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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Apr 07. 2023

필요하다면 용기 낼 줄 알아야 한다.

"아니, 오늘까지 서버 쪽에서 API를 완성시켜 주시기로 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해당 API가 동작을 실제로 안 하고 하는 '척'만 하는 거라니요..?"

"네, 그래서 Mock API라고 말씀을 드린 겁니다."

"허.. 저는 정말 처음 듣는 용어입니다. 아니, 해주실 거면 다 해주시고, 안 해주실 거면 안 해주시면 되지 이 반쪽짜리 API는 뭔가요...?"


 어느새, 계절은 추웠지만 일은 별로 없어(?) 따스했던 겨울이 가고, 상반기 KPI를 위해 모두가 노력을 하는 시즌이 되었다. 


 사실, 나는 계약상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Passive'한 태도를 견지할 때가 종종 있다. 이 것은 데이터의 단절로 생기는 책임 소재를 활용하는 전략적 측면도 있고, 사실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게 누구나 편하고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이제는 나만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 '팀'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먼저 나서서 일을 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든다. 벌리면 다 같이 고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신규 론칭이 필요한 화면에 대한 데이터 정의를 나누어야 하는 시간이 1달 전에 찾아왔었다.

우리 팀과 계약을 맺어 준 고객사끼리 알아서 풀어 나에게 '통보' 해주는 시나리오로 처음에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예전부터 함께 일하던 담당자께서 강한 의지로 그렇게 해 보겠다 하셨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담당자의 그 말을 믿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 담당자의 진심이 전해지기엔, 고객사 조직끼리의 R&R과, 각각의 Mission이 너무나도 달랐다. 사실 내가 다니는 회사를 비롯해, 이런 현상이 하루이틀이 아니라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결국 해당 담당자는 나에게 SOS를 요청했다. '같은 개발자' 로서, 데이터를 받아내어야 하는 조직을 움직일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

 

 우리 팀의 내부회의가 이루어졌다. 그 당시 결론은 '굳이 먼저 해 줄 필요는 없다' 였었다.

그들의 내부사정이고, 데이터가 안 나오는 것이 '우리 팀'의 귀책사유는 아니지 않느냐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결국 불행회로를 돌려보면, 데이터 제공자 측에서 데이터를 안 주면, 지금 반대한 '우리 팀원'들이 날밤을 새야 할 상황이 올 것이라 판단했다. 

 결국 팀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가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아니라.


 그날 이후로, 우리 팀이 구현해야 할 '화면'에 필요한 데이터에 대해 '제공자' 입장에서 정말 디테일하게 설계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가장 중요한 '요건 발의자'에게 계속 자료 피드백을 요청하며 내가 생각한 데이터 정의와 다른 점들을 계속 수정하며 자료 페이지를 완성해 갔다. 


 그렇게 장표를 모두 만들고, 고객사를 직접 찾아가 장시간동안 '제공자' 측에 '요건 발의자'를 대리하여 필요한 데이터 설명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개발 일정 등에 3자가 모두 합의하는 내 나름의 쾌거를 이루었었다. 이젠 일정이 박혔으니 열심히 봐주시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나마 직접 얼굴 뵙고 인사 후에 설명드렸던 점이, '제공자' 입장에서도 조금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요건 발의하신 담당자가 여러 번 찾아가 설명을 했어도,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라 자기네들도 손을 놓고 있었다고도 털어놨다.

 아무래도 '요건 발의자'측은 실제 개발을 잘 모르시다 보니, How to Communicate with Developer에 대해 약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제공자'측 조직도 사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에, 내가 요청한 데이터에 대해 빠르게 처리해 줄 리소스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결국 개발착수 D-1인 오늘, 주기로 한 데이터와, 처리해 주어야 할 개발 범위에서 나와 생각이 달랐음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구현함에 있어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 나에게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나는 그 사항들에 대해 귀책사유에 대해 따져 보았지만, 내가 잘못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데이터 제공에 대해 큰 틀에서 모두 합의한 사항이었고, 논의가 된다면 이전에 되었어야 하는 걸, 이제 와서 타협을 하자고 하니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다.

 오늘 나는 최종 데이터 수급회의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다.


 "프로님은, 고객한테 정말 잘하시잖아요"

 우리 조직스탭이 나에게 해준 말이다. 그분이 그렇게 생각한 거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평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근데 사실 좋은 면만 보면 대단히 좋은 말이지만, 나쁜 쪽으로 보려면, '자기 살겠다고 팀원들 갈아 넣는 사람'으로도 곡해돼서 비칠 수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전혀 그 말에 심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업무시간 안에만)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일 뿐,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행동도 없고, 반대로 누군가를 밉보이게 하는 행동도 없다. 그래서 그 말에 반박하지도 않는다. 


 결국, "고객에게 잘하는 내가", 온라인 미팅에서 반대 의견을 강하게 냈다. 아울러, 일정을 못 맞춰준 '제공자' 측에 이슈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한 시간적 피해는 오롯이 내가 우리 팀원들에게 사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 안 하던 반박의견과,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내가 뱉은 한숨과, 내 목소리의 떨림이, 다른 미팅 참가자들의 스피커를 통해 다시 내가 음향으로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보통은 고객 주간회의를 할 때는 사실 평소 같으면 허허허 하고 '될 거예요', '됩니다'등의 긍정적인 행복회로로 화답해 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들과 사이 나빠서 좋을 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팀'이 밤샐까 봐, 팀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가 앞장서서 했던 행동들에 대해,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그들에게 아쉬운 마음을 긴 한숨과, '안 되는데요.' '해주셔야 하는데요', '이러시면 못해요' 등의 부정적 표현을 쏟아 내게 되었다.


 그래도 어쩌랴, 그들도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다. 어떻게든 일이 될 수 있게 타협점을 찾기로 합의했다. 그러고는 서로 죄송하고, 미안하다며 마무리.. 를 했다.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는데... 열심히 깃발 들고뛰면, 일이 잘 될 거라고 말이다. 역시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우리 와이프의 표현대로, "양 어깨에 고양이 두 마리씩 올라가 있는 듯"한 처진 어깨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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