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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Sep 22. 2023

첫 경험

내가 마라톤에 내 돈 주고 참가하다니...

 대학교 3학년, 내가 '선택'했지만,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장교후보생으로서의 군복무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저 대학교에서 멋진 제복을 입고 멋진 가방을 들고 다니며 지금의 자유를 누리며 학창 시절을 보낼 줄로만 알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바로 윗학년 선배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그야말로 '똥군기'를 잡으며 조직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나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관물대라고 불리는, 45명의 후보생의 군복이나 군장등을 학교에서 보관하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우리 기수가 갈굼 받던 곳이었다. 물론, 지금도 3학년 ROTC후보생들은 그곳에서 똑같이 갈굼을 받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는 않는다.

 사실 그곳에서 엎드려 뻗쳐나, 쪼그려 앉기, 한 자 세로 오랜 시간 유지하기 등 몸이 힘든 것들은 어떻게든 버텨텨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달리기였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새벽이 되면, 3, 4학년 장교후보생모두는 교정을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태권도복을 입은 채 달리기로 시작한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어려운 좌절을 맛보곤 했다. 내가 체력이 제일 약해서, 선배들이 일부러 이겨내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가장 많은 군가를 시켰고, 나를 가장 많이 갈궜던 기억이 난다.


'그래, 소대장으로 야전에 갔을 때, 못 뛰면 그것도 안 좋은 거니까...' 하며 참아내고 참아냈으나, 나의 약한 기초체력은 달리기를 할 때 가장 도드라지게 약점으로 부각되었고, 점점 달리기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소대장으로 임관해서는, 오히려 좋았다. 내가 지휘하며 달리기를 하기 때문에, 내가 힘들면 그만 뛰어도 되었었고 자대를 갔을 때에는 나보다도 기초 체력이 약한 용사들이 즐비했었다. 그렇게 나의 Weak Point였던 달리기는 군생활을 끝으로, 내 삶에서 지워지게 되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올해 초, 스마트워치를 구매하면서 달리기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역시 3km도 헉헉대며 달릴 수 없는 수준의 체력이었지만, 이번에는 누가 시켜서, 또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니 조금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와이프와도 틈틈이 함꼐 5km를 달리며 호흡을 가다듬는 연습부터, 심박수를 높지 않게 유지하며 뛰는 방법 등을 스스로 체득해 나감과 동시에, 유튜브를 통해 달리기 관련 콘텐츠를 보고, 그대로 나에게 적용해 보려는 노력을 한 것 같다.


 때마침 9월의 어느 일요일, 집 앞에 마라톤을 한다는 공고를 보고, 고민도 없이 10km를 신청해서 달리기로 결심했다. 와이프는 사실 많은 걱정을 하였다. 아무래도 내가 십자인대 수술을 한 이력도 있고, 그다음 날 가족모두가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날이므로 다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았다.

 하지만, 와이프 의견대로 5km를 달리기 위해 마라톤 신청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더 이를 악물고 연습을 이어나갔던 거 같다. (하지) 말아톤 (brunch.co.kr)


 마라톤이 끝난 지금, 돌이켜보면 대회 신청을 한 뒤, 매주 일요일마다 10km씩을 달리며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을 갖게 된 것이 매우 유효했던 것 같다.


  마침내, 마라톤 대회 당일이 되었다. 평소 뛰던 것처럼, 헤어밴드를 착용하여 땀이 얼굴에 내리는 것을 방지하고, 애플워치를 착용하고, 에어팟을 착용하여 음악을 들으며 출발점으로 향했다. 출발 1시간 전임에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군집을 이루고 있었고, 그중 눈에 띄던 건, 함께 뛰는 마라톤 크루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둥글게 모여 지휘자의 몸풀기 구령에 맞춰 몸을 풀었고, 나 또한 저 멀리서 그 구령을 보며 함께 몸을 풀곤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필할 장비들을 착용하고 나왔는데, '형광색' 러닝화가 인상적이었다. 나도 다음번에 러닝화를 구매할 땐 꼭 '튀는 색'으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떨리는 가운데, 20km 달리기 참가자들이 먼저 출발했고, 내가 속한 10km 달리기 참가자들은 10분 후 출발을 하였다. 길은 좁은데, 사람들이 많다 보니, 약 1km 정도까지는 잰걸음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20km 참가자들 중에도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럴 거면 뭐 하러 20km를 신청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 코가 석자였다. 호흡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달릴 때 힘을 적게 들이도록, 잰걸음보다 조금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돌고 돌아오는 순간부터, 페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럼에도, 이번 마라톤의 나와의 약속인 '끝까지 뛰기'와 '부상 금지'이 두 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천히라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뛰는 동안 점점 내 앞으로 치고 나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보다 뒤처지며 포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었다. 항상 혼자 뛰던 내 입장에서는, 나보다 뒤처지며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사실 '큰 힘'을 얻게 되더라.


 마침내, 종료지점 1km를 앞두고 마지막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체력이 다한 상태에서 언덕길을 오르면, 그 뒤에 평지를 뛸 때 속도가 많이 느려지곤 하는데, 사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었다. 이 오르막을 오른 이후, 페이스가 급감하여 거의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수준으로 어떻게든 페이스를 이어오게 되었다.


"Finish"

 종료 라인을 통과하는 순간, 가뿐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부여잡고 해냈다는 기쁨에 스스로를 칭찬해 줬다.

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메달과 상품을 주는 코너에 가서 당당히 물품을 수령한 후, 기쁨에 젖은 채 집으로 걸어 귀가했다.



'나는 못해'

'나는 안될 거야'


 내가 생각할 때, 절대 내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게 3가지가 있다. 하나는 학창 시절 나를 괴롭힌 수학 과목에 대한 공부, 두 번째는 앞에 Item과 연장선상에 있었던 '프로그램 개발' 마지막은 항상 약한 나의 기초체력으로 인한 '달리기' 였었다.


 10km 마라톤은, 누군가에겐 별거 없는 건강 달리기 수준의 도전 일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내 트라우마 '달리기'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의미가 가득한 도전이었고, 이걸 해 내게 되어 너무나도 짜릿했던 순간이었다.


 글을 작성하고 있는 오늘, 15km를 뛰고 왔다. 애플워치 측정결과 심박수가 160 정도까지만 유지한 것으로 보아, 호흡도 무너지지 않고 10km 이상도 무난하게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사십 대가 된 내 몸을 가지고, 스물두 살의 '빛담 후보생'으로 돌아가 달리기를 한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장교로 임관되어 야전으로 나가도, 더 오래 잘 뛰며 용사들의 건강 향상을 잘 도모했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내년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달리는 것을 즐기고 있지만, '목표'를 조금 높게 잡음으로서 그 목표에 도전하여 성취를 해볼 생각이다.


"나는 할 수 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나는 해낼 수 있다." 오늘도 달리기를 통해 스스로의 에너지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고, 앞으로 당분간은 달리기에 더 심취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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