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에서 두 번 쫓겨났다.
처음에는 2018년도 겨울이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마음 깊은 곳에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기에 과거의 상처들을 기록하며 아픈 과거와 잘 헤어지는 연습을 했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헤어질 때 가급적 서로의 상처를 용서하고 잘 헤어져야 아픈 기억으로 인해 스스로 고통당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중국에서 추방된 지 5년이 지났다.
중국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지 테스트하고 싶었다. 나를 발로 찬 중국에 왜 다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일까? 중국은 미워해도 중국인은 미워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는 정치적인 이슈와 국가의 거만한 태도로 거부감을 주지만, 내가 중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처럼 선량하고 정이 많고 의리도 있었다.
베이징에서 컴퓨터사업을 시작한 적이 있었다.
닝샤대학교에서 네트워크엔지니어링을 전공하기도 했었고, 중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도 컴퓨터 관련 일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에서 주문을 받아 중관촌에 컴퓨터를 사러 갔다. 처음에는 바로 현금을 주고 한대, 두대 사다 보면 신용이 생겨서 몇 달 만에 외상을 주었다. 서류계약은 없었다. 컴퓨터를 납품해서 결제를 받으려면 한 달 정도 걸리기 때문이었다.
월말에 결재해도 될까요?
메이원티! (물론이죠)
그들은 친절하고도 의리가 있었다. 나는 그들과 좋은 비즈니스관계를 만들어 몇 년간 사업을 했다.
마침 네덜란드 콘퍼런스에 갈 기회가 생겨서 중국항공사를 이용해 중국을 경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중국에 입국은 아니고 경유로 가는 것이라 바로 공항터미널에서 갈아탈 것을 예상했다. 아내는 좀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한번 결심한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중국 동방항공으로 예약했다. 김포에서 출발하여 홍차오공항에 밤에 도착하고, 다음날 아침 푸둥공항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편을 타면 되는 것이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일까! 여러 항공편을 검색하다가 값이 상대적으로 싼 중국항공사가 마음에 들었다. 조금 사치를 부려 자리도 좋은 위치에 예약을 했다. 상해에 가면 오랜만에 뉴로면을 먹을 것이라 기대했다.
비행기를 타고나서 내 예상을 벗어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김포공항에서 출발할 때부터 좀 이상했다. 상하이 경유인데, 상하이에 도착해서 짐을 모두 찾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티켓팅을 하고 나서 깨달았다. 홍차오공항과 푸둥공항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일단 출국했다가 푸둥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 완벽하지 못한 내 성격을 탓할 수밖에… 설마 했는데,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모두가 내리기 전에 공안 두 명이 항공기에 먼저 올라 나를 찾았다.
좌석번호 25F 조석철 씨 어디 있어?
나도 그가 궁금해서 두리번거리다가 그가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뒷머리에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중국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지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에스코트를 받았다. 난 퍼스트클래스 승객보다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고, 처음으로 연행되어 취조실에 갔다. 여권을 검사하는 카운터 구석에 있는 밀실이었다.
이전에는 대기줄에 서지 않으려고 중국에 도착하면 빠른 걸음으로 뛰었지만, 이 날은 걸어갔어도 한적했다. 조사실에는 감시카메라가 양쪽 모서리 천정에 있었다. 나는 카메라가 주시하는 긴 의자에 앉았고, 모든 짐을 조사했다. 한가 할 때 읽으려고 가져간 책 ‘Ordering Your Private World’를 몇 번이나 펼쳐보더니 내게 물었다.
이 책 내용이 뭐야?
무슨 책인지 한참을 뒤져보고 내게 물었다. 나는 속으로 무식한 것들이라고 그들을 경멸했다. 감시하는 공안 두 명이 팔걸이의자에 각각 앉았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경유는 어림도 없었고, 입국거부라고 말했다.
왜 당신은 이렇게 연행되어 조사받고 있습니까?
나를 연행한 자신들도 왜 나를 이곳에 잡아두는지 영문을 몰랐다.
그들에게 5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유창한 중국어로 자세히 설명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가 중국어를 잘하는 것에 놀랐고, 추방된 사실이 있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랬다. 5년 전 추방당할 때 난 순의파출소에 연행되었다. 영화에서나 본 상반신 머그샷을 전면과 측면에서 찍었고, DNA도 채취당했다. KMC사장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문밖에 대기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회사는 회사대로 손해가 컸다. 나처럼 고급인력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끊으라고 동방항공 직원을 불렀다. 공안들은 꼭두각시처럼 상부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휴대폰을 포함하여 모든 짐을 압수했고 꼭 필요한 통화만 하라고 내 전화기를 옆에서 들어주었다. 한국에 있는 최 선생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고 네덜란드에 가는 다른 항공편을 부탁했다. 내 휴대폰은 다음날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받을 수 있었다.
아들이 추천해 준 공기주입식 베개를 산 게 다행이었다.
푹신한 베개를 베고 준비한 안대를 하고 긴 의자에서 나름 편하게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깐 안대를 들고 보니, 밤새 불이 켜져 있었고, 공안 2명은 불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코를 골며 밤새 나를 지켜주었다. 밤새 지켜야 하는 그들이 오히려 불쌍했다. 다음날 아침 8시 10분 공안의 안내에 따라 특별대접을 받으며 동방항공으로 고스란히 한국에 돌아왔다. 상하이 공항을 떠날 때 아침식사로 스완나이(요구르트)를 주었다. 베이징에서 많이 먹었던 맛은 그대로였다. 내가 기대했던 우육면이 아니라서 씁쓸했다.
중국을 경유하며 중국에 대한 트라우마를 치료해 보려고 했는데, 이젠 아예 오지 말라는 사인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한 행동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되었고, 아내의 불화살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틀 후에 사우디항공을 타고 같은 코스로 유럽에 갔다.
유리창 너머로 상하이를 지나며 두 번째로 나를 거부한 중국에 굿바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