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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Oct 03. 2023

의존

 요새 달리기에 푹 빠져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예전보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오히려 더웠던 여름보다 살짝 덜 뛰게 되는 거 같다. 뭐 그래도 한 주에 3번 이상은 꾸준히 달려주고 있으므로, 아직 '빠져 있다'는 표현은 써도 되는 것 같다.


 이번 추석연휴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길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쉬면서 지쳤던 마음을 재 정비 하는 시간으로 삼기로 하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20km' 달리기 완주도 목표로 잡아 두었었다.


 달리기를 하러 나갈 때에는 스스로 <즉흥적>이 된다. 보통 아침에 눈을 뜨고 이불속에서 뒹굴뒹굴 거리다가, 씻긴 씻어야겠는데 그냥 씻기에는 조금 그럴 때, 운동을 하고 씻으면 더 상쾌한 기분이랄까...

 운동하기 편한 반팔 반바지로 간단히 환복 하고, 머리에는 땀이 흘러내리지 않게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무선이어폰을 착용한다. 마지막으로 스마트워치를 차고 나가는 게 보통의 나의 달리기 프로세스다.


 어제는 20km를 뛰어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시계를 차고 나가려는 순간, 배터리가 30%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괜찮을까...? GPS를 Fully 시계가 가동할 텐데..."

"각종 센서랑 음악까지 재생해 줘야 하는데... 2시간 넘게 버텨줄까...?"


 살짝 불안한 감은 있었으나, 내가 차고 다니는 시계는 충전이 그렇게 빠르지 않아 Charging에 더 시간을 쓰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달리고 싶은 기분에 따라' 밖에 나왔다.


 첫 페이스는 좋지 않았다. 몸이 무거웠고 발을 디딛을때마다 그렇게 경쾌한 리듬이 있진 않았지만, 다행히 러닝 중 아픈 부위는 없어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이전 15km를 달린 기록이 나의 최고의 레코드였고, 그 당시 터닝포인트였던 청담대교에 도착했지만, 20km를 달리기 위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마침내 성수대교 앞, 나는 터닝하여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내가 목표했던 바를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다.


"배터리 용량이 없습니다. 저전력 모드로 변경합니다"


 출발 전 배터리가 별로 없어 살짝 불안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딱 절반을 지난 순간, 10%밖에 남지 않았다는 알림이 워치에 떴다. 나는 황급히 저전력 모드로 바꾸고, 듣고 있던 음악도 재생하지 않아 조금이라도 배터리를 오래가기 위해 노력했다.


 15km를 지나 집으로 오는 구간, 내가 가장 오래 달렸던 구간을 지나면, 몸이 기억을 하나보다. 점차 발이 무거워지고 케이던스도 낮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아는 풍경들이 내 눈앞을 스쳐가며 '완주'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17km를 지난 순간, 워치는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배터리가 부족하여 전원이 off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스스로 완주해 보자며 약 1km를 더 달려봤는데... 동기가 부여되지 않았다. 몸이 무거워졌고 더 이상 달릴 의지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간 애플워치를 차고, 달릴 때마다 속도와 남은 시간등을 보며 힘을 얻곤 하였는데, 이 부분이 사라지게 되면서 더 이상의 버틸 수 있는 에너지는... 소멸하고 말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달리기에 관해서는 '스마트워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그저 달리는 데에 있어 보조로서 도움을 주는 수준이 아닌, 러닝 간 재미없고 지루하고 힘든 순간을, '기록'을 통해 동기부여를 해 주는, 내가 달리는 데에 있어 필수적인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특정 도구들이 없으면, 일을 하기 곤란한 상황들이 발생하는 거 같다. 개발업무를 할 때에는 Intelli J라는 툴이 없으면 개발을 빠른 시간에 해 내기 어렵다. 단축키나 UI, 기능들을 이미 잘 쓰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Visual Studio 등은 내 손에 익지 않아 쓰기가 어렵더라. 아무래도 먼저 잘 사용하게 된 Tool에 대해 나 스스로 '의존'을 하게 되는 부분인 것 같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소니' 카메라만 사용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불편한 점도 많고 카메라 답지 않은 내구성이나 UX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른 카메라의 메뉴를 보면 오히려 내가 사용하던 카메라의 메뉴가 더 편해 보이게 되었고, 해당 카메라로 작업을 할 때 가장 결과물이 좋게 나오는 거 같다.


 무언가 행할 때 그저 도움을 주는 '도구'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이번 애플워치 배터리 부족으로 인해 달리기를 '포기' 하게 되면서, 내가 자주 쓰는 '도구'들이 도구 수준이 아닌, 내 삶에서 각자의 위치와 영역에 필수 불가결한 '친구'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이 시계 녀석은, 앞으로 부지런히 밥을 줘서 언제나 내가 원하는 순간 잘 달릴 수 있도록 도움을 받게끔 배터리 관련해서 좀 더 많은 체크를 해야 될 거 같다. (배터리 타임이 좀 더 오래갔으면...)


진짜 자주 차고 다녔나보다... 안차니까 내 손목의 색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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