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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05. 2023

그때도 지금도 시간과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

 필자는 학창 시절,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는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돈을 벌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창업'이라는 옵션은 생각한 바 없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스스로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라고 생각하여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만 사회생활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애늙은이


 정확히 몇 학년 때인지는 기억에 나지 않으나,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였다. 때마침 학기 초라 반장선거가 한창이었는데, 그 당시 내 친구들이 조금 짓궂어서, 장난 삼아 필자를 반장선거 후보로 내보내 Top3 안에 들어가 결선 투표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너무 일찍 철이든 나는 반장 후보직에서 자진해 내려왔다. 주된 이유는 내가 반장이 되었을 때 잘 부탁한다고 반 아이들 사십여 명에게 한턱 쏠 햄버거와 콜라값이 부모님께서 혹여나 부담이 될까... 싶어서였다.

 부모님께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시며,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내가 봐온 터라 막상 반장이 되었을 때 부모님께 그런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반장 되고' 고민해 볼일이었을지도 모르겠고, 아마 반장이 되었었더라면, 부모님은 분명 기뻐하셨을 거 같긴 하다.


시간이나 돈이나 여유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필자는 금전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언제나 궁핍함을 느끼며 자라왔던 거 같다. 그렇다면, 시간적 측면에 있어 언제가 가장 여유로웠을까? 시간적으로도 크게 여유 있던 시절은 없었으나, 그나마 학부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남은 시기로 꼽힌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어느 누구도 나의 시간을 터치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고등학교에서 오징어잡이 배처럼, 교실마다 환하게 조명을 켜고 교실에서 공부하며 나의 시간을 학교 책상에 바쳐오던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중앙도서관에 가서 그간 읽지 못했던 책들을 원 없이 읽는다던가, 그동안 못 봤던 영화를 장르별로 골라서 빌려 본다던가 하며 지낸 것 같다.

 그 와중에서도 부모님은 학부시절 내내 용돈을 지원해주시지 않아 필자가 살던 동네 번화가로 가서 그 당시 '시급 3,200원'이라고 붙어있는 술집에 가서 '무작정 일하겠다고' 하여 설거지도 하고, 서빙도 하는 등, 나름 바쁘게 살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여전히,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학부 고학년으로 갈수록 전공과목의 깊이와 난이도가 더해져 포기하고 싶어 지고, 주 3일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게 되면서 더욱더 간절해졌었다.


'회사원이 되면, 일만 하면서 돈만 벌면 되잖아? 공부랑 알바 병행 안 해도 되잖아?'


 이렇게 필자의 이십 대는, 스스로 재미없다 여긴 컴퓨터학부 전공과목 공부와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느라 하루하루 녹초가 되어 '버티기'만 하는 삶이었고,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들어 그냥 안정적으로 삶의 궤도가 움직일 것만 같았던 삼십 대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진 않아도 돼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아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흘러, 필자는 삼십 대가 되었다. 아니지, 곧 사십 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내 소원대로 '하나만' 집중하며 살 수 있는 삶, 게다가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 일 줄 알았다. 역시 인생은 녹록지 않다.


 회사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하나의 목표를 달성한 개인에게는, 조금 더 무거운 Payload(부하)를 실어준다. 명목은 "개개인의 역량강화"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달아주며 말이다. 물론, 못하겠다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필자는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다. 아직 업무를 '거절' 하기에는, 너무 이른 연차기도 하다.


 게다가, 이러한 부하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 지속되고 계속 커진다. 벌써 내 에너지로는 '정년퇴직' 할 에너지가 온 거 같은데, 아직도 20년 이상이나 회사를 다녀야만 한다. 확실히, 일이 좋아 다니는 것이 아닌, 주어진 일이니까 하러 다니는 사람이 느끼는 남은 정년의 체감이란, 너무 길게 느껴진다.


 이십 대 때처럼 내가 '일'과 '공부'를 병행할 필요는 없게 되었지만, 회사에서는 한 가지 일만 주어지진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십 대 때와 같이 멀티 태스킹 능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여기에 "책임감"이라는 중압감까지 한껏 푸시받게 된다.

 결국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버리면, 집에 와서도 딱히 더 에너지를 낼 수는 없게 되지만, 집에 온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바로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나 돈이나, 그대는 여전히 여유 있지 않다.

 그렇게 평일을 넘겨도, 주말은 주말대로 가족과의 시간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내가 학창 시절 때에는 주 6일이었는데, 대학생이 되면서 주 5일로 바뀌었고, 회사에 입사해서는 이미 제도가 잘 정착이 되었더라. 여하튼 주말 2일은 생각보다 크다. 가족들과 어디 교외라도 나가면, 이십 대 때와 비교하면, 필자처럼 회사원이면서 가정을 꾸린 경우는, '시간'은 더더욱 부족해진다. (물론, 1인가구의 경우는 주말에 좀 더 여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가지 변수, '금전적' 으로는 이십 대 때보다 낫지 않을까? 그것도 그다지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필자와 같이 외벌이 집안의 경우, 내가 버는 돈의 대부분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투입되어야 맞다. 그뿐인가? 이십 대 때에는 전혀 생각도 나지 않던 '노후 자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슬슬 필자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 결과, 월급을 받으면 생활비 송금, 노후자금 송금, 보험료 등이 정말 1초도 안 돼 빠져나가며 월급님은 다 로그아웃을 해버린다. 게다가 앞으로는 연로하신 부모님 의료비나 생활비도 조금씩 모아야 한다. 이래저래 돈 들어올 구멍은 없는데, 나갈 구멍만 많은 셈이다.


 괜찮다. 이십 대 때도 그랬다. 시급 3,200원짜리 금토 알바를 하고 한 달에 수령하던 금액이 평균 26만 원이었는데, 학교 교통비로 6, 식비로 5, 지금의 와이프와 데이트 비용으로 나머지를 써야만 했다. 돈 받는 순간 로그아웃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결국, 이십 대 때도, 어느 정도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삽 십 대 후반의 지금 나이에도,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다.


인생의 후회 두 가지, 입사 전 여행과 첫 월급 소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인생에 기회는 있다. 본인의 '소속'이 변경되는 순간이 분명히 있으며, 이때가 가장 심적으로나 물적으로 안정적인 순간이다.

 만약 나에게 시간적으로 가장 돌아가서 해보고 싶은 시기가 있다면, "회사 입사 전, 여행"이라고 답할 것 같다.


 정말 아주 작은 회사가 아닌 경우, 통상 바로 그다음 날 출근하라고는 보통 하지 않는다. 적어도 며칠의 말미를 주곤 하는데,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시간이 많고 마음이 편안한 때라고 생각한다. 주위에서는 취업 준비하느라 축하했다고 격려해 줄 것이고, 개개인은 취업준비하며 남은 용돈도 있을 수 있고, 부모님께서도 격려금을 주실 수도 있다. 혹은, 아주 큰 기업에 합격한 경우, 합격증만 은행에 가져가면 소액대출을 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시간, 스스로에게 그간 고생했다고 칭찬과 격려도 하고, 앞으로 험한 길 가기 전,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소중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토익점수 조금 더 올려보겠다고 영어 학원을 한 달 등록해 아까운 시간 허비한 게 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 중 한 부분이다. 이 글을 보는 독자분들 중에는 필자처럼 안타까운 결정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아울러, 나에게 금전적으로 가장 돌아가서 해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첫 월급" 마음껏 쓰기라고 이야기해 드릴 수 있을 거 같다.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도 용돈 드리고, 이성친구가 있으면 이성친구를 위해 예쁜 옷도 선물해 보자. 그리고 '본인' 한테 아낌없이 투자하자. 본인 몸에 맞는 예쁜 옷도 사보고, 그간 사보지 못한 구두, 스포츠 용품 등등을 본인에게 사 줘 보자.

 내가 만약 첫 월급을 받았던 2011년 8월로 돌아간다면, 나는 1원도 저금하지 않고 모두 써볼 생각이다. 첫 월급 때 필요한 용품들을 사지 않는다면, 점차 본인의 월급에서 그러한 의류나 물건을 구매할 기회는 적어질 것이다. 미래를 위해 한 푼 두 푼 모아나 가다 보면, 결국 본인에게 소홀해지기 십상이다. 괜찮다. 첫 월급정도는 마음껏 써도 된다.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대신 다음 달부턴, '미래'의 본인을 위해 월급의 일정 부분을 잘 적립해 가자.



나이 먹으면, 다 알아서 되는 줄 알았다.

 초등학생 때에는, 십 대가 되면 100m 달리기를 잘하게 될 줄 알았다.

(십 대가 되었더니, 나도 빨라졌지만 다른 애들이 더 빨라지더라...)

 십 대에는, 이십 대가 되면 남들처럼 멋지게 멋도 부리고, 여유로운 캠퍼스 생활을 할 줄 알았다.

(얼굴엔 여드름 가득, 하루종일 아르바이트에 하기 싫은 공부들 뿐)

 이십 대 때에는, 삼십 대가 되어 멋진 슈트를 입고 좋은 차를 타고 회사를 출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슈트살 돈이 어딨냐, 게다가 주차비는 좀 비싼가. 차량 유지비도)

 삼십 대 때에는, 사십 대에는 지금보다 조금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십 대 때에는, 오십 대에 보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삶이었으면.

 

 어릴 땐 나이 먹으면 다 알아서 되는 줄 알았다. 고1 때 배운 미적분도, 고2 때 배우면 더 쉬워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한데 웬걸, 절대 쉬워지지 않더라. 업무로 배웠던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었다. 다음번엔 잘하겠지? 하는 기대감에도 결과는 동일하다. 절대 거저 얻어지는 게 없더라. 다 본인이 해내고자 하는 의지와 행동 없인 얻어지는 것도 없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어렵고 팍팍하지만, 필자의 사십 대, 오십 대는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해 본다. 물론 내가 더 노력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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