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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Mar 03. 2024

고비를 넘는다는 것

세상에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처음 일이 주어질 땐, 그저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을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용돈을 벌어보겠다며 중학교 때 친구들을 따라 선전지를 돌리다가 아파트 경비아저씨한테 많이 혼나는 와중에도, 단돈 이천 원을 받아 그다음 날 떡볶이를 정말 원 없이 먹을 수 있었을 때의 희열 같은 경우랄까...?


 2년 전, 우연한 계기로 토요일마다 웨딩 스냅을 찍곤 하였다. 결혼식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진작가 한 명을 부를 땐 크게 구분을 하지 않지만, 2명 이상이 되면 '서열'을 정리해야만 한다. 메인작가는 그날의 식을 총괄하는 지휘자다. 표정부터 연출, 디렉션까지 다 관장하며 식을 원활히 이끌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지난 2년간, 그저 서브작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곤 했었다. 그러면서 주변의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프리랜서 작가들께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름 동조하고 있었다.

"본업도 있는 애가, 뭐 하러 열심히 해"

"요새는 메인 안 해도 돼, 힘들게 뭐 하려 해"

"그 정도로 돈 못 벌진 않잖아? 주말에 뼈 빠지게 뭐 하러 그렇게 살아?"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굳이 이 일을 할 필요가 없는데... 마음속으로 되뇌며 지난 2년간 그저 '돈벌이' 정도로 치부할 때도 많았다. 물론 촬영 나가면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촬영하지만, 반복되는 똑같은 촬영에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프리랜서는 더욱더 그 세계 안에선 냉정하다. 스케줄을 많이 주는 업체를 만나더라도, 그 업체에서 메인작가를 시켜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미 잘 찍는 사람들을 사다 쓰면 되는 걸, 뭐 하러 키워서 써야 하는가, 게다가 키워줄 의무도 없는 게 맞다.


 그렇게 같은 일만 기계처럼 반복하게 되자, 점차 이 일도 흥미를 잃어갔다. 

무언가 갈증이 느껴졌다. 결국은 그 갈증은, 스냅업계에서는 만렙인 "메인" 타이틀을 한 번도 못 달아보고 그냥 '나 예전에 사진 찍었었어'라고만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 같다. 정말 나중에 누군가의 결혼식에 메인작가로서도 경쟁력을 갖고 싶었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았고, 무려 2년이나 같은 촬영을 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걸 생각하니, 차라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최근에 들었었다.


 우연히, '여수'에서 메인작가를 찾는다는 구인공고를 보고,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내 사진이 마음에 드니, 촬영을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솔직히 말씀드렸다. 메인경력은 없으나, 기회를 준다면 잘 찍어보겠다고 이야기했다. 본인의 결혼식에 직접 촬영할 기사를 구인하던 신랑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고, 예비신부가 나의 사진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날부터였을까? 무언가 삶의 흥미가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압박감과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남의 결혼식 망치는 거 아닐까?' 

'아니야,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훈련하고 노력해야지'

 비록 거리가 너무 먼 여수긴 했지만,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걸 나는 2년여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메인 작가 선배들한테도 염치 불고하고 전화해서 노하우도 전수받고, 그간 촬영했던 스냅결과물을 곱씹으며, 신랑신부의 손과 포즈, 표정등을 계속 머릿속에 넣고 퇴근하면서 종종 걸어오며 혼자 메인작가가 되어 식을 지휘하는 디렉션 연습을 계속 이어갔다.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왜 메인작가가 아닐 때에는, 그토록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던 신랑신부의 표정과 포즈, 그리고 손동작들이, 내가 메인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머리와 입으로 계속해서 되뇌며 집중 연습을 한 끝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게 되었다.


 오늘은, 그간의 연습의 결과를 얻는 날이었다. 아침 새벽 4시 40분에 기상하여 여천역 행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더니, 정말 날이 추웠다. 


 출발 후 세네 시간쯤 지났을까? 마침내 여천역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식 전 3시간 전에 웨딩홀에 먼저 당도했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원래는 있어야 할 메인작가가 없다는 게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고, 조금 더 나은 사진을 뽑아내기 위해, 신부대기실과 홀을 계속해서 돌며 포즈 잡는 연습을 진행했다.

'신랑신부가 정면에 서고, 두 분이 손을 잡고, 신랑의 한 손은 주머니에'

'신랑신부가 마주 보고, 살짝 멀어지고, 신부는 부끄러운 듯 부케로 입을 살짝만 가리고'

 

 그렇게 쉐도우복싱을 마치고, 긴장을 유지한 채 신랑신부를 맞이했다. 결론적으로 다소 김이 빠졌다. 그들이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이러저러한 연출컷을 많이 찍어보려는 게 내 목적이었는데, 그들은 연출보다는 스케치 위주로 나에게 부탁을 한 것이라, 연출컷을 거의 찍어보질 못했다. 그나마 아무도 스냅작가가 없으니 내가 이야기를 하며 식을 끌고 가볼 수 있었다는 것에 큰 경험이 된 거 같다.


"작가님, 오늘 서울에서 여수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돈 주고라도 오고 싶었어요, 경험해보고 싶었거든요. 저를 택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제가 감사합니다."

"네, 저도 웨딩 스냅업 프리로 하고 있어요, 나중에 일을 좀 드리고 싶은데 괜찮나요?"

"어휴, 네네 결과물 보시고 마음에 들면 꼭좀 불러주십시오!"


 그렇게, 나의 첫 '메인'촬영은 여수에서 진행을 해보게 되었다. 정말 최근의 내 일들 중에 가장 큰 고비 하나를 넘긴 셈이었다. 그동안 '잘할 수 있을까' 하며 긴장하고 또 불안해하던 나였기에, 오늘의 첫 메인 촬영 경험은, 스스로에게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더하기에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


 바깥에서 볼 땐 모두가 사진기 사지만, 그 나름의 내부 세계가 있다. 나는 지난 2년간 외부자에서 내부자로 들어온 것에만 만족을 했었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생각을 안 했던 거 같다. 


 앞으로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홍보를 할 생각이다. 첫 촬영이라 너무 경험이 없어서 자체 피드백간 안 좋은 사진들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본 하루여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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