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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May 07. 2023

해준 것도 별로 없어서

"여보, 폰 언제 바꿔?"

"어? 왜?"

"아, 여보 폰 바꿀 때, 쓰던 거 나 주면 좋겠어서" "이 폰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네..."


 처음이었다. 우리 와이프가 '휴대폰'에 대해 교체 언급을 한 것이. 

 가끔 길가에 같이 가다가 본인이 좋아하는 옷이 마네킹에 걸렸을 경우에 지그시 시선을 멈추며 옷을 바라보는 경우엔, 내가 손을 잡고 그 가게에 들어가 옷을 사주곤 하였었다. 뭐, '명품'관을 지나다가 사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격적으로 크게 부담이 된 적은 여태껏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내 와이프는 뭘 '사달라', '해달라'는 적이 거의 없는 거 같다.

남들 다 하는 스드메 중에서도 '스'는 결혼할 때부터 빼버렸었고, 그 덕에 멋모르고 처음 하던 결혼식날, '포토테이블'에 놓을 사진이 없어 결혼식 당일 부랴부랴 메인작가분이 한 컷 찍어서 그걸 결혼 도움방 쪽 직원분께서 인화하여 작은 액자로 전시해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여자는 아니라 잘 모르지만, 스튜디오 촬영은 여자들의 로망 아니었던가...? 지금도 우리끼리 이야기할 때, 나에게 '그런 거' 안 해서 너무 좋았다고, 허례허식 없는 미니멀 웨딩이었다고 스스로 뿌듯해하곤 한다.


 이놈의 남자는, 게다가 철도 없었던 거 같다. (여기서 이놈의 남자는 '나'다)

지금 같으면 어떤 여자가 만나줄까 싶기는 한데.. 한창 꾸미고 나올 이십 대 때 연애 기간에도, 그저 '운전' 할 줄 모른다는 이유와, 경제적으로 필요 없다는 무적의 논리를 스스로 창조해 내며 자동차를 몰기를 거부했었다. 

 그 덕에 나 만나러 예쁘게 꾸미고 온날, 예를 들면 약간의 굽이 있는 하이힐과 원피스등을 입고 오던 날에도 우리는 '뚜벅이'로 땀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기 바빴다. 나는 그냥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겠지만, 아마 와이프를 제외한 다른 여자들을 내가 만나봤다면... 분명 차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와이프가, 나에게 폰 교체 시기를 물어본 정도면, 빨리 하나 바꿔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와중에도, 여기서 '경제논리'가 우선되어 아이폰 이전시리즈를 당근마켓에서 먼저 검색해 봤다. 나도 지금 쓰는 폰이 중고폰이기도 하고, 2~3년 전에 나온 폰이라 해도 성능에 전혀 문제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배터리 효율만 조금 높은 물건을 사면 되겠지 싶었는데, 결론적으로 '내가 찾는 물건'은 없었다.

 흠집도 덜나고, 배터리 효율도 높고 + 가장 중요한 '박스'도 있는 물건을 찾다 보니 가격이 점점 올라가다 보니, 그냥 자연스레 단념하게 되었다.


 하나 언급하자면, 나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매복해서 필요한 물건을 사는 쪽이기 때문에, 중고가 낫다 생각되면 기다려서라도 구매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명품백' 하나 안 들고 다니는 우리 와이프, 가볍고 예쁜 아이폰 14정도 하나쯤은 새걸로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장 돈 백만 원이 나에게 그리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5월 한 달 정도 토요일 부업을 하면, 충분히 사줄 수 있겠다는 현실적 계산도 머릿속에 함께 그렸다. 


 오픈마켓에서 '최저가'(+네이버페이 5만 원 할인까지)로 퍼플색 구매를 완료 한 뒤,  나는 와이프에게 손으로 빌어가며 이야기했다. 


"여보, (눈을 깜빡이며 내 두 손으로 빌고 있다")

"왜애?"

"어... 내가 해주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샀어"

"뭔데?"

"아 새로운 아이폰!"

"에? 내가 그런 비싼 거 사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중고로 사주지~"

"그게... 그간 해준 것도 없고, 명품백 하나 사준적도 없는데... 그냥 그렇게 했어. 기분 좋게 써주면 좋겠다"

"그 비싼 거 쓰다가 떨구면 여보 슬퍼할게 눈에 보이는데..."

'(안 떨구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많이 돈을 가져다주지도 못하고, 남들 사는 명품백 하나 못 사주는 능력 없는 남자지만, 그래도 항상 고생한다며 내 기를 살려주곤 하는 우리 와이프, 

 새 아이폰으로 다른 애들 엄마 앞에서 자랑은 못해도, '기죽지'는 않고 다녔으면, 그리고 이제는 배터리 걱정 없이 재밌게 스마트폰으로 나혼산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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