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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14. 2021

순간을 소중히

너무 앞만 보고 달린 나에게

#1, 잊혀 가는 로라의 추억

 이번 주 화요일, 로라가 고양이 별로 외로운 여행을 떠난 후, 집에는 로라의 흔적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부엌 한 구석에 마련된 로라의 밥자리, 베란다에 마련된 로라의 캣타워, 그리고 로라가 응가할 때마다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었던 화장실까지... 마치 처음부터 로라는 우리 집에 없던 아이처럼 차츰 지워지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렇게 된다.

 매주 토요일은 와이프가 일을 하러 가는 날이다. 보통 이맘때 로라의 이발사가 되어 털을 정리 해 주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사실 로라라는 존재가 '당연'히 있어 줄 걸로 생각해서, 이번 주가 '뻤다'라는 스스로의 핑계를 만든 후, 가끔 털 정리를 Skip 하기도 하고, 의무감으로 싫은데 억지로 해주기도 했던 후회스러운 시간들이 떠오른다. 와이프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5분이라도 더 놀아줄걸" 하며 후회의 감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아직 너 동생 두리는 만난 거 아니지? 두리까지 데려가진 말고 로라 야
고양이 별에서는 털 정리 안 해도 돼서 좋지 로라 야?

#2, 한통의 전화

 점심에 순댓국이 너무 먹고 싶어서, 집 앞에 나가 가게를 찾아봤다. 내가 좋아하던 역세권 순댓국집은 족발집으로 바뀌어 그곳을 갈 수는 없었고, 집 맞은편 시장 쪽 '25시 순댓국' 집이 보여 그곳에서 소박하지만 따스한 한 끼를 해결하고, 문 밖을 나오며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아들, 잘 지내지?" "그럼요" 고양이 때문에 아직도 힘드네 라는 말을 사실해보고 싶었는데, 철의 여인 어머니는 그럴 틈도 안 주시고 대화를 이어나가셨다. "아들, 어제 아버지가 할머니네 다녀왔어, 할머니 댁 전화번호 알지? 전화 자주 드리고 그래, 할아버지 없으셔서 많이 외로우신가 보더라고" "응 알았어"

 사실 할머니 댁에 전화를 잘 안 드리게 되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에게 잘해주신 분인데, 어느샌가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연락을 안 드려 소식이 끊기게 되었다.

 전화번호부에서 'ㅎㅁㄴㄷ'을 입력해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누구라고? 아 종화~" "네네, 자주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할머니는 나에게 세상 사는 게 어떻냐고, 손녀들은 잘 크고 있냐고 물으셨다. "큰애는 학교 언제 가니?" "아 벌써 2학년인걸요" 너무나도 죄송해졌다. 이렇게나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심했었구나... "셋째는 안 낳으려고?" "네, 집도 좁고, 돈도 없어요" "그래도 아들 낳으면 참 좋을 텐데... 나도 옛날 사람인가 보다 허허"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이라는 생각과 함께, 할머니께 연락드리길 잘했다 생각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다가, 할머니께서는 바쁜 사람 오래 붙잡고 있는 거 실례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바쁠 텐데, 이만 끊으마, 착한 우리 손자. 건강해"  

할머니에겐 나는 아직도 저 사진속 나이일 지도

"바쁘다는 핑계"

 누군가 내 곁에서 사라져 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때 나를 되돌아보곤 한다. 예전 할아버지가 가셨을 때도 그렇고, 친척 분들 중에 나에게 잘해주신 분들이 가셨을 때에도, 최근 로라가 고양이 별로 갔을 때도...

어제 와이프가 일 마치고 집에 와서 나에게 '선언' 하였다. "여보, 나 토요일 근무 조금 쉬려고" "왜? 여보 커리어 이어갈 수 있다고 좋아했잖아" 그녀는 당분간 '커리어'가 아닌 '자신과 가족'에게 포커스를 맞추겠다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래, 여보의 선택을 존중해!" 나는 강한 긍정으로 그녀의 선택을 지지했다. 그간 바빴던 게 사실이니, 그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좀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이전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관계를 잘 이어가던 군 생활 동안의 전우들도, 입사 동기들 모임 방도, 대학 동기 모임방도, 이제 더 이상 카카오톡에서 왁자지껄 떠들지 않는다. 그저 가끔 가다 '나 결혼해' 라며 '청구서'를 들이미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바쁘다는 말은 정말 무적의 단어다. 상대방에게 신경을 먼저 쓰지 않아도 될 당위성을 만들어 준다. 그렇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그 바쁜 와중에도 사진 등, 내가 좋아하던걸 해냈던 나이기에, 스스로는 오롯이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오늘부터라도, 조금 부끄럽고 낯간지럽긴 하지만,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 만이라도 인사하고 말도 걸어봐야겠다. "돈 빌려달라고?"라는 말이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지만, 그냥 안부를 묻고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실천을 언제까지 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혼자만 바쁘게 산다는 착각, 우리는 보통 그런 착각 속에 빠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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