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거들뿐
사진기를 손에 잡은 지 4년이 넘었다.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겪으며 나의 '유일한' 취미이던 주말 회사 농구동호회 참가는 나와 가족들을 위해 멀리하게 되었고, 무료한 일상을 채워줄 도구로서 카메라를 선택하게 되었다.
카메라를 접하며, 내가 좋아하는 피사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되었는데, 처음엔 누구나 '우와' 할만한 소리가 나오는 야경이나 노을 등을 담았지만 이것들은 점차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 찍겠다고 미세먼지 없는 날 만사 제쳐두고 아침 일찍 어딘가로 향하거나, 해 지는 시간을 보고 와서 사진을 담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속 가능한 사진을 담기 위해 평범하게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주로 피사체로 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일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 말 올해 초, 2박 3일로 홀로 떠났던 오사카 교토 여행, 그곳에서 예쁜 사진을 많이 담으며 홀로 힐링하고 돌아왔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우리 가족들에게도 내가 보고 예뻤던 장면을 함께 봤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 여행 돌아오고 나서 와이프에게 일본여행을 제안했다.
"장모님도 함께 갈까?"
"응 그럼 좋지"
장모님과도 함께 가고 파 제안 드렸던 일본여행, 그 당시 무슨 생각이셨는지 하루정도 고민하시더니, 나에게 개인 카톡으로 여권사진을 보내주셨다.
"장모님, 티켓 표 한 장 더 끊어놨어요"
"고맙네 박서방." (고마우시면 같이 가시지 그러셨어요...)
하지만 우리 가족 이외의 남아있던 장모님의 일본여행 비행기 표는, 끝내 취소를 해야만 했고 그 티켓은 장인어른을 거쳐 나의 아버지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아버지, 9월 중순에 일없으셔요?"
"응, 없지. 왜?"
조금 슬프면서 웃겼다. 어머니는 아직도 열심히 일하시는데, 울 아버지는 태평하게 쉬고 계신다니. 하지만 이제 칠순을 넘기셔서 쉬서야 할 나이는 맞긴 했다.
"일본여행 가실래요? 손녀들 위주로 놀이공원 다녀오려고요"
"그래, 건강할 때 손녀들하고 같이 가자"
이렇게 우리 가족의 일본여행은 시작되었다.
일본여행은 '저렴'해서 가는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지 모르겠다. 정답은 케바케이다.
내가 홀로 떠났던 오사카여행은, 그저 걸으며 사진만 찍으러 간 여행이라, 일본사람들 입장에선 오나 마나 한 존재였을 것이다. 밥 먹는 것도 귀찮아하다 보니 거의 굶고 다니며 사진만 찍으러 돌아다녔던 거 같고, 이런 경우 체류 기간 동안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희귀 케이스겠지.
가족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특히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놀이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입장권과 별도로 '패스트트랙'을 사야만 하는데, 그 돈이 만만치가 않다. 정말 "그돈씨"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내입장에서는 꽤 큰 구매였었다. 심지어, 패스트 트랙권은 미리사두지 않으면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수준이라니, 우리나라의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스케일을 가뿐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홀로 갈 때와는 다르게, 아이들과 가족들 모두 가는 여행이므로, 내가 평소 신경 쓰지 않던 먹는 것이라던가 숙소 같은 것도 더 신경 써야만 했다.
사실 숙소의 경우, 우연히 같은 기간에 회사동료들이 일본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간다고 하여 귀동냥한 결과, 놀이공원 앞에 멋진 호텔급 숙소에 묵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빈자'인 나는 오사카 도톤보리에 위치한 료칸에서 묵게 되었는데, 이마저도 역과 다소 거리가 있어 가족들을 많이 걷게 했다는 자책감이 여행 후 밀려오기도 해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내 입장에서는 그리 싼 가격에 숙소를 잡은 것도 아니건만, 아이들을 힘들게 할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자책의 이유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항공권, 숙박, 교통패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놀이공원 입장권+패스트트랙을 모두 구매하고, 드디어 우리 가족은 일본에 입국했다.
사실 하루만 놀이공원을 이용하기는 아쉬워서 1.5일 입장권을 한국에서 구매해 갔다. 0.5일 날짜에는 15시부터 입장이 가능해서, 공항에서 내려 숙소에 짐만 맡겨두고, 점심을 해결한 뒤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평일인데 그래도... 사람이 적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무색해지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참자. 참자.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야.'
나는 이 주문을 계속 머릿속에 외우며 속으로 부처님을 찾고 있었고, 나보다 성격이 더 급하신 우리 아버지도 비슷한 생각이셨을 거 같다. 그렇다 지금은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니, 웨이팅이 발생하더라도 무조건 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즐겁게 임하기로 말이다. 하지만 여행 기간 내내 일본의 고온다습한 9월 날씨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던 기억이 강렬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입장했지만, 수많은 사람들로 압도당했고, 놀이기구의 평균 웨이팅 타임은 100분여 정도였었다. 첫날이니 우리 가족들은 몸풀기 삼아 유니버설 스튜디오 전체를 돌아보며 지형을 익혔고, 중간중간 매점을 들러 갈증을 풀어야만 했다. 그렇게 소득 없이 끝나나 싶던 첫날, 우리나라 어린이대공원에나 있을 법한 회전목마와 돌아가는 헬로키티 놀이기구 등은 다행히 20분 정도만 줄을 서면 되어 그 두 개는 같이 타볼 수 있었다. 그렇게 큰 소득 없이,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게 느껴졌지만, 다음날을 기약하며 쓸쓸히 퇴장하였다.
둘째 날은 드디어, 슈퍼마리오월드 확약권이 포함된 패스트트랙권을 사용하는 날이었다.
'오늘도 평일인데... 사람이 적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역시나 나의 오산이었다. 그 생각은 들었다. '도대체 주말에 오면 어느 정도로 많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말이다.
입장 후 첫 코스로 슈퍼마리오월드로 입성했다. 입성해서는 곧바로 마리오 팔찌 판매 코너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에서 줄 서서 기다리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래도 '즐겁게' 기다리며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주고자 노력했다.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던 데이지와 피치, 나는 한국에서 당근마켓등으로 마리오 팔찌를 미리 사가려고 키워드 알림도 걸어놨지만, 저 두 개가 동시에 올라오는 매물은 잘 없었고, 우리 아이들은 꼭 저 캐릭터들을 가져야겠다고 말을 하더라. 하릴없이 현장구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정말 너무너무 좋아했다. 해당 에어리어에 입장하면, 현실세계에 마리오 게임을 그대로 녹여놓은 듯한 웅장함과 디테일에 놀라게 된다. 오죽하면 마리오 게임 한번 못해보신 우리 아버지도 '인정' 한다고 하셨을까.
다만 더워도 너무 날씨가 더웠고, 사람들도 많아 웨이팅이 심각할 정도로 오래 걸렸다. 게다가 앉을 공간이 별로 조성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 그늘에 가 서서 보호자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칠순이 넘으신 아버지는 그 불같은 성격에도 묵묵히 손녀들을 기다리며 즐겁게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 감사할 뿐이었다.
나와 아버지의 패스트 트랙 티켓은 아이들에게 양도되어, 두 어린이들은 놀이기구를 각각 두 번씩 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시간', 그들만 즐거우면 되었고 그걸 바라보는 부모는 그걸로 만족하며 더운 날씨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짜증 나는 환경에서도 그거 하나 보고 버틸 수가 있었다.
세 번째 날은 어른들을 위한 작은 하루를 가졌다. 숙소에서 나와 교토역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역시 싫었나 보다. '전천당'에서 나오는 가게들이 즐비한 곳으로 함께 갔지만 자신들이 볼 때 재미없는 공간이라 여겨졌는지 표정이 좋지 않고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어 나도 한소리를 했다. 너희들을 위해 어른들이 양보했으니, 반나절은 어른들을 위해 너희도 맞춰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뭐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얼마나 싫었을지도 이해는 간다. 나도 어릴 때 경주나 덕수궁 같은 데 가는 걸 가장 싫어했던 1인이었었다.
미리 이곳을 올해 초 방문했던 사람으로서, 우리 아이들도 좋아할 거 같아 데려왔던 곳이었는데...
이리 아이들이 싫어하니 마음속으로는 '내가 틀렸구나' 싶어 자존심을 좀 세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짧았던 2박 3일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와이프는 나에게 여행 가이드처럼 모든 걸 다 고민해서 맞췄던 기획과 일정 편성에 너무 만족한다며 고마움을 표했고, 우리 아이들도 "아빠 덕분에 정말 즐겁게 여행 잘 다녀왔다" 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간 마음과 에너지를 쓰며 고민하고 실행했던 힘든 순간들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엄마, 아버지는 일본여행 어떠셨데?"
"다 좋았는데, 놀이공원에 '앉을 데'가 없어 죽는 줄 알았다 하시더라"
"아 하긴... 진짜 덥고 앉을 데도 없더라"
"발 수술하신 지 1년밖에 안되셔서 힘드셨을 텐데, 손녀들 보고 참으신 거 같더라 그 양반 성격이 보통이니..."
그랬었다. 역시 아버지도 아이들을 위해 힘든 몸으로도 참고 계셨던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집에서 조금이라도 꾸물거리며 늦게나와도 천불을 내시는 분이다. 와이프랑도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된다고 여행 전에 생각했던 건데, 이번에는 손녀들을 위해 다 맞춰주겠다 다짐하고 오신 게 분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젊으셨을 때는 왜 나에게 그렇게 대하시지 않았는지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손녀딸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 복잡 미묘한 감정이 마음속에 일었다.
아직 파티는 끝나진 않았다. 원래 홀로 떠나려 했던 11월 후쿠오카 여행에 동반자로 둘째 딸이 함께 가겠다 선언하여, 그 일정에 여행 동료가 생겼다. 꼬맹이가 비행기 타는 맛을 알았는지 자꾸 아빠 혼자 가려는데 '눈치'없이 가겠다 한다. 어쩔 수 없다 데려가야지...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 두 분이 다 집을 거의 비우시다 보니 가족여행은 꿈도 못 꿨다. 어머니는 사실상 가장역할을 하시며 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 푼을 더 아끼시던 독한 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남들처럼 좋은 호캉스에 좋은 차에 좋은 집에서 살며 여유 있게 살지는 못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 보단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간혹 가족들과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어딘가를 함께 가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맙고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오사카 여행이,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 그리고 나에게도 3대가 함께 고생과 즐거움을 같이 경험했던 뜻깊은 순간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이 원동력으로 힘든 순간을 이겨내야겠다. 하게 되는 티핑 포인 트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