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척 1
"빛담 프로, 코드리뷰어 과정은 좀 어땠어?"
B프로님은 내 소중한 고객 중 한 분 이시다. 내가 생각하는 고객이라 함은,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그것이 업무적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결국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니까.
사내 코드리뷰어 양성과정이라는 것을 마친 지 벌써 4달이 다되어 간다. 해당 교육과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일정 기간 동안 개발자로서 갖춰야 할 Test Code작성법, 코드 리팩토링, 그리고 가장 중요한 코드 리뷰 문화를 각자 조직에 전파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사내 메신저에 'BR'(베라 아니다)이라고 이름 옆에 붙게 되고, 게다가 소정의 격려금을 지급해 주고 있었다.
필자는 사실 사내 교육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사내 교육도 해주는 회사 다니니까 뭘 모른다'라고 배부른 소리라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항상 업무의 순서는 일, 모자란 부분 느끼기, 마지막에 교육으로 보강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되면 크게 의미 없고 그저 시간만 허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교육을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다들 받고 오는 거라는 분위기(?)가 내 주위에 형성되어 있어 상사가 강제 입가를 시켜 버리는 바람에 교육을 참석하여 정말 겨우 겨우 수료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교육과정 중, 그냥 '앉아서' 듣는 이론 강의는 너무 좋았었는데, 현장으로 복귀하여 실제 사내에 개발 코드 리뷰 문화 정착과 더불어 테스트 코드 작성 및 리팩토링을 실제 운영 소스에 적용을 해야 했는데, 그 점이 제일 어려웠었다. 특히 뒤에 언급 한 코드 수정 부분은, 나도 익숙지 않고, 해본 사람도 많이 없는 데다가, 결국 다른 업무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은 일이 되어 버리기 일쑤어서, 이 교육과정 '수료'를 위해 눈 가리고 아웅을 했던 기억이 났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B프로님은 나와 이야기를 통해 해당 과정에 대해 궁금증을 많이 물어보셨다.
'코드리뷰 과정은 어때?'
'좋아요, 이론은 좋아요'
'현장에 복귀해서 실제 적용을 해보려니 도움이되?'
'결국, 업무의 우선순위는 밀리더라고요... 잘 못했던 거 같아요'
이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나는 내가 대화 전반적으로 네거티브한 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B프로님이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무언가 뒷말에 여운이 남는 답을 하고 있었다. 사실하고자 하는 말은,
'수많은 사연들로 인해 이론상 좋은 부분은 많이 깨달았지만 현장 적용이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결국 내 안의 나를 깨닫게 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깨우기 힘든 사람은, 실제 잠을 자는 사람이 아니라 '자는 척'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코드리뷰어 과정 간 실제 현장에서 적용을 해야 될 사람이 '나'지만, 내가 '자는 척'을 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고객의 요청이 우선이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안 해도 티 안 나는 거잖아?'
'잘 모르는 건데 괜히 하다가 잘못되면 어쩔라고 그래'
등과 같은 무수한 '사연'을 담은 혼잣말들이, 마치 내 마음속에 계곡물 사이에 아주 오래 박혀있는 큰 돌들 마냥 자리를 꽉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결국 넌 딱히 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자는 척을 한 거지' 이 말로 그간 교육 후 현장과제 간 소홀히 했던 나의 모습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었는지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자는 척 2
"빛담 프로, 통화되?"
사내 메신저를 수신하여 확인함과 동시에, 필자의 휴대폰에 OOO PM이라고 적혀 있는 수신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현재 진행 중인 PoC(Proof of Concept) 개발 업무에 대한 또다시 변경건에 대해 나에게 설명해 주려 하고, 이 일을 진행하는 고객사의 의중을 나에게 전달하고 업무가 계속 변경되고 불확실하게 돌아가는 이 상황에 대한 위로(?)를 하기 위해 전화를 주셨다고 하였다.
벌써 올해 1월부터 이어져 오는 이슈 거리다. 해당 PoC를 우리 팀에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유레카'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지속해서 개발건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결사반대를 외치는 사람이었다.
필자가 결사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우리 팀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납득을 할 수 없어서다.' 반대로, 이 일을 시키는 팀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반드시 이 일을 해야 더 좋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라는 논리를 펴는데, 내가 볼 때 그들도 논리는 강하지 않다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만나 이야기를 하면, 몇 번의 제법 격식 있는 말들로 서로 주고받다가, 말의 논리가 점차 약해지면서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으로 가는 것도 나는 그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명분이 없다. 일을 주는 쪽도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히 설명하지 못하고, 일을 받는 쪽도 왜 이 일을 하지 않아야 되는지에 대한 논리는 약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힘의 논리에 따라 나는 방어하지 못하고 시범 삼아 개발을 우리 팀에서 해보기로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마저 순탄치 않다. 실제 해당 환경으로 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환경세팅에만 어마어마한 시간을 사용하게 되었고, 겨우겨우 환경을 마쳤지만 그 뒤에 남아있는 코드의 이질성등에서 나는 핑곗거리를 찾고만 싶어졌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피엠을 통해 그들에게 다시 한번 '하기 싫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이 나는 상당히 불편하다. 일이 되는 방향으로 모두 고민해도 어려운 상황에, 내 마음속에는 '일이 안 되는 방향'도 함께 고민이 드는데, 이 생각이 멈춰지질 않는다. 결국 내가 이 업무에 대해 납들을 하지 못한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남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런 일들 전에 업무를 주는 사람들과 나 사이에 길고 긴 히스토리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내 마음이 이 업무에 대한 당위성을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해보시죠'라고 팀원들을 설득하기엔, 정말 애매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이 업무 곳곳에 지뢰처럼 매설이 되어있고, 시간과 노력도 많이 드는 일들이기 때문에 가볍게 툭툭 업무를 이끌고 나가기에도 참 어려운 부분이 많다.
결국, 이것도 '자는 척'이다. 내가 그들이 시켜 우물가에 갈 수는 있어도, 그들은 내가 먹어야 하는 물의 양까지는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좋으면, 남도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제안을 할 수는 있으나, 결국은 상대방이 제안을 받던가 거절하던가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상대방의 마음을 얼마만큼 나의 생각과 일치시키냐에 따라, 업무의 성패가 바뀐다고 필자는 늘 생각하고 나 또한 실천하기 위해 노력을 해 나가는 중이다.
아직, 스스로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으나, 고민은 해보려 한다. 실제 그들이 정답을 찾은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나에겐 조금 이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