원에서 낯선 서울로 갓 올라온 새내기, 신촌 지역 대학에 다니고 있는 고향 선배를 만나러 왔던 스무 살의 청년. 그의 홍안이 분명하게 떠올랐다.
때늦은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3월 초의 신촌, 우연히 나도 합류하게 돼 셋이서 저녁으로 부대찌개를 먹었던 그 날. 내 친구 영수의 후배라면 내 후배와 다를 바 없다며 내가 기분 좋게 저녁을 샀고, 그는 낯선 서울에서 처음 따뜻한 밥을 사준 분이라며 필요 이상으로 고마워했다. 흑석동에 있는 J대학교 사진학과 신입생 이무연에게 그날 나는 이렇게 질문했다.
“대학 신입생으로 서울에 온 기분이 어때?”
“영수 형 외에는 서울에 지인 하나 없어서 그런지 너무 춥고 낯설어요. 꼭 갈 곳 없는 이방인이 된 것 같습니다.”
딱 그 하루, 그렇게 스쳐지나듯 만나고 헤어진 이후 영수와 나는 다른 학년에 번갈아 입대했고 이무연이라는 이름은 내 기억에서 지워졌다.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영수가 현지 연구원으로 남았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무연과의 접점은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날, 저녁을 먹고 헤어지면서 이무연이 내게 했던 말이 선명하게 재생됐다. 훌쩍 떠난 줄 알았던 기억이 철새처럼 다시 내게로 날아왔다.
“민우 형, 맛있는 저녁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사진학과 학생이니까 언젠가 멋진 사진을 찍게 되면 보답으로 형에게 꼭 선물할게요.”
*
청회색으로 번진 서쪽 하늘 끝 멀리, 무대 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는 듯 통창의 프레임 안으로 떼까마귀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그들의 장엄한 군무가 시작된다. 낙조를 배경으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무한한 공간 위로 날아오른다. 몰렸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 파도처럼 일어서며, 절대의 자유를 누린다. 무대 아래에서 비루한 존재로 취급받던 그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날갯짓이 아름답다. 하늘과 떼까마귀가 완전한 일체를 이룬다. 문득 그들이 내게 이방살이의 쓸쓸함을 잊고 자신처럼 자유로워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방인이 아닌 당신 자신으로서 이 도시를 누려보라고, 당신이 어디에 있느냐보다 당신이 진정 누구이고 내면에 깃든 진실이 무엇인지가 더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D-1, 드디어 내일이다. 내일 저녁이면, 수많은 눈의 따뜻한 프레임 안에서 떼까마귀는 완전한 창조물로 하늘을 날아오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