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
나는 프로농구를 매우 좋아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보다 다섯 살 많은 형의 사주를 받아, 농구대잔치를 녹화하라는 미션을 받고 우연찮게 농구에 입문하게 되었다. 농구 대잔치 시절, 농구의 인기는 그야말로 전국구였다. 신촌 독수리 연세대, 안암골 호랑이 고려대로 양분되는 라이벌 구도에, 대학의 패기를 제압해야 하는 노련한 실업팀들과의 매경기가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농구 경기를 본 후, 추운 겨울에도, 내 유일한 놀잇감인 짱구 농구공(압력이 안 좋아서, 공 한쪽이 튀어나와 드리블을 할 수 없는 농구공)을 가지고 무수히 많은 시간 슛 연습을 하던 날들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부터, 다리를 다치기 전인 최근까지도 농구를 좋아하는 나였다. 물론, 농구를 지금도 좋아하지만 예전처럼 전적으로 시간을 쓸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거 같다.
어려서부터 나는 고려대학교를 좋아했다. 붉은색 강인한 유니폼도 좋았지만, 맨날 연세대나 기아자동차에게 지는 모습이, 나로 인해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지금은 먹방 유투버가 된 현주엽을 좋아 하계 된 시기도 그 당시다.
지금은, 다들 잘 모르시겠지만 서울 삼성 썬더스라는 팀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있다. 이유는, 위에 설명한 내용과 유사하다. 별 뜻 없이 농구장을 찾았던 2013년, 동네북처럼 맞고 있는 이 팀과 연을 맺게 되었고, 그냥 좋아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농구에 대한 흥미가 더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맨날 지니까.
"농구나 보러 가자"
친구 A, B와는 조그마한 단톡방이 있다. 그곳에서는 마이너 한 구기종목으로 전락한 '남자 프로농구'에 대하여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건이 있어 좋다. 참고로 나는 NBA는 안 보는데, 그 이유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안 보고 있다. 내가 따라 할 수 없는 서커스 같은 농구를 보면, 흥미가 없거니와 히스토리도 농구대잔치-프로농구로 이어져 내려오며 많이 알고 있는 국내 농구보다 모른다. 기껏 해봐야 마이클 조던 정도...
"좋지, 7시 전에 보자"
"ㅇㅇ, B, 네가 내일 약속 파투 원인이 있으니 빅맥 사 와잉"
"ㅇㅇ"
남자들의 대화는 대부분 이렇게 간단명료하다. 사실 A, B와 이번 주 토요일 조촐하게 당일치기 여행을 가려했는데, B가 급한 업무가 생겨서 파투가 나서, 햄버거 라도 사라고 할 판이었다.
우리는 6시 30분쯤에 모두 모여서, 추운 날 바깥에서 식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허겁지겁 먹고는 농구장으로 들어갔다.
농구 경기는 매우 짧다. 게임이 금방 끝나면 1시간 40분이면 끝나는 스포츠다. 그래서 몇 번 공이 왔다 갔다 하면 끝나는 느낌마저 들 때가 많다.
친구 B는 분주히 농구 커뮤니티의 글을 찾기 시작한다.
'슛이 왜 저래'
'수비 저따구로 하냐'
'파울인데 안 불어 주네ㅋ 얼탱없다.' 등 새로 올라온 글을 보기 바쁘다.
나는 무얼 하냐고? 나는 농구 경기를 보러 온 게 아니라 흡사 사진 찍으러 온 아저씨 같이 분주히 셔터를 눌러댄다.
"이 사진 좋지?"
"그러네"
이런 무미건조한 응답이 다다. A, B는 내가 찍은 사진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이다.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 응답이 무미건조한 게 매력이랄까...
그렇게 경기는 끝이 났고, 친구 B는 농구 커뮤니티의 웃긴 짤들을 단톡방에 퍼 나르기 바빴고, 친구 A와 나는 함께 웃으며 하루가 끝이 났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같은 해시태그, 같은 취미를 갖고 함께 할 친구가 매우 소중하다.
단톡방에서 욕을 하고 누굴 험담해도, 그러려니 서로 인정해 주는 친구들, 가끔은 술 한잔 하자라고 할 때 나와주는 친구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어 주는 것 같다.
게다가, 그 취미가 사진 취미나 국내 농구 보기 같은 '비주류'라면, 더욱더 함께할 사람이 소중해진다. 단톡 방원들 모두, 올 한 해도 복 많이 받고 나랑 많이 놀면 좋겠다.
P.S 친구 A에게, 올해 10월이면, 매인 몸이 될 테니 그전에 사진 많이 찍어 두시길