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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Mar 23. 2023

풍선 2

천잰데?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 아이가 참으로 어려워하는 '풍선' 불기를 주제로, 나를 비롯하여 사람들 모두에게는 언제나 정복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글로 적어본 바 있다.


 벌써 나흘이나 지났다. 오늘은 유달리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을 했는데, 아이들은 온데간데없고 집에 '풍선'들이 발에 쉬이 차이는 게 아닌가? '둘째가 많이 불고 놀았겠거니' 속으로 생각하며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과 조우할 수가 있었다.


"여보, 큰애가 풍선을 불었어요"

 나는 화들짝 놀랐다. 큰애에게는 미안하게도 아직 내가 보기엔 불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걸 해낸 건가? 하고 있었는데.


"물론 처음부터 분건 아니고, 처음만 도와주니 나머지는 쉽게 불더라고요"

 그럼에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우리 큰애가 결국은 풍선 불기라는 '임무'를 완수한 것이 아닌가.


"아빠, 너무 뿌듯하다. 안 그래도 너 풍선 불기 좀 시켜보려던 참이었는데"

"응, 고 고마워"

 큰애는 특유의 떨떠름한 표정과 어딜 둬야 할지 모르는 시선처리와 함께 대답했다.

아마 마음속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로 인해 아빠에게 칭찬을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서 그렇게 미지근한 반응을 했을 수도 있겠지 싶다.

 


 생각해 보니, 우리 삶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 거 같다.

각자가 하는 공부나, 회사에서 해야 할 과업들이 'A부터 Z'까지 혼자 하는 일인 것 같지만, 결국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기반 위에 자신의 노력을 얹어 완성하는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쌓아 올린 지식을 습득하여 다른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고, 슈퍼 개발자라 할지라도 홀로 모든 것을 혼자 만들 수는 없다. 누군가가 만들고, 그것을 받아 결과물을 만들고, 또 그것을 수정하여 다른 것을 만드는, 우리네 지식 노동자들은 그런 루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큰애가 자랑스럽다. 아빠가 그 정도로 큰소리를 내면, 겁에 질려 포기할 수도 있을 텐데, 비록 혼자서 시작은 하지 못했지만, 작은 도움을 받아 임무를 완수해 낸 것에 정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도, 우리 큰애도,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좌절할 때, '시작'위치를 달리하여 다시 시도해 보는 좋은 경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자, 첫째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처음부터'도 풍선 한번 불어볼까? (강요는 안할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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