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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Sep 03. 2023

오랜만이야

이젠 안외워도 되는줄 알았찌?

 월화수목금, 주 5일 동안은 "프로님"이라고 불린다. 토요일마다 나는 "실장님" 혹은 "작가님"이라고 불린다. 

오늘 스케줄은 '송도'였다. 멀어도 너무 멀었다. 내가 사는 강동에서, 송도까지 어떤 경로로 가도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웨딩 시간도 너무 안 좋았다. 오후 2시 정도에 식이었으니, 어떻게 해도 하루가 그냥 날아가는 최악의 스케줄. 사실 이런 날은 내입장에선 받고 싶지 않다. 하루를 날려 송도에서 촬영하고 와서 버는 돈이 나의 기대 수익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송도에, 오후 어정쩡한 1타임 스케줄은 안 받겠습니다'라고 하면, 아마 평생 스케줄 못 받는 사태도 벌어질지 모르겠다. 


 강동에서 송도까지 한두 번 간 건 아니었다.

송도에 예식장 스케줄이 많다 보니 여러 번 갔었는데, 보통 강남역에서 빨간 광역버스를 타고 가곤 했었다. 하지만 자주 애용하는 네이버지도에서 예상시간을 오후로 하여 검색해 보니, 주말 변수가 들어가서 그런가 내가 자주 이용하는 강남역 빨간 광역버스 노선은 추천해주지 않더라. 나는 결국 3번을 갈아타서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다른 작가들은 자가용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나도 자가용을 이용할까 생각도 했는데, 영 이익이 나질 않는다. 기름값에 톨비에 주차비등 이것저것 더하고 나면, 지금 받는 수당으로는 생각보다 많이 남질 않아 시도도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수도권은 대부분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어서, 뚜벅이로 여태껏 문제없이 소화해 오고 있었다.


 오늘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고, 가방에 '일본어 JLPT N4급' 수험책을 챙겼다.

회사에서 여유될 때 종종 단어도외우고, 문제도 풀면서 공부하던 책인데, 요새 회사에서 받는 일이 많아 바빠져서 전략을 바꿔 집에서 짬짬이 공부하기로 한 것이었다. 


 아주 예전이지만, 대학생 때 강남 메가스터디에서 칠판을 지워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동기형으로부터 '꿀 알바'라고 강추받아서 했던 일인데, 내가 그 당시 살던 노원집에서 대치동까지 지하철로 50분이 넘게 걸렸던 기억이 난다. 오고 가는 시간에도 나는 <토익 단어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생각도 새록새록하다. 다행히 학원 직원분들께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짬짬이 공부를 하는 것도 허용해 주셨다. 대신 항상 쉬는 시간을 예의주시하면서 선생님들 입맛에 맞게 칠판을 깨끗이 지워주고, 기본 분필 세팅을 해주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오늘 송도 가는 길, 두 시간여를 일본어 수험책과 함께했다. 무엇이든 '간절하던' 옛날 내 시절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정의되지 않던 나의 이십 대 초반, 그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 이외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처럼 컴퓨터 개발관련된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면, 분명 열심히 그때 코딩공부를 했을 텐데... 지금처럼 카메라 관련된 일을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면, 더 많이 관심을 가졌었을 텐데...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건, 그저 단순하게 언제 어디서든 외울 수 있는 <토익 영단어 책 외우기> 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오며 가며 약 4시간여 동안, 적어도 2시간 정도는 일본어 책을 들여다본 것 같다. 나머지 두 시간은 졸기도 하고, 유튜브도 보며 보냈다.


 앞서 말한 예전, 내 어린 시절의 <무언가 간절했던 빛담>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지하철에서 씽끗 웃으며 책장을 넘기고 일본어 단어를 외우곤 하였다.


 그 당시, 무엇이 되고 싶지도 될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던, 언제나 학생일 것만 같았던 내 옛날 모습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해 집에서 학교,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도중, 더불어 군대에서 밤샘근무를 하면서도 영어단어책을 놓지 않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신선한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 이런 이동시간에도 무언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한다. 

그게 지금은 일본어 수험공부지만, 이 스탭이 끝나면, 영어 회화가 될 수도 있고, 이전에 배우던 중국어가 될 수도 있겠지. 혹은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다. 


 회사입사하고, 결혼생활도 점차 안정되어 가던 무렵, '이제, 오며 가며 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다. 빛 담아.'라고 스스로에게 너무 자만심만 길러준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보게 되었다. 


 지금도, 20대 초반과 똑같다. 내가 더 나이 들어 앞으로 무엇이 될지 지금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이, 나에 대한 유일한 투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과 시간이 이어져, 나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이들었다고, 인생 Fix된거 아니다. 많은 문들이 여전히 열려있다. 대부분의 문들이 닫혀있다고 오해하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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