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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Jul 17. 2023

참아 냈으면 좋겠다

아빠의 욕심

"아, 나 힘들어, 죽을 거 같아"

"아직 호흡이 죽을 정도 아니야, 뛰어봐"

"아 아빠 나 화장실 가고 싶어, 물도 먹고 싶고"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뛰고 하고 싶은 거 하자"


 대화 중간에 '아빠'라는 단어와 반말체만 제외한다면, 군대에서 행군 혹은 아침 구보 하는 걸 떠올릴 만한 요소들이 있다. 뭐,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을 시킨 건 아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꽤 오늘 의미 있었던 경험이지 않나 싶다.


 오늘은 일요일, 와이프는 일을 나갔다 돌아와서 녹초가 되어있고, 두 아이들은 게임 혹은 유튜브 볼 시간을 다 써서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하는 상황. 나는 이미 오늘 5km를 뛰고 왔지만, 아이들과 함께 여름밤, 러닝을 해보고 싶은 욕심에 제안을 하게 되었다.


"아빠랑... 같이 뛸래?"

"어... 조건은?"


 역시, 내 딸들.. 뼛속까지 자본주의...


"조건은, 뛴 만큼 게임시간 부여"

"콜"


 아이들은 호기롭게 시간을 벌기 위해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는 시계하나 달랑 차고 가서 타임워치를 재고, 시간을 측정하였다. 처음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 한강공원으로 진입 후, 첫 뜀박질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유만만한 태도들이었다. 아빠한테 농담도하고, 그다지 안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함께 출발했다.


 사실 나는 가장 뭐든지 어려울 때가 '끝을 알 수가 없을 때'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 길을 와봤던 다른 사람은 이 일의 끝을 알고 있어서, 체력분배를 하며 올 수 있지만, 처음 이 길을 오는 사람은, 어디까지 에너지를 써야 할지 가늠이 안 오므로, 선배로서 정말 거의 다 왔다고 이야기를 해줘도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던 모양이다. 1km를 지나고, 왜 반환점을 안도냐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마다 '사실'만을 이야기해 줬다. 아직 반도 안 왔다고. 

 아이들을 자기가 물을 먹고 싶을 때 먹고,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이때, 조금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냥 편하게, 산책 나왔다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게 맞을 수 있지만, 내가 판단했을 때 아이들의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숨을 못 쉴 정도로 헉헉대지도 않았고, 발도 제법 버티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렴풋이 내 머릿속에만 생각하던 '3km'를 아이들과 달릴 수 있게 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만의 욕심이 맞다. 무리도 맞았고, 그런데, 아이들에게 한번 '스스로 한계점까지 몰아붙이고 싶었다.' 요새는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아이들이 하기 싫다면 시키지 않는 분위기가 많다고 한다. 나니까, 아빠니까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엄하게 몰아붙일 때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힘내, 다 왔어"

"으아아아~"

"괜찮아. 공원에서 욕 해도 돼, 그렇게라도 달리면 되는 거야"


 둘째보다도 엉덩이가 무거워진 첫째는 더 힘겨워하며 아빠가 뒤에서 밀어주는 힘을 반작용 삼아 겨우겨우 걷지 않고 뛸 수가 있었다. 괜찮다. '걷지만 말자' 천천히라도 뛰어보자가 오늘의 내 mission이었다..


 그렇게 '한걸음도 걷지 않고' 우리 아이들과 나는 3km를 뛸 수 있었다

 땀쟁이 아빠인 나만 온몸에 땀으로 가득했고, 아이들은 땀도 잘 안 나더라.. 부럽다. 왜 근데 너희는 땀도 안 나면서 힘들다 힘들다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을 돌아가는 길에 아빠를 엄청 욕했다.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야 했냐고, 사실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아이들과 뛰다 보니, 해볼 만하겠다 싶어서 목표를 상향 조정했던 것뿐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었나 보다. 나도 이럴 때 마음이 많이 무겁다.


"아빠, 이대로는 안 돼, 시간 협상 다시 해"

 숨을 고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큰애가 아빠에게 딜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래, 너희 26분 37초 뛰었어. 반올림해서 27분 줄게"

"아냐, 아빠 이거는 40분은 받아야겠어"


 잠깐.. 고민하던 나는, 이렇게 미션을 수행한 아이들이 너무나 이뻤던 나머지, 흔쾌히 수락했다. 집에 와서는 아이들 씻는 사이에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과 과자류를 사 와 아이들에게 나눠주면서, 보너스시간에 '40분'을 입력해 주었다. 아이들은 언제 그렇게 힘들게 뛰었다는 듯, 샤워를 마치고 속옷만 입은 채 각자의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큰애는 아이브의 예능동영상이 재밌다며 해당 멤버 중 리더라며 안유진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었고, 작은애는 여전히 과자나 먹을 거 ASMR를 보며 내가 사 온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유유히 먹었다.


 아빠로서 고마웠다. 포기할 법도 한데, 두 아이들이 끝까지 뛰어준 것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아이들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라고 하였다. 자기가 물먹고 싶을 때 먹고, 화장실 가고 싶을 때 가고, 걷고 싶을 때 걷는 게 당연한 일인데, 이걸 통제당하며 아빠와 함께 달리기를 해 낸 것이었다.


 앞으로는 달리기 하자고 하면 안 할라나...? 게임시간 딜을 할 때 묻고 더블로 가야 하나...? 그래도 안 뛴다고 하려나? 걱정이 앞서기는 했지만, 아버지로서 오늘의 이 힘든 경험이, 아이들 스스로 어려운 순간 조금이라도 자신을 이겨냈던 경험으로서 '백신'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아빠가 미안했다! 

가슴이 웅장해 지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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