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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Jan 03. 2023

뭐든 일단 해봐야 한다.

그래야 알 수가 있다.

"여보, 연말에 나 친정에 좀 오래 가있을 거 같아,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

"오.. 정말?"

"응, 어디 다녀와"

"일본.. 다녀올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겠어. 나도 여보 덕에 제주도 다녀왔는걸, 표 끊고 다녀와!"


 12월 초, 와이프와 나눈 대화였다.

벌써 작년 말이다. 나는 정말 일본에 가보기로 했다. 그것도 혼자. 뭐, 다 큰 아저씨 혼자 가는 여행인데, 큰 일생기겠어? 물론, 나를 금지옥엽 생각하시는 우리 어머니가 이사실을 알면 나를 크게 혼내실 것이다. 위험하게 혼자 어딜 돌아다니냐고... 


 작년 10월부터, 일본은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해 무비자로 관광을 가능하게 시행령을 변경했고, 덕분에 네이버나 다음등 포털사이트에서 "일본 관광"을 치면 정말 많은 정보들이 다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항공권 티켓을 검색하여 최저가로 구매했다. (물론, 그 이후 티켓값이 엄청 싸져서 동료들이 그걸 보고 나를 놀리기도 했다.) 

 이번에도 비행기 내에서 내 다리는 오징어 마냥 흐물흐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춤을 출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코노미석은 좌석이 좁아도 너무 좁다. 특히 나 같은 사람들에겐 가혹할 정도로 좁아, 무릎이 앞사람의 좌석에 닿아 나를 몇 번이고 뒤로 쳐다보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내 앞자리 분들께 정말 미안하다.)


 뭐 아무렴 어떨까? 혼자 하는 여행인데, 설렘반 기대반으로 항공권 구매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 숙소를 찾아 예약을 알아보고 있었다.


"1일 2천5백엔? 오우 싸다"

 일본은 홀로 백패커들이 관광하기 좋은 나라라 그런가, 저렇게 '저가' 숙박도 참 많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저가 숙박은, 캡슐 침대처럼 잠만 잘 수 있고, 화장실이나 샤워실은 공유해서 사용해 아하는 그런 곳을 의미한다. 내 머릿속에서 주판이 뒹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도 대학생 때랑 다르게 돈을 버는 사람이다. 여행 후, 소중한 보금자리로 돌아와서까지 남의 눈치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패스.


"1일에 5천5백엔? 여기가 좋겠어"

 아고다 등 숙박 사이트에서 비교해본 결과, 내가 원하던 화장실과 샤워실을 홀로 이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관광호텔을 예약할 수가 있었다. '거의 밖에 있을 거지만.. 그래도 밤에는 조금 편하게 있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예매 버튼을 눌렀다.


"지금 예매하시는 조건은, 최저가이며, 해당 예매가 완료된 뒤에는, 환불이 불가합니다."

 나는 호기롭게 금액을 지불했고, 곧 내 핸드폰에서 결재완료 되었다는 문자와 함께, 내가 입력한 이메일로 컨펌 메일을 받아볼 수가 있었다. 


"그래, 일본으로 가는 거야."

내 일본 여정간 '발'이 되어준 JR간사이 미니패스 E-Ticket

 사실, 나는 아주 변덕이 심한 사람이다.

특히 '여행'에 관련해서는 어딘가 홀로 당일치기로 호기롭게 예약했다가, 취소하는 경우가 잦았다. 

항공권 + 숙박등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모두 해결했는데, 여행 가기 1주일 전에 갑자기 귀찮아졌다. 이유는 아무래도 가족들과 인천공항을 다녀오느라 이미 '외국물'을 먹은 전례가 있고, 일본은 휴양지와 다르게 그냥 몸만 가서 쉬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관광지다 보니 스스로에게 '완벽' 하게 플랜을 짜서 실행해야 한다는 병이 또 도진 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이런 완벽주의가 상당히 많이 발생하는 편인데, 일이다 보니 어떤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때가 많지만, 여행을 함에 있어서는 지레 스스로에게 너무 완벽한 플랜을 요구하며 계획을 세우다가 갑자기 몸에서 식은땀이 나며 여행 'GG'선언을 하는 경우도 너무 많이 있었던 터였다.


 결국 환불을 시도해 보려고, 내가 구매한 항공권 대행사이트와, 아고다를 들어가서 환불 규정을 살펴봤는데... 1원 한 푼 못 받는단다. 

그걸 보고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제는 갈 수밖에 없다. 다시 몰입하여 2박 3일 동안 정말 다리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많은 예쁜 곳을 내가 사진기로 담아 오겠다고 마음먹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2022년 12월 31일이 다가왔다. 그 해 마지막 날이라는 감상에 빠질 시간조차 없었다. 전날 미리 챙겨둔 캐리어와 카메라가방을 동여맨 채, 인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인천공항까지 가서 허탈해하며 다시 집으로 털레털레 올 수도 있을뻔했다. 어제 미리 챙겨둔 '여권과 지갑 가방'을 안 매고 온 것을, 운전대를 잡은 지 10분 만에 알 수가 있었다. 사실 그때 인천공항을 여권과 지갑 없이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여행도 못하고 돈도 날려서 너무 억울해서 화가 끝까지 치밀었을지, 허탈함과 무력함으로, 쓸쓸히 집으로 다시 와서 연말을 보냈을지 잘 모르겠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일본은 10년 전에 와이프와 둘이 다녀온 적이 있다. 큰애가 뱃속에 있을 때 다녀왔는데, 그때도 오사카에 가서 누구나 온 국민이 다 찍어온다는 '쿠리코 러너' 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게 생각난다. 


 몇 년 전부터 사진 찍는 취미가 생긴 이후, 나는 일본을 정말 가보고 싶었다. '토마레'라고 히라가나로 쓰여있는 그 감성. 우리나라의 '정지'라는 감성보다는 개인적으로 취향 저격이었고,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도배되어있어 골목길이 주는 감성이 메마른 서울에서, 맨날 북촌, 서촌등만 방구석이 닳도록 같은 것만 보고 어떻게 하면 '다르게' 담을 수 있을까 고민만 하던 나였기에, 일본의 아기자기한 감성을 꼭 담아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거금 11만 원 주고 구매한 블랙미스트 필터로 인한 시네마틱 감성♡
토마레 감성♡


 그렇지만 사진 취미가 생긴 그 직후에, 일본과 무역마찰로 관광비자가 제한되어 가보지 못했고, 그다음 해에는 코로나가 유행하며 온 세계가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걸어 잠그며, 여행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다가, 이제야 다행히 여행을 해볼 수가 있게 된 것이었다.


 일본여행의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중 한 순간이 될 것 같다. 

맛집 탐방이고 뭐고 관심 없이, 오로지 사진만 찍으며 하루에 삼만보 이상을 걸어 다니는 내 여행 스타일을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원하던 '일본'감성을 정말 온몸으로 느끼고 사랑했던 순간들이었다.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 반짝이던 윤슬들, 매 역을 지나며 상냥한 목소리로 들리던 안내방송들, 미세먼지 없이 청량한 일본의 하늘, 신년맞이 기모노를 입고 종종걸음을 하며 교토의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까지. 아직도 내 눈에 이런 장면들이 선하다. 

빛바랜 필름 느낌. 가장 사랑하는 나의 일본 감성 사진이다.
기요미즈데라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카메라로 담았다.


 그때 그 느낌을 담고자 무수히 많은 셔터를 눌러 결과물로 간직하였다. 

일본이 배고플 때마다 사진을 꺼내먹을 수 있게. 


 만약, 또다시 귀차니즘과 플랜에 대한 압박으로 중간에 여행을 포기했다면? 여행 간 많은 호기심으로 내 눈이 반짝이던 순간은 없었을 테지.

일본 가족분께, 그들의 폰으로 최선을 다해 찍어드리고, 나도 한 장만 찍어달라고 해서 남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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