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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28. 2021

모두가 로라 같아

아직 잊지 못하는 우리 딸

"추르가 남았는데, 집 가서 가져올게"

 로라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거의 20일이 되어가는 오늘이다. 요새는 예쁜 사진 찍기에 대한 의욕이 많이 없다. 이런 날 어떻게든 예쁜 풍경을 담겠다고 나갔을 텐데, 최근에는 명과 암을 찍는 것에 관심이 더 많이 간다. 점심을 간단히 밀 키트로 해결하고, 와이프와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카메라를 챙겼다. '브런치 작가'로서, 글밥에 맞는 스틸샷 촬영을 위해 생각해 둔 가게가 있었다. 목에 카메라를 걸고 아파트 1층에 내려와서 습관처럼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아파트 화단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로라가 그렇게 떠난 이후로, 이곳에 와서 멍하니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와이프는 애들 챙겨 준다며, 추르를 집에서 가져오겠단다. 그러라고 했다. 로라가 잘 먹던 추르... 아직 집에 몇 개 남아있었다.

마중나온 치즈, 그리구 침입자를 경계하는 고등어

        


"1일 사진사"

 와이프는 몇 번 로라가 먹던 사료를 놓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챙겨주는 캣맘분들이 계셔서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추르를 짜서 촵촵 먹어주길 기대했지만 경계 때문에 와서 먹지는 않고, 멀찌감치 짜 놓은 것들만 촵촵 먹을 뿐이었다. 하릴없이 와이프가 쪼그려 앉아 아이들 밥그릇에 남은 추르를 짜 주니,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도 야옹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카메라로 예쁜 모습을 담아 주려고 쪼그려 앉아 녀석들을 촬영해 주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는 너희가 1일 '로라'를 해주라." 내 마음을 알았는지, 치즈 녀석은 카메라에 호기심을 가지며, '코인사'도 우리는 나누었다.

'로라 사진을 더 많이 찍어줄걸... 이젠 찍어 줄 수가 없네..'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호기심에 카메라 앞으로 다가온 치즈녀석♡
배고팠나보다, 남은 추르를 짜 놓은 밥그릇에 아이들이 몰려와 후루룹 짭짭 한다.

"그립다. 우리 로라"

 와이프가 말하길, 위에 사진 밥자리에서 로라가 아프게 죽어갔다고 했다. 로라가 죽을 때 곁에서 지켜보던 고양이들이 이 녀석들이다. 묘연이 있는 셈이다. 치즈 녀석이 나에게 곁을 내주며 우리는 코인사를 하였는데, 로라 생각에 갑자기 울컥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로라.. 더 잘해 줄걸, 여기서 고통스럽게 죽어갔겠구나.. 싶어서 다시 한번 가슴이 매여왔다. 

 야옹이들 추르를 주기 전 오늘 아침, 와이프에게 사실 네이버 동물 입양 코너에서 찾아낸 로라와 꼭 닮은 고양이 사진을 보냈었었다. 우리는 내심 데려오고 싶어 했지만, 와이프가 로라 사건처럼 고양이가 또다시 우리 집의 환경 때문에 잘못될까 봐 걱정했다. 나 또한 그 마음을 알기에, "응, 그냥 닮아서 보내봤어. 정말 닮았지?" "정말 로라 닮았어... 정말로"라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생각해보니, 로라와 함께 하며 내가 더 그 친구에게 의지했던 거 같다. 잘 때 옆에 와서 그르릉 그르릉 함께 자주고, 아빠 왔다고 꼬리를 올리고 야옹야옹해주던 우리 로라.

 언젠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아주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묘연이 닿는다면 다시 한번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묘연이 왔을 때, 꼭 이번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얘들아, 로라 몫까지 행복하게 잘 살아! 가끔 추르 짜 놓고 갈게"

마치 해수욕장 온듯, 야옹이들 많이봐서 너무 기분이 좋았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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