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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22. 2021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커피를 마신다는 것

'커피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과 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 -<탈레랑>

"어른 흉내"

 갑자기 여러분들의 어른 흉내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내 기억에 참 순수하고, '착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사춘기를 맞이하며 목소리가 바뀌고, 몸 구석구석 털이 나고, 키가 쑥 커서 '어른 아이'가 되어 간다. 정신은 아직 애지만, 육체는 어른으로 바뀌어 가기에, 철없던 그 시절, 놀이터에서 담배를 몰래 흡입하는 아이들, 술집에는 갈 수도 없어서 또다시 놀이터에서 술을 먹기도 하였고, 정말 이해가 가진 않지만 멋있어 보이려고 침을 뱉는 아이들. (물론 본인이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 우리는 누구나 '어른 흉내'를 내며 진짜 어른이 되기만을 꿈꾸고 있었다. 그나마 어른들이 혼내지 않고 묵인하던 어른의 맛은 단 하나, '커피'였다. 그렇게 나는 중3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요새는 커피숖이 많고, 접근성이 좋아 어느 누구도 잘 이용할 수 있게 변모해 가는 중이다.

"수학, 재미없다."

 나는 정확히 중3 때부터 학교에서 졸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중3 수학 중간고사 때 '무리수'에 대해 처음 배웠는데, 그때 공부한다고 밤을 새워 벼락치기를 했지만, 그쯤 되면 통할리 없다. 그렇게 점점 수학의 높은 벽을 느끼며, 학업에 싫증을 느껴가던 때였다. 그래도, 힘들게 돈을 벌어오시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아주 끈을 놓지는 않았고, 안 졸고 공부 조금 더 해보겠다고 학원에 있는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쓰기만 하던 커피가, 어떤 날에는 아주 달콤하게 느껴질 때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날에는 백 원 더 주고 '카페오레'를, 어떤 날에는 '까페라떼'를 호사롭게 마시기도 하였다. 물론 맛은 전혀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즉, 내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시점은, 나의 수학 성적이 낙하한 시점이며, 점수 만회를 위해 피로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려 커피를 마시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10대 때 수학 공부를 안 하는 나이가 되고 싶었다.'

봐야할 건 많고, 잠은 오고... 학창시절은 누구나 그렇다.
교동시장에서 만난 야옹이, 너는 어른이니 아가니?

"이렇게 맛없는걸 왜 먹지"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공강 시간에 학교 건물에 비치된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내려 먹는 걸 즐겨하는 공학도가 되어 있었다. 가끔 커피 먹기 싫을 땐 율무차를 먹는데, 그때 기계가 정교하지 못해서 가끔 율무 가루가 엉켜 붙어서 나올 때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그때는 아까워서 가루까지 모두 마시곤 했었다.

 나는 대학 다닐 동안 커피전문점을 가본 기억이 없다. 아마 우리 와이프가 산 증인일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내 복지관에 작은 카페가 있었는데, 어느 날 시간이 남아 거기서 이야기하려고 들어갔다. 당연히 남자가 음료를 사야지 하고 지폐를 주섬주섬 꺼내고 있는데, 순간 도전의식이 생겼다. "커피를 먹어봐야겠어"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는데, 저런 거 너 안 먹어 버릇해서 쓸걸?" 괜찮다. 나는 상남 자니까. 허세 가득 스물셋 나의 모습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광고에서 한번 들어봤던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그녀는 뜯어말렸다. 네가 생각하는 커피가 아닐 것이라는 말이었지만, '이제 곧 군대도 가는데, 이겨내야지' 하는 허세로 주문했더니... 왠 걸쭉한 까만 액체 몇 방울이 작은 잔에 담겨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 모금 입에 넣어보고 그 자리에서 뱉었다. 그게 나의 첫 '어른 커피'였다. 학창 시절, 달지 않으면 입에 대지도 않던 커피였지만, 비록 그 당시 써서 뱉었지만, '어른인 척' 몰래 먹는 달달한 커피가 아닌, 쓰디쓴 인생을 닮은 '어른 커피'를 처음으로 맛봤던 뜻깊었던 날이었다.

'나는 20대 때 재미없는 대학 과목도 듣고 싶지 않았고, 군대도 빨리 다녀오고 싶었다.'

압출 기계에서, 에스프레소가 떨어질때 느낌이 너무 좋다.

"쓰디쓴 커피처럼"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삼십 대 중반, 아니 후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릴 적 정말 어려워했던 철수와 영이가 나오는 수학 문제를 풀던 시기도 지나쳤고, 스무 살 전공과목 듣기 싫어 수업을 안 듣고 당당히 F학점을 받던 시기도 지나갔다. 어른이 되면, 그저 잘될 줄 알았다. 그리 믿었었다. 그래서 빨리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던 나는, 지금은 그저 하루하루 가장의 무게와 직장 내 책임감을 감내해야 하는 '어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다를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마이츄, 스크류바, 치토스 같은 과자들을 입에도 넣지 않을 줄 알았지만, 가끔은 우리 큰애랑 다투기도 한다. 서로 먹으려고,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아버지의 모습은 행동들이 모두 어른의 냄새가 났는데, 나는 아직 긴가민가 하다. 

 '어른'이라는 나이는 몇 살 정도가 되어야 어른일까?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하면? 나는 아직도 내가 애 같다. 질투심도 많고 배려심도 부족하다. 책임감도 그다지 없고. 내가 생각하기에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원두커피가 쓰지 않고 맛있을 때' 즉, 원두커피의 쓴맛과 인생의 쓴맛 중, 인생의 쓴맛이 더욱 앞설 때, 비로소 나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원두커피가 완전 달진 않으므로, 완벽한 어른이 된 것은 아닌 거 같다. 조금 더 철없어도 괜찮으려나? 여기서 더 철이 없으면 아가인데. 이럼 곤란하다고. 지금부터라도 아이들 마이츄는 안 뺏어먹으려 노력해야겠다.

지금은 비싸긴 해도 일상의 행복, 커피숖에 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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