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했다. 매니저님과 단둘이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굳게 먹은 날이었다.
그는 늘 그렇듯 새벽 6시에 출근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업무포탈에 로그인한 뒤,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 내용은 지난 주말 내내 고민했던, 지금의 프로젝트를 떠나는 새로운 변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때론 불가능해 보였던 일도 ‘우리 팀’이라서 해낼 수 있었고, 고객사로부터는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는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높은 기대와 책임은 동료들과의 마찰로 이어졌다. 모두의 기분과 눈높이를 고려하지 못했던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동료들 사이엔 오해가 쌓였던 부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동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내게 참 좋았던 기억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리더가 된 지 2년쯤 지나자, 내 이력서에 추가할 내용이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초반에는 ‘프런트엔드 개발팀 리딩’이라는 제목 아래 여러 성과들을 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성장은 멈춘 듯했다.
물론 나는 리더란 팀을 뒷받침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고객 대응과 운영 업무에 집중했다. 실무자들이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만족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기술적 역량은 점차 퇴보했고, 이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또 하나, 두려웠던 건 나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내 작은 의견이 정론처럼 받아들여지고, 모두가 그 방향대로 움직일 때마다 식은땀이 흘렀다. 내 한마디가 동료들의 시간을 앗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디어 하나를 말할 때조차 반론을 준비했다. 회의 시간에도 모두가 내 입만 바라보는 분위기 속에서 부담은 더 커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조직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사람이 있었다.
개발 역량의 퇴보, 책임의 무게는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그 사람과 함께하는 건 어려웠다. 매니저에게 말하기까지도 이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떠나야겠어. 나를 필요로 하고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잘해주기도 시간이 짧거든.’
혹시나 지금 나를 괴롭힌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면, 그때 가서 다시 고민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변화의 의지 자체도 중요했지만, 다음 행선지 또한 나에겐 중요했다.
내가 기술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팀 분위기가 무난한 곳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그와 반대되는 조건들이 뒤섞인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야근에 파묻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거나, 팀의 텃세에 출근이 두려워지는 상황들.
그렇지만 나는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하나도 내려놓지 않고 모든 걸 다 얻을 수는 없다.
지금의 나에서 벗어나기로 한 이상, 그에 따른 불이익은 내가 감당해야만 할 몫이었다.
매니저와 빈 회의실로 들어갔다.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불을 켰다.
업무 과중, 사람에 대한 피로, 역량의 퇴보. 등의 이유로 나는 매니저에게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매니저는 나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인 뒤,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그 역시 내가 그동안 다소 힘들어 보였다고 했다. 다만 이런 경우에 있어 본인이 당사자에게 먼저 물어보는 건 조심스러웠다고 덧붙이며 나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이후 그는 내가 옮겨갈 수 있는 과제 옵션들을 차근히 설명해 줬다.
회의실을 나서며 매니저는 내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왜 이제야 말했느냐는 말에, 나는 조용히 눈빛으로 답했다.
그날 이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바로 무너지는 일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혹시나 내가 선택한 변화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앞서 상상한 몹쓸 불이익이 다가온다 해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를 잃지 않는 것. 그동안 성실히 살아온 나한테 믿고 맡겨보자. 어떻게든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