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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May 15. 2022

그럴 수도 있지

부처님이 누워 있을 수도 있지!

 요새는 나의 젊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것은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생활을 다년간 하며, 점차 적응해 가며 사회적 스킬이 단련되었다고 할까..


 그럼에도 나는 솔직함은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호의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이야기라도 서로가 허심탄회하게이야기를 하고, 그 걸 경청하며 맞춰 나갈 때 우리는 더욱더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일 뿐, 상대방은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들도 많이 있다.

 오늘은,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아직도 상대방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예전 사건들에 대해 서술해 볼까 한다.


#1, 마이쮸 식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신'거를 정말 좋아한다. 새콤달콤이나, 마이쮸, 스키틀즈 같은 종류에 간식을 너무 좋아한다. 


 왜 다들 좋아하는 간식들 하나쯤은 있어서, 이거는 꼭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나 또한 스물세 살 당시 그랬던 거 같다. (지금도 한결같은 초등학생 입맛이다)


 대학교 동기들과 단체로 중국 여행을 갔다. 내 주머니 속에는 마이쮸가 사과맛과 포도맛 하나씩 양쪽 주머니에 꽂혀있었는데, 나 혼자 모 올래 하나씩 먹고 꺼내 먹고 있었는데, 조금 덜 친한 녀석이 내 입에서 포도향이 나는 걸 감지하고는 하나만 달라는 것이다. 


"야, 마이쮸 하나 내놔 입에 넣는 거 다 봤어"

"다 먹었는데?"

"아이씨, 진짜 개 쪼잔 한 새끼, 마이쮸 하나 갖고 자꾸 짠돌이처럼 굴레?"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안 주고 싶은 건 내 마음인데, 안 줬다고 그걸 짠돌이 프레임으로 몰고 가더라.

그래서 결국 줬냐고? 아니다. 끝까지 안 주고 나 혼자 모 올래 한알씩 다 입에 넣었다 (야호)


 상대방이 나에게 물건을 (빌려) 달라고 할 때에는, 줄 수 있어도 안 주고 싶을 때가 있고, 주기 어려워도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물건의 금액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고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나에게 소중한 물건인지 여부에 따라 갈리는 고차방정식이다. 내가 거절했다고 해서 잘못한 게 아니며, 상대방이 (빌려) 달라고 하는 제안 자체도 나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번 약속을 거절하면 제안을 준 상대방에게 미안해지고, 상대방도 결국 나에게 제안하지 않게 되더라. 


 그냥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하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가지면, 지금 생각해 봤을 때 서로 별일이 아닐 일이었던 거 같다.


("그래 나 짠돌이다 너한테 주기 싫은데~~ 메롱")


#2, 채찍질

 2013년 겨울은 유달리 차가우면서 따뜻했던 겨울로 기억된다. 나의 첫 고과가 아주 안 좋아 기분이 좋지 않았던 기억과 동시에, 내가 그 해 초 결혼을 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축하를 받았던 시기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었기에, 주니어 급으로 분류되던 그때, 나는 회사에서 일할 때와 안 할 때를 구분하고 싶었다. 즉 열심히 업무를 미친 듯이 하거나, 아니면 그냥 그다지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 해 3월, HR 매니저와의 첫 면담이었다. 그분은 결혼은 하였으나, 아이는 없는 노 키즈족이셨고, 회사에서 나름 Reasonable 하다는 평가를 받던 매니저였다.


"올해 종화 씨 뭐할 거예요?"

"네, 저는 올해 결혼도 했고, 회사에 크게 누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기본업무들에 충실할 생각입니다."

"아니, 아직 주니어가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무언가 해야 한다고 해야지"


 사실 말문이 막혔다. 언제는 자기 주도 업무, 자기 주도 평가라고 좋은 말만 잔뜩 하더니,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는데 그걸 '열정 부족'으로 몰아간다는 느낌이었다. 분명 누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업무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것조차도 본인이 원하는 답이랑은 많이 온도 차이가 났었나 보다.


 HR 매니저가 저렇게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 '나를 정말로 아껴 주셔서 잘되라고 자극을 주신건 가?'라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이는 정답이 아닐 거 같았다. 그 사람은 나를 본 적도 없고,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잘되라고 자극을 준거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나 또한 솔직하지 않게,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HR 매니저는 '공감'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와 추구하는 바가 모두 다른데, 어찌 같은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에 대해, 나는 전혀 납득할 수 없었고 그 사람은 HR 매니저로서의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HR 매니저가 '그래요, 나도 돌이켜 보면 그럴 때가 많았어. 그래도 오래는 못 기다려 나는? 주어진 일 이외로 어떤 역량을 더 길러낼 건지 자주 이야기해 보자고'라고 이야기했으면, 그분과의 관계가 정말 달라졌을 텐데... 이젠 그런 기대를 하는 거 자체가 기대가 되지 않는다. 좀 쉬겠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 뭐 그거 갖고 큰일이라고...


("그럼, 일 하지도 않을 건데 열심히 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게 나을까요 매니저님?^^;")


세상일은 정말 쉬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말이 더욱더 절실한 거 같다. '그럴 수도 있지'


"진급 누락했어? 그럴 수도 있지, 내년엔 될 거야"

"주식 떨어졌어? 그럴 수도 있지, 지금 물을 타야겠네"

"누가 네 흉을 봐?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딨다고"

"웨딩 스케줄 못 받았어? 그럴 수도 있지,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면 되지"


이 마법 같은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나부터라도 조금 여유를 갖고 차분히 생활해 보련다. 얼마 만에 다시 까먹을지는 모르겠지만...

 

부처님은 항상 근엄해야 하나? 누워 있을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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