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다 안다고요
토요일은 언제나 나와 아이들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나른한 오후쯤, 자기 혼자 숙제한다고 방에 들어가 있는 큰애를 놔두고 작은애와 손잡고 우리가 자주 가는 무인 과자점으로 향했다. "언니는 어디 있어?" 사장 아주머니의 물음에 "숙제하고 있져요"라고 씩씩하게 대답도 잘한다. 큰애가 사달라고 한 빨간색 프레첼 과자와 작은애가 선택한 시고 상큼하고 쫄깃한 것들, 그리고 오랜만에 나도 '와플 쿠키'를 골라 집어 계산을 마친 후에 가게를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애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가 유치원에 온다는데?" "그래? 소미는 참 좋겠구나, 원하는 선물을 달라고 산타할아버지께 빌어야겠구나" 하며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산타'를 믿는 순수하던 시절이 있었지, 곱씹어보게 되었다. 언제쯤 작은애는 "아빠가 산타였어?"라는 말을 하며 세상을 알아가게 될까?
나는 8살 때, TV에서 그 당시 유행하던 이봉원, 박미선이라는 두 코미디언이 중국집에서 먹고 있던 '짬뽕'의 맛을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다. 생긴 게 흡사 라면과 비슷해 보이는데, 정말 맛있게 보여서 어머니께 사달라고 한 적이 있다. 어머니가 '짬뽕' 이라며 가져오신 것은, 그냥 '라면' 이었었다. 분명했다. 씹는 면발, 국물 맛 모두 라면이었다. "엄마, 이거 라면이 자나 짬뽕 아니고" 어머니는 본인의 '권위(?)'를 반박한 나를 보고 호되게 혼을 내셨다. 어린 나이에 이 정도까지 기억하는 거 보면, 정말 나도 서러웠었나 보다.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한번 맛을 보게 된 짬뽕 맛은 그때 어머니가 가져온 '짬뽕'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며, 경험치가 쌓여가며 '자신만의 필터'가 생기는 거 같다. 언제까지나 순수하고 싶었는데, 나는 8살 때 '이젠 안 속아'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우리 두 아이들은 언제쯤 나와 같이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걸러서' 듣는 시기가 오려나. 그래도, 우리 딸들은 나보다는 조금 더 순수한 시절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