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마음
"여보, 둘째랑 일본 다녀와"
갑자기, 둘째 딸과의 일본여행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여행 가기 한 한 달 전 무렵이었으려나? 사실 필자는 요새 여행에 크게 관심은 없는 상태였었다. 게다가 내년 3월이면 홀로 오사카에 사진을 담으려 떠나기로 하지 않았는가. (링크) 아울러, 슬프게도 금전적으로 나는 여력이 없었다. 아무리 해외여행을 간다 하더라도 비행기값, 숙박료, 현지 교통비만 따져도 1인당 50만 원 이상은 족히 드는 비용이었다. 주말 웨딩 부업도 잘 못하는 와중에, 당장 그 돈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럴 줄 알고, 내가 돈을 모아놨어. 200만 원 줄 테니까 둘째랑 일본 다녀와."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디서 모았냐는 등의 자금 출처도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월마다 보내준 생활비와, 와이프가 주말에 수 시간 동안 일을 나가서 번돈등을 모았겠지..
"그래 고맙다! 잘 다녀올게"
나는 이럴 거면 다 같이 놀러 가고 싶었지만, 와이프는 주말 근무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첫째는 학교 수업 따라가야 한다고 본인이 여러 번 거절하여 함께 갈 수 없게 되었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첫째는 차라리 아빠를 따라갈걸 그랬다고 후회의 말을 건넸다.)
"둘째, 너 아빠랑 단둘이 여행 갈 수 있겠어? 아빠 무섭지 않아?"
"음... 무섭긴 한데, 화 안 낼 거지?"
나는 웃음부터 나왔다. 그랬겠지. 집에선 아무래도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덜 참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다닌다며 자기 위로와 논리로 무장하던 나였다. 지금은, 여행경비를 와이프로부터 'Funding'받아 가는 여행이므로, 나 또한 그녀와 함께 무탈히 잘 다녀와야 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다.
"응 화 안 낼게. 사달라는 거 많이 사줄게"
둘째는 말없이 나를 보며 왼손 새끼손가락을 나에게 내밀었다.(둘째는 왼손잡이다) 나는 말없이 새끼손가락으로 약속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자, 이것으로 여행 멤버는 아빠와 둘째 딸로서 2명 확정. 일정도 주말을 낀 평일 이틀 정도로, 3박 4일로 정했고, 적당히 항공권 가격이 저렴한 시간대로 날짜를 지정할 수가 있었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 중에서도, 이미 오사카, 후쿠오카를 가족들과 과거에 다녀왔던 터라,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바로 '도쿄', 우리 부녀는 도쿄로 가기로 했다.
회사에서 업무시간 틈틈이 여행 동선과 경비를 계획하는데, 결국 여행 콘텐츠를 어떤 걸로 잡느냐에 따라 여행의 방향이 많이 좌우될 것 같았다. 내 욕심대로 '관광' 위주로 스케줄을 만들지, 아니면 아이 위주로 '테마파크'와 쇼핑 위주로 할지가 고민이 되었으나,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 도쿄 여행은 '테마파크' 위주의 여행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비용도 숙박비를 조금 아끼면, 소비하기로 한 금액 안에서 해결 가능한 선으로 계산되어 어려움은 없을 듯했다.
하지만 아빠로서 내가 가진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아이의 체력' 숙소를 우리가 가기로 한 테마파크들인 디즈니 랜드나, 산리오 랜드 중 하나에 가깝게 잡고 매번 숙소를 옮겨 다니는 것도 마냥 좋다고 생각은 들지 않아, 해당 테마파크들의 중간 지점에 숙소를 정하게 되었다.
다만 이렇게 되면 일본의 대중교통을 통해 이동해야 하는데, 아이의 체력이 받쳐줄 수 있을지는 걱정이 앞서는 부분이었다.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앞서 걱정했던 둘째의 체력문제는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마음이 급해 발걸음이 빨라질 때에도 마치 어미 닭 뒤에서 졸졸졸 종종걸음으로 쫓아오는 병아리 마냥 캐리어를 한 손에 들고는 야무지게 아빠뒤를 잘 쫓아오곤 했다.
그뿐이 아니라 이동시간이 많은 대중교통 안에서도, 항상 앉아서 가지 못하는 상황이 당연히 발생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는 핸드폰 하면 된다며 의연하게 서서 목적지까지 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방문했던 테마파크와, 관광지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른이 나조차도 진이 빠질 정도였는데, 둘째는 의젓하게 자신이 타고 싶은 놀이기구를 기다리거나, 힘들어도 한숨 푹푹 쉬며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먼저 해주지 않아서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는, 아빠라는 사람이, 일본 풍경에 취해 카메라 두대로 셔터를 누르며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배려 넘치는 아이가 되어 가는구나 하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한 거구나라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미 나이와 몸은 어른이지만, 감정조절이 아직도 잘 되지 않는 나보다 아홉 살 난 둘째 딸이 더 나은 거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둘째와의 길고 짧았던 3박 4일 여행의 여정이 끝이 났고,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테마파크에서 인형 하나 더 그냥 사줄걸, 본인이 먹고 싶어 하는 아이스크림 하나 더 사줄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그때는 이미 인형을 하나 사줬으니까,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3개나 먹었으니까 하는 나름의 논리를 들어 사달라고 하는 아이의 요청을 거절했었는데, 돌아와서 보니 그냥 그때 사줄걸. 하는 후회도 든다.
"어릴 때, 사준건 기억 못 해도 안사준건 기억 잘해요"
지인과 딸과 여행 간 이야기 대화 도중,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형 안 사준 것 등에 대한 후회와 자조 섞인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분께서 이야기해 주신 말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 나도 어릴 적에 형은 갖고 있지만 나는 갖지 못했던 마이마이 카세트테이프를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 그리고 안 사주셨던 부모님의 대한 원망을 아직도 갖고 있지 않은가.
우리 딸도 그러하겠지... 어릴 적 아빠와 함께 간 이름 모를 미키마우스 나오는 테마파크에서, 곰돌이 푸 인형을 안 사줬더라지.. 하면서 나중에 커서도 입이 쭉 나온 채 불만을 늘어놓겠지. 어른이 되어야, 아니,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도 이해 못 할 그 당시의 사정이라는 것이 항상 있는 것임에도 말이다.
여하튼, 여행을 마치고 회사에서 밀린 업무를 하고 돌아와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둘째 딸과 함께 단둘이 떠났던 3박 4일의 도쿄의 테마파크 투어 여행을 생각하면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좋았던 나에겐 좋았던 모양이다.
필자가 어릴 적 주변 친구들과 나의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을 때, 친구들 중에 해외여행을 가는 친구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나는 부모님 모두가 주말까지 맞벌이를 하시는 터라 국내 여행조차도 생각하기 힘든 환경에서 자라왔는데, 우리 아이들도 그렇고 요즘 학창 시절을 지나고 있는 세대들에겐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가족과의 시간을 더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의 사회가 되어간다는 증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부디, 이 여행이 나중에 어려운 일을 겪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살면서 '즐거웠던 일'로서 그녀가 회상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거 같다.
그런 작은 이벤트들이 힘들 때마다 떠오르며 삶을 지탱해 주는 지지기반이 되기도 할 테니 말이다.
"언젠가 아빠와 함께한 도쿄의 디즈니 랜드에서의 추억이, 너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