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May 24. 2022

우리 나이 또래

오늘이 내 인생 가장 예쁜 날

"여보, 우리 나이 경단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오늘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의자에서 쉬고 있는데 와이프가 나에게 물어본 말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이들 엄마끼리 모여있는 단톡방이 있는데, 우리 또래 A의 남편 B가, 일이 너무 고되어 정말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여럿 했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A가 부랴부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와이프 : "마트 알바는 좀 어떨까?"

나 : "에이, 요새 누가 마트를 가 쿠팡이나 마켓 컬리에서 시키지. 여보 마트 최근에 가본 적 있어?"

와이프 : "그렇네... 마트를 간 적이 없네."

나 또한 대학교 때 마트에 무작정 찾아가 일을 한 적이 있었지만, 요새는 마트 알바도 구하기가 어려울 거 같은 내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요새 캐셔직은 점점 없어지는 추세다. 마트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무인결제 시스템의 도입으로 우리 나이 또래 경단녀들이 일 하기에 자리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와이프 : "그럼 음식점 알바는 어때?"

나 : "상관은 없는데, 동네에서 일하면 얼굴 팔려서 하려나?"

와이프 : "그것도 그렇네..."

동네 음식점들은 위드 코로나 정책 이후 몰려드는 손님들로 인력이 부족하다고는 뉴스를 통해 접했다. 원한다면 일은 할 수 있겠지만, A의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식당에서 아는 사람들과 마주칠 텐데, 얼굴 팔리는 건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카톡도 A에게 전달되었지만 긍정적인 회신이 오지는 않았다.


나 : "여보, 그럼 코딩이든 뭐든 컴퓨터 쪽 배워보는 건 어때? 시간은 걸리지만, 요샌 트렌드야"

와이프 :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카톡 타이핑..)

와이프 : "근데 A언니는 컴맹이래 ㅎㅎㅎ"

요새는 다들 IT업계 쪽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세상이다. 단기간 컴퓨터 학원 등을 통해 기술을 배우면, A가 향후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고, 막상 처음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갖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궤도에 오를 수 있다. 이쪽 방향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 무리한 제안이었을 거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이 또래'가 벌써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으로 올라가 있을 줄 몰랐다. 예전 하늘 사랑 이라는 채팅을 할 때 내 나이가 16살이었다. 그때 '25살, 서울 신림'등 이십 대 이상의 나이를 볼 때마다 '늙었다'라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이제는 벌써 내 나이가 서른여덟이다.


 나 또한 웨딩알바를 현재 해 나가고 있지만, 나이 제한이 있는 구인 조건도 많다. 보통 35살 이전을 선호하며, 40 이하 선호도 많다. 즉 나도 더 하고 싶어도 산술적으로 2년 정도밖에는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위에 이야기한 A도, 들어보니 '대기업 사무직'출신 경단녀란다. 나름 4년제 대학에 정규 교과과목을 모두 수료한 인재라는 뜻인데, 경력이 단절되고, 자신만의 콘텐츠가 마땅치 않고, 현재 자기를 찾는 시장이 없으니 돈을 벌기 급급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내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일들과, 시장에서의 가치나 기대는 점차 어긋나는 게 현실인 거 같다. 위에 이야기한 A의 경우도 그러하고, 내가 하고 있는 웨딩알바, 그리고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도 그런 거 같다. 


 그러나 결국엔 이런 부분들까지도 수렴해 가며 우리네 삶은 지나갈 것이다. 나중에 10년이 넘어 이 글을 본다면, 그땐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많았지'라는 푸념을 늘어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럴 수도 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