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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Jun 04. 2022

안 했으면 몰랐을 거다

 평상시엔,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당연한 생각만 가질 때가 많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 나의 표정, 내 주변 사람들 모두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한 결과물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 너무나도 귀여운 첫째, 둘째 아가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빈약하여 자주 다치는 나는 혼자 집에서 골골 대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군대를 가지 않았더라면?"

 분명 언제나 평생 지속될 줄 알았던 내 짧디 짧은 젊음을 그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허무하게 보냈을 수도 있다. 고생한 만큼, 반드시 나중에는 보상을 받게 되어 있기에, 자의는 아니지만 잘 다녀온 것에 후회는 없다.


 위에 언급한 것들은 사실 어찌 보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성인 남자들에게는 제너럴 할 수도 있는 생각들이다. 그렇지만, 귀한 시간 이 글을 읽어보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새 "내가 사진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평소에도 많이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사진 충'이라고 불릴 수도, 누군가에게는 '부르주아 취미를 가지셨구나'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는 분야이지만 나는 정말 사진 촬영이 좋은 거 같다.


 오늘은, 카메라를 잡은 이후 최근에 꽤 기뻤던 일들을 독자분께 소 개코 져한다.



 #1, 동료의 배경화면

 "A 수석님, 저 요새 사진 촬영해요"

 "그래 들었어, 네가 찍은 예쁜 사진 있으면 메일로 보내봐"

 "네 그럴게요"

 

 나는 의례 하시는 립서비스라 치부하고, 사진 몇 장을 능숙히 압축하여 회사 메일로 보내드렸다. 그게 벌써 2년 전 이야기다. 


 A수석과 나는 5년 전 업무로 합을 맞춰본 사이다. 내가 많이 도와드렸고, A수석이 나를 잘 리드해 좋은 결과물을 얻었고, 그 영향이었을지 모르지만 A수석은 '부장님'이 되셨다.

 며칠 전, 부서 대규모 이사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던 자리가 꽤나 가까워졌다. 나는 이사 이후에 물을 먹으러 정수기로 갈 때면 A수석이 있는 파티션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엊그제도 물을 마시러 지나가다가 우연히 A수석의 모니터 보호 화면을 보게 되었는데, 색감이며 구도며 왠지 낯설지가 않은 것이었다. 그 당시는 까먹고 있었다. 내가 A수석에게 사진을 전달했던 일 자체를.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모니터를 살펴보니 내가 보내줬던 사진을 잘 쓰고 계신 것이었다. 


 나의 입 간이 찡긋 하고 올라감을 느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해놓다니... 돈을 받고 드린 것도 아니지만 정말 뿌듯했다. 사실 배경화면 설정하는 거 자체도 귀찮아서 안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내가 보내드린 사진을 다 보시고는, 나름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예쁜 사진을, 귀찮음을 무릅쓰고 PC에 설정해 두셨다는 것에서, 내가 찍은 사진이 인정받았다고 여겨진 순간이었다. 


 서로 재택근무 일정이 달라서 아직 말씀은 못 드렸지만, A수석을 자리에서 뵈면 말씀을 다시 드려 보려고 한다.

"수석님, 요새 찍은 Top 5로 다시 드려볼까요?^^"



#2. 5만 원 추가요

"계약"은 상황마다 다르지만, 서로 합의한 계약은 그 위력을 발휘한다. 그 계약 조건대로 업무를 수행하고, 단가를 받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주말마다 기회를 얻고 있는 웨딩 스냅 일에 있어, 페이 계약이 그런 거 같다. 어떤 날은 짧게 끝나는 예식임에도 15를 받고 나갈 때도 있고, 어떤 날은 굉장히 먼 곳까지 가는데도 동일한 가격을 받을 때도 있다. 


 저번 주 토요일과 저저번 주 토요일 웨딩 스냅을 진행했었다. 두 사장님들 모두 나와 처음 합을 맞춰본 분들 이셨다. 다들 열정이 넘치시고, 어떻게 하면 고객분들의 예쁜 모습을 많이 담아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게 느껴져서, 나도 더 열정을 담아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과물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촬영 이후, 페이 정산 시간이 다가왔다. "입금 부탁드립니다"라는 카톡을 사장님들께 전했고, 카톡에서 '1'이 사라져 있음을 인지했다. '언제 입금해주지?'라는 긴장감이 살짝 감돌던 그때, 두 사장님 모두 내가 계약한 페이보다 5만 원을 더 얹어 주셨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씀을 함께 주셨는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르겠다. 시장 가치로 따지면 나는 언제든 쓸 수 있는 "초짜" 수준의 포토 그래퍼인데, 내 나름의 서비스 업에 대한 정의와 그걸 기반한 행동으로 조금 더 노력하려는 모습을 보인 부분에서, 점수를 얻었나 싶었다.


 아울러 그 당시 내 계약의 가치보다, '결과물'에 대한 인정을 많이 해 주신 거 같아 정말 뜻깊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긍정적 피드백이 쌓이고, 결과물에 대한 날카로운 피드백도 함께 받아 간다면, 보다 나의 시장가치를 객관적으로 올릴 수 있는 지표들이 될 거 같아 한 것 고무된 날 이었다.


 "내가 사진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 다른 분야로서 내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했겠지. 심지어 그 분야가 무엇이든, 지금보다 더 희열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그 당시 이유도 불분명 하지만 "사진기"를 선택했고, 조금씩 실력을 올리며 자존감 상승 부분까지도 기여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분명 뿌듯한 일이다.


 결국, 지금의 나의 선택도 내 미래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간간이 올리는 나의 신문고, '브런치'도 그러하고, 지금 하는 일, 지금 맺고 있는 관계, 지금의 사진 취미 등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믿고, 현재 행동들과 선택에 앞으로도 집중해 보려 한다.


A수석의 컴퓨터 배경화면. 내가 찍고도 이쁘게 찍었다 싶은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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