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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Aug 31. 2022

할배요, 서타한판 할랍니꺼?

미래의 '장기'

 2055년, 내 나이 70이 되었다.

동년배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뜨는 안타까운 일들도 많지만, 의학의 발달 때문인지 이젠 칠순은 더 이상 많은 나이가 아니다. 

 나는 오전에 나의 3평짜리 작업실에서 노트북과 추가 모니터를 곁에 두고 소일거리로 '개발'을 해 주며 용돈 벌이를 하고 있었다. 사실 15년 전에 진즉 회사를 나왔지만, 곧바로 초 단기 계약직으로 회사가 먼저 제안하여 15년째 4시간씩 3일만 간단한 개발 일을 해오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은 원격으로 회사 PC에 접속하여 문구 수정 등의 간단한 일을 처리했다.

이젠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예전 같으면 실수하지 않을 오타나, 분기 문 처리도 종종 실수가 나오곤 한다. 하긴 생물학적 나이는 무시할 수 없으니까... 결과물에 대해 리더로부터 핀잔을 듣고, 그냥 흘려버렸다. 그렇게 오늘 할 일을 마치고, 요새 유일한 낙인 '노인 PC방'으로 나는 향하고 있었다.


 노인 PC방, 그곳은 60세 이상만 출입이 가능한 어르신 전용 PC방이었다.

위닝, 피파, 스타크래프트, 레인보우 식스, 서든어택 등 내가 어렸을 적 쉽게 접할 수 있던 올드 게임들을 손쉽게 할 수 있고, 자리에 '게임 대전 원함' 푯말을 크게 붙여 놓고 찍찍이로 게임 명을 옆에 대 놓으면, PC방 관리자가 주선해 직접 매칭 시켜주는 등, 나름 체계를 잘 갖춰 놓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에 오면 스타크래프트 밖에 안 한다. 

위닝일레븐을 예전에 매우 좋아했지만, 요새는 나이가 들어서 인지 컨트롤러 조작 간 강약 조절이 안돼 결정적 순간에 강슛을 날려 허공으로 띄워 보내기도 하고, 크로스를 올려야 할 때 슛을 잘못 누른다든지 하는 등 이제는 이런 순발력과 반응속도가 필요한 게임은 영 못하겠더라. 


 스타크래프트 중에서도, "빠른 무한맵"의 "15분 러시"를 좋아한다.

자원이 전혀 줄지 않아 진지에 짱 박혀 유닛만 많이 뽑으면 되려니와, 15분 동안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어 그동안 많은 수의 개체를 확보해 상대방 진지로 "웨이브" 하러 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사실 어릴 때부터 내 취향이었다. 입구를 막고, 어떻게든 버티며, 많은 수의 유닛을 뽑아 한방에 정리하러 가는 패턴, 내가 가장 잘하는 유형의 게임 스타일이었다.


"할배요, 쫌 치네예, 지랑 마 서타한판 할랍니까?"

"거 보기에 어려 보이는데, 왜 나랑 하려는 거요?"

"마 지두 95년 생이라예, 믁을만큼 믁었심더, 오늘 처음 PC방왔는데예, 같이 게임할 사람이 없어서 즉즉하다 아임니꺼, 걍 하믄 재미읎으니까예, 새우탕 큰 사발 내기 어떻심꺼?"


 나보다 10살이 어린 60살 아저씨와(?) 그렇게 서타한판 하게 되었다.

녀석은 신체 나이가 훨씬 어려서인지, 도통 실수가 없었다. 내가 아까 하던 게임 패턴을 다 보고 파악했는지, 초반부터 작은 공격을 하며, 나의 유닛 생산을 방해했다. 페이스에 말린 나는 GG를 치고 나오게 되었다.


"행님, 잘묵겠심더, 와따 라면 윽수로 맛있네"

"내가 깔끔하게 졌수다. 많이 먹어요, 뭐 사실 나도 할거 없어 여기 온지 5년째요, 여기 처음 오니까 어떻수?"

"마, 침에는 분위기 틀딱들만 많아가 어두큼큼해서 싫었는데예, 올드 게임들 같이 즐길 친구들 있으니께네, 그 나름 분위기가 있는거 같에예, 행님, 잘먹었심더, 지는 마예 이만 가볼랍니더. 또 함 서타 한판!"


 그렇게, 그에게 내기를 지고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PC방을 나왔다.

내가 어릴 적, 어르신들은 장기와 바둑판을 가지고 공원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대국을 하곤 하였던 기억이 난다. 한쪽에선 머리 싸매며 상대방의 수를 파악하고, 한쪽에서는 자기 일 아니라고 훈 수질들만 뒀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어르신들도 어려서 장기와 바둑을 즐겁게 두시던 기억을 갖고 공원에서 모여 즐기셨던 건지, 아니면 그 당시는 젊어서 게임도 없던 세대라, 결국 나이를 드셔서 배우고 대국을 하신 건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공원에 가도 장기나 바둑을 두는 내 또래 친구들은.... 없다. 심지어 게임의 Rule을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 넘는다.


 나 어렸을 때, 학교 다니는 시절에는 스타크래프트를 할 줄 모르면 친구들과 대화에서 끼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6교시만 되면 이미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PC방을 갈 사람들을 모집하고, 팀 간 밸런싱을 적절히 하여 이미 팀 빌딩까지 맞춰 놓은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학교 끝나고 약 15분 거리에 있는 PC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친구들 사이에 껴서 이렇게 같이 놀러 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어른들은 방과 후 PC방으로 향하는 우리를 보며 매우 불안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허구한 날 게임하는 세대, 새벽까지 PC방에서 리니지를 하며 학업을 소홀히 하는 세대, 그 세대가 어른 세대가 되면 걱정이 된다는 내용의 뉴스가 9시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소재로 올라오곤 하였다.  


 그렇게 약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 나이는 마흔을 향해 가고 있으며, 게임 중독을 걱정받던 그 세대는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이르러서는,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 또래들은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나만 해도 사진 찍으러 다니는 걸 좋아하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하는 걸 비 생산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간간히 모바일 게임을 하는 분들도 봤지만, 요새는 '자동 플레이'의 시대다. 그냥 게임만 켜 놓으면 알아서 아이템도 캐고 캐릭터 레벨도 올라간다고 한다. 게임을 가끔 하되, 시간을 크게 투자하지 않는 게 요즘 내 또래 콘셉트인 듯싶다.


 지나고 보니, 옛날 어른들이 걱정했던 것만큼, 우리 세대는 잘못 크지 않았으며, 이젠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여해 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 경우는 청소년기에 친구들과 노는 콘텐츠가, 게임이라고 해도 딱히 거부감이 들지 않느다. '혼자' 노는 것보다, 그렇게 또래들끼리 우르르 가서 한 곳에 모이고, 서로 즐거워하며 추억을 남기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새 아이들을 보면 가끔 불쌍할 때가 많다. '어른들의 스케줄'에 따라 짜인 일정대로 학원 투어를 다닌다. 우리 때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쩐 일인지 사회는 점점 더 고갈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에만 몰두하는 거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왜 점점 우리 삶은 나아지는데 더 빈곤해지는 것일까...

 지금보다 아이들에게 놀 시간도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고 그들이 바라는 놀이를 더 가열하게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어릴 때 몰입했던 놀이나 게임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그렇게 되길 소망해 본다.


 "나중엔, 닌텐도 스위치가 노인 PC방에 배치가 되려나..? 동물의 숲 한판?"


중3때, 정말 너무 좋아하던 여자애네 집에 전화 하기 전, 그 설레임은 이젠 공중전화와 함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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