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Oct 21. 2021

개인화 시대

각자도생

어릴적에 일이다. 한 내가 초등학생쯤이니 약 30년 정도 되었지 싶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15층짜리였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그것들이 그렇듯, 복도식에 한층당 세대수가 빼곡한 아파트에 살았었다. 그 당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엘리베이터가 두대였는데 그 당시 알고리즘은 두대 모두 전층 운행이였다. 그래서 내가 내려갈때 운이 안 좋으면 전층에 내리는 일도 허다했던 때 였다. 그만큼 지금의 아파트와는 다르게 1대당 엘리베이터 사용 인구가 매우 높았던 시기를 겪었다. 


 


 어느 날, 오전 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던 어린 종화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13층을 누른 후 '닫힘'버튼을 눌렀다.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잠시만요~ 같이가요~" 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판단해야했다. '닫힘을 눌렀지만 열림을 다시 눌러 멈출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올라갈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가까스로 아주머니가 타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닫혀서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혼자 여유있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나쁘다~~나뻐~~" 라는 메아리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듣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타려 오고있으면 열림을 눌러 함께 가고, 그것이 당연하던 시절.요새 나는 지금 사는 아파트 및 회사에서도 열림 버튼을 눌러 혹여나 그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을까 우려되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는다. 그게 더 요즘 시대에 맞다라고 생각이 든 달까? 반대의 경우에는 내가 속으로 매우 화를 내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한참 기다렸고, 내 차례가 되어 닫힘을 눌렀는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미안하다고 하지 않고 그냥 자기 갈 층을 누르는 사람을 보면, 한 2초정도 지긋이 쳐다본다. '너가 생각한게 아직 세상의 국룰은 아니잖니?'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공동의 것' 이라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타야한다는 내용에는 공감하나,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먼저 기다린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에 조금이라도 추가 시간을 들게 했다면, 가볍게 목례정도는 하고 들어오는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불편한 지점은 먼저 기다린 사람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이런 일들은 오늘도 부지기수로 만나 볼 수 있다. 고속도로 분기점에서 줄을 설 수 있음에도 앞으로 쭈욱 와서 막판에 몸통을 넣어 새치기 하려는 사람들, 버스 출발하려는데 무리하게 버스문을 두드려 그 사람을 탑승 시키느라 횡단보도 신호 하나 걸려서 추가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부담해야하는 상황들, 적어도 우리 비상등을 켜서 뒷차에 고맙다, 미안하다의 표현을 하던가 버스안에서의 상황이라면 약간 큰 목소리로 버스기사님께 "미안합니다" 라는 표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도 들리게끔 표시를 하면 어떨까.


 나는 지금의 '개인화 시대'가 너무 좋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조금 더 개인화되어도 뭐라 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개인화라는게 새치기나 타인의 소중한 시간까지 뺏는것도 정당화 한다는 생각을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크나큰 오산이라 생각한다. 단체화가 아닌 개인화일 수록,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다.' 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표현하면 이 세상에 화가 조금은 더 줄어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시간보기를 금같이 하라. 황금보는것도 금같이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허리업, 빨리빨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