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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18. 2021

서로소

끼리끼리

서로소 (relatively prime / coprime),
 1 이외에 공약수를 갖지 않는 둘 이상의 양의 정수를 말한다.
이를테면 7과 13은 서로소이다. 예를 들면 두 정수 4와 9는 서로소이다. 즉 4의 약수는 1, 2, 4이고 9의 약수는 1, 3, 9이므로 두 수의 공약수는 1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7과 13, 또는 20과 21, 또는 33과 98 등이 서로소이다. 두 수가 서로소인가를 알아보는 데에는 유클리드의 계산법을 많이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두 다항식 f(x)와 g(x)가 공통 인수를 갖고 있지 않을 때 f(x)와 g(x)는 서로소라고 한다. 또 두 집합 A와 B에 공통으로 속하는 원소가 없을 때, 즉 A∩B=Ø 일 때 집합 A와 B는 서로소라고 한다. 예를 들어 A={1, 2, 3}이고 B={4, 5}일 때 A와 B는 서로소이다.
 이것을 벤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면 집합 A와 B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이 떨어져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서로소 [relatively prime / coprime] (두산백과)

"권력의 이동"

 내가 지상파 방송을 '본방사수' 해 가며 본 프로가 어떤 게 있을까, 케이블 말고, 케이블은 돈 들어가니까.

고민해본 결과, 무려 10년 전 차승원, 공효진 주연의 '최고의 사랑'이라는 드라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맙소사, 무려 10년 전의 해당 드라마가 내가 브라운관에 앉아, 부모님과의 채널 선택권을 다투어 가면서까지 보고 싶었던 마지막 콘텐츠라니. 물론 지상파의 콘텐츠를 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나의 경우를 이야기한 것뿐이다. 

 2021년,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본방 사수하기 위해 TV 앞에 모이는 일은 잘 없게 되었다. 공급망의 다변화로 인하여 해당 콘텐츠를 유튜브로도 볼 수 있고, 자료를 다운로드 받아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쿠팡 플레이, 티빙 같은 OTT 업체들도 부리나케 업로드를 해준다. 즉, TV를 기반으로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에 사람들을 모아 '권력'을 행사하던 지상파 방송 채널은 더 이상 시청자들이 목을 매지 않는 그저 콘텐츠들 중 One Of Them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이제 더 이상 필카와 집전화는 권력이 아니다. 지상파 채널도 마찬가지다.

"#해시태그 끼리끼리"

 이러한 지상파 채널의 몰락은, 미디어가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정보를 그대로 볼 수밖에 없던 우리의 콘텐츠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KBS, MBC, SBS의 뉴스를 8시, 혹은 9시에 맞춰 보지 않는다.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유튜브로 TV조선, 한겨레 TV 등의 다소 편향된 채널을 보며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에 공감대를 얻곤 한다. 또한 공정함을 스스로의 마지노선이라 생각하며 중계하는 스포츠 채널의 경우, 국가대표 경기 등과 같이 국민 다수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한국시리즈 등과 같은 중계에서는 해설에 있어 극도로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근래에는 자기가 응원하고픈 팀을 중심으로 이른바 '편파중계' 채널이 온라인에서 유행하고 있다. '우리 팀이 이기면 좋다. 나는 우리 팀에 감정을 소모하고 싶고, 우리 팀의 콘텐츠만 소비하고 싶어 하는 사람' 들의 마음을 잘 이용한 예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소그룹 간의 관심사, '#해시태그'기반의 콘텐츠를 구독하고 소비함으로써 '좋아하는 것 끼리끼리' 뭉쳐 어울려 살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점 조직처럼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껏 뭉쳤다 흩어진다. 거기에 속하지도 않는 '나노'급 인간들도 많아지고 있다.

"서로소 같은 사회"

 모든 것은 트레이드오프다. 세상에 없는 것이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정답. 둘째, 비밀. 셋째, '공짜' 그렇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앞서 언급한 끼리끼리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그 사람이 속한 사회 내에서의 온오프라인 교감이 활성화되어 친밀도가 올라가고 조직이 끈끈해지는 반면에, 점차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수용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거 같다. 정치가 대표적인 예이다. 어떻게든 서로의 흠을 잡아 비방하고, 선동하여 국민을 갈라치기하여 각자 진영의 표를 얻어가는 수법은 이미 오래이다. 근래에는 소위 진보세력은 다음으로, 보수 세력은 네이버로 몰려가 그들만의 댓글을 달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화가 보편화된 것 같다. 자기와 다른, 우리와 다른 의견이 댓글로 달릴 시 혹독한 대댓글로 서로 비방한다. 이는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장 주된 우리 사회의 변화의 이유를, 사회 구성원끼리 공통분모, 즉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나 교감이 적어 잘 섞이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무수히 존재하는 많은 사회 그룹들이 서로가 공유할만한 긍정적 이벤트나 사건 자체가 적다. 그나마 예전 지상파 채널의 '권력'이 있을 때는 이 권력을 빌려 긍정적이고 공감 가는 콘텐츠라도 강제 주입이라도 시켰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도 없는 환경에 놓였다. 대표적인 예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진행한 금 모으기 운동이나, 2002년 한일 월드컵 정도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마저도 이제 20년 다되어가는 이벤트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이해가 필요하다."

 비록 개개인이 보고 싶은 콘텐츠만 소비하게 되는 해시태그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와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삶의 공존을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은 이해와 관심이 점점 쌓여,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긍정적 파장을 일으키기를 기대해 본다.

작은 물결이, 큰 물결이 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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