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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Sep 08. 2023

누가 누가 못 사나

"30대 중반, 신혼부부, 4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에 터를 잡아야 할까요?"

"OO 아파트, 지금 들어가도 되나요? 9억 가지고 있습니다."

"50대 은퇴준비 대책입니다. 맞게 하고 있는 건가요? 집 3채 월세수익, 배당금 수익... 등등"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익명 게시판'을 운영 중에 있다. 블라인드라는 많은 직장인들이 애용하는 '대나무 숲'을 통해 회사정보가 빠져나간다 생각한 회사에서 몇 년 전에 만들어 운영 중인 게시판이다. 물론 나는 회사에서의 '익명성 보장'은 허구라고 생각하기에, 여태껏 해당 게시판에 글을 남겨본 적은 없고, 카메라 쪽 구입 문의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던 기억은 있다.


 블라인드도 그렇고, 익명게시판(이하 익게) 도 그렇고, 항상 시즌이 있다. 고과발표 철이 되면, 맨날 놀면서 아부하는데 평가 잘 받아 간다는 부서원 이야기, 그런 부서원들한테 일만 떠넘기고 편하게 회사 다닌다는 리더의 이야기, 진급철이 되면 본인의 점수로 과장을 달수 있는지, 부장을 달수 있는지 등의 커트 문의 건들처럼 시즌단골 메뉴로 항상 소비되는 이야깃거리들도 있지만, 요 근래 회사에서 자주 올라오는 글 중에 하나가 바로 '자산'에 대한 것인 거 같다.


 사실 익게를 자주보지는 않는다. 봐봤자 맨날 불평글이다. 회사가 마음에 안 든다느니, 옆에 누가 큰소리로 전화한다는 둥, 푸념글 말이다. 내가 감정이 메마른 것 일수도 있지만, 그런 글을 쓰는 본인은 정말 '완벽'한가 만날 수 있다면 반문해 보고 싶다. 물론 그런 푸념글들이라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으니 해당 게시판이 만들어졌겠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불만 가득한 이야기들이 올라오는 터라, 글을 보다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아 져 자주 보지는 않고, 친한 동료들과 있는 사내 단톡방에서 누군가 익게의 링크글을 남기면, 그걸 주로 보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보고 싶은 글보다, 남이 올려준 글을 예의상 한번 링크 클릭하여 제목부터 읽고, 본문과 댓글을 읽을지, 아니면 그냥 무시할지를 판단하곤 하는데, 요 근래는 친한 동료 형들이 '자산'에 대한 이야기를 올려주시는 거 같아 보였다.


 내가 속해있는 단톡방에는 두 명의 구성원이 더 있다. 즉 3인이 별 시답지도 않은 농담 같은 걸 주고받는 그런 방이다. 사람이, 하루종일 어떻게 일만 하겠는가. 주식이야기도 해야 되고, 차도 이야기해야 되고, 남자들이다 보니 예쁜 아이돌 이야기도 해야 되고 말이다... 뭐 그런 방이다. 업무이야기는 잘 안 하는 편이다. 


A : "우리 회사는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

나 : "그죠, '곱게 자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가..."

(해당 방에는 나의 특유의 시니컬한 농담들이 가득하다.)

B : "그거랑은 크게 상관은 없는데, 맞벌이하는 직원들 보면 확실히 사는 게 달라"


 아, 그러고 보니, 이 방의 공통점을 방금 발견했다. 셋다 모두 <외벌이>라는 점 ㅠ 

내가 생각할 때 의사 아니고서는 한국에서 외벌이로 월급쟁이가 여유 있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하게 되었다. 


나 : "익게에 올리는 사람은 돈이 많으니까 자랑하려는 거겠죠... 인스타 가봐도 맨날 좋은 거 먹고 좋은 데 가고 그러더구먼... 거지 같은 데서 먹은 사진이나 별로인 숙소는 사람들이 안 올리잖아요"

B : "하긴, 그래. 거지 같은 건 사람들이 인스타에 안 올리지. 회사에서도 다 잘 사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닐 테지?"

A : "그럴걸요... 내가 생각건대, 회사에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가난한 거 같아"

나 : "ㅠㅠ저도 가난해요, 30년 다 돼가는 소형 평수 한자아파트랑 준중형 국산차 보유ㅠ"

B : "저도요, 저는 집도 없어요ㅠ"

A : "가 프로는 송파구 영어아파트 보유하고 있고, 나 프로는 볼보 최신 자동차 오너고, 다 프로는 판교에 집 한 채 더 있는 자산 가고..."

나 : "ㅠㅠㅠ 마음이 부자면 되죠."


 정말 순식간에, '누가 누가 못 사나' 경연대회 장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자산을 대충 알고 있다 보니 이 방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던 것이었다. 


나 : "저는 오늘도 토스 만보기,.. 4500보 걸었네, 500보 더 걸어서 20원 벌어야 되는데..."

B :  "나는 모니모 출석해서 200 원 벌었어"

A : "오예, 네이버 페이 11만 원 긁었는데 8,900원 잭팟 터졌다~"


 이렇게 글로 적어놓으니 웃기기도 하다. 슬프기도 하고. 이걸 웃프다고 하는 건가... 우리 셋은 단톡방에서 '온라인 폐지' 줍는걸 서로 재밌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특히, 월급같이 고정 수입에만 의존해서는 돈을 불리기 어렵다는 것을 나이 마흔이다 되어가서야 깨닫는 중이다. 그 당시 내 나이 서른둘,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사기 위해 호기롭게 부동산을 찾아가 가계약금을 내고, 계약서를 사인하며 1억 이상의 빚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으키고 집을 샀던 내가, 지금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다. 집값이 저점일 때 구매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당시 아무 생각도 없었다. 장모님 댁에 2년 이상을 얹혀살았기 때문에, 독립을 하긴 해야겠고, 전세로 가고 싶지는 않아 그간 성실히 술 한번 안 먹고, 여행 자제해서 와이프와 함께 모은 돈으로 이 집을 산 것이었다. 그때 입지가 어쩌고, 구축아파트가 어쩌고 학군이 어쩌고 따지기 시작했으면 지금 집도 못 건졌을 것이다. 


 나는 남과 비교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 말이다. 세상엔 나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인스타 그램만 봐도, 항상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자기 자랑한다고 수많은 사진들을 올린다. 난 별로 그런 거에 관심이 없다.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판단하면, 나는 쳐다보지도 않는 편이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뿐이고, 그들도 더 잘 사는 사람과 비교할 것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만은 할 수 없다. 정말 타인과의 비교는 끝도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별생각 없이 구매한 옛날 복도식 한자아파트도 가격이 올라 지금 가격을 주고 집을 매매하려면, 꽤 큰 출혈을 감수했을 건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좀 낡긴 했지만, 여전히 잘 굴러가는 작은 우리 준중형 패밀리카도 있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두 아이들과 드라마 무빙의 명대사, "너는 나의 쓸모야"를 자주 이야기 해주는 와이프도 있다.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오히려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에 출연한 A와 B도 가정이 화목하고, 건강에 문제가 없으며, 심지어 차들도 매우 좋은 거 타고 다닌다. 나는 다들 좋은차 타는거 정도는 부럽기도 하던데... 여하튼, 어디 빠지지 않는 그런 평범한 삶을 다들 영위하고 있다.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서 배운 삶의 원리. 그저 열심히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항상 머리속에 새기고 살아간다. 


 잘살면 좋겠지. 좋은 차, 넓은 새 아파트, 럭셔리한 호캉스까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제 곧 마흔이 되는 내 나이를 생각 해볼때 이미 나의 인생은 어느 정도 그렇게 하기 어렵겠다고 Define이 되었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돈이 많이 드는 많은 활동들과 좋은 음식을 먹기는 어렵더라도, 내가 먹고 싶을 때 돼지고기도 실컷 먹고, 가끔은 외식도 하고 또 가까운 해외는 마음먹으면 나갈 수 있는 여유정도는 있으니, 이만한 삶이라도 영위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그냥 지금처럼 살자. 열심히 남들한테 폐안끼치고, 성실히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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