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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Sep 24. 2022

당신은 어릴 적 '무엇을 보며' 자랐습니까?

 나는 요새, 혹독한 '관계 다이어트' 중이다. 인스타 그램과의 이별을 선언했다 (brunch.co.kr) , Clean Up (brunch.co.kr)

저 두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 있으니, 바로 '유튜브'였다. 모르면 모르는 데로 살지만, 알기 시작하면 그대로 두지는 않는 성격이다 보니, 사실 '구독' 탭이 있는 줄 몰랐다. 나는 보통 내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자주 보는 편인데, 그저 갓고리즘님께서 '옛다' 추천해주는 영상들을 주로 보다가, 자주 볼 듯한 채널은 구독을 해 두기도 했고, 아는 분들이 유튜브 한다고 구독 좀 눌러달라고 해서 몇 개 누른 것도 있었다. 이 처럼 유튜브 추천만 보던 내가, '구독'탭이 있다는 걸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찐'들만 남기고 모두 취소했다. 내 인스타도 날리는 마당에, 별 관심도 없어진 채널들, 의무감에 그저 구독 눌러준 채널들이라고 남길 이유가 전무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현재 구독하고 있는 채널 개수를 정확히 세어보니 '15개'였다. 주로 국내 농구, 시사,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 그런 내용들의 콘텐츠만 취사선택해 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가 굉장히 급했던 모양이다. 내 피드에 콘텐츠를 채워줘야만 하는데, 구독을 많이 취소해서, 채워 넣을 신규 콘텐츠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아주 우연히도, 며칠 전 '이연걸', '성룡'의 "영화 리뷰 결말 포함" 내용의 한편당 30분 내외로 제작해서 나에게 제안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건 안 누를 수가 없었다. 성룡은 사실 내가 많이는 접해보진 못했지만, 이연걸은... 정말 어릴 적에 비디오를 몇 번을 돌려봤나 모를 정도로 너무너무 좋아하던 배우였다. 


 내가 어렸을 적, 90년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서서히 전환해 가는 시점에 있던 시대였다. 2000년대부터는 사실상 디지털화된 세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 하여간에, 90년대에는 콘텐츠를 소비하려고 해도 '채널'이 별로 없었다. 영화관은, 우리 부모님들이 기념일 때나 간 걸 보면, 지금과 비교해 그다지 저렴하지 않았을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비디오는 좀 저렴했던 거 같다. 우리 집에 보물 1호, TV와 VTR이 한 몸에 붙어있던 VTR TV를 거의 껴안고 잘 정도로, 나는 비디오랑 TV 보는 걸 좋아했다. 콘텐츠 소비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내가 살던 아파트 상가에만 비디오 가게가 2~3개는 있었던 거 같다. 쪼금 작은 가게를 가면, 일자로 들어갔다가 일자로 나와야만 했고, 신작 비디오가 수급이 빨리 안돼 잘 안 가고, 넓은 가게에 가서 느긋하게 비디오를 골랐던 기억이 난다. 그중, 나와 5살 차이가 나는 우리 형이 빌려오는 비디오를 보며 자랐는데, 그게 이연걸 시리즈였다. 


 리뷰를 연달아 본 이연걸 작품들을 살펴보니, 태극권, 영웅, 탈출, 보디가드 총 4개.. 다. 

생각보다 별로 없네...? 뭐 그렇긴 했으나, 비디오로도 빌려보고 이때, 1박 2일, 2박 3일 빌리는 옵션이 있었는데, 빌려오고 한번 보고 반납하면 너무 아까워서 최소 두 번 이상 보고 반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렇게 TV 명절 때면 항상 이연걸/성룡 아저씨들을 보며 자랐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3, 4학년 즘이었던 내 나이에 그 당시 형이 빌려온 비디오는 조금 선정적이거나 과격했던 기억은 났지만, 지금 커서 문제없는 걸 보면, 괜찮았던 거 같다. 그리고 그 당시는 내가 아버지 담배심부름도 줄곧 하던 때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콘텐츠별 나이 제 한 등이 다소 느슨했던 시대였다.


 성룡 영화는, 딱 하나만 직접 리뷰를 찾아 다시 감상했다. 바로 1985년작 '용형호제'다.

이 영화는 아직도 생각난다. 우리 집 오동나무 TV다이 맨 좌측 서랍을 열면, 우리 아버지가 '소장'해 놓으셨던 영화다. 그 덕분에, 학교 갔다가 내가 제일 일찍 오고, 어머님도 일을 나가셨기에, 혼자 있는 집에서 이 영화를 줄기차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정말 콘텐츠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오죽하면, 이전에 형이 어렵게 구해왔다는 X-Japan의 콘서트를 우연히 VTR을 통해 보게 되었는데, 나는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더라. 근데 나중에 나이가 차서 그들의 명곡들을 들으며 느낀 것은, 정말 좋은 콘텐츠를 그 당시 일본이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즐겨보던 농구도, 그 당시 NBA를 볼 수 있는 환경은 없었다.

오직 지상파(그땐 케이블도 없었다)에서 틀어주던 농구 중계가 다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콘텐츠를 소비하며 농구 인기가 많았던 시절로 기억한다.


  요새 넷플릭스로 '수리남'을 정말 재밌게 봤다.

수리남은 영화인가 드라마 인가? 내가 생각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정의는, 연속성을 갖고 주기적으로 방영하면 '드라마', 단발성으로 약 100분 내외로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을 '영화'라고 그냥 내 멋대로의 정의를 갖고 있는데, 수리남은... 6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배우며 감독이며 모두 '영화' 밥을 먹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영화관에서 상영도 안 한다. 오직 넷플릭스라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만 볼 수가 있다. 영화와 드라마라는 개념 자체도 이제는 무너져가는 거 같다. 그냥 요새 만들어지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작품' 혹은 '콘텐츠'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내가 어렸을 적에는 심지어 케이블 티브이도 별로 없었다.

KBS, MBC, SBS, EBS 총 4개 채널만 나왔고 여기서 방영하지 않는 콘텐츠는 비디오 대어점을 가거나 극장을 가야만 찾아볼 수가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바로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과 나는 당연히 관심사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점점 세상은 나와 아이들의 관심사를 분리하여 그들에 맞는 콘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좋은 점도 너무너무 많지만, 결국 나와 아이들이 함께 공유할만한 '작품'은 많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도, 내가 어렸을 때 VTR TV만 끌어안고 살던 것처럼, 휴대폰 및 엄마의 노트북을 VTR삼아 그들이 흥미로워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자랄 것이다. 우리 큰딸 작은딸이 약 25년 이후, 내 나이와 비슷해지는 순간에, "어릴 적에 어떤 콘텐츠를 보고 자랐었나요?"라고 이야기하면,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어몽어스? 마리오 파티 동영상? 홍유 ASMR? 제페토? 그건, 25년이 지난 다음에, 내가 한번 까먹지 않고, 이 글을 보여주며 물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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