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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12. 2021

'가게 점원'이 나를 알아본다

우주 최강 프로 불편러

"저... 잔액이 부족하다는데요?"

 2016년에, 이사 오게 된 아파트 단지 내에는 슈퍼마켓이 하나 있다. 그곳의 오후반 점원 A는 딱 봐도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인다. 그날 저녁 늦게 퇴근하여 맥주와 약간의 안주를 고르고는 계산대 앞에서 주섬주섬 카드를 꺼내 들었다.(그때는 삼성 페이가 없었다.) "봉투 구매하시나요?" "네네, 할게요" A는 능숙하게 빈 봉투 하나에 바람을 후 불어 부풀리고는, 내가 결재하려는 상품들을 담고 카드를 달라 손짓했다. 순간 고민했다. 이사한다고 여기저기 이체한다고 체크카드에 돈이 거의 없을 거 같은데... 그래도 설마 하며 체크카드를 냈는데, '잔액 부족', 하릴없이 신용카드를 내고 결재를 마쳤다. 

부끄러웠다. 이후에도 마트를 갈 때마다 A를 만나면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정작 A는 딱히 신경도 안 썼을 텐데.... 다행인 것은, A가 요새 안 보인다는 점이다. 그만두었나 보다 유후, 이로써 나의 흑역사 하나 정리!


"포인트는 넣어 드렸어요"

 위 문단에서 소개한, 마트에서의 일이다.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있다 보니, 그곳에서 간식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점원 B는 어느 시간에 근무하는지는 모르나, 토요일 가면 항상 볼 수 있다. 주섬주섬 아이들과 물건을 고르고 결재를 하면 점원 B가 말한다. "핸드폰 뒷자리 0000이죠? 포인트 자동으로 넣어드렸어요, 오늘은 큰애가 없네요?" "아 네네,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둘째랑만 잠깐 나왔어요" 내가 이걸 왜 B에게 대꾸하는 거지? 하면서도 내 얼굴을 보고 우리 와이프 핸드폰 뒷자리를 매핑해 내다니... 포인트는 자동으로 넣어 주셨다고 하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오묘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일까, '가게 점원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할 때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번은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을 때, 내가 자주 먹는 면요리 쪽에 결재를 하면 아주머니가 "칼국수 많은양으로"라고 동료 여사님들께 외치시는데, 기분이 좋은 듯 안 좋은 듯 오묘했다. '많은 양 시킨 적 없는데... 나를 돼지로 아는 건가?' 하면서 호의를 다르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몇 번 갔던 이발소에서는 한 점원이 "요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나 봐요"라고 하시는데, 기분이 그다지 좋을 리 없었다. 이사 오면서는 그런 말 안 하는 가게를 찾아 지금은 정착한 상태다. 마음이 아주 편하다.

 보통 나를 알아보면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예처럼 '나에게 불리한 기억'을 상기시켜 주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함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거 같다. 여하튼, 프로 불편러 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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