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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Dec 09. 2021

서서 보는 영화

"백신 휴가를 시행합니다. 근로자들은 접종 당일부터 총 3일간은 눈치 없이 근태 결재를 올릴 수 있습니다"

 올해 6월,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코로나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직 예비군이라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얀센'백신을 먼저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백신 접종의 시기가 도래하자, 회사에서는 제목과 같이 '백신 휴가'를 공식화하며 근로자로 하여금 백신을 맞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와 보폭을 맞춰 나갔다. 

 "정 책임님, 며칠 쉬실 거예요"

 "응, 난 3일"

 "어머, 3일이나 쉬게요? 눈치 보이지 않을까요?

 "쉬면 쉬는 거지, 뭐, 쉬라는데, 어차피 일 바빠지면 들어와야 하니까 그냥 부르기 전까지 쉬려고"

 우리 팀의 백신 휴가 전략 Plan은 "쉴 수 있는 한 다 쉬자"로 정리되었다. 나 또한 '쉴 수 있을 때 쉬자'라는 나의 신념에 맞춰 그 당시 휴가 3일 다 쉬려고 했으나, 고객 회의 등, 내가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2일만 쉬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2일도 여기저기서 자꾸 메신저 및 전화로 문의를 주셔서, 그것을 대응한다고 제대로 못 쉬었던 기억이 있다.

 12월이 되어, 정부에서도 얀센 접종자에 대한 부스터 샷을 강조하고 나섰고, 업무도 '비수기'에 접어들다 보니 어제 백신을 접종 한 이후, 오늘까지도 집에서 편히 쉬고 있다. 

 "박 프로, 내일도 쉬어, 쉴 때 쉬고 가자고"

 "아, 네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관리자인 PM도 내가 백신 휴가로 신경 쓸까 봐, 안 바쁠 때 3일 다 쉬고 가는 게 좋겠다고 먼저 이야기를 해 준다. 나와 관리자의 생각이 일치하므로, 별 바쁜 업무 없으면 내일도 휴가 근태를 상신할 예정이다.


"너네 부서는 백신 휴가 며칠 써?"

 친구 A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로 연을 맺어서, 나보다 먼저 이 회사에 입사한 '회사 선배'다. 나와는 완전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아 입사 후 그곳에서 계속 업무를 이어 가고 있다. 우리는 카카오톡으로 취미나 업무 등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내가 어제 백신을 맞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제부터 자꾸 물어보는 말이 있다.

 "너 그러면 내일 출근할 거야?"

 "아니? 최소한 2일은 쉬려고"

 "그게 된다고? 눈치 안 보여?"

 "응? 이쪽은 다 3일씩 쉬어 ㅋㅋㅋ"

 친구는 접종 당일인 어제도 이렇게 물어보더니, 오늘도 카톡으로 비슷한 걸 물어온다.

 "너 내일은 출근할 거지?"

 "아니? 그냥 내일도 쉬려고"

 나는 의아해하며 왜 이걸 계속 묻는지 물어봤다. 이유인즉슨, 같은 부서에 B책임, C책임 등이 부서장에게 '쇼'를 하려고 백신 접종 맞은 당일만 쉬고 그다음 날부터 회사에 출근을 하고 있단다. 

 "B랑 C가 저러니까, 먼저 맞은 D 선임은 2일 쉬었거든, 걔만 바보 된 거지 뭐 ㅋㅋㅋ" 라며 본인도 결국 백신 맞은 당일밖에는 못 쉴 거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금은 안쓰러웠다. 일이 있어서 나오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남이 보여주는 쇼'에 대해 나까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신경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십분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모두가 여기저기 얽혀있다. 끊어 낼 수 없는 모두의 문제

"남들 다 하는 거니까"

 영화관을 가보면 알겠지만, 앞사람이 서 서보기 시작하면, 뒷사람은 좋든 싫든 영화를 서서 봐야만 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남들 다 하는 거니까' 우리는 우리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그 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은 어려서부터 '서서보는 영화'에 익숙해진 채 삶을 살아간다. 학창 시절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학교에서 끝나면 여러 학원을 돌며 우선 공부 시간을 채워야만 했다. 공부의 효율성은 따질 게 없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기 할 도리를' 학생은 학생대로 '자기 할 도리를' 하는 셈이다. 

 이처럼, 우리네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많은 것이 좌지우지될 때가 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남들'이라 불리는 사람들 또한 또 다른 '타인'에 의해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 틀림없다.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친구 A와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3일 다 쉬고 오겠습니다. 필요하면 불러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의 권리를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내면의 자신감을 갖고 '남들'의 눈치를 덜 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다들 하는 거니까"라고 해서 따라 해 봤자, 이 삶을 살아가는 주체도 내가 아니라 '다들'이 되진 않는다는 것을,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서야 점점 깨달아가는 중인 거 같다.

혼자서 하늘을 고고히 나는 비행기처럼, 내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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