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ap - Salathe Wall / Free Blast
하프돔 다녀온 뒤로 입술의 절반이 수포로 뒤덮여 꽤나 고통스러웠다.
밥을 먹을 때에 숟가락이 들어갈 크기도 벌리지 못한 채,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수포가 터지며 진물이 흘러내렸다. 상당히 거슬리고 불편했지만, 이게 다 내가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중이겠지.
안 그래도 미국에 와서 입맛이 뚝 떨어졌는데, 입술 포진까지 생겼으니...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입술 외에도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듯한 근육통이 이제야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가볍게라도 움직여야, 몸의 피로도도 풀리니 조금 피곤하더라도 산책을 하며 몸을 회복시키려 했다.
2023. 7. 4
캠프 4는 아침 6시가 되니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아버지와 나는 다음 등반지로 염두에 두고 있는 El Capitan Nose 혹은 Salathe의 등반을 위해 정찰을 다녀오기로 했다.
엘켑 등반에서, 나와 WY의 등반 속도는 느리기에 등반 기간을 3박 4일 정도로 생각해 두고 있다.
3박 4일간의 등반을 위해서는 홀백 준비는 필수였고, 잠은 데크가 있는 위치에서 자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등반할 체력을 아끼기 위해 Noes와 Sarathe 중 픽스된 로프가 있는 코스를 선택해 미리 홀백을 올려둔 후 다음 날 출발하기로 했다.
아침 7시경. El Capitan 코스 정찰
이른 아침부터 눈을 뜬 우리 부녀는 다음으로 등반할 코스 정찰을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가 도전할 코스는 노즈(Nose)와 사라테(Salathe) 중 픽스 로프가 깔려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허가된 지역에 주차를 해두고, 알아보기 쉽게 설치된 이정표를 따라 엘케피탄 정면 바위 앞에 다다랐다.
주변 동태를 살펴보니 예상과 달리 노즈는 픽스 로프가 없었고, 사라테의 프리블라스트(Salathe FreeBlast의 Heart Ledge-9p)까지는 픽스 로프가 깔려 있었다.
아버지의 오랜 숙원이자 다시 한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던 노즈(Nose) 등반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이곳에는 픽스 로프가 없었다. 아쉬운 숨을 내뱉고, 사라테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픽스 로프가 두동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등반하기 수월한 코스를 택해야 했기에 사라테를 오르기로 결정했다.
사실 요세미티 훈련 기간 동안 나는 엘켑 등반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누군가는 엘켑 노즈 혹은 사라테를 오르는 것이 버킷리스트이자 등반 인생의 목표이겠지만,
나는 그저 최대한 요세미티 내 다양한 바위들을 만져보고 코스들을 경험해 보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물론, 누군가에겐 귀한 찬스이겠지만, 나는 나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고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WY에게 엘켑 노즈는 꽤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을 노즈 등반을 원했고, 노즈를 못한다면 사라테라도 만져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어차피, 그들이 결정하면 나는 군말 없이 따라가려고 했기에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싶었다.
오전 10시경.
El Cap 정찰을 마치고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차에 기름이 없어 팀원과 함께 요세미티 공원 밖에 위치한 El Potal 쪽 주유소로 40분간 이동했다.
다시 캠핑장으로 복귀 후, 다 같이 Yosemite Villiage Store(마트)에 가서 3박 4일간 필요한 장을 보았다.
(약 $100 정도 구매하였다!)
또, Overnight 등반 허가신청서도 작성했다.
장을 보고 돌아와서는 사라테 등반에 필요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식량>
3.3L * 6개(1일 6.6L 기준) + 게토레이(약 2L) * 2개 + 주스 2개
전투식량 6개(1일 2개씩 섭취 계획 / 1개당 2인분)
에너지바 및 에너지겔, 견과류 간식, 사과 9개
캔 통조림 과일 9개 등
<장비 및 기타>
개인 물병, 잭보일 및 가스
캠 3 set, 퀵드로우 2 set
홀백 2개(BD 45L, 메톨리우스 70L)
홀링 및 주마용 로프 2동 - static 1, dynamic 1
등반용 로프 2동 - 8.4mm, 8.7mm
개인장비(하네스, 헬멧 등등), Duct Tape(청테이프 같은)
여기서 Tip!
미국에서 구매하는 플라스틱 물병은 약해서, 홀링 중에 벽에 부딪히다가 터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병 입구들을 최대한 테이프로 붙여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하여 마트에서 Duct Tape(덕테이프)이라고 되어있는 테이프를 구매해 사용하였는데, 양도 적을뿐더러 가격도 매우 비쌌다. 한국에서 청테이프를 미리 구매해 가거나, 요세미티 들어오기 전에 큰 마트에서 미리 구매하길 바란다.
짐을 다 싸고서 나니, 어느덧 저녁이 다 되어 가 빠르게 밥 준비를 했다.
WY이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여, LA 한인마트에서 구매한 김치통을 탈탈 털어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사실.. 김치찌개 맛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흉내 낸 맛이랄까?
이곳에 와서 캠핑 생활을 하다 보니, 냄비밥도 요리 실력도 점점 늘어간다.
저녁 식사를 마무리 짓고, 탁자에 앉아 등반 계획을 세웠다.
우선,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하여, 해가 뜨기 전에 픽스로프가 깔려 있는 마지막 피치까지, 홀백을 픽스시켜 놓기로 했다. 픽스된 로프를 이용해 짐을 올려둔다면, 다음 날 등반하는 데 수월하고, 속도도 빠를 테니.
하프돔 등반 후, 2일 정도 휴식을 취했지만,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마저도 간간이 쉬운 코스를 등반하거나 어프로치를 탐방하는 시간으로 대부분 보냈기에.
그래도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 속히 계획한 등반을 진행하기로 했다.
아직도 우리가 잘 오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지만, 등반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기대를 걸어보며,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