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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Dec 07. 2021

재 계약

저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1, 동료"

  벌써 지난달의 이야기다. 나와 함께 업무 하는 동료 A를 만났다. 그는 우리 회사에서는 '협력직'이라 칭한다. 큰 의미 없다. 어차피 몸담고 계신 회사에서는 그분 또한 '정규직'이다. 마찬가지로, 갑에서 나를 볼 때는 나 또한 '협력직'이다. 사실 동료 A를 만나야 하는 건, 내년 '재 계약' 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올 한 해, 그분 덕에 겨우겨우 프로젝트의 파도를 넘을 수 있었다. 인력 유출 속에서도, 내가 부탁드리기 너무 미안한 상황이 와도, "그거 그냥 제가 할 테니까 나 줘요"라고 하시던 A, 개발자로서 존경할 정도의 빠른 속도와 로직을 놓치지 않는 디테일, 그리고 개발 PL직을 수행하던 나를 항상 논리적으로 설득하던 분이셔서, 나에게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그런 분이셨다. 마침 나의 상사가 A 차장님 재 계약 건으로, 나에게 컨택해서 결과를 달라는 오더를 내린 상황이라, 나는 A차장님을 뵙고 나의 1년을 '평가' 받기로 하였다.

 "A 차장님, 커피 뭐 드실래요" "아, 아아요" 나름 얼죽아 파 이시다. 이날만큼은 조금이라도 정성을 다 하고자 개인 카드로 결제했다.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었으면 해서였다. 커피를 받아 우리 둘은 산책을 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차장님, 제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올 한 해 고생하셨지요?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내년에 함께 일을 하며 배우고 싶습니다." 약간 주저하시던 차장님은 "저야, 좋지요. 집도 가깝고요"라고 금세 화답해 주셨다. 마치 슬램덩크의 서태웅이, "북산고에 왜 가냐"는 능남 감독에 말에 "가까우니까"라고 대답한 것처럼. 분명 다른 사람보다 일을 많이 드려서, 질려서 나가실 줄 알았지만, 다행히 나의 진심을 받아 주셔서 정말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큰절을 올린 후, 사무실로 가서 나의 상사에게 당당히 이야기했다. "A차장님, 남으시겠답니다." 이로써, 내가 올 한 해 이루고자 했던 첫 번째 목표가 완성되었다. 그것은 바로 "동료의 좋은 평가였다."


"#2, 고객"

 지난주 금요일이다. 고객사에서 많은 분들이 우리 회사를 찾아 주셨다. 우리 팀은 회의실을 세팅하고, 커피를 주문해 받아놓고, 간식을 구매하여 세팅을 해 두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회의는, 고객사의 업무별 리더들이 번갈아 가며 "내년 할 일"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마지막에는 우리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셨다. 이제는 내가 리딩을 하지 않기에, 나 말고 다른 동료가 능숙하게 마이크를 잡고 우리의 일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고객사도 같이 힘을 실어 달라고 잘 어필하며, 훈훈하게 길었던 워크숍이 끝났다.

 고객사 직원 B는 올해 2월부터 알게 된 분이다. 매사에 정감 가는 말로 상대방을 배려하며 어려워질 때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곤 하셨다. 11월의 어느 날, B는 나에게 메신저를 하였다. "많이 힘드셨지요? 저희 곧 가서 맛난 밥 먹으면서 회포나 풀어요" 사실 설마 했다. 요새 오미크론이다 확진자 수 폭증이다 해서 사실 올까 싶었지만, 많은 분들이 잠실로 오셔서 회식에 동참했다. B는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를 황금 비율로 한잔 말아 주시고는 나에게 '너는 재 계약되었어'라는 통보(?)를 해 주셨다. "종화 님, 여기 있으셔 유, 딴 데 가면 고생해요" 라며 내년에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주셨다. 이로써 나는 내년까지는 여기 있어도 되는구나... 그리고 이루고자 했던 두 번째 목표가 완성되었다. 그것은 "고객의 좋은 평가였다."

좋은 것 많이 사주셨다. 더 잘하라는 의미와, 올 한 해 고생했다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할 것이다.



"동료들이 허락해 주어야, 머물 수 있다."

 바야흐로, 재 계약의 시즌이다. 보통 1년 단위 IT Operation 계약이 관행이다 보니, 연말이 되면 재 계약 여부에 따라 팀 구성원들이 이동을 하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이 재계약은 철저히 '돈'을 기반으로 한 물리적인 재 계약을 의미한다.

 내가 정의하는 재 계약이란, "내가 이 팀에 머물러도 되는지에 대한 허락을 받은 상태"를 뜻한다. 앞서 언급한 물리적인, 1년 계약 다년 계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고객사에서 2년 3년을 계약해줘도, 동료들이나 고객들이 '나를 머물지 못하게 하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 한 해, 위에서 써 내려간 두 가지 목표, 동료와 고객으로부터 재 계약 통보를 나는 받았다. 이번 통보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더할 나위가 없다. 굳이 레이어를 나누어 보자면 아래로는 내가 많이 도움을 요청하던 A차장님과 내년에도 함께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했으며, 위로는 수많은 요청을 주던 고객들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인정을 받은 것이다.  

 아울러, 그간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소위 '히스토리 장사'를 해서 얻어낸 평가가 아닌 것도 나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할 사람을 조직에선 찾았고, 나는 기꺼이 조직을 위해 손을 들었다. 안정적으로 가만히 있어도 돌아갈 프로젝트를 박차고 나와,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융합하며 훌륭한 하모니를 내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한 거 같아 기분이 매우 좋다.

 물론, 내년이 되면 또 조바심을 내고, 조급해 질지도 모른다. 한 곳에 머무는 게 어느샌가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일상이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내년까지는 나도 이곳에서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거 같다.' 

 이유는, "동료들이 머물러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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