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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Sep 23. 2022

관계는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올해 6월부터,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A와 업무가 구분되게 되었다.

자의로 나눈 것은 아니고, 추가 업무를 받게 되었는데, 커뮤니케이터+개발자 Role의 사람이 필요하여, 부득이하게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사실 A와 같은 업무를 이야기한 적은 내 기억에는 없는 거 같다. 같은 업무 메신저 방에는 있지만, 그것은 서로 '함께 Shared'하는 다른 동료들을 호출하거나 요청할 때 메신저 방이 울리는 것이지. 각자 서로의 업무를 긴 시간 이야기할 새도 없이, 서로가 앞만 보고 각자의 고객들의 Needs를 맞추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내가 오늘 하고 져하는 말은, 나와 동료 A와의 관계는 아니다. 나와 고객, 그리고 A와 그의 고객 이야기를 담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모시는 고객은 작년에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첫 미팅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고객들도 그분들의 Needs가 있을 거고, 나도 내가 속한 팀의 사정이 있는 것이었다. 온라인상에서 현재까지 진행된 업무 경과보고를 하며, 지금은 조금 웃기긴 하지만, 그 당시는 꽤나 과감하게 내가 고객에게 먼저 '선'을 그었던 일이 있었다. 뭐 이를테면 '화면 변경은 최소한으로 했으면 좋겠다' 등의 이야기였다.

 나도 사정이 있는 게, 팀에서 맡긴 리더 역할이므로, 쉬이 주도권을 내주면 안 되는 미션을 받았었고, 이 일이 처음이었다. 주로 화면 없는 개발만을 하다가, 웹 화면이 들어간 프로젝트를 리딩 해야 하다 보니, 정말 몰랐다. 사실 그래서 선을 그었는데, 아마 회의장소에 모여있던 그 당시 고객들은 '뭐지? 저놈?' 하셨을 거다... 현재 고객들 중 리더 한분이, 나에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선을 딱 그으시네요..?' 라며 신경질적인 말씀을 해주셨던 것도 기억난다. 


 사실 나는 팀에서 '고객 버릇 나빠지게 만드는 놈'으로 꽤 유명하다.

파지티브하게, 다 퍼주려고 하지, 영리하게 안 해주고 리스크를 회피하거나, 일을 더 안 해주려는 사람은 아니다. 오죽하면 내 PM님도 그런 버릇 좀 고치라고 할까.. 

 결국 나에게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책임을 맡은 이후, 고객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기능들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또 누구에게 물어봐야 Answer가 나오는지, 그리고 결과물을 받아보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 점점 익숙해지면서, 업무를 받는 태도도 원래 기질대로 파지티브해지기 시작했다.


 내 성향은 원래 일할 때 많이 해주는 성향이므로, 그리고 알아서 먼저 Weak Point를 제안해주는 버릇이 들어있기에, 고객들도 조금씩 나를 믿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처음엔, 하루가 멀다 하고 회의를 열었다. 

"이 기능은 언제까지 되나요?"

"요 화면 디자인은 언제까지 나오나요?"

등등, 궁금한 게 있으면 업무시간 상관없이 계속 말을 걸며 나에게 물어봤었고, 나도 팀원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일정을 fix 하고, 그 일정에 맞춰 결과물을 하나둘씩 제출해 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 이 시스템과 루틴에 익숙해지니, 이제는 내가 먼저 고객에게 일정을 제시하고, 그 일정을 팀원들에 컨펌받는 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이 대체로 고객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며, 그들로 하여금 나를 믿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켜켜이 쌓여간 나와 고객과의 신뢰였다.


 어제 내가 모시는 고객들과 온라인 미팅을 했다. 

고객의 요구사항은 10월까지는 우리 팀에서 하기로 한 미션들이 있으니, 잘 챙겨서 이슈 있는 거 챙기고 필요한 거 알려달라는 이야기만 하였다. 세부적으로 무언가를 챙기거나, 지시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알아서 잘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럴 때, 나를 신으로 믿어주셔서 기분이 아주 좋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나도 사람이라 좀 불안했던 모양이다. 고객들에게 당신네들도 나를 너무 믿지는 말고, 계속 채근하면서 크로스로 챙겨보자고 이야기를 남겼고, 별 무리 없이 회의를 마칠 수 있었다.


 "종화 님, 오늘 16시에 고객들하고 회의 있어요"

동료 A의 메시지였다. 사실 조금 꺼려지는 이유는, 내가 A와 그의 고객과 나눈 대화 내용, 그리고 업무 내용을 일절 알지를 못한다. 나도 바빠서 그쪽에 관심 없는 것도 맞고, A도 굳이 나한테 설명해 줄 리소스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참석한다고 하고, 16시에 온라인 미팅을 들어와서, 스피커만 켜놓고 마이크는 꺼 두었다.


 회의 서론에서는 그의 고객들의 약간의 성토(?)가 이루어졌다.

내용은 별거 없지만, A가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의 일원화가 잘 안 되는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러면서 서로 간의 믿음이 없어 상호 믿지 못해 의문점을 제기하는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 기능은 언제까지 되나요?"

"요 화면은 왜 이렇게 자의적으로 하신 거죠? 저희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나는 회의를 쉐도잉 하며, 옛날 생각이 났다. 나도 그랬다. 돈을 주는 사람만 고객은 아니다. 내 주변에 나와 호흡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객이다. 그들과 처음부터, 서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친구로 시작하더라도 좋은 관계로 지속되는 경우조차도 드물다. 하다못해 지금 고객은 '돈을 주는 고객'이다. 물론 나에게 직접 지급하지는 않지만,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비즈니스 적으로도 엮여있기에, 이들에게 믿음을 주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래도 다행히, 회의 말미로 갈수록 A는 그들에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차분히 이야기를 했고, 오늘 회의에서 큰 이슈는 없이, 다음번 결과를 기대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는 자리를 잡은 거 같다. 

내 고객들도 나를 존중해 준다. 내 동료들도 나를 존중해 준다. 물론 전제는 그 반대도 성립해야만 하고, 나는 최대한 그들을 존중해 준다!(정확히는 노력한다...) 그래서 사실 그들이 너무 고맙다.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그러려니 해준다. 이게 정말 고마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큰 의심 하지 않고, 잘 들어준다. 나 또한 그것을 양치기 소년처럼 악용하지 않는다. 

 

 동료 A는 이곳에 계속 머물기 위해서는, 그의 고객을 잘 공략해야만 할 것이다.

아마, 동일 조건이라면, 내 고객은 나와 A 중, 결국 지금은 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쌓여온 신뢰관계가 A보다는 내가 좀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A의 고객은, 내가 아닌 A를 선택할 것이다.

그들과 쌓여온 신뢰관계는 나보다는 A가 좀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A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해당 고객들의 업무 요청은 A에게 갈 것이고, 나는 지금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받아 처리를 하게 될 것이다. 


 관계는, 거저 만들어지는 법이 없다.

서로가 많은 이벤트를 통해, 서로의 능력을 확인하고 작은 신뢰가 켜켜이 쌓여 나이테를 형성해 가듯 해야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서로 처음에는 믿지 못하며 체크하고 따지게 되지만, 관계가 형성되면, 그다음부턴 업무가 보다 수월하지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우리는 그 순간을 잘 체크해서, 그때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나 행동을 조절해가며 하면 큰 무리가 없다.


 아울러 세상에 공짜는 애석하게도 없다. 먼저 그 자리를 선점하고 있던 사람을, 무능력한 '고인 물'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그들도 그 전임자가 운이 좋아 나갔던, 아니면 고객을 포함한 다른 동료들이 선택했던 무언가의 이유가 있기에 그 자리에 있는 것 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기를 희망한다면, 해당 조직의 동료들보다, 최소 두배 이상의 노력을 하며 작은 신뢰를 점점 쌓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해 가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어딜 가나 존중받고, 신뢰받는 사람으로 거듭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든 것에는 서로 간의 믿음이 필요하다. 혼자 믿어서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결혼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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