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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21. 2021

세상의 유일한 공짜

부모님의 사랑

"아들, 아들 좋아하는 생김치 해놨어, 밥 먹고 가"

 이번 주 수요일 즈음이었던 거 같다. 어머니와 통화 중에 김장김치를 받아 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나는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족들의 경우도, 큰애나 조금 먹는 편이고(많이도 못 먹는다.) 둘째는 아직 매운 김치를 먹지 못해서 김치를 냉장고에 쟁여놔도 그다음 해에 시체(?)로 발견되기 일수였다. 그래도 아들 생각해서 주신 김치인데, 거절할 수는 없지. "알았어, 이번 주 토요일은 애들보느라 안되고, 일요일 갈게요"라고 말씀드렸다. "응, 올 때 과일 같은 거 절대 사 오지 마" 하고 어머니께서 전화를 끊었다. 항상 궁금하다. 이 말은 과일을 사 오라는 건지 사 오지 말라는 건지... 물론 안 사가도 별말 안 하시지만 사가면 좋아하신다. 미스터리 난제이다.


"그래도 빈손은..."

 일요일, 밀린 잠을 많이 자는 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중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내색하지 않고 버텨낸 대신, 주말 중 하루는 늘어지게 자야 조금 풀리는 편이다. 사실 내가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주중에 끌어 쓴 체력 보충을 위해 잠을 몰 아자는 방법으로 육체적/심리적 보상을 해 줘야만 한다.

 오전 11시, 자 다자다 지쳐서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가족들과 함께 어머님 댁으로 향했다. T 맵을 켜서 입력했다. '가나다 아파트' 추천경로로는 40분이 소요된다고 나왔다. 항상 막히는 동부간선도로 구간이라,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참고로 내가 살던 가나다 아파트는 30년이 다된 아파트라, 주차공간이 너무 적다. 가장 무서운 것은 차 사이로 사람이 튀어나와도, 알아챌 방법이 없을 정도로 이중주차가 만연해있다. 아파트 단지를 도착해 조심조심 5KM로 서행했다. 한문철 TV에 나왔던 수많은 보행자 충돌사고가 오버랩되며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주차 후, 과일을 사러 상가를 가서, 과일별로 한 봉지씩 주섬주섬 주어 담고 나의 옛집으로 향했다.

  


"도착부터 능숙하게" 

나의 옛집 앞에 도착해, 능숙하게 손잡이를 잡고 문을 돌린다. 보통 우리 올 때쯤 되면 문을 열어두신다. 열쇠 락이라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윽고, 어머니께서 손녀딸들에 눈을 마주치신다. 너무너무 예뻐하신다. 그다음 나, 우리 아들 오구오구 하는 눈빛이시다. 그다음 우리 와이프. 내가 볼 땐 서열이 가장 밀리는 거 같다. 옛집에 가면 항상 아이들 주신다고 과자 봉지를 만들어 두신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며 거기서 가장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픽하고 먹느라 정신이 없다. 요새 애들 1 Pic은 콘칩. 나도 공감한다. 요새 단거보다 저런 자극 없는 과자가 좋더라. 

 "오는데 막히진 않았고? 별일 없지?" 항상 부모는 걱정할 수밖에 없다. 나도 나중에 우리 딸들이 '옛집'에 방문하면 저렇겠지? "응 별일 없어요" 하고 아버지와 안방으로 들어가서 능숙하게 TV를 켰다. 2년 전에 내가 하나 해드린 32인지 TV인데, 수신 상태가 불량이라 잘 안 나오더라. 고칠까 하는데, 어머니가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해서 내버려 두고 그나마 화질이 괜찮은 11번을 틀었다. 덕분에, 평소에 잘 안 보던 '놀면 뭐하니'를 보았다. 보다 보니 예전에는 저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시도라도 하더니, 요새는 추억팔이 콘텐츠만 만드나 보다.. 싶었다. 다른 거 보고 싶었는데, 대안이 없어서 그냥 봤다. 아이들도 TV 켜놓고 집에서 가져온 놀잇감 가지고 역할놀이 중이다. 어머니는 아들 왔다고, 밥 해주려고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고 계셨다.


"맛있지?"

 어머니는 곧, 옛집 이사 올 때 함께 들여온 30년 된 오동나무 너낌의(그 당시는 최신 트렌드였다) 목조 식탁에 한상 가득 음식을 내오셨다. 식탁이 좁다 보니, 어머니는 늦게 드신단다. 그래도 입맛이 없다는 이야기는 안 하셔서 다행이다. 어서 빨리 먹어야 어머니가 드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빨리 먹고 있었다. 아이들도 함께 먹이려는 와이프의 손짓을 어머니는 막으셨다. "너희 먼저 편하게 먹어, 애들 나중에 주고" 나는 허기짐을 못 참고 막 담근 김치에 갓 익힌 보쌈 고기를 얹혀서 입에 넣는데, 입에서 살살 녹는 풍미와, 정성 가득하신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접시가 비는 것을 보시고 수육을 더 썰어서 채워 주신다. "우리 아들, 많이 먹어" 어디 가서 이런 말 들을 수가 있을까, 지금 글을 쓰는 도중에 생각해봤다. 며칠 전 사내 식당에서 등심 돈가스를 먹고 싶어 줄을 서고, "많은 양" 주세요 했더니 거절당했던 것이 생각난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부모님의 사랑 말고는", 오늘도 깨달았다.

계속해서 수육이 떨어지면 채워 주신 어머님
갓 담은 김치와 흰밥만 먹어도 꿀맛

"이거 어떻게 쓰는 거지?"

 점심 먹고, 내가 쓰던 거실 방에 대자로 누워 인스타 그램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핸드폰을 가져오신다. 1년 전 내가 사드린 자급제 갤럭시 폰이다. 얼굴을 갖다 대시더니, 락을 해제하시고 인터넷 뱅킹 앱을 여셨다. 송금을 하시고 싶단다. "폰뱅킹은 내가 잘 쓰겠는데, 이거는 어떻게 쓰는 거니?" 나는 친절히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어머니가 돋보기안경을 안 쓰고 오셔서, 내입장에선 큼지막히 쓰여있는 '이체' '송금'과 같은 CTA 강조된 버튼도 어머니는 못 보시는 거 같았다. "어머니, 돋보기 쓰시고 하셔야겠어요. 그리고 여러 번 해보셔야 할 거 같고, 형한테 물어봐가며 좀 배우세요" 아무래도 집에 형이 아직 있으니, 배우면 될 것을, 어머니는 형이 잘 짜증내서 물어보기가 싫단다. 나 오면 이럴 때 배워야지 하고 폰을 들이 미시는 거란다. 이제는 돋보기 없이는 은행업무도 못 보시는 어머니, 어릴 적 청소하는 총채 들고 내가 잘못할 때마다 나를 혼내시던 그 어머니는 이제 없으시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있을 때 잘해야 되는데"

 그렇게, 어머님께 공짜밥을 얻어먹었다. 덤으로 10kg 쌀 가마니도 주셨다. 비좁은 트렁크에 김장김치랑 과자 봉지, 그리고 쌀 포대기를 잘 끼여 넣고, 창문을 모두 열고 우리는 부모님께 인사를 했다. "잘 가, 또 오렴" 갈 때마다 잘해드려야 하는데, 맨날 투정만 부리고 어리광 부리는 아들인 거 같다. 그런 아들을, 어머니는 그럼에도 감싸주시고 안아주신다. '어디서 그런 투정이나 어리광을 받아주겠니. 나나 받아주지' 마치 이런 심정이시려나. 어쨌거나, 오늘 하루도 이렇게 공짜 점심을 얻어먹고 끝이 났다. 당분간 집에 와서 어머니가 주신 김치에 흰밥 비벼서 많이 먹어야겠다. 고마우신 부모님,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손녀딸들 자녀까지도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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