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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Mar 20. 2023

풍선

이겨냈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VS 도망가고 싶은 아이의 마음


"풍선 불고 못 불고의 문제가 아니야. 조금만 어려워지면 도망가려는 네 마음이 문제인거지"


 

 지난주 일요일, 여느 때와 같게 나는 아이들을 홀로 케어해야만 하였다.

벌써 4년 차라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온전히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사실, 며칠 전 아이 엄마를 통해, 큰애가 풍선을 잘 못 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큰애의 협응력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그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던 부분이었지만, 초등 4학년이 된 자식을 둔 부모로서의 '욕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우리 큰애가 발달상 느리고, 다른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다른 경계성 아이인 것은 내가 너무 잘 안다. 

항상 마음으로는, '기본'만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남들처럼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아이를 잡아먹거나,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저, 나중에 아빠와 편의점을 같이 하더라도, 스트레스 안 받고 홀로 잘 살아갈 수만 있길 바랄 뿐인데, 사실 이마저도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비스업 기반의 아르바이트조차, 채용문이 그렇게 쉽게 열려있지 않다. 

아르바이트조차도 다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셈이 정확한 사람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

'남들만큼만'이라는 추상적인 목표 자체가, 이미 우리 큰애에게는 높은 목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정도'는 해 줘야 험한 세상을 살아갈 텐데...라는 걱정이 동시에 드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나는 큰애와 작은애와 함께 다이소에 가서 풍선을 사 왔다. 큰애에게는 호언 장담했지. "아빠만 믿으라고"

이제 초등학교로 들어간 작은애는,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가 빠른 건지... 잘 불지 못하는 큰애를 보란 듯, 마음껏 풍선을 불어대며 나에게 '묶어'달라고 할 때만 와서 도움을 받는다. 그러고는 자기가 만든 풍선에 예쁘게 '낙서'까지 하며 신나게 놀고 있다.


 큰애는... 역시 지금도 잘 풍선을 불질 못한다. 

"큰애야, 입에서 바람이 새니까, 입술을 더 꽉 깨물어야겠다"

"큰애야, 아빠 호흡하는 거 봐바? 들이쉴 때 코로, 내뱉을 때 입으로 풍선!"


 아이의 표정은 이미 일그러진 지 오래다. 자기보다 3살이나 어린 동생이 이미 자유자재로 풍선을 불고 있고, 자신은 이거 하나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진 표정이었다. 나도 그 아이의 응석을 더 받아주고 싶었고, 잘 못하는 부분이니 그냥 넘어갈까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서 희열을 주고 싶어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큰애는 거의 울다시피 했다. 입은 이미 아프다고 하고, 자신도 잘하고 싶은데, 맘처럼 잘 안된단다.


"풍선 불고 못 불고의 문제가 아니야. 조금만 어려워지면 도망가려는 네 마음이 문제인거지"

 나는 아이가 '포기'하는 걸로 간주했다. 너무 아쉽지만, 결국 아이에게 내 마음속의 있는 말 없는 말 다 털어놓으며, 도망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그제야 풍선을 그만 불어도 된다고 허락했다.


 그 말을 들은 큰애는 기뻐하며 그제야 조금씩 자기의 표정을 찾아갔다. 나는 씁쓸한 마음만을 갖고 거실에서 한동한 멍하니 불다 만 풍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적에 풍선을 못 불었다.

실제 풍선은 아니고, 사실 운동도 '남들만큼' 잘하지 못했고, 공부도 '남들만큼' 잘 해내지 못했다. 


 그날 밤, 큰애는 내일 학교 가져갈 일기장에, '아빠와의 풍선 불기'를 주제로 일기를 써놨다고 했다. 


'나도 잘하고 싶은데, 안 돼' 


 잠깐 스쳐 지나가며 읽은 아이의 일기장엔, 잘 해내서 부모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던 큰애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부모가 되어, '남들처럼'이라는 동일 잣대로 아이에게 들이밀고, 그게 잘 안되니 화를 낸 나를 반성하게 만든 아이의 일기장이었다.


 지금도 나는 못 부는 풍선의 종류가 많다.

내 업무적인 분야에서 아직 못 불어본 풍선이 너무나도 많고, 웨딩 촬영이나, 오래 달리기, 요리 등 많은 분야에서, 나 또한 큰애와 다를 바 없다. 아마 평생 나도 풍선을 못 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큰애가 풍선 불기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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