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Jun 21. 2023

그 재능이 샘이나

원래 폭풍전야가, 가장 고요한 법이다. 올해도 여전히 그렇다.

 전통적으로 업무의 '비수기'라 할 수 있는 6월도 다 가고 있다. 6월의 끝을 잡고 좀 더 함께 하고픈 마음이다. 

왜 비수기냐면 그건 그만의 이유가 있다. 상반기에는 지난겨울부터 계획하고 다듬은 업무를 마치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받는 시즌이라면, 남은 하반기를 대비하여 또 다른 재료를 선정하고 그걸 잘 다듬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료 선정 및 다듬는 작업의 공은 우리 팀에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그걸 '비수기'라고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빛담님, 자동 메일링된 콘텐츠가, '휴대폰'에서 버튼이 깨지고, 레이아웃이 좀 안 맞는 거 같은데 확인 좀 부탁드릴 꼐요"


 처음 듣는 VOC였다. 사실 'PC'그룹웨어에만 최적화를 보통 하곤 하지, 모바일 그룹웨어에 받는 메일링 템플릿 스타일을 맞춘 적도 없었고, 그런 이슈를 제기한 사람도 없어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내가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니, 아이콘이 깨져 있었고, 제목과 표 간 간격이 PC버전과는 다르게 너무 차이가 크게 벌어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옆에 앉아있던 개발자 형님에게 이런 이슈를 이야기했더니, 아이콘 깨짐 현상에 대해서는 Base64 Encoded 하여 소스를 포함시키면 된다고 잘 설명해 주었다. 나도 명확히 이해하여 이를 개선하는데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제목과 표 간 간격의 스타일이었다. PC에서 F12로 모바일 버전으로 디버깅을 해보려 해도, 그룹웨어 쪽에서 뭔가 막아놓은 듯한 팝업이 발생하며 스타일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소스에서 내 나름대로의 경험으로 이것저것 수정해 보았지만, 아주 완벽하게 모바일에서 스타일이 예쁘게 들어맞지는 않았다. 결국, 스타일을 '정확히' 알지 못하니, 이것저것 만져보는 일밖에 더 하지 못한 것이다.


"과장님, 내일 출근하시면 제자리에서 이 이슈 좀 같이 봐주세요"


 결국, 메신저로 디자이너 분께 SOS를 쳤다. 원래 같으면 '제가 이슈 해결했어요><'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내가 이쪽에 투자한 시간이 너무 적다. 투자는 안 하고 바라는 건 많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어느덧 점심시간을 마치고, 졸음이 밀려왔다. 살짝 졸았나 보다, 졸면서도 프로답게 메신저가 깜빡깜빡하나 살펴보다 보니, 무언가 울리고 있어 대화방의 이름을 보니, 우리 비슷한 또래 직원들끼리 노가리 까는 방에서 메신저가 오고 있었다. 난 또 오늘 술 먹으러 가자는 말인가 하고 편하게 열어봤는데, 아까 나에게 이슈 해결법을 알려주신 '개발자 형님'이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개발자 형 :"혹시, 궁금한 거 없어요? 프런트엔드도 좋고 백엔드도 좋고"

A : "아 저는 며칠 전에 물어봤던 Flex Display 같은 거 잘 모르겠더라고요"

B : "오, 우리 구루님 강의면 무조건 들어야죠"


 거기서 잠시 채팅이 중지되었는데, 나는 대화에 끼지 않았다. 사실 프런트 엔드 쪽에 대해 항상 '잘해보려는' 생각은 갖고 있으나, 그냥 생각뿐이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라 그랬다. 결국 내가 잘하는 분석설계나 영향도 파악 등 똑같은 업무만 반복할 뿐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화면 개발도 맡아서 의지를 불태우며 구현하던 나는, 작년을 기점으로 그 텐션이 많이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화면 구현에 대한 일이 나에게 직접 들어오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는 '닥치면 하게 된다'는 나의 평소생각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고, 무엇보다 퍼블리셔분께서 잘 화면을 만들어 주시고, 막히는 부분에 대해 스타일을 잡아주시는데, 아직 이걸 내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심히 잘' 한다고 항상 평가가 좋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몇 년 전부터는, 스스로 일이 펑크 나지 않을 정도로만 하자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마인드가 배움에 대한 갈증을 덮어버리게 한 주 요인이기도 하였다.


 가장 부끄러웠던 건, '뭘 모르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제 나이 40이 다 되어 가는 나로선, A부터 Z까지 모르는걸 누군가 잡아준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회사 초년생 때야 교육도 너무 잘되어있고 모르는 걸 잘 물어봐 가며 역량을 기를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며 개인의 커리어가 고착화되어 가는 요즘에 있어, 내가 주력으로 해보지 않았던 다른 분야에 대해 '질문'도 못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이거 모르겠어요"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개발자 형 : "아 물론, 내가 혼자 가르치는 건 아니고, 스터디식으로 진행하려고요"


 어... 내가 중간에 말안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말을 개발자 형님께서 이야기해 주셨다.

사실 스터디가 장기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어진걸 내가 본 적이 없다. 구성원 모두 처음에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하다가, '제가 오늘은 점심 약속이..' '제가 오늘은 재택을...' '제가 다음번엔 꼭 해올꼐요' 하면서 하나 둘 사라져 가는 걸 너무나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성원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건, 경험 상 '내가 이 모임에서 빼먹을 게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 그렇게 행동들을 하더라. 물론 나부터도 그러하다. 신기하게도 누가 맡겨둔 것도 아닌데, '도움 받을 생각' 먼저 하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그래서 사실상 개발자 형이 제안한 'IT 세미나'를 마음속으로 거절했다. 채팅방에 이와 관련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니, 완곡한 거절인 셈인 것이다. 올해는 주어진 업무와, 올해 말 일본어 능력시험, 그리고 메인 스냅 도전 등에 집중하고 싶다. 내년에는 나도 업무를 위한 배경 지식 확보에 조금 욕심내볼 생각이다. 그래도... 스터디를 하자고는 안 할 것이다. 내 성향에도 잘 안 맞고 결국 끝이 안 좋게 와해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 거 같다.


 위에서 언급한 프런트엔드 CSS스타일이라던가, 아니면 리액트도 잘 배웠겠다 작년에 혼자서 하던 부트스트랩을 리액트로 전환하여 스프링부트 서버를 붙여보는 미니 프로젝트도 좀 더 이어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이래저래, 나는 내년에야 업무적으로 부지런히 다시 움직이게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재택 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