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어린이들의 천국이 되는 그 시간
오늘은 토요일, 어김없이 찾아온 나의 독박 육아 시간이다.
전날 회사에서 벌어진 매우 분 한일로 화를 삭이다 잠을 못 자고, 토요일도 그 여파로 애들과 많이 못 놀아 주었다.
9시가 좀 넘어서 침대에서 자다가 계속 뒹굴면서 부스스 깨고 있었는데, 애들 둘이 방으로 몰려와서 배고프다며 노래를 부른다. 잠결에 일어나서 능숙하게... 쿠팡에서 배송 온 '김치볶음밥'을 큰애한테 해주고, 둘째에게는 '비비고 고기만두'를 찜해서 내 온다. 아이들은 맛있다며 음식을 아주 잘 먹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아빠가 요리까지 잘하면... 완벽하잖니, 그래서 일부러 요리는 안 한단다.) 애들이 밥을 다 먹고, 빈 그릇과 빈 컵이 식탁에 덩그러니 놓이면, 싱크대에 가져가 물을 적셔 놓고 쟁여 둔다. 바로 설거지하기엔 조금 많이 귀찮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주변에 핸드폰을 찾아 나의 손이 탐험을 시작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 손에서 1분 이상 떨어지면 불안해지는 거 같다. 이런, 어디다 뒀는지 까먹었나 보다. 결국 큰애 핸드폰을 소환해서, 초성으로 검색을 한다. "ㅇㅃ"라고 검색했는데, 안 나온다...
"ㅂㅈㅎ"라고 치니까 그제야 한 건 나온다. 엄마는 엄마로 해놓고, 아빠는 이름이다... 이런 걸로 서운해하면 안 되는데. 뭐, 내가 그만큼 아이들과 정말 친하지는 않은 뜻이겠지
"오후 적설량 서울 8cm 예상"
휴대폰을 찾고, 인터넷을 열었는데 눈 소식이 있단다. 요새 날씨 예보는 잘 맞는 편이다. 사실 내가 최근 들어 잘 맞는다고 생각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코로나 확진자 수, 또 하나는 일기예보다. 슈퍼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운용되는지, 오차가 적게 날씨를 잘 맞추는 거 같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아직은 눈이 오려면 한참 멀었다. 시간을 봤는데 이제 1시다. 개인적으로 예보가 맞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2시가 조금 넘어가자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빠, 눈이 와요 오" 둘째가 베란다에 설치된 트램펄린을 타며 나에게 말했다. "그러게, 쌓이려나?"라고 이야기하며 아직도 눈이 8cm나 쌓일는지 긴가민가 하고 있었다.
"큰애야, 공부해야지, 학생은 공부를 해야 돼"
아빠 마음에선 아이 잘되라고 하는 말일 것이다. 큰애 표현으로는 '잔소리 폭격', 하지만 첫째 녀석은 오늘 '닌텐도 스위치'를 2시간이나 넘게 했다. 내 입장에서도 본전 생각이 나서, 공부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풀이 죽어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고, 둘째는 심심해졌는지 아빠에게 와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이것저것 보여주며 "아빠 이거 어때?"라며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 4시경, 하늘은 눈보라로 빛을 잃어갔고, 온 세상은 하얗게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적설량을 확인하러 문을 열었는데, 이미 눈은 많이 쌓인 상태였다. 한창 공부하던 큰애와 홀로 한글 쓰기를 하던 둘째를 소환하여 모두 눈싸움하러 가자며 단디 옷을 챙겨 입혔다. 아이들은 신나서 문밖을 나갔고, 눈이 복도에도 쌓여 꽤 미끄러운 상황이었다. 조심조심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아이들과 눈을 구경하며 눈싸움을 같이 하였다. 올해 내린 첫눈이라 그런가 아이들이 더욱더 신나 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던 거 같다. 아이들은 눈싸움도 나와 같이 하고, 작년에 사둔 핫템 '오리 눈사람' 만들기에 푹 빠져 놀이터 구석구석 작품을 만들어 놓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늘 내린 눈은, 나도 너무 좋았던 눈이었던 거 같다. 보통 '어른'이 되면 눈이 싫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어릴 때에도 그다지 눈을 좋아하지 않았다. 수족냉증이 심해 손발이 꽁꽁 얼어 눈을 만지는 거 조차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너무 좋았다. 뭔가 내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눈이 되어 내리는 느낌도 받았고, 아이들도 이 날따라 너무 잘 놀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겨울은 역시 좀 추워야 하고, 눈도 내려줘야 겨울 아니겠어?'라는 혼잣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신발에 눈이 안 들어가게 바지 밑단으로 최대한 보호하며, 아이들과 첫눈 맞이를 스케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