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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Sep 11. 2022

한 세대가 저물어 간다.

명절? 그게 뭔가요?

 결혼하고 나서야, 내가 가진 조건 중 아주 안 좋은 조건 하나가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뭐 안 좋은 조건은 매우 많다. 재력, 외모, 학력 등, 2022년에 내가 결혼시장에서 짝을 구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결격 사유가 많아 높은 등급을 받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중에서도 앞서 언급했던 가장 안 좋은 조건이란 바로 '종갓집'이라는 점이다.

나는 남들보다 '그러려니' 하는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왜?'라고 잘 반문을 하지 않는 편이다. 학창 시절, 좁디좁은 우리 집으로 많은 친척분들이 오셔서 명절 두 번에, 각종 기일날마다 절을 하고 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로서는, 그냥 당연히 어른들을 모시는 걸 하는 줄만 알았지, 우리 아버지가 집안의 '장남'이라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인지도 잘 몰랐었다.


 결혼을 어찌어찌하고 나서, 우리 와이프도 명절마다 꽤나 긴장을 하곤 했다.

아무리 우리 어머니께서 음식을 만든다고는 하나, 차례 혹은 제사 전날 호출되어 시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만든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우리 어머니는 병원밥만 햇수로 26년째 만들어 오고 계시다. 음식 만드는 데는 도가 트신 분이라, 더욱더 노심초사하며 신경이 곤두 선 모습을 와이프는 보여주곤 했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내가 태어났던 집의 환경이, 결혼 상대에게는 좋은 점수는 얻지 못하겠구나... 하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었다.


 여하튼, 명절 간에는 모두 우리 부모님 집으로 모였기 때문에, 나는 한 번도 명절을 '쨀'수가 없었다.

나도 그 시간에 해외도 나가보고 싶고, 제주도도 가보고 싶었지만, 조상님들을 뵙고 소원을 비느라 그럴 수는 없었다. 차례 지내는 당일은 새벽부터 손님이 집으로 모여들었고, 새벽에 잠이 드는 내 잠버릇 상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손님들을 뵙곤 하였었다.

 차례 때는,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초반에 절을 하다가, 나중에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절을 올리곤 했었다.

 "너희 증조할아버지다" 하며 아버지가 이야기해 주시는 순간부터는 조금 경건해지며 절을 올리곤 하였다. 나 11살까지 살아 계시던 할아버지, 할아버지께 예를 갖춰 메와 술을 올리고, 그다음은 친할아버지에 대한 차례가 거행된다. 우리 서현이를 보고 "눈이 아주 맑은 호수와 같구나" 라며 특히 예뻐하셨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차례는 끝이 나곤 하였다.


 차례상은 금방 수거되고 치워지며, 그 자리에는 어른들이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주변 사이사이로 자식들이 들어가 함께 식사를 한다. 여자분들은 상을 따로 마련해서 드신다. 아무래도 식사를 먼저 만들어 내어 드리려면, 타이밍이 맞지 않아 그렇게 자리 잡은 듯하다.

 조금 적막한 침묵이 흐르며, 한 숟갈씩 식사를 하신 이후, 어른들은 술을 한잔씩 하시며 자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결혼은 할 거냐, 안 하면 왜 안 하냐, 취업은 했냐, 했으면 어디 갔냐, 대학은 어디 갔냐, 왜 그거밖에 공부를 못했냐 등... 자식들이 답변하기 곤란(?) 한 질문들을 이어가며 '어색한' 대화를 끌어간다. 나쁜 감정은 없으시고, 아마도 너무 오래 못 보다 보니 물어볼만한 공통 질문이 그런 거밖에 없으셨을 거라 믿는다. 그다음은 정치 시간. 누구는 착한 놈이고 누구는 나쁜 놈이란다. 그 근거를 대는데 어느 유투버가 했던 말과 똑같아 소름이 돋았다. 객관적으로 보시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걸 보시는 느낌...? 어른들 대부분 다 그러하셨다. 합리적이고 싶으나, 본인이 믿는걸 누군가에게 '설득' 하는 느낌...?


 그렇게 왁자지껄 식사가 끝나가면, 친척분들 슬슬 한 팀씩 자리를 뜬다.

어머니는 겸양쩍게 어제 부친 전과 과일 일부를 소분하여 바구니 하나에 담아 친척들 손에 쥐어 주신다. 전을 안 좋아하는 자식 세대와, 전을 좋아하는 부모세대는 표정이 갈린다. 나도 전을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따습게 데워먹으면 그렇게 맛이 있던데.. 아마 자식 세대는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빨리 이 어색한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에, 현관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부모님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순간마다 표정이 일그러지곤 한다. 그렇게 여러 팀을 모두 보내고, 우리 어머니는 병원으로 출근하셨고, 우리 아버지는 술기운에 잠이 드시곤 하셨다. 우리 가족은 다시 와이프의 친정으로 향하곤 하였다.


 이게 평상시 명절의 나의 집의 '루틴'이었다.

올해 가을, 추석부터 우리 어머니가 드디어 '선언'하셨다. 명절 차례를 안 지내겠다고 말이다. 아버지와 잠깐 이야기해보니 화가 단단히 나셨다. 다른 친척분들도 싫어하시고, 자기도 조상에 대한 예를, 몸이 허락하는 한 갖춰야 하는 게 맞지 않냐는 의견, 어머니는 명절 전날도 늦게 퇴근하셔서 나와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도저히 이제는 차례를 못 지내겠다 이야기하셨다.

"누구 좋으라고(차례를 지내), 나는 이제 더 못하겠다."

"잘했어요 엄마"

 나는 누구보다 어머니를 응원했다. 나부터 차례에 대해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 데다, 이제 칠순이 다되어가는 우리 어머니를 보면서, 항상 안쓰럽다는 생각을 해오던 차였는데, 어머니가 저리 용기를 내시니 내가 다 후련해지더라. 드디어, 어머니의 '의무' 하나를 스스로 끝 내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2022년, 이제 다시 결혼 시장에 나가면(?) 잃을 점수 하나는 없어져서 다행이다 싶더라.

종갓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 누군지도 모르는 박 씨 집안의 돌아가신 어른들 음식 챙겨주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자식들 생각해서 큰 용기 내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아 아니지, 아마도 본인을 위한 용기였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석 설 명절! 해제


 이렇게 나의 작은 아버지, 그리고 막내 할아버지, 아울러 그 자식 세대 친척들까지,

점점 '연'은 작아질 것이다. 각자 속한 소속에서만 살아갈 뿐, 연고도 없고 교집합도 없는 '박 씨 집안' 친척 모임은 아마 교류 없이 사그라들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사회가 변화해 가는 한 현상인 만큼, 대세를 따를 수 밖에는 없을 거 같다.


 "어머니, 그동안 정말 큰일 하셨어요. 이제 남은 명절, 어머니를 위해 귀한 시간을 써 주시길!"

남은 꽃마저 다 떨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고생한 스스로에게 휴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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