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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06. 2021

강화도 여행기(광성보)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

"우리 한 곳 더 가자"

 대룡시장 일정을 오전에 소화한 이후, 비가 갑자기 너무 많이 와 추웠던 모양이다. 우리는 숙소에서 스파를 하여 몸을 녹이고 휴식을 취했다. 사실 예전에는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렇게 했을 때 가족들에게 피로감만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판단하여 오전 및 오후 각각 1코스씩 정도만 어딘가 향하게 되었다. 오후에 어딜 갈까 고민해보다가 생각 난 곳이 바로 광성보였다. 우리 와이프와 아이들에게 설득을 했고, 그리 향하기로 결정이 났다.

광성보는 조선 효종 9년(1658)에 설치되었고, 숙종 5년(1679)에 용두, 오두, 화도, 광성 등 소속 돈대가 축조되었다. 영조 21년(1745) 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고 안해루라 하였다. 고종 3년(1866) 프랑스의 극동함대와 공방전이 있었고(병인양요), 고종 8년(1871) 미국의 아세아함대가 이 성을 유린하여 백병전이 벌어졌을 때(신미양요) 어재연 장군 휘하 전 수비군이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순국한 곳이다.

광성보의 경역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1977년 전적지를 보수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보수정화비 등이 건립되어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도착하면 안해루라는 멋진 성이 우리를 반겨준다

"완연한 가을의 산책길"

 광성보는 숙소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도착하여 주차를 했고, 커다란 문 하나가 우릴 반겨 주었다. "한자를 못 읽겠는데, 뭐라고 쓴 거야?" 나는 와이프에게 물었다. "안.. 안 그다음에 해루! 안해루라고 쓰여있네" 우리 아이들에게 항상 글자의 70~80퍼센트는 한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함에도, 나 또한 한자공부를 게을리하여 잘 읽지 못한다. 사실 현대사회를 삶에 있어 한자를 직접 읽을 일이 크게 없기 때문에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한글로 읽는 한자가 뜻이 너무 다양하여 문맥 속에서 짚어 내야만 생활하는데 무리가 없다. 아이들에겐 그런 부분을 강조하며 '만화 사자성어' 책 등을 강력 추천하는 편이다.

 "산책길로 가자" 나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단풍이 맛있게 들어있는 길로 향했다. 와이프와 아이들은 만족한 분위기다. 나무 사이로 뻗어 나오는 가을 오후의 역광이 부드러우면서 예뻤다. 군데군데 아직 변하지 않은 나뭇잎과 단풍이 어우러져 뿜어대는 자연의 빛 축제를 즐기며 우리는 다 같이 손잡고 산책하며 즐거움을 나누었다.

이 빛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강화나들길 답게 멋진 풍경으로 우리를 인도한 이정표

"아픔의 역사,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광성보 유적지 안에는 돈대들이 위치하고 있다.

주변 관측이 용이하도록 평지보다 높은 평평한 땅에 설치한 소규모 군사 기지로 봉화가 딸려 있는 곳도 있음. - <한국 고전용어사전>

이곳에서 약 150년 전, 프랑스 미국을 비롯한 서양 열강들의 침탈에 대항해 장렬히 싸우다 전사해 간 조선 용사들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마주했다. 아이들에게 이정표에 적혀있는 내용 중 주요 내용 위주로 설명을 해 준 이후 돈대안에 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신이 났다. 사람들도 없는 데다가 주변이 뻥 뚫려있어서 뛰어놀기가 좋았나 보다. 신나게 뛰어노는 사이에 나는 사색에 젖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때 흥선대원군이 개방을 했으면 일본과 맞서 싸울 수 있었을까?' 개방을 했을 경우에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있는 옛 조정 관료와 국왕의 권력이, 개방을 요구하던 개혁세력들에게 순순히 이양했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조선시대보다 많이 나아졌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는 사람의 관점마다 다른 부분이라 조심스럽다. 어느 누구는 '반드시 외국 문물이나 신 기술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돈대 안에 들어가 보면 이렇게 멋진 풍경이 우릴 기다린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문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몇 년 전 애플의 스마트폰 도입을 둘러싼 문제를 두고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을 두려워했고, 이를 정부와 연계해서 도입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 도입된 아이폰은 '스마트폰'이라는, 이전의 휴대폰과는 다른 카테고리를 만들어 냈고, 그 결과로 세상은 보다 긴밀하고 빠르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때 A 제조사는 모든 역량을 스마트폰 제조에 쏟아부어 오늘날까지 위상이 이어져 올 수 있었지만, B제조사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지금은 더 이상 스마트폰을 제조하지 않는 업체가 되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 큰아이에게 늘 해주는 말이다. 또래에 비해 느린 발달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아이. 아마 본인이 '잘'하는 것만 부각돼 늘 칭찬받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자신이 부족한 것이라도 부딪치고 깨지면서 스스로의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이 있고, 여린 아이지만 인생을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항상 강조하는 말 중 하나이다.

"조선은 변화를 두려워했단다." "왜요?"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거지" "그때 미국에 문을 열었으면 우리나라는 더 잘 살았을까요?" "글쎄다, 그것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때는 개방하는 게 맞았다고 생각해." 역사이야기를 이어가며 우리는 광성보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도,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진 않았으면 좋겠단다." 이질감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어렵겠지만, 도전한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야. 자신이 잘한다고 칭찬받는 것에 취해 다른 분야에서의 꾸중과 질책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네" 그러고는 아이는 자기의 '주 전공'인 마리오 게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내 말을 듣기는 한 걸까)

 스스로에게도, 우리 아이에게도 해주고픈 말을 역사의 한 장면 속에 위치한 광성보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역사의 교훈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빛 좋은 따스한 산책길은 덤으로 얻어간 나에게는 소중한 장소로 기억될 것 같다.

저 포는 저 당시 미군의 함포를 이겨내지 못했으리라... 대세를 거스르면 어려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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