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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08. 2021

그깟 종이 쪼가리 한 장

12년의 노오력

빨리 끝내고 싶은 밀린 숙제

 약 18년 전이다. 2003년 11월 4일, 2004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두고, 나는 많은 긴장을 했던 거 같다.

'정말 수능 시험 하나로 인생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겠지?' 하지만 이미 많은 모의고사를 통해, '인 서울' 대학은 어려워 보였다. 그야말로 내일은, '패자'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어서 끝내고 싶었다. 밀린 숙제를 마무리하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2002년에 수능을 본 03학번 선배들이 전통(?) 있는 우리 고등학교에서 선도부의 터치를 받지 않고, 선생님들의 두발 검사도 패싱 하여 학교를 올라갈 때에 당당하던 그 모습을 상상해봤다. '아,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 모레면 나도 1년 전 선배들처럼 어깨에 뽕 넣고 '나 수능 봤다' 하면서 우쭐대면서 등교를 하고, 졸업하기 전 할 게 없어서 맨날 교실 좌측에 위치한 VCR로 비디오방에서 대여해 온 신작 영화를 하루 종일 보고 있겠지... 그땐 그런 심정이었다.


시험 결과는... 어험

 마침내, 2003년 11월 5일, 오전이 밝았다. "엄마, 나 시험 보고 올게요" "그래 우리 아들, 시험 잘 보고 와?" 어머니는 집 앞 선원에 가서 3만 원 기부하신 모양이었다. 이상한 부적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쥐어 주셨다. "아들, 이거 지갑에 넣으면 시험 잘 본데"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라도 잘 보고 싶었다. 인생이 걸린 거니까... 나는 지갑에 잘 넣고, 어머니께 이야기했다. "기대는 하지 마, 그래도 최선을 다할게"라고 안심시켜 드렸고, 약간은 비장했던 각오로 문밖을 나왔던 거 같다. 이상하게 수능시험 볼 즈음되면 바람이 차갑다. 코끝을 베일듯한 찬바람이 떡볶이 코트 안으로 스며들었다. 수능시험은 재수생들도 많기에, 자유복이 허락되었지만, 나는 교복을 입구 갔다. 나에겐 교복이 평상복이라 달리 옷에 대한 고민을 안 해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OMR카드에 이름도 적고, 주민등록 번호도 적었다. 이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수능'이 시작되었다.

 1교시, 언어영역 시간이었다. 최소한 언어, 수리, 외국어는 잘해야... 문과로라도 교차지원을 하기에 놓치면 안 되는 과목이었지만... 보기 좋게 망했다. 2교시, 수리영역은 그래도 평상 시보단 잘 풀어서 반타작 즈음했다. 3교시 수리 과학 영역을 생각보다 잘 봐서 기분이 좋았었고, 대망의 4교시, 외국어 영역은 실수를 몇 개 해서 망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한 것이, 그 당시의 긴장도를 고스란히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그냥 '망한 시험' 이였다.


 얼마나 생생했으면

약 한 달 후, 수능 결과가 나왔고, 가채점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해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성적표를 멍하니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이 점수 갖고 어딜가지?' 'A는 나랑 비슷했는데, 이번에 잘 봐서 인 서울도 할 거 같던데' 하며 다급해졌던 나의 마음은 비슷했던 실력의 친구의 점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남과 비교하는 거 자체가 부질없지만, 그 당시는 어렸던 거 같다. 담임 선생님과의 진로 면담 시간에는, 선생님께서 냉정하게 대학 권유를 해 주셨다. '너는, 이 점수로는 여기가 최선이야, 상향지원보단 안정지원을 택하는 게 좋겠다' 사실 내가 관심 갖지 못했던 대학의 학과였지만, 다시 수능 공부를 할 수는 없었다. 집안에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스무 살은 수능을 종료함과 동시에 찾아왔고, 서른일곱인 지금까지도 꽤 긴장되었던 기억으로 내 머릿속에 온전히 보관이 되어 있다.


이 또한 다 잊히리

그깟 종이 한 장 때문에 내 인생을 이렇게 좁은 책상에서 공부했는가에 대한 생각이 무색해지게,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서른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수능을 못 보면 인생의 패자라는 생각도 가졌었고, 회사 입사하고 보니, 다들 좋은 학벌을 가진 선 후배들만 보다 보니,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올해 수능을 보는 수험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 또한 다 잊히리'이다. 결국 종이 한 장의 수능점수도, 자신의 운과 실력인 셈이다. 두 번 세 번 정도의 도전은 괜찮으나, 그 이상은 굳이 안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시험을 항상 잘 못 보던 필자의 경우도, 회사 입사해서는 시험보다 사회생활과 책임감으로 사는데 큰 지장이 없고, 사진도 생각보다 잘 찍고(?), 그 어렵다는 브런치 작가도 되었고(?), 결혼도 하여 자녀를 기르고 있으니 말이다. 공부 스킬이 다소 모자라도 괜찮다. 다른 스킬로 본인의 인생을 만랩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나는 패배자야' 할 시간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좋고, 밀린 영화보기도 좋다. 무엇이든 해 보자. 나중에는 분명 체력적으로든, 교양적으로든 큰 자산이 될 테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무운을 빕니다.

 그럼에도, 수능은 잘 보시라. 분명 삶에 있어 좋은 기회가 많이 올 테니깐.

그렇지만, 너무 목매지 마시라. 삶은 수능 점수하나 갖고 좌지우지되지 않는 많은 변수를 가졌으니깐.

올해 수험생들, 너무 고생 많이 하셨고 2021년 11월 18일, 수학능력시험 간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 

필자 또한 사회에서 여러분들의 무운을 빌며 언젠가 필드에서 그간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살아갈 생각이다. 모두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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