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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24. 2021

언제부터 넌 혼자였니

혼자가 편해

"내 짝꿍 찾아요"

 내가 어릴 적부터, 일명 '왕따'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일본에서 건너온 이상한 악습이라 생각했었고 일시적인 사회 현상이라 생각했었었는데, 내 생각이 틀렸던 거 같다. 따돌림은 그 당시부터 커다란 사회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반에는 40명 조금 안 되는 아이들이 한 반을 구성하고 있었다. 남자 21명, 여자 18명 정도로 기억한다. 평상시 교실에서 공부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수련회'를 간다고 44인승 버스를 대절해오면, 그때부터 짝꿍 찾기에 돌입해야만 했다. 하필이면 '홀수'라니, 한 명은 혼자 앉아 가야 한다. 그게 내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때는 왕따 관련되어서도 민감하던 시기라, 누군가와 짝을 지어 옆자리를 채워 내가 '왕따'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짝꿍을 찾는 건 쉽지만은 않았다. 그 당시 지금처럼 자존감이 높은 편도 아니었고, 교우관계도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랑 수련회 버스 같이 갈래?" "아, 나 A랑 가기로 했는데..." 이렇게 나의 제안이 계속 거절당하다가, 결국 반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조용한 친구랑 마지못해 짝을 이루어 버스를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그 친구도 당연히 나를 '비주류'로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 최후의 1인에는 선정이 안돼서, 선생님하고 같이 안 앉아서 간 게 위안이 되었달까... 어린 시절에는 나의 짝꿍을 확보해 두어야만 마음이 놓였었다.


"옆자리는 가방 자리야"

 그렇게 대학교에 왔고, 동아리 첫 엠티 철이 다가왔다. 행선지는 가평, 우리 동아리 원들 열명 정도가 잠실에서 가는 광역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평일이니까 우리가 전세 낸 거 마냥 좌석은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스스로 약간 친하다고(?) 생각한 여자애랑 앉으려고 백팩을 어깨에서 내려서 두 손으로 잡고 앉으려 했는데, 이미 그 친구 옆에는 예쁜 핑크 백팩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그냥 나랑 앉기 싫어서 그랬던 걸까) 하는 수없이 옆을 다 둘러봤는데, 능숙하게 다들 두 자리 좌석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MP3를 듣는 것이 아닌가. 물론 옆자리에는 가방님들이 다소곳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학우들하고 이야기를 좀 하면서 가려했는데, 그냥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고, 나는 그때 처음 '혼자'앉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헤드폰을 끼면,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공간이 확보된다.

"통로 쪽에 앉지 마시고, 창가 쪽부터 붙어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입사 후, 새벽부터 셔틀버스를 타고 분당으로 출근을 해야만 했다. 07시 05분, 중계역에서 탑승하면 07시 40분 분당에 도착하는 버스였다. 내가 탈 때쯤이면 거의 간선도로로서는 마지막이고, 곧 고속화도로로 진입하기 때문에 자리가 한 두 자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정류장이었다. 사원증을 찍고, 버스에 올라 타 앉을자리를 탐색할 때면 꼭 통로 쪽에 앉아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잠을 청하는 직원들 때문에 아침부터 짜증이 나곤 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창가 쪽에 자신의 '가방님'을 모셔둔다. 그렇게 잠을 자버리니, 내가 앉으려고 들어가면 꼭 아쉬운 소리로 그 사람을 깨워야만 했다. "저기요, 가방 좀 치워주시겠어요?" 옆 사람은 짜증 섞인 실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상대방에게 눈빛을 약 2초간 고정한 후, 혹여 옆 사람에게 나의 코트 등이 공간을 침범할까 봐 옷깃을 부여잡고 앉아 MP3에 이어폰을 꽂은 채 공간을 단절시켰다. 자리에 딱 앉으면, 버스 천장 쪽에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도록 문단 제목과 같이 A4용지를 두어 개 잘라 출력한 형태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통로 쪽에 앉지 마시고, 창가 쪽부터 붙어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터였을까. 혼자 앉는 게 편하다고 느낀 시점이, 저 사람들도 대학교 MT시절부터 그랬으려나? 분명 저 사람들도 초중고 시절에는 '짝꿍 찾으러' 다녔을 건데...



"혼자가 편하다."

 #1, 혼자 밥 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나의 심리적 혼밥의 마지노선이던 '사내식당'에서 조차, 요새는 코로나로 인해 자리를 따로 떨어뜨려놔서 혼자 먹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순댓국집을 가도, 1인석이 잘 준비되어 있다. 눈치 볼 필요 없이 앉아 능숙하게 수저를 꺼내고 물을 컵에 담고,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2, 어려서 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점점 멀어진다. 초중고를 같이 나오고, 이십 대의 중후반까지 친했던 친구들이지만, 또래보다 먼저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가던 나는, 친구들과 나의 관심사가 너무 맞지 않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카톡방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게임 이야기, 연애 이야기 등등의 메시지들이, 이제 나에게 전혀 흥미 있지 않고, MeaningLess 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 때쯤, 과감하게 단톡방을 나왔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처음에는 친구들의 연락이 그립기도 했지만, 지금은 딱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 그 친구들도 나와 같은 환경에 놓일 때, 나의 상황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정도 든다.

그때는 나만 다르다고 생각했다.

#3, 사진을 시작했다. 물론 다리를 다쳐 농구를 그만두고 대체재로 입문하였지만, 혼자 산책하며 나의 그림을 남길 수가 있어 시작하였다. 누구에게도,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고 방해받지도 않는 취미기 때문이다.


어릴 땐 죽고 못살던 나의 짝꿍 본능, 이제는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남한테 방해 주고 싶지 않고,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렇게 오늘도 늦은 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유튜브로 '킬링 보이스-임창정' 편을 들으며, 세상과 공간을 단절한 채 나만의 산책을 마친 이후 브런치를 작성 중이다. 이렇게 또 나의 브런치를 통해서는 세상과 소통을 하게 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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