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담 프로님, 요새는 주말에 촬영 아직 하세요?"
"아 아뇨^^; 요새는 일 못 받아요. 강제 은퇴했어요."
"그렇구나... 저는 요새 다른 거에 푹 빠졌어요."
"그래요? 어떤 거 하시는데요?"
"메신저에서 이야기하긴 그렇고... 잠깐 커피탐 할래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H였다. 그는 예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였으나, 조직 내 매니저가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다른 부서로 옮긴 이였다. 옮긴 후에도 해당 조직에서 자신이 원하는 평가를 여전히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다른 동기들보다 늦게 진급에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를 주변 다른 동료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와 메신저 상에서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은 아니었어서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이 없었지만, 오늘은 업무 중 크게 바쁜 일이 없어 때마침 그에게 '진급 축하' 안부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는 어디에서 들었냐며, 늦게 진급해서 부끄럽다는 듯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 나갔지만 기분이 언짢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다른 부서로 이직하는 것이 결정되었던 날, 나를 다급히 불러 '드디어 이 부서를 탈출하게 되었다.'며 강제로 축하해 달라는 듯한 말을 하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옛이야기를 하며 다시 한번 메신저로 축하 인사를 그에게 건넸다.
이제 우리의 대화는 예전과 다르게 더 이상 사내 "평가"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그는 이제 막 진급했기에 더 이상 평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다만 그는 나에게 회사 말고 다른 일에 요새 관심이 있다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네, 그래요. 1층에서 뵈면 되죠?"
"네네"
우리는 그렇게 1층 로비에서 만나 오랜만에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 한 뒤, 그의 흡연장으로 함께 향했다.
필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종종 동료들의 흡연장에 함께 동행하는 편이다. 업무 중 내내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도 지루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흡연을 할 때 상대방이 가장 '진실'된 이야기를 해줄 때가 많다는 것을 군생활하면서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아주 총명한 말투와 제스처를 부리며 '스마트 스토어'에 대해 강의반 이야기반의 형태로 나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 또한 어떻게든 추가 수입을 얻고자 노력했던 때가 있었고 그걸 알고 있는 H였기에 좀 더 나에게 자신이 돈을 버는 방식을 소개해 주고 싶었었나 보다.
그는 대화 말미에 꼭 비밀을 지켜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떳떳이 공개하고 할 수 있는 부업은 사실 회사원에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껏해야 전공을 살린 '책'정도? 나처럼 에세이를 쓰려해도 그것은 아마 정식으로 인사팀에 보고를 하여 부업신고를 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회사입장에서는 기술 서적도 아니고, 에세이를 출간하는데 회사가 개입할 여지도 없을뿐더러 크게 이득이 된다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서적 출간도 이럴 터인데, 하물며 스마트 스토어라니. 그냥 몰래 알음알음 안 걸리게 해야 하는 부업인 것이었다.
담배를 다 태우며 마저 부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가 입사할 때는, 회사에 충성해서 임원까지 달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말이지...?'
나도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시키는 거 다 해내겠다.'라는 마음 가짐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점차 때가 묻고, 내 기대와는 다른 평가들을 마주하며 지금은 그런 열정이 많이 사그라진 것도 사실이다.
H도 아마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저 처음엔 뽑아준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내겠다는 마인드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의 기대와 다른 평가들을 마주 하며 회사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젊음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아울러 사라지는 젊은과 대치되는 것이 '가장의 무게감'이다. 필자나 H나 점차 지금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의 '기대 소득'이 기대가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가장으로서 짐을 어깨에 메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추가 소득이 나올 방도는 없는지 고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요새는 집에서 본인의 앱을 만드는 사업? 혹은 부업? 을 하고 있다는 O프로님이 참 부러울 때가 있다. 그야말로 덕업일치가 아니겠는가. 그에 반해서 나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큰 즐거움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니 업무 외에 다른 추가 소득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겠지.
H도 나도 대화 말미에 했던 말이 있다.
"프로님은 사진작가든 에세이 작가든 대박 나고, 저도 스토어 대박 나면 좋겠네요..ㅎㅎ 회사 안 다니게"
뭐,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겠으나 사진작가를 통해 받는 인건비와 서적 인세 등을 받으며 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찌 되었든 '현재'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들 이니깐 말이다. 그러면 나도 덕업일치일 텐데. 입을 끌끌 차며 나는 다시 사무실 24층 구석, 내 자리로 조심히 들어와 PC 잠금을 해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