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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슨 생각일까?

by 빛담

‘갑의 위치가 되면, 사는 게 좀 나아질까?’

IT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종종 떠올리는 질문이다. 평소라면 “No”라고 답하곤 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결국은 월급쟁이’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갑’으로 보이는 그들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갑’을 마주하고 있을 테니까. 부서장일 수도 있고, 더 높은 직급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같은 급여 체계 안에서도 매출을 내는 조직에 있다는 이유로 우위에 서는 경우도 있다.


결국 그들도 나처럼 시달릴 것이며, 오히려 더 많은 책임을 지기 때문에 더 큰 압박 속에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나도 저 자리에 서야지’ 하는 갈망을 가져본 적은 없다. 부러움도 없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예외다. 속칭 ‘갑에게 긁힌 날’. 딱 1시간만이라도 역할을 바꿔볼 수 있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오늘, 10여 명이 모인 단체방에서 벌어진 사건은 내 감정을 송두리째 휘저었다. A수석이 다급하게 쏟아낸 메시지들. 그중 어떤 말에도 내 상황을 묻는 배려는 없었다. 원인 파악? 수정 가능 시간? 장애 리포트? 그의 문장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일방적이었다.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나는 차분히 원인을 분석했고, 선조치 후 배포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억울함을 삭이며 장애 리포트를 작성했다. 비록 그건 ‘장애’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사안이었지만.


문제를 해결한 뒤에도 A수석은 단체방에서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테스트 코드가 없네요”, “코드 리뷰를 함께 보면 좋겠어요”, “인프라 차원의 점검이 필요합니다.” 말 하나하나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말들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정답만을 읊었다. 현실에서 그것이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누가 그 코드를 얼마나 오랫동안 책임지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는 ‘이론 100%’의 사람이었고, 나는 ‘실무 100%’의 자리에서 혼자 방어하고 있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겪기 전부터 많은 사람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려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배웠다.


퇴근 후, 망연자실한 상태로 집에 와 있었다. 옆에 있던 아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사람은 결국, 들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나를 비난한 목소리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목소리가 더 따뜻하고 힘이 된다.


자기계발서에서는 말하곤 한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건 나만 손해다.’ 그 말이 맞는 걸까? 그런데도 자꾸 그가 떠오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가 정말 나를 내보내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왜 돌려 말했을까? 대안이 있었던 걸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결국 나는 결심했다.


다음 주부터는 그의 말 하나하나에 내 마음속 코멘트를 차분히 대응해볼 것이다. 단, 이전처럼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기에,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될 것이다.


나는 아쉬운 게 없다. 지금 과제가 나쁘지는 않지만, 떠나야 한다면 갈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내 가치를 깎는 태도에는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도 주기 부족한 이 짧은 시간을, 나를 갉아먹는 감정에 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을’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갑’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위치보다도, 그 관계 안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다.


HWA00095.JPG 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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