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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Apr 02. 2023

살 사람은 살아야지

고인을 잊어가는 여정

 지난 스토리에서 늘 나누어 주던 사람 (brunch.co.kr) 고인이 되신 장모님을 추모하고, 추억하는 글을 드린 바 있다. 

 가신 분은 그저 홀로 짐을 내려놓고 가셨지만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현생을 살아 내야만 한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내 부모님의 부모 분들이 돌아가신 정도만 그간 경험했었고, 이번과 같이 배우자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경우와 같이 실제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르고, 고인을 잊어가는 여정을 해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혹여나 이 글을 읽을,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 다가오신 분들이나, 이미 이별하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나 스스로도 기억해 두려 작은 에피소드들로 정리해 놓을까 한다.


#1, 금융 자산 상속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장인어른을 비롯하여, 우리 내외는 아직 배우자가 살아 계시므로, 배우자만 고인의 거래 은행에 방문하여 고인 앞으로 된 자산을 가져올 수 있을 걸로 쉬이 생각했었다.

 하지만, 새마을금고등 시중은행들에 직접 전화하며 알아본 결과, 고인 기준 '가족관계 증명서'에 포함되어 있는 가족 구성원 '전원'이 시간을 맞춰 신분증 지참 후, 방문해야 가장 '심플'하게 묶여있는 자산을 인출할 수가 있다. 시간 및 장소등의 제약으로 구성원 중 일부만 가는 경우, 대리장 및 기타 증빙 서류를 다시 떼어 금융기관을 가야 하는데, 독자들도 아시겠지만 은행에 서류를 챙겨 간다고 챙겨가도, 누락된 서류는 분명 있기 마련이다. 이땐 다시 가족 구성원들 모두 시간을 맞춰야 하므로... 가급적 가족 구성원 모두 한날한시에 금융기관에 방문하여 고인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것이 가장 좋다.


 독자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나는 게 없으신지..?

'모든 가족이 해당 금융기관을 방문해야만 한다'는 말은, '모든 가족이 고인의 재산 상속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로 간주할 수가 있다.  즉, 가족 구성원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을 시, 골치가 아파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배우자와 고인이 함께 재산을 일군 것이 맞지만, 고인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때에는 고인 기준 가족관계증명서에 기재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동의해야 함을 알아 두자.



#2, 죽으면 내 거

 고인의 친구 A가 있다. 이 분의 직업은 보험관리사, 장모님의 친구분의 소개로 알게 되어 제법 막역했던 듯하다. (물론 고인이 생각하기에만,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A는 장모님의 장례식 장에 오셔서 고인의 이름으로 된 보험이 하나 있는데, 이걸 장인어른에게 명의 변경 후 보험금을 계속 받기로 '영업'을 하셨나 보다. 장인어른은 호인이시라 싫은 소리 못하시는 성격이시고, 상중에 와 준 것만 해도 고맙다 생각하시어 명의 변경을 하셨나 보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장모님 사망 후, 가족들이 고인의 모든 계좌내역을 다 찾아보던 중, A 씨에게 많은 금액이 인출된 내역을 발견했다. 그것을 단서로 고인의 메모장등을 다시 찾아보니, 'A에게 일금 0천만 원 빌려줌'이라는 친필 메모가 나온 것이 아닌가. 상갓집에 와서, 본인의 계약을 살뜰히 챙기고, 거기다 자신이 고인에게 빌린 돈도 '아몰랑' 하는 그런 '친구'를 둔 장모님은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섭섭해하실까...


 A 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보았데 아주 많이 당황한 목소리셨다. 마치 '어떻게 찾아냈지?' 하는 생각의 미묘한 목소리의 떨림. 결국 빌려간 돈을 돌려주기로 하셨다.


 이렇듯, 살아생전 고인의 계좌내역을 한번 찬찬히 살펴, 채무관계를 따져보는 것도 좋겠다. 

아, 물론 위 상황과 반대 케이스라면... 



#3, 남은 사람끼리 이겨 내야

 홀로 남으신 장인어른은, 원래 업무로 인해 포천에 거주하고 계셨지만, 그 집에는 더 이상 안 계시겠다 선언하시고 빠르게 실행에 옮기셨다. 바로 둘째 딸과 둘째 사위(나)가 살고 있는 서울로 이사하시게 된 것이다.


 지금 거주하시는 집이 전세라, 집주인과 복덕방에 전세 계약 전이지만 사정을 이야기하고 전세금 반환을 요청드려봤지만, 사정은 딱 하나 나도 힘들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그에 아랑곳 하시진 않고, 어떻게든 자금을 융통하여 둘째 딸이 거주하는 곳과 같은 아파트로 계약을 확정하시었다.


 사실 그렇다. 배우자와 함께 거주하던 공간에, 홀로 남겨 놓기가, 자식 된 도리로서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다행히 주위 환경 신경 안 쓰시고 빠르게 결단해 주셔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사 기념으로 자전거 한대 선물로 사 드리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건강 챙기시고, 앞으로도 남은 사람끼리 더 좋은 시간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이외에도,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며 많은 슬픔에 젖었다. 평소 고인이 자주 입던 옷과 마주쳤을 때의 슬픔, 고인이 애써 기르던 다양한 화분들은, 고인의 행방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볕을 양분 삼아 활짝 꽃피었다.


 그럼에도, 산 사람은 또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거 같다. 그래야 나중에 하늘나라에서도 고인 볼 면목이 생길 거 아니겠는가. 


 아마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고인의 아버지, 어머니도 뵙고, 또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계실 거다. 그래도 가끔은 꿈에 나타나 내 좋아하는 갈비탕도 한 그릇 데워 오셨으면... 아 아니다. 내가 고인 좋아하시는 코다리를 가지고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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