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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은신 Oct 07. 2023

소설 <아버지의 눈>

나의 생을 비추는 등대

  하늘빛이 푸른 그림자로 반사된 백색 땅 위에 한 사내가 걸어간다. 작은 키에 똥똥한 몸매지만 걸음만은 재빠르다. 짧은 팔로 부지런히 공기를 가르며 그가 서둘러 걸어가는 배경 저쪽에는 암청색 바다가 도사리고 있다. 그가 걷는 방향과 이유를 구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줌-아웃으로 멀어져야 하는데, 어깨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 줌-인으로 렌즈를 당겼다. 백여 미터 거리에 있는 바다와 무수히 떠 있는 빙하는 처음부터 풀 프레임에서 제외하고 크롭바디로 연속 촬영 셔터를 눌렀다.

 “관찰 부스에서 찍는 건 한계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야 구체적인 생태를 담을 수 있지.”

  어깨를 움츠린 채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던 선임연구원이 참견했다. 남극으로 온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그의 눈엔 벌써 그리움이 잔뜩 묻어 있다. 삼십 분 남짓 관찰 부스에 머무는 동안 피사체 너머, 북쪽 하늘을 가늠하는 눈길을 벌써 서너 번 보았다. 그의 말대로 젠투펭귄 무리에 가까이 다가가 찍으면 좋겠지만 자연 그대로를 담기 위해선 부스 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의 평온한 삶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에게 없는 존재이기를 바랄 뿐이다.

  어제는 어쩔 수 없이 군서지 한가운데로 들어가 한 녀석의 몸을 잽싸게 낚아챘다. 이동 위치와 방향, 속도를 알려주는 바이오로깅 장치를 녀석의 몸에 부착하기 위해서였다. 무례한 침입에 놀란 녀석은 짧은 팔로 내 얼굴을 가격해 왔다. 수컷의 완강한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장치를 부착하는 동안 녀석을 부둥켜안고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사과의 말을 주문처럼 내뱉는데 명치끝이 저려 왔다. 아주 잠깐 녀석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을 때는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생존의 무게 외에 인간의 연구 욕심까지 등에 업은 녀석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새끼들이 부화했으니 앞으로 두어 달은 와글와글 시끄럽겠구먼. 작년에 여기 왔다가 한국 돌아가서도 쟤들 소리가 사라지질 않더라고. 귀에 영구 칩으로 심어진 것 같더라니까.” 

  선임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난 어차피 펭귄 소리로 현실의 소리를 덮어버리려 먼 남극까지 왔으니까. 실업자 생활도, 은수와의 관계도, 묵은 상처도 펭귄 소리로 교체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카메라 렌즈 안에서 걸어가던 수컷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뒤를 돌아본다. 눈 위 흰 얼룩무늬가 선명하고 부리도 선홍색에 가깝다. 암컷들이 흠모할 만한 호남이다. 발밑에 놓인 큰 돌을 부리로 물어 올리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잘생긴 부리가 훼손될까 걱정이다. 뒤뚱뒤뚱, 암컷이 기다리는 돌무더기에 이르러서야 내려놓는다. 새끼가 부화한 둥지를 보완하는 녀석이 대견하다. 

  카메라 렌즈에 바짝 붙인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국에서 은수 혼자 번 돈으로 지난 일 년을 지탱했다. 화학연구소 인턴 연구원인 은수 월급만으론 둘이 생활하기에 빠듯했다. 삼 년 내내 그녀 명의의 오피스텔에서 기생했지만 그래도 처음 이 년간 돈을 벌 때는 절반의 생활비를 댔고, 가끔은 그녀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줄 수 있어서 떳떳했다. 대학 CC로 만나 오래 교제해오다 은수의 집으로 들어간 지 만 이 년이 됐을 때 실직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에 해양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지만 이렇다 할 실적 없이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해고됐다. 

  은수를 지켜주지 못하고 남극까지 숨어든 건 남자로서 둥지를 만들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때 집을 짓지 못해 군서지 주변에서 얼쩡대는 한심한 수컷 펭귄들처럼 말이다.

  “저기 제일 가장자리에 집을 지은 쌍 말이야. 무리에서 왕따 당한 건가? 김 박사, 저 쌍도 한번 찍어 놔. 전체 구도 속에서 얼마나 외로운지를 보여주면 구독자들도 흥미를 느낄 것 같은데?” 

  줌-인 상태의 렌즈를 선임이 가리키는 외곽 쪽으로 옮겨 가장자리에 집 지은 펭귄 부부를 피사체로 잡았다. 알 낳을 자리를 찾다가 다른 쌍에게 밀쳐져 외곽에 허술한 집을 지은 게다. 가장자리는 위험하고 춥다. 새끼가 괭이갈매기에게 당할 우려도 있다. 세상의 끝, 한국에서 1만 킬로미터 떨어진 남극에도 여전히 안전한 집은 필요해 보인다. 저런 위험한 자리에 허술한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종족을 보존해야만 하는지, 본능이란 것에 화가 난다. 어리석은 욕심이 보기 싫다. 

  아버지가 실종된 후 가족들은 강북에서 서울 외곽으로, 그리고 위성도시로, 다시 위성도시의 외곽으로 여러 번 옮겨 다녀야 했다. 원심에서 멀리, 더 멀리, 점점 가장자리로 밀려나면서도 끝까지 초라한 집을 유지하려 했던 가족을 생각하면 아프다. 춥고 위험한 가장자리에서 어머니는 홀로 새끼들을 키웠다. 

  사실은 나도 한 계절 몸을 의탁할 집을 찾아 이곳까지 온 건지도 모르겠다. 은수의 눈치를 보면서 일을 쉬는 동안 시립도서관에서 전공 관련 책만 읽었다. 매일 오전 아홉 시면 도서관에 도착해서 저녁 일곱 시까지 책에 묻혀 지냈다. 연구 자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극지연구소 구인광고를 보게 됐다. ‘겨울 한정 남극 연구원’, 12월에서 다음 해 2월까지 여름이 도래한 남극으로 내려가 펭귄의 생태를 연구하고 결과물을 생산하는 일이었다. 지독하게 매력적이면서 지독하게 두려운 구인광고 문구를 보며 한참 망설였다. 부담스러운 현실을 떠나 돈은 벌 수 있지만, 남극은 너무 멀고 추운 곳이었다. 

  은수의 집으로 돌아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빛바랜 지구본을 들여다봤다. 23.5도 기울어진 지구본에서 남극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야 볼 수 있는 땅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곳, 무시무시한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대륙이었다. 일반생물학 전공자로서 펭귄 연구라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가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 몇 시간 무거웠던 마음이 그제야 가벼워졌다. 

  그런데 문득 새벽녘에 깨어 옆에 누운 은수의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언젠가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진이 네가 나한테 보여주는 건 빈 껍데기뿐인 것 같아. 난 왜 아직도 네 진심을 알 수 없지? 우린 서로 사랑하고 가치관도 비슷한데 왜 아직도 소울메이트는 아니란 생각이 들까?”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은수의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피곤으로 곯아떨어진 얼굴을 보기가 버거웠다. 떠나지 않기로 결론 내린 지 불과 다섯 시간 만에 무작정 떠나보기로 다시 마음을 바꿨다. 

  인천공항에서 파리를 경유해 남미로 내려왔다. 칠레 푼타아레나스에 내려 다시 전세기로 서남극에 위치한 사우스셔틀랜드 제도 킹조지섬까지 들어왔다. 남극으로 오는 내내 세상의 끝을 찾아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극단의 땅, 삶과 죽음의 경계선까지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가 아르헨티나와 킹조지섬 사이, 드레이크 해협을 지날 때는 아예 두 눈을 감아버렸다. 좌석의 팔걸이를 꽉 부여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 같았다. 백색 땅에 나를 내려놓은 비행기에 되올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욕구를 억지로 삼켰다. 

  도착한 날 밤 악몽을 꾸었다. 배가 암청색의 거대한 해구에서 침몰해 아득한 심해로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바다에는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수직으로 침몰하는 배에 탄 건 나였다가 아버지였다가 종잡을 수 없었다. 심해로 빨려들어 가면서도 똑바로 뜬 내 두 눈은 징그러울 만큼 짙푸른 바다를 보고 있었고 몸은 경기하듯 부르르 떨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암흑의 심해…. 음이 소거된 꿈속 내 비명에 놀라 깼다. 식은땀을 흘리며 헐떡이는데, 한국에선 희미했던 아버지 얼굴이 조금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

  꿈과는 달리 관찰 부스에서 이렇게 바라보는 바다는 그런대로 괜찮다.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는다면 바다는, 은수와의 관계도 앞으로의 진로도 잠깐 잊게 해주는 청량 마취제다. 아비로서 집을 지어 새끼를 키우는 펭귄도, 집이 필요해 세상 끝까지 도망쳐 온 나도, 모두 바다를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무난히 생을 마감할 순 없을까. 문득 현실 도피적인 소망이 생겨난다. 


  연구원 세 사람 모두 아무 말이 없다. 연구 기지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오전 회의 때 선임과 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서로 감정이 예민해졌다. 

  “감정이 가라앉으면 논의를 계속합시다.”

  보다 못한 팀장님이 회의를 중단시켰다. 몇 사람밖에 없는 고독한 기지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협화음 때문에 연구과제를 제때 마치지 못하면 다음 해로 넘겨야 한다. 남극의 여름은 짧다. 광폭한 바람 블리자드가 불어오기라도 하면 종일 아무것도 못 하고 기지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 

  쇄빙선을 빌려 타고 바다로 나가 펭귄의 잠수 행동을 직접 관찰하자던 선임의 의견은 타당했다. 암수가 번갈아가며 알을 품는 젠투펭귄은 이 기간에 한번 먹이를 구하러 가면 최대 닷새 정도 바다에 머무는 특성이 있어서 잠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적기이다. 그런데도 나는 절대 못 하겠다고 버텼다. 바다에 나가지 않는 대신 육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의 곱절을 달라며 억지를 부렸다. 선임은 기가 막히는지 막말을 던졌다.

  “김우진 박사, 남극 연구원이 쇄빙선 안 타겠다는 게 말이 돼? 펭귄의 터전은 바다가 칠 할인데,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연구하냐고. 혹시 바다가 무서워요? 무슨 트라우마 있어요?”

  나는 당신이 관찰하는 펭귄이 아니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오지랖 넓은 그가 싫다.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모든 걸 알고 싶어 하는 태도가 부담스럽다. 제발 그냥 짐작만으로 넘어가 주면 좋겠다. 

  인간관계 갈등이나 겪으려고 무시무시한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 남극까지 왔는지 자괴감이 든다. 일은 쌓여 있고 일과는 바쁜데 내부 공기는 너무 적막하다.

  기억 속 아버지는 내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습관처럼 말했었다. 

  “어떻게 해서든 공부시켜줄 테니, 너는 바다의 좁은 배 위에 있지 말고 넓은 땅에 두 발 딛고 꿈을 펼치며 살아야 해.”

  아버지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가끔은 아버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 말 때문이었는지 아버지가 도버 항구에서 사다 준 영국산 지구본을 자주 들여다봤다. 열 살 생일 선물이었다. 지구본에 그려진 남극은 고개를 한참 옆으로 기울여야 볼 수 있는 땅이었다. 아버지 표현대로라면, 넓은 땅이니까 그곳에 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말대로 넓은 땅으로 떠나왔지만, 아버지가 당부했던 꿈에는 근접조차 못 했다. 겨울 한 계절 피신하듯 여기 와 있을 뿐이다. 아버지 꿈까지 업은 무거운 내 꿈은 지금 어디에서 표류하고 있는지….

  신산한 마음을 달래려 기지 밖으로 나왔다. 극지연구소 공식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을 촬영하고 오겠단 메모만 남겨두었다. 멀리 넓은 바다까지 피사체로 넣어 줌-아웃 하는데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린다. 차갑게 도사린 바다가 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조리개를 활짝 열어 빛이 풍성하게 들어오도록 노출시켰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바다와 생태를 촬영해 극지연구소 공식 유튜브에 올리는 것도 주요 업무 중 하나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데, 은수는 한 번이라도 유튜브를 봤는지…. 아마 아닐 것 같다.

  관찰 부스로 향하다가 먹이를 구하러 일제히 바다로 이동하는 펭귄들을 만났다. 무시무시한 바다가 싫었지만, 거리를 두고 찍기로 하고 무리를 따라왔다. 해안선에 이르자 그들은 단호하게 바다로 뛰어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한 녀석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바다는 유튜브로 보는 천국이 아니라 목숨 걸고 맞서야 할 밥벌이 장소다. 천적들이 득실대고 빙하 조각이 떠다니는 바다가 무섭지 않냐고 아비 펭귄에게 질문한다면 어떤 대답을 줄지 궁금하다. 어쩌면 내 아버지와 비슷한 답을 할 수도 있을 테다.

  아버지가 마지막 원양어선을 타러 간 이십 년 전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 적도를 넘어가는 배를 탈 때 아버지는 항상 겨울 새벽에 집을 나섰다. 그날 엄마는 육 개월 이상 집을 떠나 있을 남편을 위해 따뜻한 새벽밥을 지었다. 단잠에 빠졌다가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에 잠깐 깼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났고 아버지가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먹는 모습을 얼핏 본 듯도 하다. 그때 희미한 각막 밖으로 보이는 창은 아직 캄캄했다. 다시 혼곤한 잠으로 빠져들면서, 새벽밥 먹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또 배 타러 가요? 아직 깜깜한데… 무섭겠다.” 

  “우리 우진이 못 먹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어디 있겠어.”

  아버지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멀고 먼 바다 위에서 거대한 다랑어를 건져 올리던 아버지의 힘찬 팔뚝도 아들 못 먹이는 걸 제일 무서워했던 것 같다. 

  아버지를 삼킨 무서운 바다가 가까이에 있다. 바다로 뛰어드는 펭귄 등에서 겨울 새벽 멀고 먼 길을 나서는 아버지 등이 보인다. 


  결국 쇄빙선을 타고 바다로 나왔다. 선임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풀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남극에서 배를 타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나는 남극 땅에 온 것이지 무시무시한 바다 위에 있으려고 온 게 아니다. 바다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드니 차가운 하늘에 날카롭게 퍼지는 햇살이 벼린 칼끝 같다. 호흡이 버겁다. 갈등을 불사하며 배를 타지 않겠다고 버텼는데 중재에 나선 팀장님의 한마디 때문에 결국 고집을 내려놨다.

  “김 박사, 가기 싫은 곳에도 사랑하니까 가는 거, 난 그게 연구라고 봐요.”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그랬는지 팀장님은 지갑 속에 넣어둔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초등학생 딸과 유치원생 아들이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든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때요? 예쁘고도 무서운 요 녀석들 때문에 내가 살아요. 매년 남극에 오면 요 녀석들이 그립고, 집으로 돌아가면 펭귄들이 또 그리워요. 이젠 펭귄들도 자식 같아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딘들 못 가겠어요?”

  바다에서 크릴새우 사냥하는 펭귄을 관찰하는 게 오늘의 목적이다. 그런데 결빙 해역에서 얼음을 부수며 나아가는 스쿠르 엔진 소리만 들어도 눈앞이 아찔하다. 유빙 앞에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에 피가 날 것 같다. 최대한 바다를 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펭귄의 동태에만 초점을 맞췄다. 줌-인을 유지하고 있는 카메라가 파르르 떨린다.

  바다에서 펭귄들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땅 위에서 뒤뚱거리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카메라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쾌속으로 달린다. 직선으로 헤엄치지 않고 계속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솟구치는 통에 촬영하기가 너무 어렵다. 튀어 오르듯 날렵하게 몸을 날리는 젠투펭귄 무리에게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격렬한 동작을 좇는 눈이 어지럽다.

  “얘들이 왜 이렇게 어지럽게 움직이죠?”

  “물 밖으로 점프하거나 변침, 변속하는 건 모두 포식동물을 피하기 위해서예요. 헤엄 자체가 그야말로 사투죠. 멀리서 보면 멋진 광경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목숨을 건 부정父情입니다.” 

  팀장님의 대답 위로 아버지 얼굴이 겹쳐진다.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겨울 새벽 집을 나선 아버지의 발걸음은 무거웠어도, 대양 위에서 쏟아놓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펭귄의 속영처럼 우렁차고 높았을지도 모른다. 다랑어를 잡아 올리며 푸른 힘줄이 불끈불끈 솟는 아버지의 팔뚝….

  아비가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세상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원양으로 나간 아버지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가 탄 원양어선은 남미 아르헨티나와 남극 대륙 사이에 출렁이는 드레이크 해협에서 침몰했다. 한국에서 조사위원들이 급파됐다. 눈앞을 분간할 수 없는 블리자드가 불어왔고, 바람에 흔들리던 선체가 빙산에 부딪혔을 것으로 추정했다. 조사위원들의 보고서 안에서 아버지는 사망이 아닌 실종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이 되었다. 

  침몰 이후 시신을 찾지 못한 채로 이십 년이 흘렀다. 분명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는데 시신을 확인하지 못한 나는, 깊은 해구 아래 어디에선가 아버지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여전히 살아 있을 것 같은 착각에 시달리며 자랐다. 거울 속의 거울, 또 그 거울 속의 거울처럼 침몰하는 배는 수백 수천의 복제 영상으로 나를 따라다녔다. 아버지가 사다 준 영국산 지구본으로 드레이크 해협을 매일 찾아보았다. 남미와 남극 사이 좁은 해협엔 Drake Passage라고 명명돼 있었다. 

  “드-레-이-크-페-시-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열두 살 꼬마는 어려운 지명을 가만히 읊조려 보곤 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 무섭게 파도가 일어나는 그곳에 광폭한 바람 블리자드가 부는 날, 빙산에 선체가 부딪친 원양어선이 암청색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광경을 수천 번 상상했다. 어두운 겨울 새벽, 먼 길을 떠난 아버지가 바다로 빠져드는 삽화는 지우고 지워도 뇌리에 심은 영구 칩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쟤들도 저렇게 물 위로 뛰어오르면서 겨우 숨을 쉬는 거지. 에구, 자식 먹이려고…. 가만 보면 종족 본능이란 게 진짜 무서운 거야. 김 박사, 오늘 유튜브 영상 제목으로 ‘바다보다 무서운 종족 본능’ 어때?”

  내가 쇄빙선에 함께 오르자 미안했던지 선임이 계속 부연 설명을 늘어놓는다. 이런 놀라운 광경을 눈앞에 두고 종족 본능이라고밖에 못 하나 싶어 괜히 언짢아진다. 오늘은 이상하게 나답지 않다. 누구보다 종족 본능을 혐오한 건 나였는데….

  은수도 종족 본능을 혐오했다. 둘씩 셋씩 자식 낳아 오직 양육만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삶에 혀를 찼다. 그녀에게 자식이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대상에 불과했다. 아이 없이 생활하다 언제든 상대가 부담스러우면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사랑을 원했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두 배 수입으로 여유롭게 사는 딩크족 패턴에 우리는 동의했다. 함부로 누군가를 책임졌다가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면 상처 입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남극으로 떠나오기 이틀 전, 은수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신파 대사 같은 말을 하는 내가 혐오스럽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절대로 책임지라고 하는 말은 아냐. 내 실수가 크니까. 그래도 너랑 나랑 함께 만든 일이니까 적어도 네가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 임신했어. 아직 혼란스럽긴 한데, 이상하게 낳고 싶어. 네 생각은 어때?”

  펭귄이 물 위로 점프하는 모습을 역광 모드로 전환해봤다. 바닷물이 튀는 모습도 생생하게 잡을 수 있고 유영이 훨씬 아름답게 인화될 것 같아서다. 바다를 헤엄치는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하나의 삶이 피사체로 담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버지 펭귄…. 위험천만한 얼음 조각들과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천적들 틈에서 크릴새우를 확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녀석들에게 오늘은 다른 제목을 붙여주고 싶다. ‘죽음보다 강한 자식 사랑’이라고.      

  바이오로깅 장치를 부착한 수컷 펭귄이 일주일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기지에서 군서지까지 걸어오는 동안 녀석만 생각했다. 거친 바다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게 거의 확실하다. 

  “천적인 웨델물범에게 잡아먹혔거나 빙산 조각에 사고를 당했을 확률이 높아. 온난화 때문에 빙산이 자꾸 녹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선임 말은 타당해 보였다. 새끼 먹여 살리는 일에 연구 기대까지 업은 등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자꾸 두려워진다. 누구든 그 무엇이든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건 악몽이다. 

  처음부터 정을 주면 안 되는 거였다. 연구 객체로만 대한다는 철칙을 지키지 못했다. 세상 끝으로 도망쳐 왔는데 여기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바이오로깅 장치를 장착당하면서 녀석은 내게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나는 녀석에게서 출처 없는 정을 느꼈다. 잠깐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오래전 겨울 새벽 먼바다로 떠난 남자의 눈빛이 어른거렸다. 

  “비싼 기계장치 날린 건 둘째치고, 중요한 자료 하나를 잃어버렸으니.”

  선임은 짜증부터 냈다. 펭귄이 돌아오면 잠수 깊이를 측정하는 수심 기록계, 위치를 기록하는 GPS, 속도 변화와 행동 방향을 기록하는 가속도계 등을 분석하는데, 데이터를 잃어버렸으니 연구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킹조지섬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일정을 빼면 생태연구 기간은 겨우 삼 개월뿐인데 축적 자료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자료 손실 때문에 선임은 짜증 내고 있지만 난 녀석의 생존이 걱정이다. 속상하다. 기다리는 새끼 때문에 차가운 심해 어디쯤에서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암청색 바다를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다. 

  새끼들이 걱정돼 팀장님과 함께 군서지로 나왔다. 돌아오지 않는 수컷 펭귄 대신 먹이를 구하러 갔는지 암컷 펭귄도 보이지 않는다. 그제와 어제 바람이 심해서 야외조사를 못 했는데 부화한 새끼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없다. 도둑갈매기가 훔쳐 갔는지도 모르겠다. 품어주는 부모가 없어 남은 새끼 한 마리가 떨고 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부화해 열흘 정도 지난 새끼는 15cm 정도 자란 상태다. 불어오는 바람에 연약한 회색 솜털이 등 쪽으로 쏠리며 오소소 일어난다. 추워 보인다. 

  다행히도 올해는 블리자드가 불지 않았다. 중형 태풍급 블리자드가 일어나면 초속 40m 이상의 바람이 분다고 들었다. 삼 년 전, 블리자드 눈바람에 새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팀장님의 얘길 듣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군서지를 돌아보곤 했는데 다행히 새끼들이 지금껏 잘 자라줬다.

  홀로 있는 새끼가 가엾다. 살려내고 싶다. 천적이 잠입하거나 체온이 급격히 내려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새끼가 바라보는 빙하 저쪽에는 지구본에 ‘Drake Passage’라고 명명된 거친 해협이 도사리고 있다. 아비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새끼는 치명타를 입을지도 모른다. 

  “어떡하죠? 새끼가 위험한데….” 

  “자연법칙을 거스를 순 없어요.”

  팀장님은 부드러운 어조로 일침을 가했다. 그의 부드러움이 내 반감을 항상 가라앉혀버린다. 그의 말은 옳다.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연구자는 없다. 만약 도와준다면 연구물은 거짓이 될 것이다. 오염된 결과를 얻으려고 남극까지 온 건 아니다. 

  아버지를 실은 배가 침몰한 후, 주변 사람들은 열두 살 소년에게 여러 말로 위로하려 들었다. 그래야만 하는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네 아빠 이제 고생 그만하라고 신께서 데려가신 거야, 천사표가 먼저 하늘나라 가는 법이야, 열심히 일하다 돌아가셨으니 나름 자랑스러운 삶이었어, 오대양을 누비다 돌아가셨으니 그만하면 멋지게 사신 거야….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부질없는 변명 같았다. 

  그런데 당시 고등학생이던 고종사촌 형의 냉담한 한마디에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사람의 죽음도 자연법칙이야. 거스를 수 없어…. 형 말대로 죽음이 자연법칙이라고 인지하니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도 대뇌 전두엽의 단순한 작용으로 받아들여졌다.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상해요. 팀장님. 바이오로깅 장치를 부착할 때 보인 녀석의 눈빛이 잊히지 않아요.”

  “김 박사,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펭귄의 실종도 죽음도 다 중요한 연구 데이터니까. 아비 펭귄이 돌아오지 않을 때 새끼가 겪는 위기 극복 과정을 사람들이 더 응원할 것 같지 않아요?”

  “새끼 펭귄이 인간의 호기심을 위해 마루타가 되는 거군요.” 

  실종이 흥밋거리로 치부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비 펭귄이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언제나 차분하고 대응능력이 뛰어난 팀장님이 자기답게 설득하는데 더 이의를 제기할 순 없다.

  “겨우 살아남은 새끼 펭귄도 자라면 기어코 새끼를 낳으려고 둥지를 짓는 게 신기해요. 유전자에 그렇게 입력되어 있다고 말하기엔 저들의 행동이 너무 엄숙하거든요. 짝을 지어 새끼를 낳고 키우는 건 아무래도 본능이 아니라 인생의 잠언 같단 말이죠. 때론 경건해 보이기도 해요.”     

  아비 잃고 남겨진 새끼가 훌쩍 자랐다. 회색 솜털이 벗겨진 등에는 새로 자란 털이 검은색에 가까워졌고 가슴 쪽엔 보슬보슬한 흰색 털이 수북하다. 해안가엔 덜 여문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걷던 새끼들이 수영 연습에 빠져 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해안까지 카메라 프레임 안에 넣었다. 얕은 물가에 고개를 박고 짧은 팔을 쉴 새 없이 파닥거리는 모습이 앙증맞다. 앵글을 맞추는데 저절로 미소가 번져 나온다. 녀석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서 수영 기술을 터득하고 있다니 대견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도 수영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후, 후, 후, 후, 강사의 호각 소리에 맞춰 하나, 둘, 셋, 넷, 마음으로 박자를 세며 물을 헤쳤다. 한쪽 팔을 앞으로 쭉 뻗은 다음 반원을 그려 물을 저으며 두 다리를 상하로 움직여 밀어내면 신기하게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엔 수경을 쓰고도 질끈 감았던 눈을 바로 뜨게 됐을 때 수면 아래는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섭다는 느낌을 받으면 한순간에 물속으로 빠져서 허우적대기도 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다시 올라오면 되었다. 

  아버지가 실종된 뒤부터는 물을 가까이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 한 번도 수영해본 기억이 없다. 은수가 둘만의 약혼 기념으로 사이판 여행을 제의했을 때도 고개를 저었다. 그 겨울, 따뜻한 남쪽 섬으로 내려가 서핑을 즐기는 대신 북해도로 떠나 끝없이 내리는 눈만 보고 돌아왔다.

  “쟤들 아직 멀었어. 차가운 남극 바닷물에 얼른 적응해야 해. 부모처럼 헤엄치려면 더 연습해야 해. 힘내라, 아가들.”

  관찰 부스 안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선임은 오른팔을 흔들며 응원한다. 대꾸하진 않았지만 웃음이 난다. 그의 말은 옳다. 새끼 펭귄이 빨리 수영을 익히지 않으면 먹이를 구할 수 없고 웨델물범을 피할 수도 없다. 다른 서식지로 옮겨가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언젠가 그가 했던 말 그대로 펭귄 삶의 칠 할은 바다다. 

  선임이 냉정한 사람만은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함께 야간관찰을 나왔다가 기지로 돌아가는 길에 그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저게 남십자성이지.”

  선임은 고개를 들고 오른손 검지로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하늘에다 천천히 성호를 그었다. 그가 가리킨 밤하늘에는 십자 모양을 이룬 네 개의 별이 반짝였다. 영롱했다. 세상의 후미진 곳까지 환하게 비추는 신의 등불처럼 보였다. 북반구의 북극성처럼 남반구의 길라잡이가 되는 별.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이등병 때 엄마가 돌아가셨거든. 장례를 마치고 전방 부대로 귀대했는데 하필 그날 밤에 초소 근무인 거야. 눈물 뚝뚝 흘리면서 밤하늘에 떠 있는 북극성을 보며 생각했지. 내가 세상 어디로 가든 어디에 있든 북극성이 길을 인도해주듯이 엄마의 눈도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라고. 그런데 남극으로 오니 또 저 별이 있지 뭐야. 남반구의 나그네를 지켜주는 남십자성… 고마운 별이야….”

  등 뒤에 서 있던 나는 순간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을 뻔했다. 누구든, 오래,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단 시구에 공감하며 엉거주춤 올라간 손을 내려놨다. 

  “헉! 저건 뭐야? 저길 봐. 꼭 찍어야 할 것 같은데?”

  비명에 가까운 선임의 소리에 놀라 앵글에서 눈을 떼고 해안가를 살폈다. 침입자는 큰풀마갈매기다. 수영 연습 중인 새끼 펭귄들에게로 장막 같은 두 날개를 펴고 날아오는가 싶더니 한 마리를 잽싸게 낚아챈다. 새끼는 놀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침입자는 먹이를 놓지 않으려 새끼의 연약한 가슴 근육을 꽉 움켜쥔다. 이제 막 차가운 바다에 첫발을 내딛는 새끼를 무참히 낚아채다니! 역시 바다는 무서운 곳이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새끼의 비명이 공간을 날카롭게 찢는다. 수영 연습에 열중해 있던 다른 새끼들도 두려움에 소리 지르며 둥지로 뛰어간다.

  호흡이 가쁜 중에도 얼른 다시 앵글을 맞췄다. 큰풀마갈매기 발에 잡혀 있는 새끼 펭귄을 최대한 줌-인으로 당겼다. 새끼는 비명을 지르며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해안에 넘실대는 바닷물을 박차며 힘을 다해 반항한다.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참혹하다. 카메라 전원을 꺼버리고 싶다. 안쓰러워 못 보겠다. 

  “김 박사, 보호자가 나타났어! 저기, 저기야. 바로 저기!”

  앵글 안으로 뛰어든 건 아비 펭귄이다. 갈매기의 발톱이나 부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짧은 팔로 가격한다. 혼신을 바쳐 저항하는 아비에게로 다시 초점을 옮겼다. 아비의 짧은 팔은 큰풀마갈매기의 발톱 앞에 너무도 무력해 보인다. 안 돼!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온다. 죽으면 안 돼! 죽지 마! 간절히 염원하는 사이 앵글에 맞춘 시야가 부옇게 흐려진다.

  아비 펭귄의 가격에 큰풀마갈매기의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틈을 보인 찰나, 새끼가 재빨리 발톱에서 빠져나왔다. 침입자가 다시 낚아채려는데 아비 펭귄이 등으로 새끼를 막아낸다. 어느 틈에 새끼는 앵글에서 벗어나 있다. 달아나는 새끼까지 프레임 안에 넣기 위해 줌-아웃으로 멀어졌다. 큰 날개를 펴고 주변을 활공하던 큰풀마갈매기는 결국 바다로 날아가버린다.

  “우리 엄마도… 저랬어.”

  바짝 움츠렸던 어깨는 폈지만 흐려진 시야는 어떻게 할 수 없어 계속 앵글에 눈을 대고 있는데 선임의 목소리에 물기가 스며 있다.

  “나, 어릴 때 가난한데다 몸도 많이 약했거든. 힘센 녀석들한테 한 대 맞고 들어가면 엄마가 녀석들의 집으로 찾아가서 싸워주곤 했지. 우리 선호 건드리는 놈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소리치는 엄마 목소리가 너무 드세서 그땐 창피했는데…. 이등병 때 부음 듣고 달려갔더니 엄마가 남긴 마지막 유언을 이모가 전해주더라고.”

  “….”

  “마지막 힘을 다해 두 손을 모아쥐고는 ‘하나님, 우리 선호 꼭 지켜주세요.’라고 기도했다네.”

  앵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나는 나란히 앉은 그의 어깨에 엉거주춤 손을 올려놓고 가만히 토닥였다.


  2월이다. 남극의 여름이 지고 있다. 철수할 때가 왔다. 여름 끝 무렵의 석양은 매일매일 천상의 거울처럼 황홀하다. 해는 내일 다시 뜨지 않을 것처럼 사력을 다해 붉은빛을 바다에 토해낸다. 암청색 바다가 저녁마다 선홍색으로 물든다. 여름이 가는 게 아쉽다. 그간의 연구 데이터는 본국 극지연구소로 이미 전송되었고 다음 여름에 이어갈 프로젝트 계획도 수립되었다. 

  어젯밤 짐을 쌌다. 짐이랄 것도 없이 오리털 파카 두 벌과 패딩 바지 몇 개, 세면도구가 전부지만 몇 번이나 멍하니 앉아 펭귄들의 생애를 생각하곤 했다. 엄존한 위험과 생명력이 함께 깃든 이 땅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선임의 말대로 이젠 눈만 감아도 녀석들의 소리가 귀에 칩을 심은 듯 쟁쟁하게 들려올 테다. 

  정오 무렵 팀장님과 둘이서 마지막 생태 관찰을 나갔다. 다음 여름에 또 오지 않는다면 펭귄들과는 마지막 인사가 될 터였다. 다 자란 새끼들의 아우성도 주변 풍경도 담고 싶어서 광학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끼웠다. 최장 원거리 풀 프레임으로 잡았다. 암청색 바다와 서서히 이끼가 사라지고 있는 땅이 카메라 안으로 시원하게 들어왔다. 

  “김우진 박사, 다음 여름에 남극 또 올 거예요?”

  “글쎄요. 한국의 겨울이 추우면 이곳이 그리워 올 수도 있겠죠?”

  “한국의 겨울이 따뜻할 리가요. 꼭 오겠단 말보다 더 확실한 거 아닌가? 하하.”

  “그렇게 되나요? 팀장님은 물론 또 오시겠죠?”

  “그럼요. 인생의 잠언 읽으러 와야죠.”

  “세종기지 개원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팀장님의 연구 의지가 존경스러워요.”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아요. 연구 의지라기보단 펭귄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어서 이곳이 좋아요. 대단한 성취가 아니어도 넌 지금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단 위로가 여기선 느껴지거든요. 내가 세상에 와서 하는 일이 겨우 자식 둘 먹여 살리는 일이라 해도, 의미 있다는 걸 매년 확인하게 되니까요. 의미가 생기니까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는 생활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바이오로깅 장치를 등에 업은 녀석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도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간 동안 추위에 떨던 새끼는 살아남았다. 새끼의 성장기를 촬영한 일이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실종된 아비 펭귄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녀석이 어느 심해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새끼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은 오래된 습관일지도 모른다.

  “팀장님, 혹 다음 여름에도 제가 이곳에 온다면 한 가지는 확인할 겁니다. 아비 잃고 추위에 떨던 새끼가 자기 새끼를 낳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경이로울 거예요, 분명.” 

  어젯밤 짐을 싸고 있을 때 은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넉 달 만에 온 소식이었다. 문자 한 통이 뭐라고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요즘 유튜브 영상 제목이 너답지 않아.」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몸은 건강한지, 자신의 고백은 고민해봤는지, 다시 오피스텔로 돌아올 예정인지, 무수한 질문이 한 문장 안에 다 담겨 있었다. 생각 끝에 나 역시 짧은 문장으로 답을 보냈다.

  「이제 여긴 더 추워질 거야. 빨리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한국에는 지금 봄이 오고 있을 것이다. 따스한 햇볕이 겨우내 얼어붙은 나뭇가지를 간지럽히고 있을 테다. 그리고, 은수의 뱃속에도… 생명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사우스셔틀랜드 제도 킹조지섬을 떠나, 돌아갈 때는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까지 갈 예정이다. 깊고 거대한 드레이크 해협을 직접 지나갈 것이다.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그곳엔 이십 년 전처럼 거친 파도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아버지를 삼킨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싶다. 지구본에 명명된 ‘Drake Passage’를 건너가며 아버지 얼굴을 온전히 기억해내고 싶다. 

  새벽녘 꿈을 꾸었다. 암청색 바다로 빨려드는 꿈이었다. 광폭한 눈보라와 함께 거대한 파도가 덮쳐와 심해로 밀려가는데 이상하게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수압을 체감하지 못하는 몸은 충만한 자유를 만끽하며 깊은 곳까지 헤엄쳐 내려갔다. 깊은 바다로… 더 깊은 바다로… 아주 깊은 바다로… 가장 깊은 바다까지…. 고요하고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해저였다.

  어느 순간 희미한 빛줄기가 보였다. 부드럽게 바닷물을 안으며 헤엄쳐 갔다. 멀리 등대가 서 있었다. 등대에서 두 줄기 빛이 뻗어 나와 내 망막까지 닿았다. 눈 속에서 빛은 파동을 타고 충만하게 일렁였다. 따뜻한 빛을 따라 계속 헤엄쳐 나아갔다. 등대를 자세히 보려 애쓰며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갔다. 

  깊은 해저에 육중하게 서 있는 건… 등대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두 눈에서 푸른 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환하고 완전한 빛이었다.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푸른빛…. 

  놀라 잠에서 깼지만 땀을 흘리거나 헐떡이지는 않았다. 신기하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고요한 평화가 스며들었다. 해가 떠오를 때까지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내일 출발하는 배는, 아마도 안전하게 남미 대륙까지 나를 데려다줄 것이다. 아버지의 두 눈이 등대가 되어 내 길을 안내해줄 것이므로. 23.5도, 고개를 기울여야 볼 수 있었던 무시무시한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 아르헨티나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에 도착하면 은수에게 전화할 것이다. 그리고 물어볼 것이다. 

  “은수야, 어떻게 하면 네게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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